[강대호의 책이야기]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할까?...한동일 '로마법 수업'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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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이야기]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할까?...한동일 '로마법 수업' 리뷰
  • 강대호 북칼럼니스트
  • 승인 2019.10.19 15:2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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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수업'으로 인문독자들 열광시킨 '로타 로마나 변호사' 한동일 교수의 신작
인류법 기원이자 인간다운 삶과 공동체 지탱위한 로마인의 치열한 고민의 기록 '로마법'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로마인이 묻는다...“당신은 자유인입니까 노예입니까?”
로마법 수업. 문학동네 펴냄
로마법 수업. 문학동네 펴냄

 

[오피니언뉴스=강대호 북칼럼니스트] 요즘 인기 있는 책을 읽었습니다. 2년 전에 나온 저자의 다른 책도 베스트셀러였습니다. 지금도 독자들이 찾는 스테디셀러이기도 하고요. 아마도 새로 나온 책 때문에 그 책도 더욱 주목을 받게 되겠지요.

새로 나온 책은 ‘로마법 수업’이고 전에 나온 책은 ‘라틴어 수업’입니다. 서점에 자주 들리는 분들은 눈에 익은 책일 겁니다.

‘라틴어 수업’은 라틴어를 소개하는 외국어 교습 책만은 아니었습니다. 고대 로마로부터 현대 이탈리아까지 아우르는 유럽 역사와 철학, 신학, 사회, 정치에 이르는 종합 인문학책이었습니다.

‘라틴어 수업’은 한 단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로마인들은 어떻게 썼는지 저자의 경험을 담아서 설명합니다. 그 단어가 들어간 경구도 소개하며 독자가 스스로 문장에 대해 생각해 보게끔 이끕니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을 예로 들면, 저자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언급합니다. 워낙 유명하니까요. 그리고 이 말의 원전인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Quintus Horatius Flaccus)’의 시를 소개합니다.

 

Carpe diem quam minimuum credula postero.
카르페 디엠, 쾀 미니뭄 크레둘라 포스테로.
오늘을 붙잡게, 내일이라는 말은 최소한만 믿고.
(한동일 ‘라틴어 수업’ 161쪽)

 

저자는 이 말이 숱한 의역을 거쳐 ‘오늘을 즐겨라’라는 뜻으로 정착되었다며 그 오해를 풀어줍니다. 당장 눈앞의 것만 챙기고 감각적인 즐거움에 의존해 살라는 뜻이 아니라는 겁니다. 매 순간 충만한 생의 의미를 느끼면서 살아가라는 경구라는 겁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학생들에게 '카르페 디엠'을 설명하는 키팅 (로빈 윌리엄즈).사진=IMDb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학생들에게 '카르페 디엠'을 설명하는 키팅 선생님 역의 로빈 윌리엄즈. 사진=IMDb

‘로마법 수업’도 ‘라틴어 수업’과 비슷한 서사로 쓰였습니다. 시민권, 재산권, 형벌 등 로마에서 제정한 다양한 법규정을 소개하면서 그렇게 정해진 배경도 함께 알아봅니다. 저자는 과거 로마법 제 규정들을 설명하면서 오늘날 대한민국 상황과도 연결합니다. 그래서 독자에게 법을 만들고, 해석하고, 집행하는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만들죠.

예를 들면, 저자는 로마시대의 정무관 등 고위 공직은 무보수 봉사직이었지만 자격 기준은 엄격했다고 설명합니다. 그에 비춘다면 우리나라 많은 공직자나 국회의원들은 자격 미달이라고 은유하죠.

 

“정무관이 되려면 반드시 군 복무를 마쳐야 했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고위공직자나 국회의원을 무보수 명예직으로 하면서, 그것도 군필자만이 할 수 있다고 못박는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려고 할까요?” (‘로마법 수업’, 46쪽)

 

두 책의 저자는 ‘한동일 신부’입니다. 그는 한국인 최초, 동아시아 최초의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Rota Romana)’의 변호사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라틴어를 비롯한 여러 유럽어와 로마법에 통달해야 한다고 합니다.

저자는 이 책을 연세대학교 법무대학원에서 강의한 내용을 토대로 썼습니다. ‘라틴어 수업’을 서강대학교에서 강의한 내용을 토대로 썼듯이요. 학생들의 좋은 반응이 있었기에 책으로 나온 거겠지요.

로마는 세계를 세 번 정복했습니다. 첫 번째는 무력으로, 두 번째는 그리스도교로, 세 번째는 법으로요. 어느 유명한 법학자가 그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현대의 법률이 로마법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걸 비유한 거죠.

하지만 저자는 로마법을 다시 살펴보는 것에 대해 “현재 법의 원천을 찾기 위해서만은 아니다”라고 강조합니다. 로마법을 통해 “인간을 둘러싼 바뀌지 않는 환경과 존재의 태도를 돌아보고 법을 통해 역사를 인식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죠.

로마가 망한 이후에도 로마법이 살아남아 인류에게 영향력을 끼친 것은 “그 안에 인간의 본질과 인간 사회의 명암이 그대로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도 덧붙입니다.

 

한국인 최초, 동아시아 최초의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의 변호사인 저자 한동일. 로타 로마나가 설립된 후 700년 역사상 930번째로 선서한 변호인. 사진=문학동네
한국인 최초, 동아시아 최초의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의 변호사인 저자 한동일. 로타 로마나가 설립된 후 700년 역사상 930번째로 선서한 변호인이다. 사진=문학동네

‘로마법 수업’은 고대 로마를 지탱했던 각종 제도와 규정들을 소개합니다. 자유인과 노예, 시민과 비시민, 결혼과 사실혼 그리고 이혼 등 어쩌면 오늘날과 다르면서도 닮은 규정과 법 집행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저자는 독자에게 묻습니다.

 

“인간의 현실이 법조항을 만들어내는 것일까요, 아니면 법이 현실을 더 공고하게 뒷받침하는 것일까요?” (24쪽)

 

저자는 그때나 지금이나 사회 구성원 간의 합의가 법을 만든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어떤 행동이 범죄인지 아닌지는 사회제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많은 이가 합의한다면 다른 사회에서는 아무리 옳은 일이라도 그곳에서는 범죄가 될 수 있다는 거죠.

책에서 언급한 여러 제도와 그 규정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차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자유인의 권리와 노예의 의무, 로마시민은 받을 수 있지만 외국인은 못 받는 혜택, 결혼과 이혼은 물론 재산권 행사에서 남자와 여자에게 주어진 서로 다른 지위 등. 오늘날이라면 비난받아 마땅한 일들이 로마에서는 정상이었던 거죠.

그런데 저자는 우리가 과연 그런 차별을 비판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 묻습니다.

 

“(로마처럼) 신분상의 불평등 원칙에 기초하여 차별한 사회와, (대한민국처럼) 명목상 평등 원칙에 기초를 두고도 차별하는 사회 가운데 어느 것이 더 낫다거나 진보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221쪽)

 

로마인들이 지금의 대한민국에 온다면 우리에게 뭐라고 그럴까요. 자기네들이야 엄연한 불평등 사회였기 때문에 그렇게 했지만 대한민국은 평등한 법치국가라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조롱하지는 않을까요?

‘로마법 수업’은 이렇듯 오래전 로마를 이야기하며 오늘날 당연하고 공정한 법 집행이 왜 중요한지 이야기해 주는 책입니다. 요즘 마침 ‘법’에 대한 화두로 대한민국이 홍해처럼 갈라졌습니다. 같은 법규정을 두고도 해석이 좌우로 나뉘었고요.

이 책은 오늘날 살아가는 데 필요한, 특별한 지혜를 주지는 않습니다. 다만 오랜 세월 인류의 가슴과 머리에 살아남은 평범한 지혜를 이야기합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 당연하게 알고 있는 것들을 글로 풀어낸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안다고 해서 그렇게 행동하고 있을까요.

 

Aequalitas omnium coram lege.
애콸리타스 옴니움 코람 레제.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 (223쪽)

Hominium causa ius constitutum est.
호미니움 카우사 유스 콘스티투툼 에스트.
법은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 (253쪽)

 

‘로마법 수업’에 나오는 오래전 경구를 읽고 잠시라도 마음이 숙연해진다면, 오늘의 현실에 조금이라도 창피해진다면 우리 미래가 지금보다 밝아질까요.

혹시 ‘로마법 수업’을 읽게 된다면 ‘라틴어 수업’도 함께 읽어보시면 어떨까요. 두 책은 오래전 다른 나라의 언어와 법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오늘 우리가 쓰는 말과 법을 되돌아보게도 합니다. 그리고, 나부터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고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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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준 2019-10-20 08:51:59
리뷰로 책을 읽고싶게 만드는 탁월한 글솜씨가 훌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