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칼럼] 민주공화제를 다시 생각함⑬: 민주공화국이냐 검찰공화국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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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칼럼] 민주공화제를 다시 생각함⑬: 민주공화국이냐 검찰공화국이냐?
  •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승인 2019.10.15 11:3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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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공방으로 검증될 공직자 임명절차, 검찰이나 법원 검증 거치는 건 잘못
법치는 정치와 균형 이뤄야....정치는 정치과정에, 법치는 사법과정에 맡기는 권력분립돼야
검찰이 던진 주사위, 검찰개혁과 정치의 사법화 관련한 '블랙박스' 열어...국민에 중대한 과제 안겨
김종철 연세대 교수
김종철 연세대 교수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초촛불의 ‘최후통첩’에 뒤이어 제1차 검찰개혁안을 발표했던 조국 장관이 전격 사퇴하면서 검찰개혁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앞으로 국민의 검찰개혁 열망을 실천할 수 있는 후임자를 어떻게 선임하느냐가 개혁전선의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그동안의 성과인 '법무부 탈검찰화'를 더욱 굳건히 하면서 검찰의 분권화와 민주적 책임성을 강화하는 개혁의식을 가진 후임자가 선임된다면 조국 장관이 쏘아올린 검찰개혁의 불쏘시개는 문재인정부에 대한 역사적 평가에서 중요한 한 장면으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검찰개혁은 앞선 지면에서 강조했듯이 전위대 몇몇이 나서서 하루 아침에 이루어낼 수 있는 가벼운 과제가 아니다.

소급하자면 식민지배의 유산까지 고려해야 할 뿌리 깊은 개혁과제이기 때문이다. 급하더라도 다시 근본부터 차근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이번 조국사태가 초래된 원인의 하나인 검찰의 탈정치화 과제에 대해 공화제의 핵심원리인 권력분립과 정치와 법치의 균형론 차원에서 되새겨보아야 한다.

공화적 균형을 유지하는 이념적 도구인 권력분립

우리가 올해로 100년을 기념하는 민주공화제는 사적영역과 공공영역의 합리적 구별을 통해 국가와 사회가 전체적으로 균형을 유지하는 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이다. 개인의 자율을 최대한 존중하면서도 삶의 기반인 공동체의 공공성을 확보해 모두가 더불어 자율적 시민의 삶을 누리는 공동체를 지향한다.

민주공화제에서 공화적 균형을 유지하는 이념적 도구가 권력분립이다. 법의 제정, 집행, 사법적 적용을 독립된 권력에 분립시키는 것 또한 독재에 의한 권력남용을 막음과 동시에 권력 사이의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심지어 다수를 구성하는 인민의 의지에도 절대적 우위를 인정하지 않고 왕정적 요소와 귀족정적 요소를 더불어 수용해 민주정을 순화하는 혼합정을 공화제의 이상적 정부형태로 채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선출된 권력' 문재인 대통령과 법치의 칼날로 대통령 인사권을 무력화시킨 윤석열 검찰총장.  사진= 연합뉴스
'선출된 권력' 문재인 대통령과 법치의 칼날로 대통령 인사권을 무력화시킨 윤석열 검찰총장. 사진= 연합뉴스

권력분립의 현대적 반영인 정치와 법치의 균형

권력분립의 원칙을 권력행사의 적정성 차원에서 적용하면 정치와 법치의 적정한 균형원리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정치와 법치의 구별원리도 검찰권 행사의 한계를 제공한다.

예컨대 이번 조국사태와 같이 공직자의 선임과 관련한 정치적 절차에 형사사법절차인 수사를 개입시키는 것은 최대한 자제되어야 한다. 정치를 과도하게 사법절차를 통해 해소하려다가는 민주공화국이 검찰공화국이 되고 판사공화국이 되고 마는 것이다.

도덕적 결함이 있어 보이는 공직자를 임명하는 것에 대해 정치적 비판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정치공방으로 검증될 일을 사법절차를 들이대어 해결했다가는 앞으로 모든 인사가 정치과정이 아닌 검찰이나 법원의 검증을 거쳐 처리될 것이다.

그러다가는 정작 법질서를 교란하는 범죄자에 대한 수사보다는 인사검증을 위한 수사가 우선시되는 사태가 도래할 것이다. 모든 공직후보자는 국민의 공복이라는 명예보다는 잠재적 범죄자신분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이 원칙처럼 되고 만다.

현직 공직자 모두가 교도소 담장을 걷는 형국에 복지부동이 원칙이 되고 나라가 해야 할 일은 오로지 불법과 합법의 틀에 의해서만 소극적이고 기계적으로 처리될 위험이 크다.

우려되는 정치의 사법화 심화 현상

요즘 국회의원이나 정당 등 정치권에서 툭하면 '법대로'를 외치는 행태는 공화제의 관점에서 매우 우려된다.

검찰에 정치현안과 관련해 고발하거나 고소하는 사건이 넘쳐나는 것은 정치적으로 해결할 일을 사법절차를 통해 해결하는 것으로, 정치가 법치에 과도하게 종속하는 ‘정치의 사법화’ 현상을 낳는다.

법치주의가 공화제의 요소이기는 하지만 법치과잉은 오히려 공화제의 균형적 정치이념에 배치되는 것이다.

법치는 정치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정치는 정치과정에, 법치는 사법과정에 맡기는 것이 권력분립이 전제하는 공화제의 정신이다.

더구나 형사사법관련 법집행권의 과잉은 공화제에서 금기 중의 금기이다. 별건수사나 먼지털기식 수사와 피의사실공표에 따른 여론재판은 무죄추정의 원칙(헌법 제27조 제4항), 자백강요금지 원칙(자기부죄금지원칙, 헌법 제12조 제2항), 자백만에 의한 처벌금지(헌법 제12조 제7항) 등 적법절차에 따른 형사법집행의 한계원리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공권력의 오남용일 뿐이다.

'아홉 명의 범죄인을 놓아주는 한이 있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시민을 범죄자로 몰아서는 안된다'는 근대 형사사법의 근본원리를 환기할 필요가 있다.

국민의 지지를 받는 살아있는 권력에 대하여도 헌법을 초월하여 법집행권을 남용할 수 있다면 힘없는 일반 시민들의 경우는 오죽할 것인가?

권위주의시절 정치사범을 양산했던 트라우마를 21세기 민주화된 대한민국에서도 계속 감수해야 한다는 게 쉽게 이해되지 않는 많은 국민들이 다시 촛불을 들었던 것이다.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의 필요성은 오로지 권력을 오남용하는 국정농단이나 부정부패에 대해서나 필요한 것이지 인사검증과정에서 휘둘러질 것이 아니었다.

공직자 선임이라는 정치적 절차에 형사사법절차인 수사가 개입한 것은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정치를 과도하게 사법절차를 통해 해소하려다가는 민주공화국이 검찰공화국이 되고 판사공화국이 되고 마는 것이다. 사진= 연합뉴스
공직자 선임이라는 정치적 절차에 형사사법절차인 수사가 개입한 것은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정치를 과도하게 사법절차를 통해 해소하려다가는 민주공화국이 검찰공화국이 되고 판사공화국이 되고 마는 것이다. 사진= 연합뉴스

민주공화국이냐 검찰공화국이냐?

조국 장관의 사퇴로 이제 검찰의 다음 행보가 관심사다. 당연히 자체적으로 검찰 개혁의 과제를 어떻게 제시하고 실천할 것인지 국민이 지켜 볼 것이다.

한편으론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론을 펼쳤으니 정부여당은 물론 또 다른 권력인 야당에 대한 고소·고발 사건을 어떻게 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만일 검찰이 패스트트랙 고소·고발사건을 건드린다면 야당은 정치탄압을 내세워 또 격렬히 저항할 것이고 이번에는 또 적극적인 검찰권 행사를 주장하는 서초촛불이나 여의도촛불이 등장할 수도 있다.

그 와중에 검찰개혁논의는 정치현안 관련 수사의 당부를 둘러싼 국론분열의 와중에 좌초해 버릴 지도 모른다. 우리 국민은 검찰권이 정치현안에 개입한 전례가 어떤 혹독한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의 악순환을 낳는지 경험하게 될지 모른다.

이번에 검찰이 던진 주사위는 검찰개혁과 정치의 사법화와 관련한 블랙박스를 열어 제친 셈이 되었다. 국민들에겐 민주공화국이냐 검찰공화국이냐를 결정해야 할 중대한 과제가 놓여진 셈이다.

●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서울대 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런던정경대 대학원에서 법학박사를 받았다. 현재 한국언론법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한국공법학회·한국헌법학회 부회장,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부위원장,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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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자 2020-01-24 18:33:22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 감찰무마, 선거개입 의혹 조사하니까 바로 수사라인 좌천시키는게 민주공화국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