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 프로젝트가 만든 中노벨 의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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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 프로젝트가 만든 中노벨 의학상
  • 연합뉴스
  • 승인 2015.10.06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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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부분 中 첫수상자 투유유 “전통 중국 의약이 준 선물”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투유유(85·여) 중국전통의학연구원 교수는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수상에 대해 "개인의 영예가 아니라 중국 과학자 전체의 영예"라는 소감을 밝혔다.

투 교수는 중국 국적의 과학자로서는 처음으로 과학 분야의 노벨상을 수상했다. 그는 자신의 수상이 약간 놀랍기는 했지만 크게 의외라고는 생각지 않는다는 입장도 전했다.

그는 노벨위원회에 보낸 수상소감에서 자신이 발견한 '칭하오쑤'(靑蒿素·아르테미시닌)에 대해 "전통 중국 의약이 세계 인민에 준 선물"이라면서 "말라리아와 같은 전염병 방지와 세계인의 건강 보호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밝혔다. 투 교수는 "칭하오쑤의 발견은 중국 의약이 단체로 발굴한 성공적 모범 사례"라면서 "이번 수상은 중국의 과학사업과 중국 의약이 세계로 뻗어나가는데 큰 명예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랫동안 동서양 약품을 결합하는 방안을 연구해 온 투 교수는 신형 항말라리아제인 칭하오쑤를 개발해 말라리아 환자의 사망률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데 기여한 공로로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하게 됐다.

 

중국은 자국 국적자로는 처음으로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배출된 데 대해 환호하고 있다.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축전을 보내 "중국 과학기술의 번영과 진보를 구현한 것"이라며 "중국의 종합적 국력과 국제사회의 영향력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음을 증명한 것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중국 언론들은 그가 수십 년 한우물을 판 이력과 이른바 '3무(三無) 과학자'로 불리는 순수토종 학자가 노벨상을 받게 됐다는 점 등을 부각시켰다. 그는 수차례 원사(院士·과학·이공 계통의 최고 권위자에게 주는 명예호칭) 선정에서 낙선했고 박사학위가 없으며 외국 유학경험도 없어 '삼무 과학자'로 불려 왔다.

 

투 교수는 베이징대 의대를 다니던 시절 식물 등 천연약물에 대한 연구 개발에 관심을 가지면서 이 분야와 인연을 맺었고, 1955년 중국전통의학연구원에 들어간 뒤 수십 년 동안 한우물을 팠다.

그가 가 발견한 항말라리아제 '칭하오쑤'(아르테미시닌)는 기적의 약으로 불린다. 모기가 전파하는 원충에 의해 발생하는 말라리아는 지금까지 많은 치료법이 개발됐지만, 지금도 매년 아프리카 등지에서는 유아, 어린이 등 50만 명 이상이 말라리아에 감염돼 사망한다. 그가 개발한 칭하오쑤는 말라리아 환자의 사망률을 획기적으로 낮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국언론들은 지난 10년간 연인원 10억명이 아르테미시닌을 투약받았고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이 약으로 생명을 건진 대부분의 환자가 어린아이들이었다.

 

이 '기적의 신약'은 아이러니하게도 미군의 중국 포위전략에 대항하기 위한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의 군사적 동기에서 연구개발이 시작됐다고 중국언론들이 보도했다.

중국의 남방인물주간(南方人物周刊)에 따르면, 투 교수의 가장 빛나는 연구성취는 1969∼1972년 '문화대혁명' 기간에 이뤄졌다.

그는 문화대혁명 초기인 1967년께 마오쩌둥(毛澤東) 전 국가주석의 지시로 이른바 '프로젝트 523'에 참여하면서 말라리아 치료제 연구를 시작했다.

투 교수가 근무하던 중국전통의학연구원은 1969년 당국으로부터 약초를 이용한 항말라리아제를 연구개발하라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이는 군사프로젝트의 일종으로, 암호명은 '523'이었다.

투 교수 연구팀은 1971년 항말라리아 효과가 있는 100%의 칭하오쑤를 발견해 내기까지 190차례나 실패를 경험했다.

남방인물주간은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새로운 신약을 개발해 북베트남의 '미제타격'을 돕는데 있었다"며 "1960년 대 당시 동남아 지역의 전장에 서식하는 말라리아 원충은 기존 약품에 이미 내성을 갖고 있었다"고 전했다.

당시 38살이었던 투 교수는 이 프로젝트에 보조연구원 신분으로 참여했지만 아주 빠른 속도로 연구팀장으로 승진하며 연구개발을 이끌었다. 이는 당시 경험이 풍부했던 과학자 대부분이 우파로 몰려 숙청됐던 문혁의 사회적 배경과 관련이 깊다. 투 교수는 유학경험이 없는 순수 국내파 학자였다.

연구팀은 1971년 항말라리아 효과가 있는 100%의 '칭하오(靑蒿·개똥쑥) 추출물'을 발견해내기까지 190개의 약초 표본을 실험했다. '칭하오'는 191번째 약초였다.

연구팀은 이후에도 계속 '칭하오'를 업그레이드하는 연구를 진행하며 마침내 오늘날 매년 수많은 생명을 구하는 기적의 신약을 만들어냈다.

 

중국내 일각에서는 투 교수의 연구 성과가 온전히 개인의 것이냐를 두고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이런 논란은 투 교수가 2011년 9월에 '노벨상의 전 단계'로 유명한 미국의 '래스커상'을 수상했을 때부터 불거졌던 일이다.

그의 주요 연구성과는 국가 단위의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완성된 것이고 그 과정에 참여했던 수많은 연구자들의 피와 땀이 응축된 것이기 때문에 투 교수 혼자서 보답을 받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주장이 존재한다.

이런 논란에 대해 투 교수는 래스커상을 받은 직후 "이 영예는 나 개인에게 속할 뿐 아니라 중국과학계 전체에 속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중국의 주요 관영언론들은 투 교수가 아르테미시닌 개발을 주도했고, 창조적인 역할을 한 사실을 결코 부인할 수 없을 것이라며 그의 수상에 의문을 제기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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