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선 상에서 차분하게 TPP 문을 두드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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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선 상에서 차분하게 TPP 문을 두드려라
  • 황헌
  • 승인 2015.10.06 13: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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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와 무역, 성장 그리고 패권...한판의 대국이 남아있다

(mbc라디오 오전 8시 ‘뉴스의 광장’을 진행하는 황헌(사진) 앵커가 방송 후 쓴 글입니다. /편집자주)

 

「뉴스의 광장」 클로징멘트
 한국이 빠진 TPP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이 타결됐습니다. 오바마는 타결 직후 “중국 같은 나라가 글로벌 경제 질서를 이끌도록 해선 안 된다.” 고 언급했죠. 미국과 일본이 왜 TPP에 심혈을 기울였는지 그 배경을 말해주는 대목입니다. FTA에 관한 한 F학점이던 일본은 우등생 한국을 단숨에 추격하게 됐지만 본격 경쟁은 이제 시작됐을 뿐입니다.

 

아담 스미스는 시장의 기능을 중시했다. 경제는 시장에 맡기면 된다는 논지다. 자유방임이다. 케인즈는 그 반대다. 정부의 강력한 정책 개입으로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다는 철학이다. 그런데 역사는 다수의 이론이 그러하듯 둘 다 맞고 둘 다 틀림을 증명했다.

 

2차 세계대전 와중에 다자기구의 출범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전쟁과 경제의 함수가 만들어 낸 산물이다. 1941년 8월 미국과 영국 수뇌가 대서양헌장을 채택한다. 여기서 1948년 GATT 출범으로 이어진다.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은 가맹국간 최혜국대우를 해줌으로써 수출 늘리고 고용 늘려 경제 같이 성장시키자는 취지로 출범한 국제기구다. 최초의 ‘다자주의(multilateralism)’실천기구인 셈이다.

그러다 김영삼 대통령을 희화화하며 자주 써먹는 “우루과이 사태” 표현의 원전 ‘UR’ 즉 우루과이 라운드를 거쳐 WTO 세계무역기구가 출범한다. 그 당시 쌀 수입 개방을 반대한다며 여의도 국회 앞에서 전국의 농민들이 벌이던 시위가 생각난다. ‘다자주의’의 완성체가 바로 WTO다. WTO는 근본적으로 규칙 중심의 다자협력체다. 일종의 법체계 중심이다. 그런데 개별 회원국은 수입 쿼터, 반덤핑관세 등을 무기로 내세워 WTO 정신을 무력화했다. 그런 무기는 결과 중심이다. 즉, 자국의 무역 상황 결과를 보고 불리하면 쿼터니 반덤핑이니 하며 자국 산업 보호막을 친 것이다. 그러니 WTO를 뼈대로 한 다자주의는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다자주의(multilateralism)’의 반대편에 서있는 개념이 바로 ‘지역주의(regionalism)’이다. 국가 간 지리적 접근성, 공통 문화와 역사 배경, 경제적인 상호 긴밀도 측면에서 이해를 가까이 하는 특정 국가끼리 무역의 장벽을 완전히 허무는 개념이다. 이건 규칙 지향적이냐 결과 지향적이냐를 놓고 갈등할 필요가 없는 묘수다. 유럽이 역사와 문화, 지리적 공통분모를 앞세워 세계 최대의 단일시장 유럽연합을 출범한 것은 지역주의의 초기 가시적 산물이다. NAFTA로 불리는 북미경제연합, 동남아의 ASEAN 등이 그런 예이다. 대한민국은 여기서 WTO로는 더 이상 미래가 담보되지 않는다는 판단 아래 일찍부터 FTA(자유무역협정) 체결에 나섰다.

 

우리나라는 2004년 4월 칠레와의 체결을 시작으로 싱가포르, 아세안국가, 인도, 유럽연합, 페루, 미국, 터키, 콜롬비아, 캐나다 등과 FTA를 타결해 이미 협정 발효가 시작되었다. 호주, 중국, 뉴질랜드, 베트남과도 서명해서 발효시점을 기다리거나 이미 발효가 시작되었다. 한마디로 일본과 러시아, 브라질과만 미체결인 것을 제외하고는 우리는 FTA에 관한 한 세계 최우등생이었다.

 

오늘 아침 12개 참여국 GDP 합계가 세계경제의 40%에 이르는 ‘수퍼 FTA’가 마침내 타결됐다는 뉴스를 전했다. 미국과 일본이 중심이 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TPP가 그것이다. 다른 FTA와는 이름부터 다르다. 파트너십이다. 초등학교 시절 배운 지진 잦은 ‘환태평양조산대’에 등장하는 ‘환태평양(Trans-Pacific)’이 이번엔 ‘파트너십(Partnership)’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아침이다.

뉴스 매체들마다 ‘한국 빠진 수퍼 경제동맹 등장’을 헤드라인으로 걸면서 큰 피해가 우려된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물론 영향이 클 것이다. 12개 회원국 가운데 일본만 빼고 10개 나라와는 우리는 FTA를 이미 체결했다. 멕시코와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TPP 참여를 생각하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그럼 왜 처음부터 참여하지 않았는가?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미국을 비롯해 TPP 회원국 대다수와 우린 이미 자유무역 파트너십을 구축했다. 일본과 멕시코만 제외하고. 2013년에 우리 정부도 참여 의사를 타진하다가 그만뒀다. 일본과의 개별 FTA 협상이 타결이 되면 TPP는 사실상 가입한 효과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어떤 경제 블록도 ‘완전 폐쇄형(full-closed)’ 또는 ‘배제형(exclusive)’으로 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미국과 중국의 고래싸움에 우리가 어떤 발걸음을 하느냐이다. 일본의 신안보법 통과와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의 변신이 가능했던 데는 미국의 어시스트가 컸다. 중국은 미일 중심의 IMF가 달러의 흐름 하나만으로 한 나라 경제를 흔들 수 있다는 것을 경계해 AIIB(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를 만들었다.

미국은 이를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미국의 기관투자가들이 최근 석달 상하이 증시에서 대거 이탈하는 수단을 통해 중국 경제에 보이지 않는 손을 쓴 측면도 강하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는 중국의 거품 붕괴가 막 시작되었을 뿐이라는 이론도 있고 일정 부분 그게 맞는 측면도 있음을 인정한다. 때마침 중국은 ‘역내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 즉 RCEP (Regional Economic Comprehensive Partnership)의 출범을 적극 이끌고 있다. 여기엔 우리나라도 참가 중이다. 10월 부산에서 10차 협상이 진행된다. 일본과 오스트레일리아, 싱가포르는 TPP에도 참여하지만 RCEP에도 참가했다. 양다리가 아니다. 이게 바로 완전폐쇄형이나 배제형이 아닌 오늘날 지역주의 체계의 특징이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늦었다 생각할 필요 없이 차분하게 산업별로 조건을 잘 따져서 TPP의 문을 두드리면 된다. 낙오자가 된 것인 양 호들갑 떨 필요 없는 사안이다. FTA 우등생 한국을 일본은 한 방에 따라잡은 ‘神의 한 수’를 세계무역 바둑판에서 둔 것이라는 표현은 그래서 과한 것이다. 물론 일본 시각에선 그렇게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원점이다. 다시 출발선상에 있다는 각오로 우리 경제의 산업 분야별 경쟁력을 높이는 일만이 남아있다. 그것만이 이 한 판의 대국 그 최종 결과를 말해주는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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