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옥 칼럼] 언론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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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옥 칼럼] 언론이 부끄럽다
  • 윤성옥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 승인 2019.10.07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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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옥 경기대 교수

[윤성옥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요즘 한국 언론의 보도를 보고 있자면 할 말을 잃게 된다. 어쩌다가 우리 언론이 언론으로서 역할과 기능은 다 벗어던지고 이 지경까지 왔단 말인가.

한국 사회에서 민주화를 이루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큰 역할을 했던 언론과 언론인이다. 정권에 맞서 펜을 굽히지 않던 언론이 있었다.

언론계에 이런 저런 훈수를 두며 살아왔던 나로서도 요즘 언론을 대하면서 괴로움이 적지 않다.

요즘 언론, 역할 제대로 하고 있나

기자는 전문직이다. 물론 의사, 변호사처럼 자격증 제도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그들처럼 일종의 전문성을 요구한다. 정치, 사회, 경제 등 특정분야에 대한 전문성과 취재, 글쓰기처럼 특별한 업무능력을 요구하는 직업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그보다 더 깊은 뜻이 있다.

마치 의사가 환자를 대하듯, 변호사가 의뢰인을 대하듯 기자들도 그런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때로는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용감하게 권력에 맞서 싸우고 때로는 소수의 목소리를 보호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기자는 그런 역할을 했다. 독재권력 앞에 개인이나 회사의 이익보다는 이 나라, 이 사회를 위해 펜대를 꺾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 언론은 어떠한가. 누구 하나 걸리면 샅샅이 털어내듯 기사를 써대고 있다. 먼지털이는 검찰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먼지털이식 보도에 무죄추정의 원칙도, 최소한 보호받아야 할 인권도 사라진 지 오래다.

기계적 균형이 '공정한 언론' 의미하진 않아

언론은 공정해야 한다. 공정성은 양적 균형성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물론 양적 균형성도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공론장 역할을 하는 언론에서는 누구나 공평하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양적 균형성만 갖춘다고 반드시 공정한 언론이 되지는 않는다. 언론은 법무부장관의 가족문제가 왜 문제인지, 검찰수사가 왜 문제인지 판단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집회시위자가 200만명인지 5만명인지 가려주는 것도 언론이 할 역할이다.

언론에게 섣불리 옳고 그름을 판단하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다만 언론의 본질적인 기능은 사실 확인이고 사실을 근거로 무엇이 맞는지 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옳고 그름에서 중간자적 입장을 취하는 것은 비겁한 거다. 

언론은 객관적이어야 한다. 객관성이란 참으로 어려운 개념이다. 객관적 보도가 언론 공정성의 핵심인 것처럼 말하지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동일하게 그날 압수수색이라는 사건이 발생했더라도 기사 제목에 피의자의 발언을 인용할 수도, 검찰의 수사발표를 보도할 수도 있다. 어느 것을 써도 있는 사실을 그대로 보도했으니 객관적 보도다.

최근 '조국사태'를 통해 언론의 기능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검찰개혁 이후에는 언론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무엇을 다루었느냐에 따라 본질은 완전히 바뀐다. 피의자 입장에서 부당한 수사를 받는 것으로 보일 수도, 검찰 입장에서 범죄행위가 심각하게 보일 수도 있다. 객관적 사실보도가 실체적 진실과 항상 부합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객관 보도를 가장한 사실 왜곡이 넘쳐나고 있다.

객관적 보도를 가장한 사실 왜곡 경계해야

언론은 진실에 기반해야 한다. 국내 법원이 언론에게 엄중하게 입증책임을 묻는 것도 언론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진실확인 의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언론에서 나온 보도를 인용해도, 유명 정치인의 말을 그대로 써도, 인터넷에 떠도는 말을 기사화 해도 우리 법원은 언론에게 그 책임을 다시 묻는다.

요즘 우리 언론은 여당, 야당, 청와대 발표나 입장을 그대로 받아 쓰기만 하고 진실을 확인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익을 추구하므로 서로를 향한 말이 누군가에게는 칼이 될 수도 있다. 그들의 확성기가 언론의 역할은 아니다.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가 문제라고 하면서 그대로 받아쓰기 하는 언론은 더 문제다. 언론이 받아쓰지 않는데 검찰이 피의사실을 흘리겠는가. 그저 ‘받아쓰기’ 하는 언론이라면 그건 언론이 아니다.

언론은 민심을 잘 헤아려야 한다. 민심은 다수에게도, 소수에게도 있다. 그런데 언론이 국민의 뜻을 제대로 읽으려고 하지 않는다. 오로지 여론조사 수치에만 집착을 하며 여론의 향방을 주시한다. 여론조사는 여론을 측정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여러 한계를 가지고 있다. 알면서 그러는지, 몰라서 그러는지 여론조사 결과를 부풀리기나 왜곡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전자라면 못된 것이고 후자라면 무능이다.

나아가 정작 여론의 강도는 무시하고 있다. 사법개혁을 요구하는 시민들은 그 숫자보다 여론의 강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 민심은 파악하려 하지 않고 정파적으로 활용하려는 태도는 언론이 아니라 정치인이 하는 짓이다. 정치검찰이 아니라 정치언론이다.

언론의 자유는 국민들 표현의 자유를 대신 행사하는 것

언론이 부끄럽다.

검찰개혁은 대통령의 의지도 강하고 법무부와 검찰이 스스로 개혁주체로 나서고 있다. 법제도, 검찰권 등 검찰개혁의 대상에 사회적 합의도 형성되었다. 진영과 무관하게 검찰개혁을 열망하는 국민들의 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언론의 문제는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표현의 자유라는 명분 하에 우리 사회의 편견, 양극화, 갈등을 정작 조장하고 있는 주체가 바로 언론이다. 언론의 자유는 언론사나 사주의 자유가 아니라 국민들 표현의 자유를 대신 행사하는 것이다. 언론개혁이라 불러도 좋다. 언론이 스스로 자정능력이 없다면 외적 개입은 불가피하다. 

 

● 윤성옥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서강대에서 언론대학원에서 석사, 광운대에서 신문방송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인터넷자율정책기구 정책위원. 방송통신위원회 시청자권익위 위원,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정책자문위원 언론법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방송학회 방송법제연구회 회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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