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이야기] 한 톨 씨앗이 바꾼 세상...'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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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이야기] 한 톨 씨앗이 바꾼 세상...'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 리뷰
  • 강대호 북칼럼니스트
  • 승인 2019.10.06 09:3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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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고의 농학 박사이자 식물학자 이나가키 히데히로의 대중인문서
자신의 전공 분야인 식물학에 해박한 세계사 지식을 접목하여 빚어내다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자극하며 세계사의 큰 흐름을 만들어낸 위대한 식물 이야기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 '사람과 나무 사이' 펴냄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 '사람과 나무 사이' 펴냄

 

[오피니언뉴스=강대호 북칼럼니스트] 대형서점 베스트셀러 코너나 분야별 매대를 보면 전형적인 제목을 가진 책들이 많다. ‘ㅇㅇ를 바꾼 ㅇㅇㅇ’ 라거나 ‘한 번에 알아보는 ㅇㅇㅇ’ 같은. 그런 책들은 대개 인문학이나 과학 등의 한 분야를 큰 주제로 내세워서 그 안에서도 맥락을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책들이 대부분이다.

출판 전문 저널 ‘기획회의’ 471호에서 “예능인문학은 인문학이 아니다.”라는 주제를 다룬 적이 있다. 텔레비전에서 인문학 관련 예능 프로그램이 늘어나는 것과 출판계에서 대중 인문 교양서를 많이 내는 걸 여러 시각으로 분석했다. 인문학이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걸 반기면서도 SPA 상품과도 같은 취급을 받는 걸 경계하는 취지였다.

출판 기획자가 아닌 독자 관점에서 나는 대중인문학 혹은 예능인문학 같은 흐름이 어느 정도는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그 분야에 쉽게 접근을 한 다음에 관심이 더 생기면 좀 더 깊게 파고들 수도 있으니까. 사실 내가 그런 경험을 많이 하기도 했다.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은 그런 면에서 나의 눈길을 끌었다. 세계사를 바꿨다고? 그것도 식물이? 대형서점 과학코너 잘 보이는 곳에 자리한 이 책은 엄청난 세계사적 사건 배후에는 항상 ‘식물’이 있었노라고 ‘책 띠지’에 크게 쓰여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위대한 식물의 세계를 알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 나는 책을 집어 들었다.

저자 소개에 의하면 ‘이나가키 히데히로’는 일본에서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농학 박사이자 일본의 대표적인 식물학자라고 한다. 그는 대중을 위한 식물 안내서를 많이 썼다고. 이 책도 그의 전공 분야인 식물학과 “해박한 세계사 지식을 효과적으로 접목했다”고 소개에 쓰여 있었다. 읽기 전부터 기대가 되었다.

제목처럼 이 책은 현 인류가 흔히 접하는 13가지 식물을 소재로 쓰였다. 주식으로 먹는 감자, 밀, 벼, 콩, 옥수수. 음식의 풍미를 더 해주는 후추, 고추, 양파, 사탕수수. 없으면 아쉬운 차와 토마토. 그리고 목화와 튤립까지.

그렇다면 이런 식물들이 어떻게 세계사를 바꾸었을까. 저자는 대표적으로 향신료를 언급한다. 식생활이 단순했던 시절에는 향신료가 음식의 풍미를 더 해주고 상하는 걸 막아주는 매우 귀한 식재료였다면서. 특히 인도에서만 생산되는 후추가 그랬다고 한다. 유럽에서 구하려면 먼 거리를 운송해야 해서 물류비용과 위험비용만큼이나 가격이 올라갔다고.

그 결과로 유럽에서는 각종 향신료 등을 구하기 위해서 바닷길을 개척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유럽 열강들이 식민지 경쟁을 시작했다는 거다. 세계사 주요 전환점을 식물 관점으로 해석하는 것. 계속 그런 식으로 책을 풀어간다.

예를 들면, 감자가 오늘날 초강대국 미국을 만들었다고. 그 배경이 19세기 아일랜드에서 발생한 대기근 때문이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감자 역병 때문에 대기근이 들었고, 주식인 감자가 싹이 말라서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고, 살길을 찾아서 400만 명 넘는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주했기 때문이라면서.

그 이민자의 후예들이 오늘날 미국을 이끌어가는 세계적 지도층이 되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특히 케네디 대통령, 월트 디즈니, 맥도널드 햄버거 창업자 등도 이민자의 후예라면서. 만약 아일랜드 사람들의 이민이 없었다면 지금 세계지도의 지형은 달라졌을 거라고 힘주어 강조한다. 비약이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듯 “해박한 세계사 지식을 배경”으로 식물 이야기를 풀었다는 이 책은 사실을 다툴 수 있는 부분을 단정적으로 표현한 부분들이 계속 나왔다. 여러 이론 중 저자가 가진 견해라기보다는 그게 사실이라는 듯 표현한 것. 그래서 읽다가 주춤하곤 했다. 이런 식이다. 

 

“과거 인류의 선조는 숲을 보금자리로 삼고 식물의 열매를 먹고 살던 유인원이었다.” (155쪽)

 

자는 과학자이면서 과학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추론을 단정적으로 썼다. 인터넷에 나온 자료만 보더라도 현 인류와 대형 유인원 즉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 등에 대한 발생학적 분류는 다양한 이론이 있다. 그리고 저자의 이런 주장과는 논리에 맞지 않는 부분도 그 뒤에 나왔다.

 

“인류 최초의 의복은 에덴동산에 살던 아담과 하와의 중요 부위를 가려준 나뭇잎이다.” (175쪽)

 

앞의 인용문은 ‘진화론’적 관점이고 뒤 인용문은 ‘창조론’적 관점이다. 그 사실 여부를 떠나서 과학계에서 첨예하게 맞서는 반대 관점을 과학자인 저자는 모두 채택하는 모순을 보여준 거다. 혹시 비유적 표현이 아닐까 해서 다음 문장들을 계속 읽었지만, 맥락이 명확하게 연결되지는 않았다.

이렇듯 책에는 아쉬운 부분들이 계속 나오곤 했다.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는데 일반화한다거나 같은 사례를 여러 장에서 중복해서 언급한다거나 하는. 그래도 각 식물에 대한 발생과 진화 과정 그리고 역사적 생태적 적응 과정은 흥미로웠다. 특히 향신료에 대한 설명이 그랬다.

 

다양한 향신료들.사진=pixabay
다양한 향신료들.사진=pixabay

 

저자는 후추 등 향신료가 왜 유럽이 아닌 인도에서 주로 생산되었을까 질문을 던지며 향신료가 가진 생태적 특성을 설명한다.

 

“향신료의 향미 성분은 본래 식물이 병원균과 해충으로부터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해 축적하는 물질이다. (중략) 기온이 높은 아열대 지역과 습도가 높은 몬순 기후의 아시아에는 병원균과 해충이 많다.” (92쪽)

 

그래서 인도 등 남부 아시아에서 자라는 식물은 향미 성분 등을 갖춰서 스스로 자기 몸을 지켜야 했다고. 하지만 기후가 서늘한 편인 유럽은 병충해가 적은 편이라 식물이 향미 성분을 갖출 필요가 없었다고 한다. 해충과 병으로부터 지키고자 스스로 변화한 식물이 그 때문에 유럽 열강이 그 지역을 짓밟게 된 원인이 된 것. 진화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저자는 씨앗 한 톨이 벌인, 자연에서 오래전 찰나의 순간에 벌어진 우연이, 그 우연이 오랜 세월 진화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소중한 식물들을 만날 수 있었다고 전한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필요와 탐욕이 세계사의 흐름을 바꿨다고도 설명한다. 비단 한 톨 씨앗만 그랬을까.

우리가 언젠가 내뱉은 말 한마디와 무심코 한 행동이 씨앗이 되어 오늘날 우리를 옭아매는 줄기와 덩굴로 자란 걸 목격하며 산다. 하도 얽히고 얽혀서 어떤 게 내 가지인지, 덩굴인지 헷갈릴 정도로 무성하다.

주위를 한 번 돌아보자. 내 덩굴은 지키고 싶은데 그러려면 남의 덩굴도 무성해진다. 남의 가지만 쳐내고 싶은데 내 가지까지 잘려나갈 지경이 되었다.

식물은 이럴 때 어떻게 할까. 혹독한 생태계에서 살아남고 번성한 식물이라면 어떻게 헤쳐 나갈까. 곤충과 동물에 대항하며, 주변 식물과도 경쟁하며 진화해 온 식물이 위대해 보이긴 한다. 세계사까지 바꿨다니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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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선인 2019-10-07 07:11:08
세계사의 흐름을 다양한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좋은
글입니다. 세상사의 사건을 이분법이 제 삼의 시각으로 분석해보는 훈련을 할 수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