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한 칼럼] `전문가집단' 의사, 전문성이냐 책임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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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한 칼럼] `전문가집단' 의사, 전문성이냐 책임감이냐
  • 김장한 울산의대·서울아산병원 교수
  • 승인 2019.10.03 13: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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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전문가주의(Medical professionalism)' 패러다임 전환에 대해
미셸 푸코 "전문가의 지식은 독점성 유지 수단" 갈파...의사 특권, 집단 이익 추구에 불과 비판
1990년이후 의사들 '책임과 의무' 강조 추세..."버려야할 것들, 정통함·자율성·특권·자율규제"
김장한 서울아산병원 교수
김장한 서울아산병원 교수

[김장한 울산의대·서울아산병원 교수] 직업 전문성을 의료 윤리의 한 내용으로 이야기할 때가 많다. 전문가로서의 소양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기가 만만하지 않다. 조금만 주위를 돌아보면 ‘교사의 수업 전문성’, ‘방문판매 화장품 뷰티 컨설턴트의 전문성’, ‘요양보호사의 전문성’, ‘비평의 전문성’ 등과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이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어로는 ‘professionalism’이라고 하는데, 프로 스포츠 종사자를 의미하는 경우도 포함된다. 이번 글은 직업 윤리로서 의료 전문성에 대한 내용을 알아보려한다.

히포크라테스 서약으로 '전문가 집단' 표식화

BC 400여년 전, 그리스 섬 코스에서 환자를 치료하였던 히포크라테스는 자신들의 의료적 관행을 몇 가지 문장으로 정리하고, 이것을 신입 회원에게 서약하게 했다. 자신이 속한 집단에 정체성을 부여한 것이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히포크라테스 사후 제자들에 의해 기원전 4~5세기경 정리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현대에 이르기까지 몇 차례 변경이 있었는데, 원문에 충실하게 따르면, 서약은 ‘의학의 지식을 비밀로 하고, 스승의 자손, 자기 아들 또는 선서를 한 자에게만 전달하겠다‘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후 ‘나는 요청을 받은 경우에도 극약을 누구에게도 주지 않을 것이며, 임산부에게도 그러할 것이다’라는 언급도 있다.

히포크라테스와 구분되는 다른 의사 집단은 자살을 위한 독약이나 낙태 약물을 주는 것을 허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2007년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의료 드라마 '하얀거탑'. 의사들의 절대선으로 알려진 '전문성'보다는 환자들이 접근하지 못하는 그들만의 공간내에서 벌어지는 과다한 특권의식, 지나친 경쟁의식과 암투 등이 적나라하게 그려졌다. 사진=MBC
2007년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의료 드라마 '하얀거탑'. 의사들의 절대선으로 알려진 '전문성'보다는 환자들이 접근하지 못하는 그들만의 공간내에서 벌어지는 과다한 특권의식, 지나친 경쟁의식과 암투 등이 적나라하게 그려졌다. 사진=MBC

 

역사적으로 보면, 서약은 전문가 집단을 특징짓는 중요한 표식이다. 중세 유럽에서 귀족과 같은 높은 신분의 자제들이 대학에 입학, 의학 교육을 받고 졸업과 함께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했다.

어원으로 보면 ‘profess’는 ‘언명하다, 신앙을 고백하다, 대학교수로 재직한다’라는 세 가지 뜻으로 번역되는데, ‘pro’는 ‘시간적, 공간적, 순서적’으로 ‘우선, 앞’이라는 의미이고 ‘fess’는 ‘언명하다, 인정하다’의 뜻이다.

이 행위를 공개적으로 하면 그것이 ‘profession’이 된다. 대학을 졸업하고 일정한 자격을 가진 자가 서약을 하면 대학교수(professor)가 됐다. 그들의 의무는 왕과 귀족에 봉사하는 것이었고, 그 대가로 집단의 자율성을 획득했으며, 내부 구성원에 대한 규제 및 의료 독점권을 행사했다.

생산 직역이었던 길드 역시 왕과 귀족에게 세금을 납부하고, 그 대가로 자율성, 규제 및 독점권을 얻었다. 폐쇄적인 중세 사회 체제가 16~17세기까지 유지됐지만 생산이 제한되어 있는 바람에 생산품의 가격이 상승시키는 일이 발생했다. 중상주의(mercantilism) 시대였던 18세기 후반에 유럽 사회는 길드가 자유로운 거래를 방해한다고 보았다.

프랑스 대혁명에도 살아남은 '의료 전문가주의`에 대한 비판

18세기 말 프랑스 대혁명 직후 ‘모든 길드를 해체하라’는 혁명 정부령이 내려졌다.(예외적으로 공공 안전과 이익 때문에 출판, 주조, 의료분야의 기존 조직은 해체를 면했다)

새롭게 대학이 확대되고, 사회가 필요로 하는 전문가를 교육하는 과정이 도입됐다. 매튜 램지(Matthew Ramsey)는 길드적 기반 없이 대학을 통해 새로운 전문가 집단이 탄생하는 18세기말 19세기 초의 프랑스 상황을 “전문가화(professionalization)” 시대라고 표현하고 있다.

전문가 집단의 성립과 몰락에 대한 고찰은 1940 ~50년대 사회학 문헌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기 시작한다.

1930년~1960년대의 상황에 대해 한 사회학자는 ‘거인의 몰락’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전문가의 독점적 지위가 무너져 가는 상황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당시 전세계적으로 진행되던 탈전문가주의가 겨우 시작됐을 뿐인데, 당시 학자들의 눈에는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던 것 같다.

당시 의료 전문가주의에 대해서도 많은 논의가 있었다.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지식체계에 기반해 시장에서 독점권(monopoly)을 행사하고, 국가나 사회로부터 자율성(autonomy)을 가지는 한편, 구성원에 대한 훈련의 내용 및 질에 대한 자율적 결정(self regulation), 이를 위한 자체적인 윤리규범(ethics)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기능주의적 정의로서도 의사의 특권을 당연하게 보았다.

1960년대 이후 사회학의 초점은 주어진 상황에서 구조를 분석하고 기능을 인정하는 기능주의 방법론에 대한 비판이었다.

사회변화의 요인으로서 가치와 규범이 어떻게 생성됐는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설명하는데 있어 갈등이론이 등장한다. 미셸 푸코(M. Foucault)는 지식에 대한 본질을 분석, 전문가의 지식이라는 것이 독점성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보았다.

권력의 배후에는 지식이 존재하며, 전문가주의는 통치성 맥락으로 파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 불평등한 의사-환자 관계, 의사의 특권에 대한 비판, 전문가들의 자율규제가 집단 이익 추구에 불과하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1980년대 미국 의료계는 사회계약(social contract) 이론을 도입하기도 했다. 각 나라에 따라서 의료전달체계가 다른 이유가 전문가와의 사회계약이 다양한 수준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계약이라는 것이 양 당사자의 합의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므로, 의료가 사회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일지라도 합의없이 일방에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라는 생각에도 미치게 됐다. 

토끼인가, 오리인가. 토마스 쿤의 '게슈탈트 전환(Gestalt switch)'. '패러다임 전환과 통약불가능성(incommensurability) 극복에 대한 설명’으로 흔히 과학 혁명을 설명하는 도구이다. 필자는 의료 전문가주의에 대한 맥락 변화가 과학 혁명의 패러다임 전환과 같은 특성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토끼인가, 오리인가. 토마스 쿤의 '게슈탈트 전환(Gestalt switch)'. '패러다임 전환과 통약불가능성(incommensurability) 극복에 대한 설명’으로 흔히 과학 혁명을 설명하는 도구이다. 필자는 의료 전문가주의에 대한 맥락 변화가 과학 혁명의 패러다임 전환과 같은 특성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전문가주의의 책임성에 관하여...탈 특권화와 병행

1980년대 들어서면서 영국에서는 국민의료보험(NHS)의 관료적 개입과 의사들의 태만이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1995년 의사들의 책임과 의무, 의료서비스의 원칙들이 정립되고, 이를 의사 면허와 연결시켰다. 왕립의사회(Royal College of Physicians)가 2005년 12월 새로운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내놓았는데, 의료전문가주의를 새롭게 정의하면서 버려야 할 개념으로 ‘정통함(mastery)’, ‘자율성(autonomy)’, ‘특권(privilege)’, ‘자율규제(self-regulation)’ 등을 제시했다. 또 의료와 사회와의 관계를 도덕적 계약(moral contract)라고 정리했다.

1999년 유럽과 미국의 의사들은 ‘의료전문가주의 기획’을 발족시키고, 2002년 ‘새로운 세기의 의료전문가주의’를 발표했다.

의사헌장이 선언한 세 가지 기본 원칙은 환자 복지 최우선의 원칙, 환자 자율에 대한 원칙, 사회정의이고, 전문인 책임 요소로서 ‘① 전문적 능력의 배양 ② 환자에게 대한 정직 ③ 환자의 비밀 유지 ④ 환자와의 적절한 관계 유지 ⑤  환자의 돌봄에 있어서의 질 향상 ⑥ 의료의 접근성 향상 ⑦ 의료 자원 배분에 있어서의 정의 ⑧ 과학적 지식 ⑨ 개인적 이익과 관련된 갈등 조정에 있어서의 신뢰 ⑩ 전문인으로서의 책임’을 나열하고 있다.

세계의사회에서 발행한 백서(White paper)에 의하면. 이런 입장을 추종해 선언을 채택한 단체가 전 세계적으로 100개가 넘게 기재되어 있다.

물론 아직도 의사의 전문적 능력을 중심으로 해야 한다는 입장도 건재한데, 2009년 인디아 대회에서 채택한 세계의사회 선언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2000년을 전후해 의료 전문가주의는 의료 전문가의 치료 특권과 같은 권리성을 배제했으며, 의료 전문가의 책임 영역하에서 전문가 능력 등과 같은 특성을 고려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 김장한 울산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서울아산병원 교수(박사)는 서울대 의대와 법대,  양 대학원을 졸업했다. 세부 전공은 법의학과 사회의학이다. 대한법의학회 부회장, 대한의료법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 의학과 관련한 역사, 예술, 윤리, 법, 제도, 정책 주변 이야기를 두루 다룰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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