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is] 미국에 맞선 마지막 프랑스 대통령 ‘자크 시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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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미국에 맞선 마지막 프랑스 대통령 ‘자크 시라크’ 
  • 한동수 기자
  • 승인 2019.10.01 18: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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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시라크 프랑스 전 대통령이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향년 87세. 사진=AFP/연합뉴스.
자크 시라크 프랑스 전 대통령이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향년 87세. 사진=AFP/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한동수 기자] 프랑스 '우파의 별' 자크 시라크(Jacques Chirac) 대통령이 지난달 26일(현지시간)세상을 떠났다. 그의 장례식은 지난달 30일 파리에 위치한 생 쉴피스 성당에서 거행됐다.  

시라크 대통령은 1995년 5월15일 엘리제궁으로 들어서며 미테랑 전임 대통령이 14년동안 지킨 자리를 인수 인계 받았다. 그는 대통령 취임이전 무려 18년간 파리 시장을 지내며 전국적으로 높은 인지도를 쌓았다. 대통령 당선 이전 같은 우파내에 정적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우파내 강력한 정적이었던 에두아르 발라뒤르 전 총리를 경선에서 따돌렸다. 대선 본선에선 사회당의 미테랑 후계자였던 강적 리오넬 조스팽 후보를 눌렀다. 극적인 승리였다. 

명실상부한 우파 수장에 오른 시라크 대통령은 취임직후 프랑스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세계 패권국가인 미국에 대한 도전을 서슴지 않았다. 

1995년 5월15일. 엘리제궁에 입성한 프랑스 제17대 대통령(5공화국 다섯번째 대통령) 자크 시라크(왼쪽)가 떠나는 전임자 프랑수와 미테랑 전 대통령을 배웅하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1995년 5월15일. 엘리제궁에 입성한 프랑스 제17대 대통령(5공화국 다섯번째 대통령) 자크 시라크(왼쪽)가 떠나는 전임자 프랑수와 미테랑 전 대통령을 배웅하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1995년 당시 프랑스인들은 이런 시라크 대통령을 보며 나름 행복해 했다.

정부 재정이 고갈될지언정 고르게 잘사는 사회를 만들고자했던 전임 미테랑 대통령시절, 프랑스가 몰락해간다고 우려하던 민중들에게 대외적으로 강한 프랑스의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그의 모습은 반가움 그 자체였던 시절이다.    

엘리제 궁을 접수한 시라크 대통령의 첫 행보는 남태평양의 작은 섬 '무르로아'에서의 핵실험이었다. UN은 이미 1970년 핵확산 방지(NPT)를 위해 뜻을 모으고 있었으나, 프랑스는 1992년까지 22년동안 UN결의사항을 비준하지 않았었다.

전임 미테랑 대통령 때인 1992년 프랑스 의회는 NPT 비준에 동의했다.  그러나 실제로 미국이나 러시아 만은 예외가 인정되는 상황이었다. 이 후 1995년 등장한 시라크 대통령은 전임 미테랑 대통령이라면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을 실행한다. 미국이나 UN 눈치보는 프랑스가 아닌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실행하는 UN의 '안전보장이사회국'지위 회복이었다. 1995년 9월 프랑스는 남태평영 산호섬 '무르로아'에서 지하 핵실험에 성공한다. 

‘네오 드골리즘’을 앞세운 시라크 대통령, 그리고 미테랑 키드를 자처하며 (시라크를)‘네오 나폴레옹’이라고 비난하는 사회당. 프랑스 제1,2당이  강대강으로 맞붙었던 시기였다. 당시 여론조사결과를 보면 프랑스인들은 염치있는 사회당보다 국가를 우선한 시라크를 더 선호했다.  

당시 프랑스인들 일부는 ‘그래도 시라크 대통령이 장밋빛 사회주의로 몰락해가던 프랑스의 자존감을 세웠다’ 라고 말했다. 이는 시라크의 독선이 깔린 결정을 프랑스인들은 국가 위상을 높이는데, 일조한 것으로 평가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시라크 대통령은 강대국 앞에서도 할 말은 한 진정한 보수주의자로 사후에도 프랑스인들에게 평가받게 됐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 취임 4개월여만인 1995년 9월 공공기관 노조원들이 속한 프랑스 3대 산별노조는 40일이 넘는 프랑스 역사상 최장기간 대규모 파업에 돌입했었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 취임 4개월여만인 1995년 9월 공공기관 노조원들이 속한 프랑스 3대 산별노조는 40일이 넘는 프랑스 역사상 최장기간 대규모 파업에 돌입했었다.

그는 대통령 취임 후 4개월여만에 사상 최악의 공공노조 파업을 경험하기도 했다. 40여일 가까이 파리는 물론 대도시 대중교통이 멈춘 시기다. 사회당 정권이후 복지 혜택이 줄어드는 것에 반기를 든 프랑스 3대 산별노조가 동시에 들고 일어났던 시기다. 

시라크 대통령은 이 때도 공권력을 동원시키지 않았고, 각계 입장을 받아들이면서 협상의 끈을 놓지 않았다. 시라크 대통령 시절, 공공노조 장기 파업 역시 프랑스인들에겐 다른 국가와 차별화되는 자랑거리이기도 하다. 

취임 초기 핵실험도 불사했던 시라크 대통령은 미국의 파트너였던 조지 부시 당시 대통령에게 ‘아니오’라고 분명히 말했다. 2003년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침공 때다.  

서방 선진국 중 맨 처음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반기를 들고 참전하지 않아, 다른 서방국가들이 프랑스의 뒤를 따르기도 했다. 이와 함께 징병제를 모병제로 바꾸고 2차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핍박에 있어서 프랑스의 책임을 인정하는 모습도 보였다.    

마지막으로 그의 대통령 시절 눈에 띄는 것은 프랑스 헌법이 보장한 대통령 임기 축소였다. 

프랑스의 대통령 임기는 7년이고 연임이 가능해 14년간 장기 집권이 가능했는데 시라크는 재임에 성공한 후, 대통령 임기를 5년(연임 가능)으로 단축시키고 본인도 재임기간을 7년에서 5년으로 단축시켰다. 그래서 재선에 똑같이 성공했으나 전임 미테랑 대통령과 달리 시라크 대통령은 14년이 아닌 12년간 대통령 임기를 보냈다. 

그는 시골  출신이다. 프랑스 중남부  꼬헤즈(Correze)에서 1932년 태어난 그는 수재였다. 5공화국 출범이후 프랑스의 정치인 입문 코스이자 영재 학교인  국립 파리 정치학교(Sciences Po·Institut d'Études Politiques de Paris)를 졸업한 후 우리의 대학원 과정에 해당하는 국립행정학교(ENA·Ecole Nationale d'Administration)를 졸업했다.

34세에 고향에서 하원의원(우리의 국회의원에 해당)에 당선된 그는 이후 농업부장관을 거쳐 파리시장 등 장장 41년간 공직생활을 했다. 

그는 소탈한 성격이었다. 농민을 사랑했고 파리 15구에서 해마다 열리는 농업박람회에 빠짐없이 참석했던 소탈했던 이미지를 마지막까지 유지했다.  

완벽하지 않고 오히려 엉뚱했던 모습에 국민들은 그에게 더 가까이 다가서기도 했다. 인터넷이 한창이던 1997년 한 박람회에 참석, 컴퓨터 주변기기인 마우스(불어로 쑤리) 설명을 들은 후 너무도 태연하게 “컴퓨터에 왜 쥐가 있는가?”라고 안내인에게 질문해 프랑스 언론에 대서특필되기도 했다. 체면보다 궁금한 걸 못참는 시라크라는 내용이 담겼었다. 

선을 넘지 않은 정치인기도 했다. 대통령직에 오르자 마자 정적들의 공격에 부딪혀 다수당 자리를 상실, 야당과 정부를 공유하는 프랑스의 정치제도에 따라 한동안 '동거정부'를 운영하는 어려운 시기도 겪었으나 그는 재선에 성공한다. 재선 성공 당시 불리한 여건 속에서 참모들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극우파와 손을 잡지 않았었다. 프랑스에 아직까지 극우파 대통령이 당선되지 않았던 것은 시라크의 당시 결단이 스며들어 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파리 남쪽 몽빠르나스 묘지에 안장됐다. 국장으로 장례식을 마친 후 가족장으로 조촐하게 치뤄진 안장식 모습. 사진=AFP/연합뉴스.
자크 시라크 프랑스 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파리 남쪽 몽빠르나스 묘지에 안장됐다. 국장으로 장례식을 마친 후 가족장으로 조촐하게 치뤄진 안장식 모습. 사진=AFP/연합뉴스.

대통령으로서 강인한 모습도 보였다. 그래서 그는 프랑스인들에게 강대국과 맞서며 프랑스의 자존심을 지킨 마지막 대통령으로 기록되고 있다. 

시라크 대통령 장례 기간이었던 지난 29일 프랑스의 일요일자 신문인 ‘르 주흐날 디망쉬(Le journal dimanche)’는 5공화국 들어 가장 인기있는 대통령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는데, 공동 1위(지지율 30%)로 5공화국 창업자인 샤를 드골과 시라크가 선정됐다. 미테랑 대통령은 17%를 얻어 3위에 머물렀다. 

강한 프랑스를 갈구했던 시라크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전쟁참전용사기념관 ‘엥발리드’에서 예식을 거친 후 인근 생 쉴피스 성당에서 장례식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푸틴 러시아 러시아 대통령을 비롯해 빌 클린턴 미국 전 대통령 등 30여명의 전현직 국가 지도자들이  참석했다. 장례식을 마친 시라크 대통령은 먼저 하늘나라로 떠난 장녀가 묻혀있는 파리 14구 몽빠르나스 가족 묘역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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