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원 칼럼] 침체, 디플레, 그리고 'DGB'...불안이 더 큰 불안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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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원 칼럼] 침체, 디플레, 그리고 'DGB'...불안이 더 큰 불안을 낳는다
  • 최석원 SK증권 리서치센터장
  • 승인 2019.09.30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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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원 SK증권 리서치센터장] 미중 패권 다툼, 중동 지역의 격화되는 갈등, 미국 장단기 금리차 역전, 금리 정책을 둘러싼 트럼프와 연준과 월가의 대립, 노딜 브렉시트, 한일 갈등, 심지어 국내정치 상황까지...

국내 경제를 둘러싼 환경이 어지럽다. 

이러다 보니 R(Recession, 침체), D(Deflation,디플레이션), DGB(달러, 금, 비트코인) 같은 생소한 영문 이니셜들이 신문지상을 장식한다.

경기 침체와 디플레이션을 우려한 자산가들이 달러나 금, 나아가 비트코인을 사는 데 혈안이 돼 있다는 얘기다.

자산가들이 'DGB'를 선호하는 이유는

자산가들이 달러, 금, 비트코인을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결국은 경기 침체와 디플레이션으로 우리 경제와 글로벌 경제, 나아가 글로벌 통화시스템이 붕괴될 것이란 예상 때문일 것이다.

즉 달러를 사 모으는 것은 우리나라 경제가 망가져 IMF 외환위기 때처럼 원화 가치가 폭락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고, 금이나 비트코인을 사 모으는 것은 세계 경제가 모두 어려워지면서 각국 중앙은행이 엄청나게 돈을 풀어 돈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새로운 통화시스템이 필요해지고, 결국 금이나 암호화폐 등이 기존의 법화 시스템을 대체할 것이라는 생각인 것이다. 

최근 자산가들 사이에는 금 달러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이른바 'DGB현상'이 열풍처럼 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렇다면 경기 침체나 디플레이션이 정말로 현실화할까?

주요국에서 마이너스 성장률이 2분기 이상 지속되고, 마이너스 물가상승률이 일정 기간 유지되는 ‘정의’상 침체와 디플레이션이 나타날까?

언론의 부정적 뉴스와 일부 전문가들의 비관론에도 불구하고 가능성은 아직 커 보이지 않는다.

특히 미국의 경우 연준 통화정책 결정 위원들의 중립금리에 대한 시각이 제각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침체에 대해 우려하는 위원만큼 경제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갖는 위원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둔화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침체라고 보긴 어렵다. 

우리 경제 역시 마찬가지다. 구조적으로나 순환적으로 우리 경제가 나쁜 것은 맞다. ▲우려할 만한 출산율 하락 ▲미중 무역 갈등이 심화된 연초 이후 내내 지속되고 있는 마이너스 수출증가율 ▲사상 첫 마이너스를 기록한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까지.

단기적으로나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의 활력이 떨어지고 있는 신호는 분명하다.

韓 경제, 나쁘긴 하나 최악은 아니다

하지만 블룸버그 통신이 이번 달 집계한 42개 경제전망 기관의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 평균은 올해 2.0%, 내년 2.2%다.

이전 전망치보다 점차 낮아지고 있고, 잠재성장률보다 실질성장률이 낮다는 점에서 불안하지만, 아직은 유럽이나 일본보다 성장률 전망치가 높다. 유럽과 일본의 성장률 전망치는 1% 안팎에 머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DGB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왜일까? 불안하기 때문일 것이다.

경험해 보지 못한 저금리에도 불구하고 좋아지지 않는 경제, 성장·분배를 둘러싼 정치권과 경제학계의 논쟁, 트럼프 대통령의 중앙은행 압박과 같이 정치가 경제를 압도하고 있는 글로벌 상황들이 한국 경제에 대한 불신, 나아가 글로벌 경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문재인 정부에서 실시하고 있는 정책들이 거액 자산가에게 더 큰 불안감을 안겨주고 있는 듯하다. 거액자산가들에서 더 심하다고 알려진 달러와 금 투자 열풍은 경제 주체의 불안감이 이미 위험 수위에 도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한국은행의 국제투자대조표를 보면 올해 들어 해외증권자산은 80조원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부채의 배 가까이 늘어난 것인데 이중 대부분이 민간 부문에 의한 것임을 감안하면, 결국 자산가들이 대규모로 해외 자산을 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로 돈 많은 사람들의 투자처로 알려진 금 가격도 마찬가지다. 지난 1년간 국제 금 가격은 저점 대비 30% 정도 올랐다. 그런데 국내 금 가격은 같은 기간 40% 이상 올랐다.

다른 나라에서도 경기 침체와 위기에 따른 통화 증발이 화폐 가치를 떨어뜨릴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 경향이 더 강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면, 실제로 경제가 나빠진다. 앞으로 돈을 못 벌 것으로 생각하는 기업은 투자를 계획하지 않고, 월급이 안 오르거나 일자리가 불안하다고 느끼는 가계는 허리띠를 졸라맬 것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내수 경제의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설비투자와 민간 소비가 늘어날 수 없다. 금리를 내려 돈을 풀고, 정부가 지출을 늘려도 기업과 가계가 움직이지 않으면 소용 없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남유럽 재정위기 후 유럽 중앙은행이 돈을 풀었지만, 불안한 기업과 가계는 투자와 소비에 나서지 않았다. 

불안은 쉽게 전염되는 법

게다가 이러한 불안은 쉽게 전염되기 때문에 더 문제다.

고전 영화 ‘메리포핀스’는 은행 중역 뱅크스씨의 어린 아들 마이클의 동전 한 닢을 예금하도록 강요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뱅크런을 통해, 자신의 자산을 지키기 위한 사람들의 의사 결정이, 확인되지도 않은 조그마한 위험 앞에서 얼마나 비합리적으로 바뀌는지 아주 잘 보여준다.

영화 '메리 포핀스 리턴즈'의 한 장면.

사람들은 일단 불안해지면, 작은 뉴스에도 크게 반응하고 더 불안해 한다. 

외부적인 환경뿐 아니라 내부적으로 보더라도 우리나라는 최근 다양한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인구문제와 소득계층별 갈등, 세대간 갈등과 성별 갈등, 심지어 지역별 갈등까지. 여기에 최근에는 정치적 불안까지 더해져 있는 상황이다.

또한 부동산 시장 관련 우려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정부의 집값 안정 노력과 이미 높아진 부동산 가격 모두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고 있다. 자산가들의 두려움이 커질 수 밖에 없는 환경인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그들만의 호들갑'으로 치부하거나, 자기 이익을 위한 이기적인 행동으로 바라보는 것은 위험하다.

한번 방향을 잡은 불안은 행위를 통해 실제로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이는 다시 더 큰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불안은 더 큰 불안을 낳는다.

자금의 물꼬가 다시 국내 투자와 소비로 돌려지도록 안정적 환경을 만드는 데 힘써야 할 상황이다.

 

● 최석원 센터장은 연세대 경제학과 학부와 대학원을 마쳤다. 대우증권 삼성증권 한화증권 등에서 채권분석, 경제분석 파트장을 역임했으며 과거 수차례에 걸쳐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선정됐다. 한화증권에서 리서치센터장을 거친 후 메리츠화재에서 직접 자산운용을 맡기도 했다. 2016년부터 SK증권 리서치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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