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워치] 분노만 더 키운 '캐리 람 행정수반 시민과 첫 대화'
상태바
[홍콩 워치] 분노만 더 키운 '캐리 람 행정수반 시민과 첫 대화'
  • 홍콩=이지영 통신원
  • 승인 2019.09.27 10:29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월 시위 시작 후 행정수반 첫 대화 시도
26일 퀸엘리자베스 경기장서...홍콩지역 생중계돼
추첨통해 시민 150명 참석...30여명 질문
캐리 람 장관, 시민 요구 모두 "거부"

[홍콩=이지영 통신원] 홍콩 행정 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이 지난 26일 홍콩 시민과 만남의 자리를 열어 직접 대화를 했다. 지난 6월 초부터 시작된 반 범죄인 인도 법(송환법)안에 대한 대규모 시위 후 람 장관과 시민 간 첫 대화의 자리였다.

이번 ‘시민과의 대화’는 150명의 시민이 참석했으며 2주전에 인터넷으로 등록을 받아 컴퓨터 추첨으로 150명의 참석자를 뽑았다. 

홍콩 섬 완차이(灣仔)지역의 퀸엘리자베스 경기장(伊利沙伯體育體)이 이번 ‘시민과 대화’ 장소로 선정됐고 행사 시작 몇 시간 전부터 주변 교통을 통제하고 많은 경찰 인력을 배치했다. 주변에 있는 학교도 오후 수업을 취소하고 학생들을 평일보다 일찍 하교시켰다. 대화 장소 주변이 병원과 수영장까지 오후부터 업무를 종료했다.

예고된 평행선...시작 전부터 삼엄한 경비

람 장관을 경호하기 위해서 시위 진압 경찰들이 퀸엘리자베스 경기장 주변에만 수백명 배치됐으며 최루탄과 비슷한 장비들이 경기장으로 옮겼졌다. 인근 길에 주차돼있던 자동차는 강제로 견인해갔다.

‘시민과 대화’ 참석자 및 기자들이 대화 장소로 들어갈 때는 공항 출국 심사 못지 않게 보안 수하물 검색대를 통과해야 했고 경비원들이 참석자의 가방을 꼼꼼히 검색했다. 위험물뿐만 아니라 방독면이나 헬멧 등 시위에 관련된 물건도 대화 장소에 가져가지 못했다. 

캐리람 장관의 시민과 대화가 열리기 3시간전부터 퀸즈엘리자베스경기장 인근 버스정류장까지 경찰들이 배치되고 통제됐다. 거리가 한산하다. 사진=Jim HorYeung 홍콩통신원
캐리람 장관의 시민과 대화가 열리기 3시간전부터 퀸즈엘리자베스경기장 인근 버스정류장까지 경찰들이 배치되고 통제됐다. 거리가 한산하다. 사진=이지영 통신원

계획대로 ‘시민과 대화’ 행사는 저녁 7시에 시작됐다. 람 장관은 지금 상황이 아무리 곤란하더라도 시민과 직접 대화가 필요하고 이번 ‘시민과 대화’에서 홍콩시민의 생각이나 소원, 심지어 지적까지 진심으로 듣고 싶다고 대화 전 의견을 밝혔다. 또 이번 대화는 정부의 정치 홍보 활동이 아닌 시민과 대화를 통해 변화를 탐구하고 홍콩의 좋은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갈 것이며 시민의 의견을 듣기 위해 다른 대화 형식의 자리도 마련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행정수반 만난 시민, 150분동안 30명 발언 했지만... 

2시간 30분동안 진행된 ‘시민과 대화’는 150명의 참석자 모두가 람 장관과 직접 대화하는 것이 아닌 참석자 중 추첨을 통해 뽑힌 사람이 3분정도 발언할 수 있었다.

‘시민과 대화’에 참석한 30명이 발언했다. 발언자들은 대부분 시위대의 5대 요구사항 ▲송환법 공식 철회 ▲ 경찰의 강경 진압에 관한 독립적 조사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 중에 경찰의 강경 진압에 관한 독립적 조사를 또 다시 촉구했다.

홍콩 섬 완차이(灣仔)지역의 퀸엘리자베스 경기장(伊利沙伯體育體)에서 26일 오후 7시(현지시간)부터 열린 시민과 대화 자리에서 캐리 람 홍콩 행정수반이 참석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Jim HorYeung 홍콩통신원.
홍콩 섬 완차이(灣仔)지역의 퀸엘리자베스 경기장(伊利沙伯體育體)에서 26일 오후 7시(현지시간)부터 열린 시민과 대화 자리에서 캐리 람 홍콩 행정수반이 참석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7월21일 일어났던 백색테러 및 8월31일 프린스 에드워드(太子)지하철 역에서 경찰들이 무차별하게 시민을 공격한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 람 장관에게 질문했다. 발언자 중 경제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한 발언자는 이번 소동 다음에 홍콩의 경제를 회복할 방법이 있는지 람 장관에게 질문하기도 했다. 

캐리 람, 시민 요구 경청 후...“거부” 

람 장관은 발언자들의 질문에 하나씩 대답했지만 결론적으로 발언자의 요구 사항들은 거부했다. 람 장관은 경찰의 강경 진압에 대해 독립적 조사 위원회를 만들라는 촉구를 다시 한번 거부했다. 람 장관은 현행되고 있는 경찰민원처리위원회(IPCC)가 경찰 진압 과정에서 과도한 폭력을 행사 하는지 잘 조사할 수 있어서 다른 조사 기관을 창립할 필요는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람 장관은 자신이 장관직에 취임한 2년 간 잘 못하고 시민의 목소리를 잘 듣지 못했음을 시인했다. 특히 송환법으로 촉발된 힘든 시국을 만든 것에 홀로 책임을 지겠다고 답했다. 람 장관은 지금 홍콩은 내우외환(內憂外患)의 힘든 국면에 있기에 스스로 책임지고 고쳐나가야 한다며 사퇴 요구의 거부 이유를 밝혔다. 

또한 시위대의 5대 요구 중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에 관한 것도 일축했다. 람 장관은 홍콩 사법 기관의 독립이라는 좋은 전통을 파괴하지 않도록 행정 장관이 형사 사건에 개입하지 못한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리고 일부 폭력시위자를 재판 없이 석방한다면 홍콩의 법치(法治)주의 원칙을 깨는 것이라며 시위자 석방 요구도 거부했다.

캐리 람 장관과 시민들간 송환법 반대를 비롯한 시민들의 요구사항을 주제로 대화가 있었던 26일 대화가 있었던 경기장 안과 밖 모습. 시민과 대화가 열린 퀸즈엘리바베스경기장 주변 학교는 이날 일찍 수업을 중단하고 휴교(왼쪽사진)했고 시민들의 통행조차 차단했다 거리에 시민들이 통제된 후 경기장에 도착한 람 장관이 한 시민의 질문을 경청하고 있는 모습(오른쪽사진). 사진=Jim HorYeung 홍콩통신원.
캐리 람 장관과 시민들간 송환법 반대를 비롯한 시민들의 요구사항을 주제로 대화가 있었던 26일 대화가 있었던 경기장 안과 밖 모습. 시민과 대화가 열린 퀸즈엘리바베스경기장 주변 학교는 이날 일찍 수업을 중단하고 휴교(왼쪽사진)했고 시민들의 통행조차 차단했다 거리에 시민들이 통제된 후 경기장에 도착한 람 장관이 한 시민의 질문을 경청하고 있는 모습(오른쪽사진). 

‘시민과 대화’ 행사는 이날 오후 9시까지로 예정돼 있었으나 발언하고 싶은 시민들이 많아 결국 계획보다 30분 연장됐다. 람 장관은 “이번 시민과 대화는 상황 해결을 위해 좋은 첫 걸음이며 앞으로 반드시 시민과 대화를 다시 만들겠다”고 약속했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달랐다. 

‘시민과 대화’에 참석했던 발언자들은 람 장관의 대답에 실망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 발언자는 람 장관이 오로지 같은 입장과 같은 말만 반복했다고 비판했다. 다른 참석자는 “람 장관이 발언자의 질문을 회피하면서 독립 조사 위원회를 만들자는 요구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도 말했다.  

시민과 대화가 시작되자마자 대화 장소 밖에는 시위자들이 숱하게 모였다. 람 장관은 시민과 대화를 끝낸 후 4시간이 지난 이튿날 새벽 1시 30분까지 퀸엘리자베스 경기장에 머문 후, 정문이 아닌 후문으로 전용차를 타고 떠났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플로라 2019-09-27 17:23:37
과연 정말 경청했던 걸까... 요즘 홍콩 기사가 많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아 아쉽네요. 진행상황들이 잘 알려졌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