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민 변호사의 IT와 법] 기술기업의 ‘피 땀 눈물’ 지식재산권과 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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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민 변호사의 IT와 법] 기술기업의 ‘피 땀 눈물’ 지식재산권과 인재
  • 김정민 변호사
  • 승인 2019.09.19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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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기업, 초기 기술 투자→ 기술유출 방지→ 재투자하는 '선순환 싸이클'
한국정부, 국내기업간 타협 종용하면 '지식재산권 경시' 오해 살 수 있어
국가는 지식재산권 보호와 인재양성으로 기술기업 지켜줘야
김정민 변호사
김정민 변호사

[김정민 변호사] 글로벌 기술기업의 특허 등 지식재산권과 인재는 기업의 피, 땀, 눈물을 넘어서 그 기업 전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최근 분쟁도 핵심은 특허, 영업비밀과 인재와 관련한 것이다.(독자 중에는 ‘지적재산권’이라는 용어에 더 친숙한 분이 많을 것이나, 공식적으로 ‘지식재산권’으로 용어가 통일되었다)

기술기업의 기술투자 사이클

기술과 인재를 지키는 기업은 경쟁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은 기업은 도태된다. 나아가 신기술 개발에는 천문학적인 돈이 투여되는데 경쟁에서 승승장구하는 동안 벌어들인 수익을 신기술 개발에 재투자해야만 기술기업으로 영속할 수 있다. 이런 투자, 수익, 재투자로 이어지는 사이클이 지속되는 동안에만 기술기업으로 존재할 수 있다.

수익이 더 적은 후발기업이 더 많은 투자를 해 선두기업과 기술격차를 줄이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후발기업은 비용도 적게 들고 단시간에 기술격차를 줄일 수 있는 기술유출, 인재유출의 유혹에 빠지게 된다. 이런 유혹에 넘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국가는 특허 등 지식재산권을 보호하고 영업비밀 침해를 엄벌하는 것이다.
  
2010년 이후 글로벌 지식재산권 전쟁은 다양하고 전방위적으로 발생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삼성전자와 애플 간 스마트폰 디자인 특허분쟁은 무려  7년의 소송전 끝에 전격 합의로 종료됐다.

화웨이는 3년전 통신기술 관련 특허를 두고 삼성전자와 특허분쟁을 시작했다. 화웨이는 삼성전자를 상대로 LTE표준특허를 침해했다며 중국과 미국에 제소하고 특허침해, 손해배상, 판매중지를 청구했다. 

이어 중국법원은 화웨이에 유리하게, 미국법원은 삼성전자에 유리하게 소송이 진행되었는데, 결국 올해 3월 삼성전자와 화웨이가 소송절차를 중단하겠다는 문서를 공동으로 제출했다. 두 기업이 화해를 통해 '특허상호실시(Cross License)계약'을 체결하기로 했다는 후문이다.

삼성전자와 애플은 7년간 특허분쟁을 벌이다 전격 합의로 소송전을 끝냈다. 사진= 연합뉴스
삼성전자와 애플은 7년간 특허분쟁을 벌이다 전격 합의로 소송전을 끝냈다. 사진= 연합뉴스

소송에서 이긴 특허 기술, 더 견고해지고 수익성 높아져

이렇듯 지식재산권 분쟁은 일단 벌어지면 수년간 사생결단으로 싸운 후에 합의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그전에 어떻게든 합의를 할 수 없을지, 또는 한국 기업간의 분쟁에 정부가 관여하면 보다 쉽게 합의에 이를 수 있지는 않을지 등의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수년간 싸우는 동안 요건이 불비된 일부 특허는 무효가 되지만, 확실한 특허는 더 견고해져 특허사용료를 정당하게 징수할 수 있게 되는 효과도 있다. 즉 소송전이 합의로 끝나더라도 분쟁의 대상이었던 특허의 옥석이 가려지고 살아남은 특허는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내 기업간 분쟁에서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식의 화해가 정말 좋은 것일까?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소송전을 좁은 시각으로 바라보면, 한국기업 간의 분쟁으로 비쳐지고 있어서, 국익차원에서 정부의 중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진짜 경쟁자 중국업체, 배후의 '중국정부'도 생각해야 

그러나 넓은 시각으로 보면,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진짜 경쟁상대는 중국 배터리 업체들이다. LG화학에서 퇴사하는 인력중 상당 수가 중국업체로 옮겨갔다고 알려져 있다. SK이노베이션으로 이직하는 인원 수보다 많다고 한다. 중국 업체와의 경쟁까지 염두에 둔다면 기술유출, 인력유출에 관해서 '좋은 게 좋은 거다'는 식의 화해보다는 불법을 발본색원하고 일벌백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만약 한국정부가 중재안을 제시하고 분쟁 기업이 이에 합의하고 화해하는 선례를 남기게 되면, 중국기업과 중국정부는 어떤 전략을 쓸 수 있을까? 필자가 중국기업의 입장이라면 불법적인 수단을 총동원해 기술과 인력을 끌어당겨 기술격차를 따라잡을 것이다.

나중에 한국기업으로부터 소송이 들어오더라도 중국정부를 이용해서 한국정부를 압박하는 방식으로 화해를 종용하는 전략을 쓸 것이다. 중국기업은 중국정부와 이런 쿵짝을 맞추는 것을 매우 잘한다. 이런 과정은 이미 중국기업이 한국기업과의 기술격차를 따라잡은 이후의 일이므로 한국기업이 입은 피해는 결코 회복될 수 없게 된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간 배터리 기술 관련한 분쟁에 정부가 섣불리 개입할 경우 해외로부터 오해를 살수 있다는 지적이다. 사진= 연합뉴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간 배터리 기술 관련한 분쟁에 정부가 섣불리 개입할 경우 해외로부터 오해를 살수 있다는 지적이다. 사진= 연합뉴스

한국정부, 지식재산권 문제 경시한다는 인상줘선 안돼

또한 섣부른 정부의 중재는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정부가 지식재산권 문제를 가볍게 본다는 시그널을 줄 수 있다. 글로벌 기업이 한국에서 지식재산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 기업이 유럽이나 미국 등에 지식재산권을 철저하게 지켜달라고 주장하기도 쉽지 않다. 한국정부가 미국, 유럽, 중국에 지식재산권 보장을 요청하더라도 설득력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정부가 중재에 나서는 것은 득보다 실이 더 클 수 있다.

지식재산권 보호체계는 한번 무너지면 다시 세우는데 엄청난 시간이 소요된다. 미중 무역분쟁에서 미국이 줄기차게 문제삼는 것이 지식재산권을 침해한 중국의 불공정무역 관행이다. 모순적이게도 글로벌 중국 기업 화웨이가 전세계에서 특허소송을 가장 많이 제기하고 있다.

글로벌 지식재산권 분쟁 건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고, 미국 국제무역위원회에 제소되는 건수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유럽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하에서 선진국과 같은 지식재산권 보호 체계를 유지하는 것은 어렵지만 매우 중차대한 일이다. 정부는 스스로 지식재산권 보호 체계를 허물기 보다 이 체계를 견고하게 유지하는데 힘써야 한다.

기술기업이 글로벌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후발주자와의 기술격차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기본이다. 이를 위해 중요한 것이 기술보호, 인력보호, 그리고 엄청난 액수의 재투자이다. 반대로, 후발주자는 기술격차를 줄이고 선두를 따라잡기 위해 더 많은 액수를 투자해야 한다. 기술 유출, 인력 유출을 노리는 것은 '불법'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한국도 전세계도 공정경쟁이 화두이다. 한쪽이 불법을 저질러 공정경쟁을 침해하는 경우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궁극적인 방법은 소송이고, 소송을 통해 공정과 불공정이 가려지는 것이다.

글로벌기업 되는 과정에 소송도 '필수코스'

글로벌 기업들은 치열하게 소송전을 펼치면서도 영업도 하고 협력도 한다. 소송전 때문에 수주가 안되고 매출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는 그야말로 '기우'이다. 삼성전자, 애플, 화훼이는 세기의 소송전을 펼치면서도 정상적으로 사업을 영위해 세계 1, 2위 자리를 굳건하게 지켜왔다.
  
어찌보면 이런 소송전은 글로벌 기업이 되기 위한 필수 코스로 보인다. ①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투입해 기술격차를 벌리고, ② 이를 침해하는 자들에게는 소송으로 단호히 맞서서 기술력과 경쟁력을 지키고, ③ 이를 바탕으로 벌어들인 막대한 수익을 다시 연구개발비로 재투자하는 선순환 사이클을 완성한 회사가 글로벌 1,2위 기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잠깐이라도 지식재산권과 인재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경우, 이런 글로벌 기업의 사이클은 단번에 무너지고 쉽게 회복할 수 없다. 그 틈을 경쟁(후발)기업이 반드시 파고들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가 할 수 있는 일은 국내 글로벌 기업의 이러한 사이클이 더욱 견고해질 수 있도록 지식재산권 보호와 인재양성에 도움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김정민 변호사는 서울대에서 컴퓨터공학, 법학(부전공)을 공부했다. 4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했으며 (주)케이엘넷 준법지원팀 팀장으로 있다. 대한변호사협회 IT블록체인특위 대외협력기획 부위원장, 서울지방변호사회 기획위원회 위원, 한국블록체인법학회 정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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