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동헌 칼럼] 추석, AI, 그리고 금융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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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동헌 칼럼] 추석, AI, 그리고 금융 시장
  • 주동헌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 승인 2019.09.16 1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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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시장에서 빅데이터와 AI 활용하는 로보어드바이저 기술
'자기 실현적 예언' 작동하는 경제현상에서는 예측에 한계
금융시장에서 기술발전, 수익률 제고보다 위험관리에 기여 가능성 높아
주동헌 한양대 교수
주동헌 한양대 교수

[주동헌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명절이면 의례 연휴 기간 중 고향을 오고 가는 데 가장 적은 시간이 소요되는 출발 시간을 예측하는 보도가 나온다.

추석연휴 교통길 예측하는 AI

지난 추석에도 한국도로공사는 물론이고 카카오, SK 등 온라인 내비업체들이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분석한 결과에 대한 기사가 나왔다. 빅데이터 분석 결과라고만 되어 있지만 그 분석 결과는 빅데이터를 기계학습(machine learning) 능력을 갖춘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에 투입하여 얻은 것일 게다.

그러면 이와 같은 분석 결과를 따르면 다른 사람보다 빨리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까?

빅데이터와 AI는 명절 교통량 예측을 넘어 4차 산업혁명의 중심 기술로 자리잡고 있다. 기존 기술 혁신이 인간의 육체노동을 대체하는 것이었다면 빅데이터와 AI는 인간의 정신노동까지 대체할 수 있는 기술이다.

알파고는 말할 것도 없고 최근에는 국내 모 법학회가 주최한 이른바 ‘알파로(law) 경진대회’에서 AI 변호사들이 최상위권을 휩쓸었다고 한다. 금융 분야에서는 이미 AI가 금융투자 조언을 해주는 로보어드바이저 산업이 등장했다.

펀드매니저가 아닌 인공지능(AI) 같은 컴퓨터 알고리즘을 토대로 자산관리를 해주는 로보어드바이저 기반의 펀드가 양호한 성과를 내는 것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AI의 도움은 높은 수익률이 아닌, 위험 관리에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림= 연합뉴스
펀드매니저가 아닌 인공지능(AI) 같은 컴퓨터 알고리즘을 토대로 자산관리를 해주는 로보어드바이저 기반의 펀드가 양호한 성과를 내는 것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AI의 도움은 높은 수익률이 아닌, 위험 관리에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림= 연합뉴스

금융투자 조언하는 AI, 높은 수익률 약속하나

그런데 여기서도 명절 교통상황 예측에 대한 것과 동일한 의문이 일어난다. 로보어드바이저의 금융투자 조언에 따라 투자한다면 높은 수익률을 얻을 수 있을까?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기존 이론을 잠깐 보자. 금융투자와 관련해서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이 가장 신뢰하는 모형은 ‘임의보행(random walk) 모형’이 아닐까 싶다.

이는 주식과 같은 금융자산 가격이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의 걸음처럼 그 방향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원숭이와 전문 펀드 매니저의 수익률 경쟁에서 원숭이가 이겼다는 이야기로 쉽게 풀어 설명되기도 한다.

임의보행 모형은 유진 파마(Eugene Fama)의 ‘효율적 시장 가설’에 근거한다. 현재의 주가에는 현재까지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정보가 반영되어 있고 미래의 주가는 현재에는 입수할 수 없는 정보에 의해 변동하므로 지속적으로 시장 평균 수익률보다 높은 수익률을 내는 것은 누구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아쉽게도 효율적 시장 가설은 경제학자들만 믿는다. 경제학자들이 자산시장에서의 거품을 방치해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했다는 비난을 받는 주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사실 경제학이 현실과 동떨어진 이론이나 가정으로 비판받는 일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효율적 시장 가설의 배경이 되는 ‘합리적 기대(rational expectation)’ 이론도 그러한 예 중 하나이다.

합리적 기대는 교과서에서 ‘경제주체들이 모든 정보를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형성된 기대’라고 설명된다. 일반인들이 경제학자처럼 계량경제 모형을 이해하고 어떤 변수의 변화가 다른 변수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계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기대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이런 설명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경제학은 현실과 동떨어져도 한참 동떨어졌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집단지성의 힘, 로보어드바이저가 실현할까

하지만 합리적 기대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경제현상의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ies) 이론에 대한 연구로 이름 있는 경제학자 로저 파머(Roger E. A. Farmer)는 합리적 기대를 ‘주관적 확률분포가 객관적 확률분포와 일치한다는 가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더 알아들을 수 없는 설명처럼 보이지만 이 설명은 최근 인터넷 시대에서 집단지성과 맥락이 닿아있다.

가축 시장에서 황소 무게를 맞추는 대회가 열렸다. 시장에 있던 사람들은 자신의 짐작을 써냈다. 그 중에 정답은 없었다. 그러나 이들 짐작치의 평균은 놀랍도록 실제 황소의 몸무게에 가까웠다. 집단 지성의 힘으로 흔히 회자되는 이야기이다.

개인들의 짐작치는 주관적 확률분포이다. 실제 황소의 무게는 객관적 확률분포이다. 거시 경제학은 개별 경제활동의 총계(aggregation) 변수를 분석 대상으로 한다. 개별 경제주체 각자의 기대가 모두 정보를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개별  경제 주체 기대의 총계가 결과적으로 정보를 효율적으로 사용한 기대를 형성하게 되는 것을 합리적 기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시장에서 개인들의 정보는 서로 다르고 모든 정보가 개인의 의사결정에 반영되어 있지 않다. 서로 다른 정보를 바탕으로 서로 다른 기대를 가진 시장 참가자들은 시장의 비효율성을 찾아서 활용하면 확실히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동기로 시장에 참여한 거래자들로 인해 가격은 서로 다른 정보를 반영하여 형성된다.

사람들이 시장이 효율적이지 않다고 믿기 때문에 시장이 효율적이 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시장의 효율성은 개별 경제주체들의 서로 다른 정보가 얼마나 빠르게 전파되고 효과적으로 활용되느냐에 달려있다.

2000년대 정보통신 기술과 수학적 투자기법의 발달은 이런 측면에서 효율적 시장 가설을 현실화 시켜주는 도구가 될 것으로 기대되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그와 같은 기술발전이 효율적 시장을 담보하지 못함을 보여주었다.

빅데이터와 AI를 활용하는 로보어드바이저는 시장을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앞서 던진 ‘로보어드바이저의 금융투자 조언에 따라 투자한다면 높은 수익률을 얻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과 반대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전의 양면과 같은 질문이다.

이번 추석 연휴 기간 고속도로는 귀성길에는 추석 하루 전인 12일 오전에, 귀경길에는 추석 당일인 13일 오후에 가장 혼잡할 것으로 국토교통부는 예상했다. 실제는 어땠을까. 전문가는 교통흐름의 정확한 예측보다는 교통량 분산이라고 말해 우리의 기대와는 다름을 보여줬다. 그림= 국토교통부
이번 추석 연휴 기간 고속도로는 귀성길에는 추석 하루 전인 12일 오전에, 귀경길에는 추석 당일인 13일 오후에 가장 혼잡할 것으로 국토교통부는 예상했다. 실제는 어땠을까. 전문가는 교통흐름의 정확한 예측보다는 교통량 분산이라고 말해 우리의 기대와는 다름을 보여줬다. 그림= 국토교통부

교통량의 분산이듯, 금융시장 AI는 위험관리로 유용

명절 귀성길 시간 예측으로 돌아가 보자. 한국도로공사의 남궁성 교통예보관은 지난 추석 JTBC와의 인터뷰에서 ‘교통예보는 정확한 예측도 중요하지만 교통 흐름을 분산시키는 것이 예보의 본래 목적’이라고 말했다.

교통 예보의 목적이 어떤 시간대에 출발하는 사람이 빨리 도착지에 가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연휴기간 전반적인 교통흐름을 개선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금융시장에서 예측의 목적은 무엇인가? 지난 8월 말 한국경제학회가 주최한 ‘AI 확산과 한국경제’라는 세미나에서 AI 금융투자 전문가인 한양대 강형구 교수는 "금융투자에서 AI가 ‘적어도 국내에서는 단기투자나 전술적 자산 배분에서 오용되고’ 있으며 ‘행동경제학적 편향을 보이는 중장기 투자에서 규칙에 기반한 처방을 내림으로써 위험관리에 강점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시장에서 AI와 같은 기술 발전의 기여는 수익률 제고가 아니라 위험 관리에 있다는 말이다.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는 금융시장에서 기술발전이 어떤 것에 기여해야 하는지 망각한 데서 시작되었다.

● 주동헌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1996~2011년 한국은행 자금부, 금융시장국, 조사국 등에서 근무했다. 2009년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학(어바나샴페인 소재)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18년부터 금융위원회 경쟁도평가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다. 2011년부터 한양대에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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