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코드] 우리가 배우 이정은에게 기대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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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코드] 우리가 배우 이정은에게 기대하는 이유
  • 김이나 컬쳐에디터
  • 승인 2019.09.06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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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 뛰어나면 배우로 성공? 최근엔 개성강한 외모와 연기력으로 인정받아
다양한 캐릭터로 관객에게 말을 거는 노력형 배우 이정은
이정은이 넓힌 연기 지평에 여배우들 맘껏 연기 펼치길
사진=윌 엔터테인먼트 블로그
웹툰 '타인은 지옥이다'에 출연중인 이정은. 만화속 인물과 싱크로율 100%라고 한다.사진=윌 엔터테인먼트 블로그

[오피니언뉴스=김이나 컬쳐에디터] 예전에, 아주 예전에는 딸이 예쁘면 잘 키워서 '미스 코리아' 대회에 내보내라는 말이 그 부모에겐 덕담인 시절이 있었다. 있을 법한 얘기가 아닌 것 같지만, 그랬었다. 이젠 '미스 코리아'도 외모로만 선발하지는 않지만 여자 아이로 태어나면 예쁘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 최대의 칭찬이었고 선망의 대상이었다. 똑같은 실수를 해도 용인의 폭이 더 넓었다. 

 

"난 언제나 영화에 나오고 싶었어.
어렸을 때 난 언젠가는 대스타가 될 줄 알았어. 아니면 그냥 아름다운 여자라도.
TV에 나오는 예쁘고 돈 많은 그런 여자 말야.
그래 나도 꿈이 많았어 꽤 낭만적이었어.언젠간 꿈이 이루어질거라고 굳게 믿었으니까."


영화 '몬스터' 도입부 에일린(샤를리즈 테론)의 독백.
예쁜 여자애들은 픽업이 될거라는. 여자의 미모가 픽업의 척도, 그리고 능력을 말하던 시대가 있었다.
그래서 외모가 뛰어나면 탤런트나 배우 콘테스트에 응모하고 그렇게 연기자가 되던 시절도 있었다.지금은 꼭 그렇치는 않다. 자연스럽고 친근한 외모에 다양한 퍼스낼리티를 담은 얼굴이 더 인기다.
그리고 배우는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 자신이 만들어내는(create) 것에 책임을 져야한다.
기꺼이 다른 사람이 되겠다는 준비가 된 사람. 그 인물이 흉악범이든 창녀든 귀부인이든 그의 인생을 우리에게 들려줄 준비가 된 사람.

배우는 관객과 시청자에게 이야기를 걸어오는 사람이다.
 

사진=변호인 스틸컷
송강호가 찾아간 집의 여주인역 이정은. 사진='변호인' 스틸컷

 

그 때 그 배우가 이정은?

 

"고3때 한창 민주화 항쟁이 일어나고 이한열 열사가 돌아가셨다 […] 부반장 친구 오빠들이 고대를 다녔다. 조의를 표하는 의미에서 검은 리본을 달았는데, 학교 측에선 단체 행동이 되더라. 그래서 반성문을 쓰고, 이후 부반장 친구도 안 좋은 일로 학교를 그만두게 됐다. [...]
그 때 앞으로 어른이 되면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할 때 다른 방향의 생각들이 자리 잡기 시작한 것 같다." ('대화의 희열')


TV 프로그램 ‘대화의 희열’ 에서 이정은이 들려준 이야기다. 이정은은 그 때부터 배우의 꿈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친구들 앞에서 연기하는 것을 좋아해서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한다. 입시 한 달 전 연극영화과로 진로를 변경한다.
하지만 "마흔살까지는 계속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냈다”고 털어놨다. 부업으로 연기 학원강사, 마트 직원, 녹즙 판매원 등의 일을 했다. 마흔 다섯에 비로소 방송에 데뷔했다고 하니 시청자들 대부분이 기억하는 이정은은 '중년의 이정은'이다.

무대에는 1991년 연극 '한여름밤의 꿈'으로 데뷔했고 방송은 2013년 '시트콩 로얄빌라'로, 영화는 2012년 '전국노래자랑'으로 데뷔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최근의 이정은은 영화 '기생충'에서 극을 반전을 이끌어낸 '인터폰 신'의 이정은. 주연으로 이름을 올렸고 생애 처음 레드카펫도 밟았다.

그런데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면서 깜짝 깜짝 놀란다. 그 때 그 역할이 이정은이었다고?

영화 ‘변호인’에서 송강호는 어려울 때 공사장 인부로 벽돌을 올리던 집으로  찾아간다. 눈화장을 한쪽만 한 채 얼굴을 내민 여주인. 주인은 집을 내놓지도 않았는데 시세보다 돈을 더 줄테니 팔라는 송강호에게 "아이고 '주시'라도 드실랍니까?"하고 너스레를 떠는 집주인이 이정은이다. (김해가 고향인 송강호가 사석에서 “고향이 부산 어디랬지?” 라고 물어봤을 정도로 이정은의 사투리는 자연스러웠다는 후문.이정은은 서울 출신.)
봉준호 감독에게 첫 캐스팅된 '마더'에서 김혜자 멱살을 잡는 피해자 가족 중 안경 쓴 친척이 바로 이정은. 너무 리얼하게 달려드는 이정은에게 놀란 김혜자가 촬영을 쉬기도 했다고.

‘옥자’ 에서는 옥자 목소리 역할을 맡았다. 이정은이 참여한 뮤지컬 ‘빨래’ 공연을 보러 왔던 봉준호와 처음 만난 후 두번째 캐스팅. 이정은은 슈퍼돼지 ‘옥자’의 목소리를 연기하기 위해 동물원 등을 찾아다니며 6개월간 동물 소리를 연구했다. 옥자가 청학동 사는 돼지라는 설정에 맞춰 일부러 유기농 돼지 농장을 찾아 가기도 했다고. 

'검사외전'에서는 국회의원 후보 이성민 선거사무소에서 강동원과 다소 민망한 '붐바스틱' 댄스를 같이 추는 선거 운동원이 이정은이다. 은근슬쩍 강동원이 서울대생이라는 정보를 퍼뜨려 결과적으로 강동원을 돕는 역할을 한다. 

 

미성년에서 '방파제 여인'으로 그만의 연기를 선보인 이정은
영화 '미성년'에서 '방파제 여인'으로 그 만의 연기를 선보인 이정은.사진=영화 스틸 컷

이정은이 들려줄 이야기는 아직도 무궁무진

1979년 시고니 위버는 명장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에이리언'에서 외계 생물체에 맞서는 여전사 역할을 했다. 1990년 ‘미저리’에서 잔인한 사생팬 역할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캐시 베이츠, ‘소년은 울지 않는다’에서 젊은 남성으로 변장하고,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 여성 복서 역할로 두 번의 오스카를 수상한 힐러리 스웽크, '파고'에서 여경찰 역할, '쓰리 빌보드'에서 딸을 잃은 엄마로 고군분투했던 프랜시스 맥도먼드 등은 전형적인 미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개성강한 역할로 오스카를 거머쥐고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들이다.

특히 샤를리즈 테론은 영화 ‘몬스터’에서 작품을 위해 20kg를 찌우고 주근깨가 가득한 얼굴로 눈썹도 밀고 틀니까지 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연쇄살인범 연기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실장님과 사랑에 빠지는 신데렐라 신입사원, 출생의 비밀로 맺어지지 못해 괴로워하는 여주인공, '이 결혼 반댈세'하며 상견례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시어머니, 결혼한 딸에게 화수분처럼 사랑과 희생을 쏟아붇는 친정엄마 등등…

물론 그런 역할을 하는 연기자들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배우들, 특히 중년 여배우들이 방송과 영화에서 맡는 역할들은 한정돼 있다. 관객과 시청자들은 여배우들도 한정된 캐릭터를 벗어나 더욱 다양한 캐릭터들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최근 영화 '미성년'에서 ‘방파제 여인’ 역할로 강한 인상을 남긴 이정은은 “과거에 비해 여성과 중간 배역들에게 주어지는 캐릭터가 다양해졌다”고 말한다.

 

"어디서 왔어요? 차 세워놓은 거 보니까 저 먼 데서 온 것 같더구먼. 서울서 왔어요? 언제 왔어요? 누구 만나러 왔어? 어떻게 여기 왔데요, 동네도 쪼깐한데…
나 여기  주차비 좀 줘봐요. 남의 동네 와서 좋은 경치에다가 바다 구경도 하고
차도 공짜로 세워놨으면 주차비 좀 내야지."

 

반쯤 정신나간 얼굴로 도피 중인 김윤석에게 만원짜리 한 장을 갈취한 여인. 돈을 흔들며 “막걸리 먹자” 소리치며 동네 폭주족 청년들을 향해 걸어간다. 
‘카트’에서 이정은을 캐스팅했던 부지영 감독은 옴니버스영화 '우리 지금 만나'에서 다시 이정은을 캐스팅했다. 부지영 감독은 “어떤 역할을 맡기더라도 그 역의 일상과 영혼을 다 알고 있다는 믿음”을 보았다고 말한다. 이 영화에서 이정은은 낮에는 공장에서, 밤에는 청소일로 생계를 유지하는 평범한 노동자 정은을 맡았다. 

앞으로 이정인이 맡게 될 역할은 무궁무진하다. 능글맞은 첩보원도 가능하고 관객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살인마도 가능하다. 팜므 파탈 역할도 문제 없다. (그 특유의 친절함을 버린다면 말이다)

 

한예리,천우희,김태리,김다미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천우희,김태리,한예리,김다미.사진=영화,드라마 스틸 컷

최근 방송과 영화에서 종횡무진 활약중인 젊은 여배우들.  예전의 전형적인 미녀의 역할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는 여배우들이 많아지고 있다.

영화 '아가씨',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김태리, 영화 '최악의 하루', 드라마 '녹두꽃'의 한예리, 영화 '마녀'의 김다미, 영화 '곡성'의 천우희 등 이정은이 넓혀놓은 연기의 지평에 많은 여배우들이 연기의 꿈을 맘껏 펼쳐보길 기대한다.

 

"'잘난 것과 잘 사는 거랑 다른 게 뭔지 아냐. 못난 사람이라도 잘난 사람들 사이에 들어가서 나 여기 살아있다, 나보고 다른 못난 놈들 힘내라 이러는 게 잘 사는 거다. 잘 난 건 타고나야 되지만 잘 사는 건 너 하기 나름이다’ 이 이야기를 대신 해주고 싶다” (대화의 희열)

 

평범한 외모 탓에 화려하게 등장하지는 못했던 생계형 배우 이정은. 아직 연기를 인정받지 못한 무명의 배우들 그리고 하루하루가 전쟁인 2030 세대들에게 맏언니 처럼 들려주는 한 마디.

배우로서도 사랑스럽지만 인간적으로도 사랑스러운 이정은.

최근작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 에서 싱크로율 100%의 고시원 주인 역할을 맡았다. 또 한 번 '이정은 표' 연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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