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옥 칼럼] 혐오 표현, 정말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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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옥 칼럼] 혐오 표현, 정말 문제인가
  • 윤성옥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 승인 2019.08.31 16: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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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표현, 혐오범죄로 비화될 위험 있어
유럽에선 엄격한 규제...미국 '표현의 자유' 명분 허용
한국, 혐오범죄·온라인폭력 커져...규제 강화 필요성 있어
윤성옥 경기대 교수
윤성옥 경기대 교수

[윤성옥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홍대 거리에서 일본 여성이 한국 남성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30대 한국 남성이 일본 여성을 비하하는 내용과 욕설을 하는 영상이 공개되어 충격을 주고 있다.

남성은 무자비하게 여성의 머리채를 붙잡기도 했다. 폭행 혐의의 남성은 일본인에 대한 적대감은 아니라고 부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거울보냐, AV(성인물) 배우냐’ 등의 성희롱적인 말을 한 것을 보면 일본혐오까지는 아니더라도 여성에 대한 비하 혐오 가능성은 인정된다. 아니 어쩌면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하는 외국인인 데다가 여성에 대한 혐오까지 복합적인 감정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말로 끝나지 않은 혐오표현, 범죄로 이어질 수 있어 

최근 혐오표현, 혐오범죄가 사회적 문제다. 혐오적인 표현이 무엇인지 정의하기도 어렵고 그러한 표현이 정말 사람의 감정 중 혐오에서 온 것인지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혐오범죄가 행위이고 행위결과의 피해가 비교적 명확한 반면, 혐오표현은 말에 불과하고 그 피해도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규제에 대해 주저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혐오표현이 문제인 것은 그것이 표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혐오범죄로 이어진다는 전제 때문이다. 말이 말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행동이나 결과에 영향을 준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 모두가 말의 중요성이나 말이 결과를 바꿀 수 있음을 인정하는 말이다. 혐오표현도 생각이나 생각을 표현한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폭력이나 범죄로 이어질 수 있기에 심각하다.

3년전 발생한 강남역 20대 여성 살인사건에 대해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20대 여성 10여명이 "강남역 살인사건이 묻지마 범죄가 아니라 명백한 여성 혐오 범죄"라고 주장하는 퍼포먼스를 시현했다. 사진= 연합뉴스
3년전 발생한 강남역 20대 여성 살인사건에 대해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20대 여성 10여명이 "강남역 살인사건이 묻지마 범죄가 아니라 명백한 여성 혐오 범죄"라고 주장하는 퍼포먼스를 시현했다. 사진= 연합뉴스

혐오표현도 표현의 자유 대상?...미국과 유럽 '입장차'

‘혐오표현은 표현의 자유 보호 아래 있다.’ 미국의 연방대법원은 혐오표현 역시 수정헌법 제1조 표현의 자유 보호 범위에 있음을 인정해왔고 아직까지 이 원칙은 유지되고 있다.

미국에서 혐오표현 관련 규제가 항상 '위헌' 결정을 받아온 이유이다. 혐오표현 규제에 반대하는 입장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데서 오는 사회적 이익, 혐오표현과 혐오범죄간의 직접적 연관성에 대한 입증 부재 등을 이유로 내세운다.

미국과 달리 유럽을 중심으로 한 많은 나라들은 혐오표현의 규제 조항을 가지고 있다. 집단 학살, 인종 차별의 아픈 역사를 가진 유럽의 특수성이 혐오표현을 보다 더 엄격히 적용하도록 반영된 것이다.

영국의 경우 1986년 법을 통해 피부색, 국가, 인종 민족에 기반한 혐오표현을 금지하고 있다. 시민 및 정치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이나 인종차별철폐국제협약(ICERD)과 같은 국제 조약에서도 국가, 인종, 종교 등을 이유로 혐오표현을 금지하고 각 국가가 이를 근절하기 위한 조치를 채택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혐오표현 해악성의 두가지 측면

혐오표현의 규제 입장에서는 그 해악성에 주목한다. 혐오표현의 해악성은 두 가지 차원에서 발생한다. 하나는 혐오표현의 행위 자체로 발생하고, 둘째는 혐오표현의 행위 결과로 발생한다.

혐오표현 행위로 목표집단(target group)은 불쾌감과 공포를 느끼게 된다. 이는 인간의 존엄성을 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혐오표현의 행위 결과 공론장에서 목표집단이나 그 구성원들은 침묵하거나 배제당한다. 공론장의 왜곡인 셈이다.

브라이언 레빈은 혐오표현의 피라미드로 그 해악성을 설명하고 있다. 레빈의 혐오 5단계는 <1단계> 편견적 태도, <2단계> 편견적 행위, <3단계> 차별, <4단계> 편견으로부터 발생한 폭력, <5단계> 집단학살이다. 개인의 단순한 편견으로부터 시작한 혐오표현이 사회적 집단학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이다.

국내 혐오표현 규제 '공백'...법개정 미뤄져 

지난 50년간 혐오표현에 대한 유럽과 미국의 규제방식은 매우 상이하게 전개되어 왔다. 미국의 연방대법원과 유럽인권법원의 판결을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미국은 표현의 자유를 중시해왔고 유럽의 국가들은 혐오표현 규제 법을 강화해왔다. 이는 정치·문화적 요인, 법률과 사법적 규범에서의 차이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내에서도 우리 상황에 맞는 혐오표현 규제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내의 경우 다른 나라에 비해 명예훼손이나 모욕죄에 대해 훨씬 엄격한 처벌이나 규제 조항이 마련되어 있다. 따라서 형법이나 정보통신망법으로 혐오표현을 규제할 수 있지만 개인이 아닌 집단, 특히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는 집단의 경우 처벌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성별(여성), 지역(광주), 종교(기독교인), 성적 지향(성소수자) 등을 기반으로 한 혐오표현은 처벌이 가능하지 않다. 규제공백이 있는 셈이다.

현재 우리 국회에서도 혐오표현의 문제점은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작년에 관련 법률안이 적지 않게 발의되었다. 혐오표현 규제를 위한 개별 법률안이 나오기도 했고,  ‘인종, 지역, 성별, 신체적 조건 등을 이유로 행해지는 차별, 편견 조장내용’을 금지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도 발의되었다. 그러나 무슨 이유인지 이들 법률안은 계류 중이 아니라 철회되었다. 추정하건대 혐오표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쉽지 않아 보인다.

표현의 자유 Vs 규제 강화 사이

혐오표현은 국민의 표현의 자유 보호와 누구나 차별받지 않을 권리 간의 충돌 문제이다. 물론 혐오표현을 규제한다고 하더라도 손쉽게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는 방식이어서는 안된다. 표현의 자유란 반드시 옳거나 가치있는 의견뿐 아니라 무엇에 대해 반대할 수 있는 권리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혐오표현에 의한 폭력, 범죄가 적지 않게 등장하고 있고 온라인 환경에서 더 심각해질 것이 우려된다면 혐오표현의 규제 정당성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 차별과 배제, 공포와 폭력에 대해 고통받고 그 원인이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성별, 국가, 피부색, 인종 등에 기반하고 있다면 말이다. 국회의 입법과제이다.

● 윤성옥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서강대에서 언론대학원에서 석사, 광운대에서 신문방송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인터넷자율정책기구 정책위원. 방송통신위원회 시청자권익위 위원,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정책자문위원 언론법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방송학회 방송법제연구회 회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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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원 2020-05-20 16:19:41
악플을 다시는 분들은 장난 이라고 생각 하시겠 지만 악플을 본 사람은 정말 힘들고 고통 받으실겁니다. 그런데도 악플을 달아서 생명 도 잃을수도 있는데 그것 같고 장난을 치시않고 오히려 선플을 달아주시면 그 선플을 본 사람은 정말로 행복 할것 입니다. 그러니 제발 악플 말고 선플을 달아 주세요. 그냥 장난이 아닌 범죄가 될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