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수의 '협동조합 성공의 길'] 믿음과 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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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의 '협동조합 성공의 길'] 믿음과 권위
  • 김진수 농협대 협동조합 경영과 교수
  • 승인 2019.08.26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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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원천이 되어야 권위도 생겨
협동조합에도 권위가 필요한가 문제
협동체적으로 운영되는 공동체, 지배의 독점 없이도 운영될수 있어

 

김진수 농협대 교수
김진수 농협대 교수

[김진수 농협대 교수대학 캠퍼스에는 이맘때쯤 법학전문대학원 졸업식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린다. 교수와 졸업생들은 모두 가운을 입고 졸업식을 진행한다.

가운 입는 계절, 권위는 어떻게 부여되는가

학위복의 역사는 유럽 중세 대학에서 비롯된다. 이 당시 대학생들은 성직자들의 외출복과 같이 생긴 옷을 교복으로 입었다. 20세기초 이수일과 심순애에서 대학생 이수일도 가운을 걸치고 있다.

성직자들이 긴 가운을 입은 이유는 신체 노출을 최소화하여 성직자의 신체보다는 말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장치였을 것이다. 지금 이 시대에도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검은 색 티를 많이 입는 것과 같다고 생각된다. 즉, 가운은 중세 유럽에서 신의 말씀으로 여겨지는 말을 전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성직자에게 적합한 의복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검은 가운은 작은 장치일 뿐 성직자의 말이 신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신도의 신뢰가 필수적이다. 신도로부터 신의 뜻을 잘 전달한다는 ‘믿음’을 성직자가 받기 위해, 성직자 양성 교육이 제도화됐다.

일정한 능력을 가진 자를 선발해 교육하고 그 교육과정을 마친 이들에게만 성직자의 자격을 부여하는 제도가 점차 형성됐다. 그 후 12세기 파리대학의 경우 신학과정을 마치기 위해서는 10년이 요구되었고, 성경 해석과 교의신학이 주된 학습내용이었다.

이러한 장기간의 교육과정을 마친 성직자의 성경 해석을 다수의 신도들이 신의 말씀으로 전적으로 신뢰하는 경우 성직자는 ‘권위’를 얻게 된다.

성직자처럼 권위가 특히 필요한 사람이 법정의 재판장이다. 법정에서는 첨예한 현실 이익이 충돌하는 문제에 대해 법 본래의 뜻을 발견하는 해석이 이루어진다. 법정에서도 권위의 장치로 재판장은 가운을 입는다. 재판장이 되기 위해서는 장기간의 법학 교육과 재판 경험이 요구된다.

공동체적 가치를 지향하는 협동조합에도 조직운영에 권위가 필요한 것인가. 필요하다면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도 조합원들에게는 중요한 문제다. 사진= 연합뉴스
공동체적 가치를 지향하는 협동조합에도 조직운영에 권위가 필요한 것인가. 필요하다면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도 조합원들에게는 중요한 문제다. 사진= 연합뉴스

막스 베버가 정의한 권위의 3가지 유형

독일의 근대화 합리화를 고민하던 막스 베버는 권위를 정당하게 여겨지도록 만드는 원천을 기준으로, 권위를 3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첫째가 합리-합법적 권위(rational-legal authority)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국가가 법률에 의해 부여한 정부 공직자들의 권한이다. 합리-합법적 권위는 통상 피라미드 구조를 따라 명령과 지시의 형태를 띈다. 피라미드형 관료조직은 당시 기존에 있던 귀족중심적 조직과는 다르게 높은 효율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가졌다.

둘째가 전통적 권위 (traditional authority)다. 관행, 습관으로부터 나오는 권위이다. 태국과 같은 세습군주의 지배가 해당된다.

셋째가 카리스마적 권위 (charismatic authority)다.  권위가 특정 개인 또는 집단이 가진 특별한 능력, ‘신의 은총(gift of grace)’ 등에 의존하는 경우다. 

자신들의 리더가 특별히 신의 계시 등에 의해 강력한 힘을 부여된 것으로 추종자들이 믿을 때 생겨나는 권위다. 이란의 종교지도자가 그 예다.

권위주의로 흘러가지 않으려면

피라미드 형의 조직에서 최고위 결정권자는 조직의 최고 상층부에서 지시를 내리는 공식적 권위를 갖는다. 하지만 최고위 결정권자가 전략을 개발하고 지시를 내리기 위해서는 참모들의 지식과 기술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조직은 권위주의(authoritarianism)로 흘러간다.

권위주의는 최고위 결정권자가 참모를 비롯한 부하들의 정책결정 참여나 반대의견 제시를 봉쇄한 채, 자신의 판단과 지시를 강요하는 경우이다.  최고위 결정권자의 명령과 지시는 이때 부하들이 심리적으로 수용을 거부하기 때문에 협력을 기대하기 힘들다.

협동조합도 권위가 필요한 조직인가

20세기말 국제협동조합연맹이 발간한 협동조합 보고서 중 명성이 높은 '레이들로 보고서'(1980)에서는 협동조합의 민주적 성격을 토의하며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진정한 협동조합에서는 조합원에게 최고의 권위가 부여된다”
 
이는 근대 국가에서 주권자에게 최고 권위가 있는 경우와 동일하다. 헌법상 주권자인 국민이 최고의 권위를 가지는 구조와 판박이이다.

주권에 대한 논의는 16∼17세기 유럽에서 종교적, 정치적 분쟁과 전쟁 속에서 등장한 개념이다. 즉, 유럽의 왕들이 교황과 신성로마황제의 권위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그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자신에게 주권이 있음을 선언한 데서 비롯됐다는 의미다. 소위 왕권신수설이다. 이후 의회주권을 거쳐 국민주권의 시대가 되었다.

근대의 산물로서 주권자는 '최상위성'과 '독립성'을 특징으로 한다. 주권자는 가장 높은 권위와 자율권을 지니고 있음을 뜻한다. 그래서 주권자가 관할하는 영토 내에서는 여타 권위보다 더 높은 최상위의 권위로 인정받고 영토 밖 타 주권자의 간섭을 받지 않는다(로버트 잭슨, 옥동석 역, 주권이란 무엇인가, 2016).

나찌의 법 이론가였던 칼 슈미트는 근대 독재정치와 종교의 구조적 유사성을 잘 드러낸 학자다. 칼 슈미트는 권위란 동의의 대상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으로 보았다. 믿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사이의 갈등이 정치라고 보았다.

반면 동시대 학자인 프로이스는 협동체 이론을 통해 주권 개념을 권위주의 국가의 유물로 여겨서 배격하기도 했다. 협동체적으로 밑으로부터 차곡차곡 쌓아 올린 공동체야말로 지배의 독점이 불필요하고 따라서 주권이 등장할 필요가 없는 조직이라고 간주했다(칼 슈미트, 김항 역, 정치신학 주권론에 관한 네개의 장, 2010)

협동조합의 조합원은 칼 슈미트 식으로 권위를 부여 받은 소수가 결단하도록 할 수도 있지만, 프로이스 식으로 구성원과 소통해 아래에서 위로 조직을 구성할 수도 있다.

조합원 전체의 뜻에 권위를 부여하고 이 뜻에 따라 조직 운영을 해나가는 칼 슈미트 방식은 찬성 세력과 반대 세력을 선명하게 대비, 도식화해 사람들을 이해시키기 편리하다. 하지만, 현실의 복잡성을 고려하기 보다는 조합원의 뜻을 대변한다는 명목을 내세운 소수세력의 독단에 의한 조직운영의 위험성이 있다.

복잡성이 증대하는 현대의 협동조합에서는 복잡성을 대면하는 다양한 소규모 협업조직 간의 조정과정을 통해 전체 협동조합 조직의 의사를 형성해 나가는 프라이스 방식의 접근이 21세기 협동조합의 민주적 원칙에 더 맞지 않나 필자는 생각한다.

● 김진수 농협대 교수는 서울대 법대 사법학과를 졸업하고 농협중앙회 기조실, 농업경제기획부에 근무했으며 2012년부터 농협대학교 협동조합 경영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결사의 자유의 관점에서 본 협동조합'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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