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이지영 통신원] 홍콩 지하철역 주변에 거대한 인간 띠가 형성됐다.
중국을 겨냥한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반대 시위가 두달이 넘어선 23일 오후 7시께(현지시간) 홍콩 시민들은 시내를 관통하는 지하철역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이들과 손을 잡았다. 평화적 시위를 표방해 온 홍콩시민들이 '홍콩의 길(HongKong Way·香港之路)'을 만들어낸 순간이었다.
홍콩이나 해외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홍콩으로 도피한 이를 해외로 내보낼 수 있는 것을 골자로한 범죄인 인도법안에 홍콩시민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죄없는 홍콩 시민들이나 세계인이 인권 침해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홍콩을 지배하고 있는 중국 정부의 인권보호가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진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얘기다. 영국의 통치를 100년 가까이 받았던 홍콩은 이제 아시아의 최대 금융허브다. 중국이 딜레마에 빠진 이유다. 중국이 홍콩의 평화적 시위를 강제진압할 경우 놀란 글로벌 금융사들이 홍콩을 등지고 인근 지역국가로 빠져 나갈 수 있어서다. 글로벌 금융사들이 홍콩에 직간접 투자한 자금은 1조달러(약 1100조원)로 추산된다. 대규모 홍콩시위가 두달을 넘어서고 있어도 중국군이 쉽사리 홍콩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다.
이에 홍콩시민들은 23일 시내 한 가운데에서 인간 띠를 만들고 평화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염원을 담아냈다. 손에 손을 잡은 홍콩 시민들은 침묵했지만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렸다. 손에 손을 잡고 옆에 사람의 흐느낌을 보며 따라 울었다. 이날은 민주주의와 평화가 가득한 홍콩의 밤이었다.
지난 23일 저녁 홍콩지하철 홍콩아일랜드라인(Hong Kong Island line)과 췐완(荃灣)line, 쿤통(觀塘)line의 주요 지하철 노선 38개 역 밖에 삼삼오오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송환법을 반대하는 시민들이었다. 인파가 모여들며 서로 옆사람의 손을 잡았고 점차 기다란 열이 지어지고 인간사슬이 생겼다. “홍콩의 길(Hong Kong Way 香港之路)”이라고 명명된 이 행사는 송환법을 반대하는 평화시위 였다.
‘홍콩의 길’ 시위는 30년 전인 1989년 8월23일 소비에트 연방의 지배아래 있던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지역 200만명의 사람들이 600km가 넘는 거리를 손을 잡아 평화의 띠를 만들었던 발트의 길 (The Baltic Way)을 모티브로 했다.
한국어 슬로건도 내걸린 'Hong Kong Way'
일주일 전부터 홍콩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에 홍콩의 길을 만들자는 제안이 올라왔다. 행사 주최자는 홍콩 상태를 국제 사회에 널리 알리기 위해 30년전의 평화 시위의 상징인 발트의 길을 재현하자는 제안을 하며 손을 잡아 띠를 만드는 것은 홍콩 수호의 의미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덧붙였다.
‘홍콩의 길’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사람들은 도심의 길 뿐만 아니라 각고의 홍콩 정신을 상징하는 사자산(獅子山) 정상까지 올라갔다. 손에 손을 잡은 시민들은 홍콩 파이팅 (香港加油)이나 “광복 홍콩 (光復香港) 시대혁명(時代革命)'' 등을 외쳤다. 국제사회에 행사 목적을 알리기 위해 영어와 한국어, 일본어, 독일어 등 여러 언어의 슬로건이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21만명 으로 60킬로미터 인간사슬은 오후 9시에 점차 해산하고 경찰과의 충돌은 없었다.
韓 배우 김의성으로부터 촉발된 'Eye4HK' 캠페인
지난 19일 한국 배우 김의성씨가 오른쪽 눈을 가린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김 씨는 인스타그램에 "홍콩 시위에 참여했던 한 여성이 경찰이 쏜 포대탄(布袋彈)을 오른쪽 눈에 맞고 영구적으로 시력이 손상된 사건을 접하고 이 여성과 홍콩을 응원하기위해 사진을 찍었다"며 "170만 명이 행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강하고 평화로웠다. 홍콩 시민들이 자랑스럽다”고 적었다.
명보 (明報)와 빈과일보 등 홍콩 현지 주요 언론들은 영화 부산행을 출연한 한국 배우인 김의성 씨가 오른쪽 눈을 가리고 홍콩 시위자들을 응원 했다고 보도했다. 홍콩 시민들은 중국 14억 인구의 거대한 시장의 손실에도 불구하고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김의성씨의 응원에 감사하다는 내용을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렸다.
김의성씨의 인스타그램이 홍콩에도 알려지면서 여러 홍콩 연예인이나 정치인 등이 오른쪽 눈을 가린 사진을 줄줄이 SNS에 올리며 Eye4HK 캠페인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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