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려터진 '페이스북 품질 개선' 소송서 진 방통위...다음 카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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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려터진 '페이스북 품질 개선' 소송서 진 방통위...다음 카드는
  • 박대웅 기자
  • 승인 2019.08.23 18: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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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통신사업자와 글로벌 CP간 망사용료 소송전서 페이스북 손 들어줘
방통위 "소비자 권익 보호하겠다" 즉각 항소의사 밝혀
페이스북 "한국 법원 판결 환영…한국 이용자 권익 보호 노력"
업계 "이번 선고, 망 사용료 협상에 큰 영향을 주진 않을 것"
정부, '망 이용 가이드라인' 추진 곤경에 빠져
우리 법원은 21일 방통위가 페이스북에 내린 과징금 처분이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사진=연합뉴스
법원은 22일 방통위가 페이스북에 내린 과징금 처분이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박대웅 기자] 우리 법원이 국내 통신사와 글로벌 CP(콘텐츠공급자)의 망 사용료 협상에 막대한 영향을 줄 세기의 소송전에서 미국 소셜미디어 페이스북 손을 들어줬다.

이번 판결로 페이스북, 유튜브, 구글 등 글로벌 CP들은 앞으로 한국에서 막대한 트래픽을 사용하면서도 추가 부담을 지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다. 반면 패소한 방송통신위원회는 '소비자 권익 보호'를 전면에 내세우며 즉각적인 항소와 함께 글로벌 CP 기업들과 맞대결도 불사하겠다는 의사를 천명했다.  

특히 방통위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제정을 추진 중인 '망 이용 가이드라인'이 앞으로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날지 업계의 관심이 집중 되고 있다. 정부는 애초 이해 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올 연말쯤 '망 이용 가이드 라인'을 발표할 방침이었다. 

◆사건 발단

지난 22일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박양준 재판장)는 페이스북이 방송통신위원회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페이스북) 승소 판결을 내렸다. 

2016년과 2017년 페이스북은 KT 캐시(cache) 서버를 이용하던 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의 접속경로를 홍콩·미국 등으로 변경했다. 2017년 상호접속고시 개정으로 KT에 지불해야 하는 망 이용료가 늘어나자 이를 회피하기 위해 단행한 조치다. 그러나 이로 인해 접속 속도가 느려지면서 이용자 민원이 속출했다.

업계에선 페이스북의 캐시 서버 구축 요청을 거부하며 KT망을 접속한 대가인 상호접속료 지불을 요구한 SK브로드밴드를 길들이기 위해 페이스북이 일부러 홍콩이나 미국 등 서버로 우회 접속해 속도를 저하시켰다는 말이 나돌았다.

방통위 역시 페이스북이 이용자들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했다고 봤다. 페이스북이 구체적인 협의나 이용자 고지 없이 접속경로를 홍콩·미국 등으로 우회하도록 해, 불편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방통위는 지난해 페이스북에 3억9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시정명령 조치를 내렸다.

페이스북은 "이용자 피해를 유발하려는 의도가 없었다"며, 시정명령 등 처분 취소 소송을 걸었다. 약 1년 3개월 만에 법원은 방통위의 조치가 부당했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행정법원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설령 원고가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접속 경로를 변경하고, 이로 인해 피해가 발생했어도 현행법상으로는 행정처분이 어렵다"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법원은 "인터넷접속제공사업자와 다른 CP에 서비스 품질 의무를 주는 것은 부적절하고 그래야 한다면 별도의 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통신업계는 "카카오나 네이버가 망 사용료로 1년에 수백억원을 내는데 한국 법원의 판결은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이자 무임승차를 눈감아주는 행위"라고 반발하고 있다.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크버그가 자사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가 자사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페북이 '배짱' 부리는 이유

네비어·카카오·아프리카TV 등 한국 기업이 국내 통신사에 지불하는 통신망 사용료에는 데이터센터 비용과 회선사용료가 포함돼 있다.

반면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 외국 기업은 서버를 외국에만 두고 한국에 두지 않는 한 외국 통신사에만 통신망 비용을 지불하며 국내 통신사에는 트래픽 비용을 내지 않는다. 한국 사용자가 외국 CP업체의 서버에 접속하는 경우 한국과 외국에서 인터넷 트래픽이 발생하며 이에 따른 비용은 한국과 외국의 통신업체들끼리 정산한다.

그러나 한국 사용자가 외국 서버에 접속하면 통신 속도가 느려질 우려가 있고, 한국 통신망과 외국 통신망을 연결하는 망에도 용량 한계가 있다. 또 한국 통신업체가 외국 통신업체에 정산해야 하는 트래픽 비용도 사용자가 늘 수록 늘어나는 구조다. 이 때문에 한국 통신업체는 페이스북과 같이 국내 사용자가 많은 외국 업체의 요청에 응해 캐시(cache) 서버를 설치했다.

캐시 서버는 사용자들이 자주 요청하는 콘텐츠를 사용자와 가까운 위치에 저장해 두는 것이다. 이 경우 굳이 해외에 위치한 메인 서버까지 가지 않고 국내 캐시 서버에서 처리할 수 있다.

이 경우 사용자 입장에선 한국과 외국간 데이터 전송량이 줄어들어 속도도 빨라진다. 국내 통신업체는 자사 사용자들에게 서비스 품질을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외국 통신업체와 트래픽 정산 비용도 줄일 수 있어 효과적이다. 

단적으로 국내 통신 사업자들은 캐시 서버를 국내 인터넷데이터센터(IDC)에 두고 있다. 예컨대 유튜브를 활용하는 국내 통신 사업자들이 국내 캐시서버를 이용하는 대신 유튜브의 메인서버를 이용하지 않는 다는 얘기다. 이럴 경우 유튜브는 국내 통신업체로부터 네트워크 비용을 받지 않았다. 받을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국내 통신 사업자들은 값비싼 국제구간 중계접속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 결국 유튜브나 페이스북 등 글로벌 CP사의 캐시 서버를 국내에 설치하지 않으면 국내 통신업체가 더 큰 손해를 보는 구조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캐시 서버를 두지 않을 경우 비용 부담이 더 늘어날 뿐만 아니라 접속 속도 저하 등으로 국내 사용자들의 불만이 커지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페이스북과 행정처분 관련 소송에서 패소한 방통위는 21일 즉각적인 항소 의사를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21일 페이스북과 행정처분 관련 소송에서 패소한 방통위는 이날 즉각적인 항소 의사를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당장 망 사용료 협상에 영향은 없다지만…칼 가는 방통위

이번 선고가 통신업계와 CP들의 망 사용료 책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2016년 페이스북으로부터 망 사용료를 받기 시작하다 지난해 7월 계약이 만료된 뒤 현재 재협상 중인 KT의 입장은 어떨까. 재협상 기간 동안 서비스는 종전 계약 기준으로 갱신된다. 

함영진 KT 차장은 "이번 판결은 방통위의 행정처분에 국한된 내용"이라면서 "개별 기업별로 필요에 따라 CP 업체들과 협상을 이어갈 것으로 보이며 이후 협상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유튜브나 페이스북 등 글로벌 CP 업체에 대한 서비스로 국내 통신업체의 트래픽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외국에 서버를 뒀다는 이유로 국내 사용자를 볼모로 한 망 중립성 원칙 위반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방통위는 패소 이후 즉각 입장문을 내고 항소의 뜻을 밝혔다. 방통위는 "막대한 트래픽을 발생시키는 글로벌 콘텐츠 제공사업자인 페이스북이 정당한 사유 없이 접속경로를 대역 폭이 좁고 속도가 느린 해외구간으로 변경해 서비스 접속지연, 동영상재생 장애 등 국내 이용자들에게 피해를 발생시켰다고 판단해 행정처분을 내렸다"면서 "이번 소송은 접속경로 변경에 따른 이용자 이익 침해 여부를 다툰 것으로, 글로벌 IT 업체의 망 이용 대가에 관한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 방통위는 글로벌 콘텐츠 제공사업자의 불공정 행위와 이용자이익 침해 행위에 대해서 국내사업자와 동등하게 규제를 집행하는 등 국내외 사업자간 역차별 해소를 위해 노력 할 것"이라면서 "판결문 등을 참조해 제도적인 미비점은 없었는지 점검하고 이용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제도 개선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페이스북은 재판 직후 공식입장을 내고 "서울행정법원의 결정을 환영한다"며 "한국 이용자 보호를 위한 노력을 꾸준히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프랑스 정부는 2017년 동영상 공유사이트 유튜브 등 동영상 게재 사이트에 대해 과세하는 이른바 '유튜브세'를 발표했다. 사진=연합뉴스
프랑스 정부는 2017년 동영상 공유사이트 유튜브 등 동영상 게재 사이트에 대해 과세하는 이른바 '유튜브세'를 발표했다. 사진=연합뉴스

◆고심에 빠진 방통위 "페이스북 품질개선 가이드라인 필요"

이번 선고로 페이스북이나 구글, 넷플릭스 등 글로벌 CP는 물론 네이버와 카카오와 같은 대형 국내 CP들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서비스 품질 의무를 강제하려했던 방통위의 '망 이용 가이드라인'이 곤경에 빠질 처지다. 그동안 페이스북을 비롯한 CP들은 '망 계약 가이드라인'으로 품질 의무를 강제하려는 시도가 지나치다며 반발해 왔다. 

인터넷기업협회(이하 인기협)는 12일 성명을 내고 "기간통신사업자인 통신사들의 매출 확대 기반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며 "인터넷 산업의 진입장벽을 만들어 인터넷 생태계를 무터뜨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인기협에는 네이버, 카카오, 페이스북코리아, 구글코리아 등이 회원사로 속해있다.

그럼에도 방통위는 '망 이용 가이드라인' 강행을 고수하고 있다. 페이스북의 임의 접속경로 변경과 아마존웹서비스(AWS) 사고로 국내 유명 암호화폐 거래소의 접속이 끊겼던 전례를 감안해 일정 규모 이상의 CP들에게 품질 의무를 강제, 이용자 보호를 위한 길을 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가이드라인에는 국내외 CP와 통신사간 망 이용 계약을 체결할 때 '정당한 이유 없이 협상을 거부할 수 없다'는 조항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방통위와 과기정통부가 제정 중인 망 이용 가이드 초안에는 '통신사가 망 사용료 계약 협상을 이메일, 공문 등으로 요청하면 상대방은 3회 안에 반드시 응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또 CP에게 적정 용량의 전용회선 등 망 증설과 관리비용 부담을 의무화하고 접속장애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하는 조항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인기협 관계자는 "정부가 민간기업간 계약에 과도하게 개입, 강제하는 등 위헌적 요소가 많다"면서 "행정집행력이 크게 미치지 못하는 글로벌 CP들은 손 못대고 국내 CP들만 불러댈 것"이라고 우려했다. 

반면 방통위는 페이스북의 접속경로 임의 변경으로 이용자 피해가 발생한 만큼 책임을 묻고 공정하게 사용대가를 내도록 하기 위해선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단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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