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이야기] 역사는 쳇바퀴처럼 굴러간다지만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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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이야기] 역사는 쳇바퀴처럼 굴러간다지만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 강대호 북칼럼니스트
  • 승인 2019.08.16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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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전후사의 인식’과 ‘반민특위의 역사적 의미를 다시 묻는다’를 읽고
1949년에 없어진 반민특위를 2019년에 다시 떠올린 까닭
단재 신채호 선생 며느리 "일본보다 친일파가 더 문제"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반민특위의 역사적의미를 다시묻는다' .한길사 펴냄​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반민특위의 역사적의미를 다시묻는다' .한길사 펴냄​

[오피니언뉴스=강대호 북칼럼니스트] 8월 15일 아침에 이 글을 쓰고 있다. 예년의 광복절은 한여름에 주어진 보너스 같은 휴일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올해는 8.15가 갖는 의미를 조금이나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믿고 있는 사실들을, 진실로 밝혀진 일들을 부정하는 사람들 덕분이다.

일본은, 일본 사람들은 그렇게 배우면서 자라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바다 건너에서 그런 말들이 들려오면 화가 난다. 화가 나긴 하지만 마음이 아프다거나 상처받지는 않는다.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곳도 아닌 한국에서, 일본의 왜곡된 주장에 동조하는 한국인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되는 요즘이다. 비록 일부라고 하지만 한국인이 한국어로 그런 말을 할 때는 당혹스럽다. 당혹스럽다가도 화가 난다. 화가 나다가도 가슴에 구멍이 뚫린 듯한 아픔도 느낀다.

오늘날 그런 현상이 나타나게 된 배경을 따라 올라가 본다. 1945년에 한국이 한국인의 힘이 아닌 외부의 힘으로 해방되었기 때문이라고, 한국인의 뜻이 아닌 연합군에 의해 한반도가 갈라졌기 때문이라고, 미 군정이 일본 압제 시절의 인적 자원을 그대로 활용했기 때문이라고 여러 사료는 분석한다.

또한, 그와 같은 여건들을 바로 잡을 수 있었던 이승만 정권의 그릇된 정치적 선택, 친일파들의 기득권을 그대로 둔 것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사료들은 지적한다. 그 모든 게 버무려진 현상을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거다.

그런 면에서 어느 정치인이 “해방 뒤 반민특위로 인해 국민이 분열됐다”라고 한 발언은 어느 정도 맞는 구석이 있다. 반민특위가 와해 되어 식민지 통치에 도구로 쓰인 세력들이 계속 남한에서 주류로 살아남았기 때문에, 그들이 정치인으로, 관료로, 학자로, 그리고 경제인으로 또 군인으로 우리나라를 장악했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분열된 거니까. 그래서 친일파의 후예들, 오늘날 속속 드러나는 신친일파들과 같은 하늘 아래에 있는 게 부끄러운 국민이 있는 거다.

 

해직언론인과 진보학자들이 펴낸 '해방전후사의 인식'

해방 이후 한반도에서 벌어진 정치적 사회적 현상과 남한에서 주류로 자리 잡은 세력들의 원류를 분석한 책이 있다. 한국 근대사를 식민사관이 아닌 자주적 시각으로 분석했다는, 진보적 역사관으로는 처음 출판되었다는 평을 받는 책이다. 하지만 책이 처음 나온 40년 전에는 위험한 내용을 다뤘다며 금서로 묶였던 책이었다. 80년대와 90년대에 청년으로 살았던 사람들은 제목을 들어보았을 ‘해방전후사의 인식’이다.

이 책은 1979년 10월에 출간되었다. 해방된 지 약 35년 후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 흘렀지만, 70년대 말에도 한반도는 여전히 역사의 질곡을 짊어지고 있었다. 그런 “역사를 바로 돌아보며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 해직 언론인들과 진보학자들이 함께 펴낸 책이다.

 

“1945년 8월 15일의 해방을 전후한 한 시기는 오늘 우리들에게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민족의 오랜 식민 통치에서 해방이 되었건만, 온 민족이 벅찬 환희와 감격으로 받아들이던 이 해방은 그러나 어느새 민족과 국토의 분단이라는 비극을 온 민족에 강요하는 상황이 또한 8월 15일 그날에 전개되기 시작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내면서 중)

 

해방은 분명 역사의 질곡을 풀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도 있었지만, 해방 전후부터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생긴 역사의 변곡점들 때문에 꼬이기 시작했다는 해석을 펼친다. 그래서 이 책은 위험한 책이었다. 700 페이지 가까운 책이라 가방에 넣어 다니기에도 무거웠지만, 검문에 걸리면 곤란했기 때문이었다. 금서 목록에서 풀린 80년대 중반이지만 이 책을 읽는다는 것 자체로 운동권으로 의심받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집에서, 내 방에서 문을 꼭 닫고 읽었던 기억이 난다. 혹시 가족이 보고 걱정할까 봐 책꽂이 구석에다, 다른 책 뒤편에다 숨겨두고 읽었다. 그만큼 가슴 쫄깃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당시에 금기시되던 ‘자주’와 ‘민중’ 그리고 ‘투쟁’이라는 단어가 보란 듯이 계속 나와서 가슴이 쿵쾅대던 기억도 난다.

그만큼 새롭고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첫 장부터 그랬다. 훗날 한겨레신문 대표가 되는 송건호가 쓴 논문 ‘해방의 민족사적 인식’은 내가 알고 있던 남한의 근대사 상식을 뒤흔들었다. 해방됐음에도 일본에 부역한 관료들, 경찰들, 군인들, 경제인들이 그대로 남한의 주류로 자리 잡게 된 배경을 풀어놓은 글이었다.

 

서울 중구의 국민은행 본점 주차장 입구에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본부가 있던 자리임을 기념해 민족문제연구소가 지난 1999년 세운 표석이 자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 중구의 국민은행 본점 주차장 입구에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본부가 있던 자리임을 기념해 민족문제연구소가 지난 1999년 세운 표석이 자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책이 나온 1979년 즈음에도 한국을 움직이는 세력이 그 친일 부역자들의 후예라고 밝히고 있었다. 그렇게 된 결정적인 순간을 이승만과 친일 세력이 반민특위를 무너뜨린 그 시점으로 보았다.

 

“이승만이 친일 세력 쪽으로 기울어진 것은 그의 정치적 체질이 그것을 요구한 것... (중략) 이승만이 자기의 정치 기반으로서 친일 세력을 감싸고 나선 것은 그 후의 민족 운명과 대한민국의 성격과 진로와 통일 문제 등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보아야 한다.” (‘해방전후사의 인식 32쪽)

 

고등학교 시절 국사 교과서에 단 한 문장으로 표현되었던 ‘반민특위’를 ‘해방전후사의 인식’에서는 자세히 설명했다. 700페이지 가까운 책에서 약 100페이지를 할애했다. 하지만 ‘반민특위의 활동과 와해’라는 논문 제목은 그 과정이 만만치 않았음을 보여준다.

 

“반민특위는 약 1년 동안 682건의 반민 사건을 취급했으나 이승만의 정략적인 견제와 친일 세력들의 끈덕진 방해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에게 분쇄되는 운명을 맞음으로써 민족적 과업은 수포로 끝나고 말았으며 이승만의 장기 독재까지도 가능케 했다는 평을 남기고 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 128쪽)

 

이승만의 장기 독재는 쿠데타로 들어선 군사 정권의 장기 독재로 이어졌다. 책이 나온 얼마 후에도 쿠데타는 벌어졌고 군사 정권은 계속 이어졌다. 끊어 버릴 수 있었던 일제 부역자들을 계속 등용한 결과가 아닐까.

 

"친일파는 역사적으로 정치적으로 소멸되어야 할 세력의 실명(實名)"

2019년 6월, ‘해방전후사의 인식’이 나온 지 40주년을 기념해서 책이 나왔다. ‘반민특위의 역사적 의미를 다시 묻는다’이다. 여러 주제 중에서도 반민특위를, 정확히는 친일파를 선택한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다. 오늘날 한국에서 한국인의 입으로 내뱉는 친일 발언이 많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그래서인지 책에서 친일파에 대한 정의(定意)를 명쾌하게 외친다. 그 정의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고.

 

“친일파는 그저 단지 일본과 친한 이들이 아니라, 일제의 흉포한 식민 통치에 부역하고 민족을 배반한 자들이다. (중략) 일제 식민지 시대의 친일행위자들만이 아니라, 이들을 옹호하고 이들이 만들어놓은 기득권을 고스란히 쥐고 지금도 그 반역의 역사를 이어나가려는 자들은 모두 다 ‘친일파’다. ‘친일파’는 따라서 ‘역사적 개념’이며 ‘정치적 개념’이자 역사적으로 정치적으로 소멸되어야 할 세력의 실명(實名)이다.” (‘반민특위의 역사적 의미를 다시 묻는다’ 22쪽)

 

‘반민특위의 역사적 의미를 다시 묻는다’는 40년 전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출판한 당시의 에피소드도 소개한다. 책을 낸 열흘 후 10.26이 벌어졌고, 계엄령이 선포됐고, 출판사 사장은 무장 군인이 주둔한 문화공보부로 호출되었다고. 당시 문화공보부(현재는 문화체육부) 출판 담당 과장이 출판사 사장에게 이렇게 호통쳤다고 한다.

 

“친일행위 좀 했다고 왜 야단이냐! 친일한 거를 지금 들춰내어 뭐 하겠다는 거야!” (‘반민특위의 역사적 의미를 다시 묻는다’ 233쪽)

 

어디서 들어본 거 같지 않은가. 30년 전 어느 관료가 내뱉은 말이지만 요즘도 자주 들리는 말이다. 친일을 부끄럼 없이, 당연하다는 듯이, 그게 무슨 문제냐는 듯이 얘기하는 오늘날 그 사람들 말이다.

 

일본 불매운동과 함께 애국 마케팅도 활발하다. 모나미 프리미엄 볼펜 ‘153 무궁화’ .사진=11번가
일본 불매운동과 함께 애국 마케팅도 활발하다. 모나미 프리미엄 볼펜 ‘153 무궁화’ .사진=11번가

 

이번에 책을 다시 읽으려고 도서관에서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검색했다. 그 목록 아래에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라는 책도 함께 뜨는 거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이 가진 “좌로 치우친 역사관이 아닌 균형감 있는 역사관을 보여 준다”고 책 소개에 쓰여 있는 거다. 저자들 이름을 보니 어느 장관 후보자가 “구역질 난다”던 책을 쓴 사람도 있었다.

얼마 전 서점에서 구역질 난다던 그 책 목차를 본 적이 있다. 목차조차도 제대로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불편했다. 그런데 그 내용에 동조하는 한국인이 많다고 들었다. 일부는 자신이 독립유공자의 후예라 주장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친일파의 후예라는 말에 치욕을 느낀다고.

피를 나눠 받아야만 후예일까. 어쩌면 그 영혼에 빙의되고 그 정신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친일파의 후예가 아닐까. 70년 전 잘못된 정치적 선택으로 살아남은 친일파들과 그 후예들이 나라를 다시 일본에 내놓자고 한다. 1949년에 없어진 반민특위를 2019년에 다시 꺼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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