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곤 칼럼] 시마 코사쿠, 하츠시바와 섬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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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곤 칼럼] 시마 코사쿠, 하츠시바와 섬상 이야기
  • 윤태곤 정치분석가(의제와 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
  • 승인 2019.08.16 1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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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인기만화 '시마 과장', 30여년 연재동안 일본경제 흥망 그려
거품경제 붕괴 90년대 후반부터 한국기업 '견제' 노골적 묘사
일본 IT기업들, 한국의 삼성 LG의 압도적 경쟁력에 굴복하는 모습

 

윤태곤 정치분석가
윤태곤 정치분석가

[윤태곤 정치분석가] 시마 코사쿠. 1983년부터 지금 현재까지 연재되고 있는 일본 만화의 주인공이다. 하츠시바 전산의 시마 과장으로 시작한 이 만화는 현재 하츠시바 홀딩스의 시마 회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시마 코사쿠와 하츠시바는 일본의 상징 같은 존재다. 작중 시마는 1949년 생으로 와세다 대학을 졸업해 평생 한 직장에 몸을 담고 있는 단카이 세대의 일원이고 하츠시바는 일본 굴지의 전자회사 파나소닉을 모델로 한 기업이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회사원 시마 코사쿠

시마가 어떤 존재인지는 지난 2008년 4월 1일 아사히 신문의 특종 기사가 잘 나타내고 있다. 아사히는 시마 코사쿠가 인수합병으로 다시 태어난 초대형 기업 하츠시바고요 지주회사의 초대 사장으로 취임한다고 단독 보도했다.

다음 날 <마이니치> <요미우리> <니혼게이자이> 등이 추적 보도에 나섰다. 다음 달에는 ‘시마 사장 취임 기념 기자회견’이 열렸고 그 다음 달에는 주간 <아사히>가 당시 유력 총리 후보였던 아소 다로 현 부총리와 시마 코사쿠의 특별 대담을 실었다. 그 직후 아소 다로는 총리 자리에 올랐다.

시마 사장과 아소 다로 당시 총리간 가상인터뷰를 실은 주간 '아사히' 표지.
시마 사장과 아소 다로 총리와의 대담을 실은 주간 '아사히'의 표지.

시마 과장에서부터 시작해 부장, 이사, 상무, 전무, 사장, 회장에 이르기까지 36년 동안 일본 현대사와 기업의 흥망성쇠를 훑으며 진행되고 있는 이 만화에선 한국과 한국 기업을 다루는 내용이 적지 않다. 아니 적지 않은 정도가 아니다. 시마 이사부터는 거의 숙적으로 자리잡고 있다.

시마 이사 "섬상의 음모를 막아라"

연재 초중반 그러니까 과장에서 부장 초반까지는 한국을 거의 안 다룬다. 봉제 곰인형 만드는 나라, 노사분규가 많은 나라 정도로 언급된다.

시마도 뉴욕에서 회사의 엔터테인먼트 진출이나 와인 수입 등의 일을 진행한다. 말하자면 일본 거품경제가 한창인 시절. 하지만 거품경제가 붕괴하기 시작하는 90년대 후반 정도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누가 봐도 삼성을 모델로 한 것이 분명한 '섬상(SUMSANG)', 엘지를 모델로 한 것이 분명한 'PG(LG)'가 주요하게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 이전까진 하츠시바의 경쟁 상대는 자국의 소니를 모델로 한 일본 기업 솔라전기나 미국 회사였지만 스토리가 달라진다.

특히 '섬상'에 대한 묘사는 상당히 흥미롭다. 시마가 이사 시절부터 전무를 지낼 때까지 주 활동이 ‘섬상’의 음모를 막는 것일 정도다. 섬상은 인재 빼가기, 물량공세, 스파이 활동, 미인계 등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일본 회사를 꺾고 사세를 확장하는 회사로 나온다.

시마가 고군분투하고 '섬상'이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하는 일본 전자회사 고요전기를 지켜내 하츠시바와 합병시킨다. 그 공으로 2008년 하츠시바홀딩스의 초대 사장에 등극한 것.

이 스토리는 현실에 부합한다. 파나소닉은 주력 사업인 TV, 가전 부문에서 한국기업에 밀려 경쟁력을 상실했다. LCD TV는 삼성전자와 LG전자에 밀려 철수했고 PDP TV는 팔리지 않았다. 그 돌파구로 산요를 인수합병한 것과 만화의 스토리가 완전 부합한다.

합병 법인 출범 당시 시마는 일본 전자 업계 전체가 힘을 모아 '섬상'에 대항해야 한다고 선언할 정도다.

시마 만화에 등장하는 한국인 이갑수와 간명박

여기서 흥미로운  한국인 캐릭터 두 명이 등장한다. 먼저 섬상전자의 COO 이갑수.

이학수 삼성전자 전 부회장에서 모티브를 따온 인물로 보인다. 그런데 작중 이학수는 어릴 적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인들의 차별로 인해 고통을 겪은 인물로 나온다. 반일 감정이 매우 강한 민족주의자로 일본 대기업을 무찌르는 것을 필생의 업으로 여기는 인물이다. 일본을 꺾기 위해서라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한국 대통령 간명박. 이명박 전 대통령을 모델로 한 인물이다.

이 작품 속에서 간명박과 이갑수가 독대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갑수는 하츠시바홀딩스의 바뀐 사명인 TECOT가 2차 전지 사업을 새로운 주력으로 삼고 있은 사실을 언급하면서 “저희 조준은 지금 TECOT에 맞춰있습니다. 우리 '섬상'은 그 어떤 분야에서도 세계 점유율 No.1을 지향한다는 것이 명제입니다. 반드시 No.1을 쟁취하고 말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간명박은 “그래요. 우리 정부도 귀하의 회사를 전면적으로 서포트할 태세를 갖추고 있소”라고 화답한다.

이 대화는 “일본은 지금 공급자 측에서 야박한 정책을 펼치고 있어 기업이 약체화되고 있지.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차후 10년 안에 우리 손으로 일본을 불탄 황무지로 만듭시다”는 간명박 대통령의 발언으로 마무리 된다.

그리고 만화 속에서 간명박과 한국 정부는 국정원 동원, 환율 조작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 일본 기업을 방해하고 '섬상'과 'PG' 등을 후원한다.

그 이후는? 현실과 만화가 부합한다. 파나소닉과 산요의 합병은 완전히 실패했다. 2차 전지 분야에서는 버티고 있지만 전자분야에서 참패를 거듭했다.

“섬상을 배우자”고 외치던 시마 코사쿠는 2012년 12월에 “올해 6800억 엔(약 8조원)의 적자는 모두 제 책임”이라며 “엎드려 사죄드리며 사장직을 그만두겠다”고 용퇴를 선언한다. 그 회사들은 이제 '섬상'의 경쟁상대도 못 되고 있다.

인기 기업만화 '시마과장'의 주인공 시마 코사쿠. 작가 히로카네 켄시가 그린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과장에서 시작해 회장직까지 올랐다.
인기 기업만화 '시마과장'의 주인공 시마 코사쿠. 작가 히로카네 켄시가 그린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과장에서 시작해 회장직까지 올랐다.

일본 경쟁자로 도약한 한국, 그 30년의 기록이기도

만화는 만화일 뿐이다 이 만화에서 그리는 한국과 한국 기업은 실제와 닮기도 했지만 다른 점도 많다. 일본이 두려워하고 또 싫어하는 면모를 중첩시켜놓은 이미지다.

하지만 일본 보수, 주류 진영이 한국 정부와 한국 기업의 어떤 점을 두려워했는지, 그걸 알면서도 계속 밀려가는 자신들의 모습에 얼마나 자괴감을 느꼈는지는 잘 알 수 있다.

그걸 뒤집으면? 일본이 두려워하는 그 모습이 우리의 경쟁력일 거다. 시마 코사쿠와 하츠시바가 신경도 쓰지 않던 삼류기업이 경쟁자로 도약해서 완전히 압도해버리는 삼십년.

말그대로 영욕이 켜켜이 쌓인 세월. 그 자체가 우리의 부채이자 경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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