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NOW] 잇단 총기 사고, 트럼프 재선 발목 잡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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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NOW] 잇단 총기 사고, 트럼프 재선 발목 잡나?
  • 권영일 애틀랜타 통신원
  • 승인 2019.08.16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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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인종주의, 증오’ 규탄, 총기규제엔 침묵
권영일 애틀랜타 통신원.
권영일 애틀랜타 통신원.

[오피니언뉴스=권영일 애틀랜타 통신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선 가도에 경고 주의보가 울리고 있다.

올 들어 외교, 경제, 사회 등 전방위에서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질주하던 그가 ‘총기 규제’라는 암초를 만난 것이다.

그는 지난 4월 대선 출마선언 이후 마치 샌드백을 치듯이 민주당을 향해 날카로운 잽을 연속으로 날렸다. 불법 이민자 추방 강행은 물론, 민주당 하원의원을 향한 인종차별성 발언 등을 거침없이 쏟아내며 지지층 결집에 나섰다.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은 성공하는 듯 보였다. 중국과의 무역전쟁은 민주당은 물론 국민들로 부터 광범위한 지지를 획득하고 있다. 최근 미국 경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으나, 이는 미래에 대한 경고일 뿐 '발등에 떨어진 불'은 아니다.

게다가 미의회의 탄핵부결, 러시아 특검 무산 등 자신을 향한 민주당의 집요한 공격을 잘 피하며 요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갈수록 강력해지는 반이민정책도 재선에 큰 걸림돌은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잘 나가던 그의 행보에 발목을 잡은 것은 다름아닌 최근 잇달아 발생한 총기 사건이다.

미국 텍사스주 국경도시 엘패소에서 지난 3일(현지시간)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 직전 총을 든 남자가 대형 쇼핑단지 내 월마트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CCTV에 포착됐다. 이날 이 곳 월마트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으로, 20명이 숨지고 26명이 다쳤으며 경찰은 현장에서 21세 백인 남성 패트릭 크루시어스를 용의자로 체포했다. 사진=연합뉴스/AFP.
미국 텍사스주 국경도시 엘파소에서 지난 3일(현지시간)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 직전 총을 든 남자가 대형 쇼핑단지 내 월마트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CCTV에 포착됐다. 이날 이 곳 월마트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으로, 20명이 숨지고 26명이 다쳤으며 경찰은 현장에서 21세 백인 남성 패트릭 크루시어스를 용의자로 체포했다. 사진=연합뉴스/AFP.

‘증오범죄’ 가능성, 트럼프 인종 분열주의 책임론

‘백투스쿨(Back-to-School)’ 시즌인 8월 첫 주말 하루사이에 미국 텍사스와 오하이오에서 두 건의 대규모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져 30명이나 숨지고 50명 이상 다쳤다.

텍사스 엘파소에서의 총기난사는 특히 히스패닉 등 반이민 인종증오 범죄일 가능성이 지목되고 있어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인종주의, 분열적인 언사가 집중 성토 당하고 있다

일요일인 지난 4일(현지시간) 새벽 1시쯤, 오하이오주 데이턴시의 유흥가에서 무차별로 총기가 난사됐다

1분 정도의 짧은 순간에 무고한 9명의 시민이 숨졌다. 총을 쏜 용의자는 순찰 중이던 경찰에 사살 됐고, 경찰관도 27명이 부상당했다.

불과 13시간 앞선 토요일인 3일 오전 10시쯤 텍사스주 접경도시인 엘파소 쇼핑몰에서도 한 남성이 총기를 난사해 20명이나 숨지고 26명이 부상당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와 관련, 여러 건의 트위터를 통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유가족들을 위로하며 백악관을 포함한 관공서에 조기 게양을 지시하고 “형언할 수 없는 사악한 행동”이라고 개탄했다.

정치권에서는 그러나 즉각 트럼프 대통령이 반이민, 인종주의 레토릭으로 분열적인 언사를 해왔기 때문에 이번 비극을 불러왔다는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워싱턴 정치권과 대선 레이스에서 총기 규제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획기적인 규제강화조치가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국민 연설을 통해 인종주의와 편견, 백인 우월주의, 증오를 강력히 규탄했으나, 핵심 해법의 하나로 꼽히는 총기규제 강화에 대해선 침묵으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그는 대신에 소셜미디어를 통한 총기 폭력 위험을 사전에 포착하고 정신병력자에 대한 법률을 개정해 총기 구입을 금지시키면서 폭력게임도 규제키로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트윗을 통해선 총기규제 강화를 지지하는 것으로 밝혔다가 수시간만에 백악관 대국민 연설에서는 제외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진영은 트럼프 대통령이 총기로비와 총기협회(NRA)의 포로가 돼 있다고 강력히 성토하고 나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지난 3일과 4일(현지시간) 텍사스와 오하이오 주에서 잇따라 발생한 대형총기 사건이후 향후 대책에 대해 보고를 받고 있다. 총기규제는 트럼프 대통령 재선가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사진=백악관 홈페이지 캡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지난 3일과 4일(현지시간) 텍사스와 오하이오 주에서 잇따라 발생한 대형총기 사건이후 향후 대책에 대해 보고를 받고 있다. 총기규제는 트럼프 대통령 재선가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사진=백악관 홈페이지 캡쳐.

민주당 “트럼프는 NRA 포로”

민주당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 척 슈머 상원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이 총기폭력사태를 말할 때, 총기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총기로비와 총기협회(NRA)에게 붙잡혀 있는 포로인 게 분명하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하원은 총기 규제를 강화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모든 총기 구입자들에 대해 신원조회를 실시하는 유니버설 백그라운드 체크(Universal background check) 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공화당이 장악한 상원이 발목을 잡고 있다.

미국 정치는 철저히 이권단체들을 대변하는 로비스트들에 의해 움직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와 관련, NRA의 로비력은 막강하다.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도 그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 대선에서 NRA로 부터 3000만 달러 상당의 정치 자금을 받았다.

미국 텍사스 엘패소에서 지난 3일 발생한 총기난사로 인해 사망한 이들을 추모하는 시민들이 애도의 마음을 모아 갖다 놓은 조화가 사건현장에 수북히 쌓여있다. 사진=연합뉴스/AP.
미국 텍사스 엘파소에서 지난 3일 발생한 총기난사로 인해 사망한 이들을 추모하는 시민들이 애도의 마음을 모아 갖다 놓은 조화가 사건현장에 수북히 쌓여있다. 사진=연합뉴스/AP.

이에 따라 그동안 총기참사가 벌어질 때마다 워싱턴 정치권의 규탄과 총기규제 호소는 공허한 메아리로만 묻혀 왔다. 잘해야 무늬만 총기규제다. 일부에선 이번에도 총기규제는 먼길이 될 것으로 보는 시각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계속되는 대형 총기 참사로 점점 확실하게 총기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미국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과연 트럼프 대통령이 내놓은 미온적인 총기 규제 대안에 얼마나 많은 유권자들이 만족할 지는 아직 미지수다.

어떤 이슈가 발생했을 때, 미국인들은 적극 나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대다수는 침묵하며 조용히 사태를 주시한다. 하지만 결코 잊지 않고 있다가 자신의 의견을 단호하게 선거 당일 투표에 반영한다. 이것이 미국 정치인들이 유권자들을 두려워하는 이유다.

트럼프측은 사태수습을 위해 민주당과 총기규제법안과 관련해 물밑 접촉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백악관에선 트럼프의 딸인 이방카 보좌관이 총대를 맨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대선 후보들이 이구동성으로 주장하고 있는 자동소총 판매 금지와 유니버셜 백 그라운드 체크법안과 관련해 어느 선에서 타협이 이루어질지가 관건이다.

이런 가운데 14일 필라델피아주 북부에선 마약과 관련된 총격범이 경찰관 6명에게 부상을 입히는 사건이 또 발생했다.

이같은 총기비극이 반복된다면 국민들의 인내심은 임계점을 넘어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게 워싱턴 정가의 지배적인 분석이다.

최근 실시된 여론 조사도 이같은 우려를 잘 보여주고 있다. 폭스뉴스가 총기참사 이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만을 표시한 응답자는 56%에 달했다. 이는 지난달보다 5%p 증가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국정능력을 지지한다는 응답자는 지난달보다 3%p 떨어진 43%에 그쳤다. 물론 이는 지난 2017년 10월 여론조사에서 기록한 38%보다는 아직 높은 수치이긴 하다.

장고에 들어간 트럼프 대통령이 난국 타개를 위해 어떤 묘수풀이를 보일지 다음 수가 주목된다.

● 권영일 미국 애틀랜타 통신원은 한국외국어대 불어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에서 광고홍보학을 전공했다. 1985년 언론계에 발을 내딛은 후, 내외경제신문(현 헤럴드경제신문)에서 산업부, 국제부, 정경부, 정보과학부, 사회부 기자를 거쳐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와 현재 애틀랜타에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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