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헬조선'이라는 증오에 답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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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헬조선'이라는 증오에 답해야 할 것인가
  • 하종오 편집인
  • 승인 2015.09.21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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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가장 큰 위협은 '세대 갈등'... 젊은층이 '희망'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헬조선’은 이제 한국사회에서 일반적 용어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듯하다. 지난 15일 국회의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 한 야당 의원은 노동 관련 정책을 비판하며 최경환 부총리에게 “'헬조선', '조선불반도'가 뭔지 아느냐”고 질문했다. 지난 20일에는 개혁적 국민정당을 창당하겠다는 천정배 의원이 기자회견에서 신당이 필요한 이유로 “암울한 현실 앞에 한국 정치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가… 젊은이들은 대한민국을 일컬어 헬조선이다, ‘망한민국'이다라고 자조하고 있다”고 했다.

당초 인터넷 속어로 등장됐던 헬조선은 최근 들어 급속도로 그 사용과 의미 내용이 확산되고 있다. 20~30대 청년층이 한국사회 현실을 비판하며 냉소적이고 혐오스런 의미로 사용하던 것을 넘어서, 언론과 정치권에서도 마치 좋은 소재라도 생긴 듯 스스럼없이 언급되고 있는 것이다.

‘지옥(hell·헬) 같은 한국(조선)’. 듣기 거북할 정도로 경멸적인 표현일 수 있는데, 이런 말의 사용이 급속하게 확산된다는 것은 한국사회가 그것이 가진 의미에 공감한다, 내지는 공감할 수밖에 없다는 현상의 반영일 것이다. 말은 결국 사회적 소산이다.

 

▲ 지난 14일 국회 앞에서 열린 노사정 합의 관련 기자회견에서 '핵불공정한 헬노동시장! 청년은 일하고 싶다'라고 쓴 팻말을 든 청년단체 회원들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위키백과 한국어판에 나와있는 헬조선의 의미는 이렇다. “헬조선은 2010년에 등장한 대한민국의 인터넷 신조어이다. 비슷한 개념을 가진 다른 단어로 ‘지옥불반도’라는 단어도 사용된다. 또한 기성세대가 청년세대에 하는 조언이나 충고 등을 비꼬는 ‘노오력’이라는 단어도 사용한다... 청년실업 문제와 세월호 사고 등으로 인한 정부의 실패, 경제적 불평등이나 과다한 노동시간의 문제, 또는 일상 생활에서의 불합리함 등에 사용되었다. 이후 트위터 등을 통해 언급량이 늘어 2015년 9월에 빠르게 확산되었다.”

헬조선과 관련된 신조어도 많다. 먼저 헬조선 자체가 '역전앞'이나 '돼지족발'처럼 말이 안 된다는 우스개 아닌 우스개가 있다. ‘조선이 원래 지옥인데, 헬조선은 같은 말을 두 번 썼으니 말이 안 된다’는, 이중적 경멸이다. 한 포털 사이트 게시판을 보면 이밖에 ‘탈조선’은 조선을 벗어나 국적을 포기하고 이민을 가야 한다는 의미고, ‘국뽕’은 국(한국)과 뽕(마약)을 합친 말로 ‘대한민국이 최고야!라고 자위하는 미친놈들’을 비꼬는 말이다. 이 게시판 글을 올린 네티즌은 이런 말들의 의미를 설명해 놓고는 끝에 “PS: 조선어 사용해서 죄송합니다”라고 써놓았다.

디시인사이드에는 한국이 헬조선인 이유를 하나씩 꼽은 네티즌들의 글이 올라와 번호를 매겨 정리되고 있다.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면 빨갱이, 패배자가 되는 국가’, ‘젊은이들이 아프면 청춘이 되는 국가’(몇 년 전 베스트셀러가 됐던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생각해보라),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욕심 부리면 안되는 국가’, ‘열쩡과 노오력 두 단어로 모든 사회 문제가 해결되는 국가’, ‘사회가 잘못돼서 취업을 못해도 개개인의 노오력이 부족해서 취업이 안되는 거라 말하는 국가’, ‘나이가 벼슬인 국가’, ‘답이 없는 국가’, ‘탈출만이 답인 국가’ 등등.

또 하나 헬조선과 더불어 유행하고 있는 것이 ‘흙수저’라는 말이다. 부와 권력의 세습을 의미하는 금수저나 은수저 혹은 더 나은 백금수저 못 물고 태어나면 한국사회에서 아무리 노력해봤자 계층 이동을 할 수 없다는 암울한 현실 인식을 빗댄 말이다.

 

▲ 젊은층에서 유행하고 있다는 '흙수저 빙고 게임'. 금수저 혹은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못했음을 나타내는 실례들이 나와 있고, 그것들 중에 선택해서 5개가 한 줄로 연결되면 그 사람은 '흙수저'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흙수저는 젊은층이 ‘노력에 의한 성취’라는 동기는 물론 이른바 ‘N포’로 취업, 결혼, 출산, 인간관계마저 포기하게 만드는 한국의 사회구조, 그것을 고착화시키는 가진자와 기성세대에 대한 경멸과 증오를 뭉뚱그린 섬뜩한 말이다. 여기에 논리적 반박이나 감성적 호소는 통할 틈이 없다. 이런 말들이 큰 거부감 없이 급속하고도 광범위하게 퍼진다는 것은 한국사회가 젊은층의 이 바닥없는 혐오감을 부정하지도 못한다는 의미다.

지금 한국에 이념이나 다른 무엇에 의한 갈등보다 더 위협적인 요인은 세대 갈등이다. 그것은 희망과 절망의 싸움이라고 할 수도 있다. 젊은층이 헬조선에 절망해 탈조선을 꿈꾸는 나라에서, 그들에게 말로만 희망을 가지고 노오력하라고 외치는 ‘국뽕’들만 남아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이 갈등의 해결 방법을 치밀하게 찾고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곧 한국사회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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