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원 칼럼] 일본과의 싸움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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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원 칼럼] 일본과의 싸움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
  • 최석원 SK증권 리서치센터장
  • 승인 2019.08.14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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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원 SK증권 리서치센터장] 일본의 무역 규제가 시작된 지 한달 반이 흐르고 있다. 우리의 반응도 초기의 분노에서 조금씩 냉정을 되찾는 대응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한 것처럼 우리도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했지만, 정부에서도 이제는 감정적이 아닌 냉정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유튜브와 언론에서는 ‘쫄지 말자. 한국 반도체 위상을 생각하면 시간이 갈수록 우리가 더 유리하다’, ‘일본은 정부 부채 때문에 곧 망한다’, ‘생각이 짧은 아베가 자충수를 둔 것이다’ 등 일부 전문가의 애국적 의견이 인기를 얻고 있고, 다른 시각들에 대해서는 친일 낙인을 찍는 감정적인 분위기가 압도적으로 크게 느껴진다.

심지어 최근 일본의 EUV용 포토레지스트 수출 허가 이후에는 이미 일본과의 싸움에서 승리했고, 일본은 퇴각할 명분을 찾고 있다는 자축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아베의 무모한 도발 이유는 여전히 의문

사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일본의 의도는 아직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징용 문제와 관련된 한국 대법원 판정에 대한 보복이라는 해석부터, 통일 한국에 대한 불안감과 일본의 위상 정립,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이 어떤 줄서기를 하고 있는가에 대한 확인이라는 해석까지 다양한 의견이 있다.

경제적으로는 턱밑까지 도달한 한국의 경제력에 대한 불안과 한국의 미래 산업 정책에 대한 훼방, 어려운 자국 경제 환경과 미래 불확실성 때문에 흐려진 아베의 판단 때문이라는 등 여러 해석들이 있다.

아마도 이러한 요인들 가운데 한 가지이거나 몇 가지가 합쳐진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러한 의도라면 지금처럼 우리나라의 감정적인 대응은 당연하다.

필자 역시 일본의 현 정부에 대해 상당한 분노를 느끼고, 우리 반도체 산업의 위상을 생각할 때 두려워할 것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의도에 대한 전문가들의 해석과 한국 내의 감정적 반응(자축을 포함해서)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삼성전자의 이익이 일본 전자기업 10개의 이익보다 배가 넘는 것도, 우리 반도체 기업들이 조만간 소재를 국산화할 수 있고, 일본 대신 미국·유럽으로부터 수입해 반도체 생산 차질은 없을 것이란 주장도, 일본이 정부부채가 많아 한국보다 국제 신용등급이 낮다는 것도 다 알지만, 이런 자신감 때문에 오히려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이다.

일본 아베 정권이 무모한 도발을 일으킨 이유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사진=EPA/연합뉴스

일본은 소재 공급자로서의 이익을 포기하면서 왜 이런 일을 벌였을까, 한국의 흥분은 결국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혹시 이런 사태의 저 끝에 가면 우리는 반도체만 소재부터 조립까지 잘 하는 나라가 되고, 일본은 미국에 이어 4차 산업혁명의 중심 국가가 되는 것이 아닐까?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듯이 일본은 버블 붕괴 이후 디플레이션 압력과 저성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아베노믹스는 한편으로 일본에 활기를 불어 넣었지만, 대규모 정부부채 부담을 야기한 문제가 많은 정책이다.

하지만 일본은 여전히 반도체와 스마트폰을 제외한 매우 많은 기존 산업에서 한국을 압도하고 있는 나라다. 최근 CEO스코어의 조사는 이 같은 사실의 일부를 보여준다.

조사에 따르면 15개 주요 업종의 한국과 일본 상위 3개 기업 매출에서 한국은 반도체와 휴대전화를 제외한 나머지 업종의 매출액이 일본에 뒤지며, 특히 8개 업종에서는 일본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좀 더 확대해서 보면 한국의 삼성전자는 2018년에 일본 10개 전자기업 이익을 합친 것보다 두배의 이익을 기록했지만, TOPIX과 KOSPI 기업 전체를 비교해 보면, TOPIX 기업의 이익이 KOSPI 기업의 이익보다 꾸준하게 4~5배 크고, 올해는 반도체 업황의 부진으로 그 차이가 더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CEO스코어의 조사가 주로 은행, 유통까지 포함한 기존 산업에 대한 것이고, 미래 산업의 총아인 전자 산업에서 우리가 앞서고 있어 우리 경제의 앞날이 더 밝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하지만 2016년 ‘신일본 재흥전략’, ‘과학기술 종합전략 2016’ 등을 보면 일본이 생각하는 미래 주력 산업은 반도체, 가전제품이 아니다.

IoT·빅데이터·AI '4차산업'에 눈돌리는 일본

일본은 현재 강점을 갖는 공장자동화·로봇을 중심으로 IoT, 빅데이터, AI를 통한 혁신에 역점을 두고, 미국의 선진 기업과 제휴해 4차산업혁명 솔루션 산업을 키우려 하고 있다. 소프트웨어를 제외하면 오히려 미국 모델에 가깝다. 

현실은 어떨까? 정밀기계, 로봇에서 일본이 세계 제일의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점은 이미 알려져 있다.

지난달 초 방한한 손정의 회장은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인공지능(AI) 분야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교육, 정책, 투자, 예산 등 인공지능 분야를 집중 육성해야 한다는 견해를 내놨다.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초 방한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인공지능(AI) 분야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교육, 정책, 투자, 예산 등 인공지능 분야를 집중 육성해야 한다는 견해를 내놨다. 사진=연합뉴스

얼마 전 방한해 AI를 강조한 손정의 회장의 소프트뱅크는 비전 펀드를 통해 이미 우버를 비롯한 글로벌 차량 공유업체 대부분을 인수했고, 반도체 설계의 독보적 기업인 ARM도 인수했다. 손정의 회장은 또한 사우디 아라비아의 스마트시티 ‘네옴’ 프로젝트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도요타 자동차는 현재 사용되는 배터리를 대체할 전고체 배터리의 2020년 상용화를 선언한 상태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데이터와 관련해서는 정부의 주도로 대대적인 표준화 작업이 진행되고 있기도 하다. 

항공우주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기억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올해 상반기에 일본의 위성이 소행성에 금속을 충돌시키고, 그 영향을 살펴보는 데 성공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과연 우리의 우주산업 분야가 자체적으로 그 정도의 기술을 가지고 있을까? 전문적인 분야라 필자가 정확하게 판단할 수는 없지만, 전투기 개발 측면에서 일본은 미국에 뒤지나, 한국보다는 앞서 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국가 전체 R&D 비용이 우리를 압도하고, 그 중에서도 우주항공산업에 대한 투자 비중이 일본이 더 높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금융 측면은 어떨까? 일단 한국이 일본의 공격에 불안해 할 필요는 없다. 지속적인 경상수지 흑자를 바탕으로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450조원에 달하고 민간 부문의 순대외채권은 500조원을 넘어섰다.

하지만 일본 역시 1500조원에 달하는 외환보유고와 4000조원에 달하는 민간 부문 순대외채권을 보유하고 있다. 경상수지 역시 여전히 흑자다. 외환보유고 측면에서 일본은 세계 2위, 한국은 9위이고, 민간 부문 순대외채권에서 일본은 압도적인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일본이 공격한다고 한국의 금융시스템이 흔들리지 않겠지만, 국가 단위의 ‘부(富)’를 비교할 때 일본과 우리는 아직 차이가 크다.

만만찮은 상대 일본, 얕봐선 안된다

물론 거시 경제 측면에서 일본은 고령화로 고통받고 있다. 빈집이 늘고 있고, 젊은 세대의 무력감도 크다. 하지만,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우리나라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오히려 우리의 고령화 속도는 일본보다 훨씬 빠르고, 한달에 2만 5000여명에 불과한 최근의 출산 통계는 섬뜩할 정도다. 조만간 인구의 절대 수 자체가 줄어들 가능성이 큰 것이다.

인구가 작다는 것 자체는 큰 부담이 아니나 많았던 인구가 줄면서 젊은 세대의 부양 인구 증가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것은 경제에 엄청난 부담이다. 속도가 빠른 우리가 일본보다 더 크게 걱정해야 할 사안이다.

정부부채 부담이 크다는 점도 고령화와 더불어 일본을 공격하는 포인트다. 분명 일본의 정부부채비율은 세계 1위이고, 이 때문에 일본의 신용등급이 우리나라보다 낮다.

하지만 CDS시장과 외환시장에서 평가는 사뭇 다르다. CDS 프리미엄은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소폭 낮은 수준이다. 또한 글로벌 위험자산가격이 불안할 때 원화는 빠르게 약해지는 반면 엔화 가치는 여전히 상승세인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

저금리 엔화를 이용해 해외 투자된 자금의 되돌림이 나타내는 현상일 수도 있고, 일본이 장기적으로 안전해서라기보다 단기적인 피난처 정도로 생각하는 현상일 수도 있어 별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시각도 있다.

일본 엔화는 미국 달러화, 스위스 프랑화와 함께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인식되고 있는 현실도 잊어선 안된다. 사진=연합뉴스
일본 엔화는 미국 달러화, 스위스 프랑화와 함께 대표적인 글로벌 안전자산으로 인식되고 있는 현실도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사진=연합뉴스

어쨌든 원화가 위험자산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이는 반면, 엔화는 미국 달러, 스위스 프랑 등과 함께 여전히 글로벌 시장에서 안전자산의 지위를 잃지 않고 있다. 

물론 금융위기 이후 유럽 재정위기 당시 불거진 국가 부채 문제 논란에서 일본의 높은 정부부채 비율도 같이 수면 위에 떠오른 적이 있다. 이 시기에는 우리나라 CDS 프리미엄이 일본보다 더 낮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 부채의 대부분을 자국 국민이 보유하고 있다는 점, 일본은행의 대규모 국채 매수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이 높아지지 않고 있다는 점 때문에 우리나라 일부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것과 달리 일본의 정부부채 문제를 임박한 위기와 연결하는 글로벌 전문가들은 많지 않다.

요약하면 이렇다. 일본 경제는 분명 여러 문제를 안고 있고, 한국은 짧은 기간에 일본을 많이 따라잡았으며, 특정 분야에서는 일본을 앞서고 있다.

반도체와 스마트폰이 일본을 압도하고 있고 네이버의 라인은 일본의 메신저 시장을 장악했으며, K-POP의 경쟁력은 J-POP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자긍심을 가져야 하는 부분이다.

자긍심 갖되 경쟁력 더 키워야

하지만,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다양한 현재 산업과 미래 산업에서 여전히 일본은 우리보다 앞서 나가고 있으며, 4차 산업혁명을 계기로 한발 더 앞서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일본이 생각하는 경쟁자는 우리나라가 아니다.

유럽-일본을 거친 조선, 철강업이나 미국-일본을 거친 반도체 산업이 우리를 지나 중국으로 가고 있는 것이 대세라면, 일본의 모델은 결국 첨단 기술과 금융의 압도적 우위를 가진 미국일 수밖에 없다. 또한 일본 경제는 일각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조만간 무너질 구조가 아니다.

이러한 여러 지표와 구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가 이번 일을 계기로 반도체 소재 등에서 국산화에 성공을 하고, 내부적으로 가치 사슬을 만드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국가, 기업도 이 세상에 많지 않다. 이것 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자긍심을 가질 수 있다.

진정한 '극일(克日)'을 위해서는 반도체 스마트폰 외에 다른 산업에서도 일본을 추월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다만 여기에서 그쳐서는 안 되고, 특히 여기에 매몰되어서는 안된다. 우리나라가 진정한 리딩 국가로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반도체와 휴대전화 이외에 첨단 기술에서도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 K-POP 이외에 더 많은 소프트 파워를 키워내야 한다.

역사적 문제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가지고 싸우는 것이 당연하다. 일본은 더 진정성을 갖고 과거의 죄를 인정하고 사죄해야 한다. 또한 국민의 자긍심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인 것도 맞다. 여기에서 적당히 타협하면 일본은 앞으로도 같은 행위를 반복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것은 진정한 극일(克日)이고, 이를 위해서는 싸움과 동시에 차분히 뒤처진 부분을 찾고 실력을 쌓아야 한다. 안타깝지만 때로는 일본의 세계적인 기술을 배우기도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극히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 정부에게 정치적인 이득을 계산하지 말고 국민들의 자긍심을 살리고 실리도 얻는 길을 찾으라고 요구할 수 밖에 없다.

이전 정부와 이번 정부가 강조해 온 창조경제와 혁신경제가 지금까지 달성한 것만으로는 진짜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에, 대규모 손실에도 불구하고 반도체산업을 키울 수 있었던 재벌 시스템에 대한 이중적 시각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에, 그리고 전 국민이 비싼 비용을 감수하며 테스트에 참가해 주력 산업을 키워 왔던 시기와 세상이 달라졌기 때문에 더 그렇다.

 

● 최석원 센터장은 연세대 경제학과 학부와 대학원을 마쳤다. 대우증권 삼성증권 한화증권 등에서 채권분석, 경제분석 파트장을 역임했으며 과거 수차례에 걸쳐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선정됐다. 한화증권에서 리서치센터장을 거친 후 메리츠화재에서 직접 자산운용을 맡기도 했다. 2016년부터 SK증권 리서치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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