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칼럼] 민주공화제를 다시 생각함⑨: 피선거권 연령제한의 반공화적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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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칼럼] 민주공화제를 다시 생각함⑨: 피선거권 연령제한의 반공화적 성격
  •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승인 2019.08.13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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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25세, 대통령 40세이상 피선거권 연령제한 '합리적인가' 의문
헌재 합헌결정...경제활동능력, 병역의무, 교육이수경력 등 이유 들어
특정 연령기준 제한 대신, 선거권자가 직접 능력과 자질 판단하면 될 일
피선거권 연령제한 낮춰야...청소년세대, 미래 문제에 발언하고 결정할 기회줘야
김종철 연세대 교수
김종철 연세대 교수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 글에서 ‘대한민국임시헌장’에서 채택한 민주공화제가 제대로 완성되기 위해서 보통민주화가 필요하고 선거연령도 낮추어야 할 당위를 강조했다. 이번 글은 같은 취지에서 피선거권 연령 문제를 짚어보려고 한다.

매우 높은 수준의 국회의원과 대통령 피선거연령의 문제점

현재 국회의원과 대통령 선거권은 선거일 현재를 기준으로 19세 이상에게 보장되지만, 그 직을 맡을 수 있는 피선자격은 선거연령보다 더 높게 책정되어 있다.

국회의원은 25세 이상, 대통령은 40세 이상이라야 피선거권이 인정된다. 대통령의 경우 헌법 제67조 제4항에서 직접 피선연령을 제한하고 있고, 국회의원의 경우 공직선거법이 정하고 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과 같이 국민을 대표해 국가운영에 핵심적으로 관여하려면 일정 정도의 지적·정치적 성숙도가 필요하다는 것이 전제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성숙도가 연령제한으로 확보될 수 있을까? 40세 미만은 대통령을 맡을 수 있는 능력이 진정 없는 것일까? 2018년 문재인 개헌안은 왜 이 40세 요건을 삭제하는 안을 제안했을까? 현재 300명이 정원인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선거권을 가지지만 피선거권은 가지지 못하는 19세 이상 25세 미만, 심지어는 19세 미만의 국민은 왜 국회의원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원천적으로 부인되어야 하나?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는 공론장인 국회의 성격을 고려하자면 오히려 최소한의 대표인원이 연령이나 세대별로 할당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프랑스는 23세이상이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있다. 미국은 35세가 넘으면 대통령에 출마할 자격이 있다. 엠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39세에 당선됐다. 사진= 연합뉴스
프랑스는 23세이상이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있다. 미국은 35세가 넘으면 대통령에 출마할 자격이 있다. 엠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39세에 당선됐다. 사진= 연합뉴스

피선거연령 제한에 대한 헌재 합헌론의 문제점

국회의원 피선자격을 연령으로 제한하는 법률조항에 대한 위헌심사에서 헌법재판소는 피선연령을 25세로 정한 입법을 합헌이라고 선언하면서 이 연령이 '평균적인 국민'의 경제활동능력과 '남자의 경우' '병역의무를 수행할 수 있는 연령 및 그 기간'을 적절히 고려한 것으로 보았다.

또한 대의활동능력과 정치적 인식능력을 갖추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에 있어서는 적어도 교육법제상 정규교육과정 수준의 교육과정에 상당하는 '경험을 충분히 쌓을 수 있는 일정한 연령'에 도달하는 때를 기준으로 제시했다.

헌재의 판단에서 제시된 경제활동, 병역의무, 교육이수경력은 공직자의 능력과 자질을 평가하는 합리적 기준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이 어떤 과정에서 적용되어야 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무엇보다 이러한 기준을 연령에 일률적으로 반영해 피선거권을 박탈하는 것이 합리적인지는 신중한 숙고가 필요한 사안이다.

공무에도 전문적 지식의 중요성이 필수적인 경우도 있고, 정치적 인식능력의 중요성에 중점이 있는 분야가 있다. 도식적으로 꼭 나뉘지 않더라도 정치적 성격의 선출직의 경우와 직업적 성격의 비선출직 경력직의 경우 중요도가 나뉠 수 있다.

전문적 지식이 필요한 직업공무원의 경우 시험이나 추천에 일정한 교육조건을 필수요건으로 제시하는 것이 특별한 문제가 없다. 그러나 정치적 선출직의 경우 그런 기준을 필요요건으로 삼고 연령을 결부시킬 수 있을까? 이런 발상은 근대초기 국민주권주의를 내세우면서도 교양수준을 빌미로 여성과 노동자들에게 피선거권을 허용하지 않던 '제한민주제'의 유산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선거라는 국민적 선출과정이 다양한 정치적·개인적 고려사항은 물론 후보자의 경제활동, 병역의무, 교육이수 여부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애초에 이런 활동을 이수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연령을 정해서 그 연령에 도달하지 못한 경우는 아예 출마도 하지 못하게 진입을 막아 얻을 수 있는 공적 이익으로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

혹여나 선거과정에 선거민들이 이러한 고려를 잘 하지 못해서 자질이 부족한 사람을 선출하게 될까 걱정되는가? 그렇게 선거민의 판단을 못 믿을 정도라면 선거가 왜 필요한 것인가?

청소년세대는 교육, 성장 등 자신들의 현재와 미래 환경을 결정할 자격이 있다. 그러나 25세 미만은 국회의원에 나설 수 없다는 공직선거법 규정때문에 청소년 자신들이 직접 정책을 결정할 권리를 갖지 못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청소년세대는 교육, 성장 등 자신들의 현재와 미래 환경을 결정할 자격이 있다. 그러나 25세 미만은 국회의원에 출마할 수 없다는 공직선거법 규정때문에 청소년 자신들이 직접 정책을 결정할 권리를 갖지 못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종합적 의사결정인 선거의 본질과 피선거권 연령제한의 비합리성

선거의 실질도 이런 의문에 힘을 보탠다. 우리가 그토록 거창하게 주권의 행사라고 들먹이는 선거란 개인이 여러 후보 가운데 붓두껑으로 표기하는 아주 단순한 행위의 연속이다. 그 표기라는 결과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정치적·사회적 편견이나 개인적 이해관계에 대한 고민이 모두 들어있는 것이다.

이 개개의 결정 자체는 선거인 개인의 관점에선 가장 합리적 선택으로 추정될 수 있지만 반대로 우리의 경험칙으로 볼 때 그 합리적 선택의 가벼움을 쉽게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그런데 경제활동, 병역의무, 교육이수의 경력을 아예 연령기준에 결합시켜 일부 예비후보자의 출마를 봉쇄함으로써 선거권자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피선거권자의 정치적 기본권을 박탈할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것인가?

근대혁명이후의 민주화 과정은 이런 갖가지 비합리적 진입장벽을 제거해온 보통민주화의 역사라는 점을 이 지점에서 다시 한번 강조할 필요가 있다.

헌재의 논리대로라면 공화국 공민의 기본자질을 함양할 수 있는 중등교육을 마친 후, 경제활동을 하거나 병역을 이수하거나 대학에서의 고등교육을 이수하는 등의 과정을 거친 경우에라야 국회의원이 될 만한 최소한의 능력과 자질을 갖출 수 있다고 보는데, 그런 능력이 있는지 여부를 왜 선거권자가 직접 판단하게 하면 안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논증이 없다.

더구나 공화국의 미래를 짊어질 청소년세대가 자신들이 겪고 있는 교육과정이나 성장과정의 문제점, 또한 자신들의 미래환경을 결정할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정책에 대해 발언하고 자신들의 비전을 내세울 당당한 자격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 대표성을 반영할 수 있는 피선거자격을 원천적으로 박탈해야 할 이유에 대한 논증이 없는 것이다.

이 박탈적 조치로 얻을 수 있는 공익은 도대체 무엇이고 그 공익이 청소년세대의 공민자격을 박탈할 만큼 큰 것인지에 대한 형량이 충실하지 못하다. 한마디로 민주공화국의 기본가치와 권리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결여되어 있는 상태에서 민주공화국에 충실한 헌법질서를 구축하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민주공화국의 기본질서가 추구하는 보통민주화를 위해 선거연령 뿐만 아니라 피선거연령도 낮출 필요가 있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서울대 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런던정경대 대학원에서 법학박사를 받았다. 현재 한국언론법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한국공법학회·한국헌법학회 부회장,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부위원장,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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