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보다 신용등급 높다고 자만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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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보다 신용등급 높다고 자만 말라
  • 김인영 발행인
  • 승인 2015.09.17 18: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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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부채, 가계부채 증가, 북한의 핵도발 위협등 악재들이 산재

2003년 1월 국제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의 톰 번(Thomas Byrne) 당시 부사장을 만났을 때, 그가 일본 의회에 출석했던 얘기를 들려줬다. 무디스가 일본의 신용등급을 아프리카의 보츠와나와 같은 수준으로 떨어뜨린데 대해 일본 의원들이 화가 나 무디스의 책임자를 불렀던 것이다.

톰 번 부사장은 차분하게 일본 의원들에게 설명했다. 일본의 국가부채 비율이 이탈리아나 유럽의 소국에 비해 엄청나게 높고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며 신용등급 하향조정은 당연하다고 설득했다.

일본의 국가부채 비율이 평화시인데도 전쟁때보다 높은 수준으로 올라갔다. 1차ㆍ2차 대전때에 참전국들의 국가부채가 전쟁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급팽창했는데, 일본은 지난 10년동안 경기를 부양하고 촉진시키는 과정에서 정부 부채를 동원하는 바람에 전시와 같은 비율로 국가부채가 높아졌다. 그렇게 설명햇더니, 일본 의원들이 수긍했다고 한다.

이번엔 또다른 국제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가 16일 일본의 국가신용등급을 강등했다. 'AA-'에서 'A+'로 한 단계 딸어진 것이다.

이번 등급 하향은 작년 11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소비세율 인상(8→10%) 시기를 2017년 4월로 1년 6개월 연기한 뒤 실질적인 재정적자 완화 대책과 경제성장 전략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평가에 따른 것이다.

이로써 한국의 신용등급은 3대 국제신용평가사 모두에서 일본보다 높아졌다. S&P는 전날 한국의 신용등급을 'AA-'로 한 단계 올렸다. S&P는 “향후 3~5년 한국 경제가 대부분의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우수한 성장을 할 것"이라며 ”한국의 단기 외채 비중이 줄어들고 북한을 둘러싼 지정학적 위험이 누그러졌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등급이 일본보다 높아졌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가뜩이나 신흥국 대표주자들의 신용도가 줄줄이 하락하는 가운데 올라간 것이어서 반가운 소식임에 틀림없다.

러시아는 올해 초 투기 등급으로 전락했고 최근 브라질도 투기 등급으로 떨어졌다. 남아프리카공화국과 터키의 등급도 강등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국가채무 GDP의 40% 넘어 재정건전성 훼손 우려

하지만 우리나라 신용등급이 일본보다 높아졌다고 우쭐대거나 자만을 해선 안된다. 우리 경제에는 언제라도 신용등급을 떨어뜨릴 요소들이 복병처럼 잠복해 있기 때문이다.

첫째 국가신용평가의 기준이 되는 우리나라의 국가부채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확정된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는 재정건전성이 훼손되는 것을 무릅쓰면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국가재정을 확장적으로 운용하겠다는 정책 당국의 의지를 보여줬다. 이 영향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내년에 처음으로 40%대를 넘어서 사상 최고치가 된다. 정부는 국가채무비율을 '30%대 중반 수준'에서 관리하겠다고 했다가 1년 만에 '40%대 초반 수준'으로 목표를 수정한 것이다.

2016년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 국가채무는 645조2,000억원으로 올해(595조1.000억원)보다 50조1.000억원 증가하게 된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기 직전인 2012년 말 443조원이던 나랏빚이 4년 만에 202조원이나 늘어나는 것이다. 둗민 1인당 1,270만원의 빚을 부담하는 셈이다. 1인당 국가부채는 2007년 616만원에서 9년 만에 2배로 불어난 수준이다.

내년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0.1%로 올라가는데, 이는 정부가 지난해 예상한 35.7%보다 4.4%포인트 높아진 것이다.

S&P, 무디스, 피치 등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한국의 신용등급을 일본보다 높게 주면서 탄탄한 재정 건전성, 대외 건전성을 이유로 꼽아왔다. 일본의 국가채무비율은 올해 예상치가 229.2%로 한국보다 훨씬 높다. 경기를 살리기 위해 정부의 곳간을 푸는 것은 이해되지만, 일본 아베 정부처럼 돈을 무제한 풀다가 신용등급을 강등당한 선례를 감안해야 할 것이다.

둘째, 가계부채도 문제다.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주요 신흥국 가운데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국제결제은행(BIS)이 신흥 14개국을 대상으로 가계와 정부, 기업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을 조사한 결과에서 한국의 가계부채는 지난해말 현재 GDP 대비 84%로 신흥국 평균(30%)의 2.5배에 달했다. 조사대상 신흥국 가운데 한국에 비해 이 비율이 높은 나라는 없다.

한국의 GDP 대비 가계 부채비율은 선진국 평균(73%)보다 높다. 이탈리아(43%), 독일(54%), 프랑스(56%), 유로존(61%), 일본(66%), 스페인(71%), 미국(78%)은 한국보다 낮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전인 지난 2007년 말에 비하면 한국의 GDP 대비 가계대출 비율은 7년 만에 12%포인트 상승했다.

셋째, 한국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대로 놔두었다가는 우리기업의 신용도가 투기등급으로 떨어질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권재민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아태지역 기업 신용평가 총괄 전무는 최근 한 세미나에서 "한국 기업의 신용등급은 과거보다 2단계 하락해 투자 등급 하단에 위치했다"며 "앞으로 개선 전망도 불투명하다"고 밝혔다.

권 전무는 "중국 리스크 현실화, 원자재 가격 하락, 미국 금리 인상 우려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기업 신용도 압박이 커지고 있다"며 "특히 한국 기업은 주요 기업의 매출 증가율이 꺾이는 저성장, 주요 제품의 가격 대비 경쟁력 저하로 이어져 사면초가에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S&P의 한국 기업 신용등급 평균값을 보면 2009년 12월 'BBB+'에 가까웠으나 계속해서 하락세를 보여, 지난 6월에는 'BBB-'를 간신히 유지했다. 'BBB-'보다 더 내려가면 투기등급인 'BB+'가 된다.

 

고령화 비용, 북한의 핵도발 여부도 변수

이밖에 사회적 이슈인 고령화의 비용도 감안해야 한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가 다른 국가보다 빠른 만큼 재정 지출 확대의 요인이 된다.

북한의 도발 여부도 이슈다. 지난달 지뢰도발 사건이후 극적인 남북 합의가 이뤄져 대화분위기가 조성되는가 싶더니, 오는 10월 10일 북한은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핵도발을 하겠다는 의사를 공공연히 흘리고 있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한반도 긴장감도 한국의 국가신용에 악재로 돌변할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자만(complacency)이다. 1998년 언제인가, 외환위기가 나고 뉴욕 월가 사람을 만났더니, 한국이 파산 위기에 몰려 IMF에 구제금융 자금을 지원받은 것은 자만심 때문이었다고 충고한 적이 있다. 외환위기 전에 한국의 관료들, 기업들은 자만심에 빠져 있었다. 자만에 빠져 있으면 구조개혁을 등한시 한다. 3대 국제신용평가기관에 의해 한국의 신용등급이 일본보다 높아졌다는 사실이 또다른 자만을 제공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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