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이야기] 도시와 인간의 삶은 어떻게 결합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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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이야기] 도시와 인간의 삶은 어떻게 결합되었을까
  • 강대호 북칼럼니스트
  • 승인 2019.08.02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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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읽어주는 남자 유현준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리뷰
자신들이 만든 도시에 인간의 삶은 어떤 영향을 받을까
저자의 주관적인 관점에서 도시와 건축물 설명
결국 자신에게 행복을 주는 공간이 어딜까는 각자 판단해야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을유문화사 펴냄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을유문화사 펴냄

[오피니언뉴스=강대호 북칼럼니스트] 서울 근교 어느 전원주택에 사는 지인 집에 초대받았다. 집에서 야생화를 키운다고 해서 구경하고 싶던 차였다. 오래전부터 전원주택으로 유명한 동네라서 가끔 둘러는 봤지만, 집을 방문한 건 처음이었다.

전에는 구불구불한 지방도로로만 갈 수 있었으나 지금은 새로 생긴 고속도로와 연결되었다. 그래도 주도로는 예전의 구불구불한 도로 그대로였다. 도로변에는 각종 식당과 카페로 가득했다. 산 아래는 물론 중턱까지 집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지인이 사는 동네도 마찬가지였다. 동네 입구에서 큰 식당이 맞이했다. 예쁘게 지어진 집들이 이어졌고 새로 짓는 집들도 보였다. ‘분양 안내’라는 플래카드가 펄럭이고 공사하는 소리로 요란했다.

지인의 집은 훌륭했다. 듣던 대로 야생화가 많았다. 화가가 정성 들여 색을 칠하듯 각종 야생화가 색을 맞춰 서 있었다. 함께 간 지인들이 계속 감탄했다. 나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나는 오랜 아파트 생활에 좀 지루해져 있었다. 그래서 지인에게 초대받은 걸 핑계로 전원주택에서 사는 건 어떤 모습일지를 엿보고 싶었다. 단 몇 시간의 관찰로 결론 내릴 수는 없지만, 미처 생각지 못한 걸 느낄 수 있었다.

주택가 하면 골목을 함께 쓰는 집들이 모여 있는 게 연상된다. 골목에 어른들이 나와서 담소를 나누고 아이들은 뛰놀고. 그런 그림이 그려지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전원주택으로 유명한 그 마을은 그림이 좀 달랐다. 

우선 집과 마당이 길보다 높은 곳에 있었다. 그 동네 집들은 영화 ‘기생충’처럼 길보다 높은 곳에 지어졌다. 대문을 열고 계단을 올라가야 마당이 보이고 집이 보였다. 

그래서 섬 같았다. 길에서는 마당은 물론 집도 안 보이게 지었다. 마당에서 바깥을 바라보기엔 좋은 구조지만 바깥에서 안을 보기에는 안 좋은 구조이다. 그래서 동네 한 바퀴를 걷기에도 눈이 불편한 구조였다. 높다란 담벼락으로 만들어진 미로를 걷는 느낌이었다.

물론 그 집에 사는 지인은 크게 만족하며 살고 있었다. 함께 간 다른 지인들은 무척 부러워했다. 나는 좀 다른 생각이었다. 물론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공간에 대한 사람의 느낌이라는 게 워낙 상대적인 거니까. 관련해서 몇 년 전에 읽은 책이 생각나서 집에 오자마자 다시 펼쳤다.

TV 방송 '알쓸신잡'으로 유명한 유현준 교수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가 그 책이다. 그는 유명한 건축가이면서 건축을 가르치고 건축을 알리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이 책은 그의 다른 책과 함께 대형서점에서 베스트셀러를 오랫동안 차지하고 있다.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는 “인간들이 만든 도시에 인간의 삶이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 과연 더 행복해지는지 아니면 피폐해지고 있는지”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들려준다. 저자가 책에서 주장한 것들을 '알쓸신잡'에서도 여러 번 이야기했다. 현대 사회에서 텔레비전은 어떤 의미인지, 한국에는 왜 모텔과 카페가 많은지, 왜 교회보다 사찰에 들어가기가 더 편한지에 대해서 등.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타임 스퀘어는 단조로움을 깨기 위해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가는 브로드웨이를 만들어 길이 만나는 지점에 삼각형 모양의 독특한 공간으로 만들어 졌다. 사진=위키피디아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타임 스퀘어는 단조로움을 깨기 위해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가는 브로드웨이를 만들어 길이 만나는 지점에 삼각형 모양의 독특한 공간으로 만들어 졌다. 사진=위키피디아

책을 다시 훑어보며 내가 지인의 전원주택에서 왜 이 책이 떠올랐는지 생각해 보았다. 어떤 대상, 특히 공간이나 구조물에 대해서, 그 공간과 구조물이 위치한 지역에 대해서 느끼는 ‘가치의 척도’가 사람마다 상대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책 곳곳에는 몇 년 전에 내가 적어 놓은 메모가 있었다. 유명한 건축 전문가가 한국 도시를 진단한 내용에 크게 동의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특히, 걷기 좋은 길에 대한 저자의 진단에 의문이 들었다. 그는 “강남거리는 왜 걷기 싫을까?”라는 도발적인 소제목으로 글을 시작한다. 그 뒤에는 “명동엔 왜 걷는 사람이 많을까?”라는 글이 이어진다.

저자는 “단위 면적당 볼 수 있는 이벤트 개수”로 길에 대한 가치 판단을 했다. 그 관점에 의하면 테헤란로보다는 명동이 걸으면서 들여다볼 수 있는 이벤트가 많은 건 맞다. 그런데 이 책을 처음 읽을 당시 나는 테헤란로도 나름 걷기에 재미난 길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책에서 언급한 광화문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나는 명동이나 홍대를 걷는 게 더 싫었던 것 같다.

나는 좋거나 편한 감정은 객관화한 수치로 표현할 수도 있지만, 상대적이며 주관적인 가치라고도 생각했다. 그 거리를 어떤 사람이 어떤 목적으로 걷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겠냐고. 사는 곳의 환경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저자는 책에서 한국형 도시 개발에 문제를 제기한다. 어릴 때 경험이나 외국 사례를 들면서 건축가로서 소신을 이야기한다. 특히 “대형 아파트 단지가 우리에게서 하늘을 빼앗아 갔다”며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었던 골목길을 추억한다. 지금은 “하늘을 볼 수 없는 복도와 엘리베이터로만 이어진다”고 안타까워하면서. 같은 추억을 가진 사람으로서 공감 가는 대목이 많았다. 

그렇지만 지금 아파트에서 사는 아이들은 차로부터 안전한 산책로가 이어진 길을 오래도록 추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들에게는 골목길이 오히려 낯선 환경일지도 모른다. 아파트가 한국을 대표하는 주거 공간이라지만 아파트가 아닌 곳에서 사는 사람이 아직은 더 많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들은 이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유명한 교수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매주 나오던 사람이 쓴 책이라 권위가 부여된 책이었다. 그렇지만 그가 판단한 일부에 대해서는 가치 척도가 상대적이란 생각도 들게 한 책이었다. 인간의 삶에서도 다수와 다른 감각을 갖거나 가치 판단을 하는 소수가 세상을 바꾼 예가 많다.

저자는 “도시는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을 닮는다”고 했다. 또 “도시의 구성원들은 마치 자연 발생한 유기체의 모습과도 같다”고 했다. 책에서 가장 공감된 부분이다. 특히 지은 지 오래된 아파트 단지들이 그런 것 같다. 오래 살다 보니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변해가는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아파트 주변에 심은 어렸던 나무들이 시간이 지나니 울창해진다. 근처 산에 사는 이름 모를 산새들이 찾아온다. 공원과 산책로는 어릴 적에 뛰놀던 골목 못지않게 복작인다. 아파트는 너무나 각진, 인간적이지 않은 공간이지만 사람이 살면서 호흡을 하고 그 숨결이 옮으면서 서로 닮아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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