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의 예술적인 法] 일본 컨텐츠 보지 않습니다. 듣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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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의 예술적인 法] 일본 컨텐츠 보지 않습니다. 듣지 않습니다?
  • 김민정 변호사(법무법인 휘명)
  • 승인 2019.07.29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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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화개방후 한국 경제 이득 훨씬 커...소비재 수출 '마중물'역할도
문화는 '경제적 이득' 이상의 가치...'소프트 파워'로 더 본질적 역할할 수도
양국 문화교류, 무조건 거부보단 갈등해결책 찾는 역할할 기회로

 

김민정 법무법인 휘명 변호사
김민정 법무법인 휘명 변호사

[김민정 법무법인 휘명 변호사] 일본 컨텐츠 보지 않습니다. 듣지 않습니다?

“가지않습니다, 사지않습니다.” 요즘 최대의 이슈인 한·일간 무역갈등으로 인한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점점 더 확산되는 분위기다. 시내 한복판의 유니클로 매장은 텅텅 비었고, 일본여행을 취소한 인증샷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반면 일본여행 인증샷을 올렸다가는 테러성 팔로우를 당하기도 한다.

문화·예술계에도 이런 ‘보이콧 재팬’의 바람이 불고 있을까? 일단 출판계에는 아직까지 그 영향이 표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 듯 보인다. 지난 23일 교보문고에 따르면 한·일 갈등이 본격화된 7월 들어 출간된 소설 375종 가운데 20.8%인 78종이 일본소설로 집계됐다. 지난  달의 17.9% 보다 오히려 높아진 수치다. 또 이달(21일 기준) 소설분야 베스트셀러 톱10중 3종이, 톱20중에서는 6종의 일본 소설이 순위 안에 들었다.

그러나 7월에 출간된 신간소설의 출판계약은 이미 한·일간 갈등이 불거지기 전인 수개월 전에 이루어져 있던 점 등을 감안하면 앞으로의 추이를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출판 관계자들에 따르면 대형서점에서는 일본 책의 전면 진열을 꺼리고 있으며, 출판사에서는 일본 작품의 출간을 연기하고 추가계약을 주저하고 있는 분위기다. 

대형 서점가에서는 일본 불매운동 움직임이 크지 않다. 일본 소설들은 여전히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라있다. 사진= 연합뉴스
대형 서점가에서는 일본 불매운동 움직임이 크지 않다. 일본 소설들은 여전히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라있다. 사진= 연합뉴스

국내 문화계 '일본 컨텐츠 보이콧'...일본은 한류 위축 없어 

애니메이션의 경우 매주 집계되는 관객 수가 불매운동의 영향력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지난 11일 개봉한 ‘극장판 엉덩이 탐정 : 화려한 사건 수첩’은 첫 주에 1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았으나 2주차에 ‘평점 테러’를 당하며 2만여명을 추가하는데 그쳤다. 이 작품은 누적판매부수 600만 부인 인기 베스트셀러를 극장판으로 만든 작품이다.

후기게시판에는 “평점테러라도 해야 분이 풀린다”는 의견이 많다. 24일 개봉한 ‘명탐정 코난 : 감청의 권“의 경우에도 45만 명이 넘는 ’명탐정 코난‘ 시리즈의 두터운 팬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판은 불매운동으로 안보겠다“, ”No일본 사지않습니다 가지않습니다 보지않습니다“등의 불매운동이 퍼지고 있다. 이에 국내 배급사는 홍보마케팅과 이벤트를 축소하는 분위기다.

국내의 상황은 이런데 일본 내 한류의 인기는 무사할까? 다행히 일본의 한류팬들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 지난 6~7일 오사카, 13~14일 시즈오카에서 열린 BTS의 콘서트에는 무려 21만 명이 운집했고 열광했다. 시즈오카 공연은 일본 227개 영화관에서 생중계로 진행되기까지 했고 트와이스, 엑소 등 다른 아이돌 그룹들의 공연도 예정대로 열릴 예정이다.

BTS 일본 스타디움 투어 첫날 공연이 펼쳐진 지난 6일 일본 오사카 '얀마 스타디움 나가이' 앞 운동장. BTS 굿즈(기념품) 판매장 주변에 기념품을 사려는 수많은 팬들이 모여있다. 사진= 연합뉴스
BTS 일본 스타디움 투어 첫날 공연이 펼쳐진 지난 6일 일본 오사카 '얀마 스타디움 나가이' 앞 운동장. BTS 굿즈(기념품) 판매장 주변에 기념품을 사려는 수많은 팬들이 모여있다. 사진= 연합뉴스

또 일본 4대 지상파 TV는 7~8월에 동시에 네 편의 한국 드라마(‘사인’-SBS, ‘투윅스’-MBC, ‘보이스’-OCN, ‘대군, 사랑을 그리다’-TV조선)의 리메이크를 방영할 예정이다. 한국화장품은 여전히 불티나게 팔리고 있으며 각종 SNS엔 한국스타일 관련 게시물이 가득해서 한·일갈등은 전혀 느낄 수 없는 분위기다.

'한류의 힘', 일본에 압도적...장기적 관점의 '득과 실' 고민해야

이렇듯 국내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와 달리 한류가 정치적인 영향을 받지 않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일본 내 한류의 역사가 20년 이상으로 길고, 문화소비가 SNS와 유튜브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덕분’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일본사람들의 특성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다시 국내 상황으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이런 정치적 갈등이 문화교류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에 대해서 논란이 있다. “정신문화에 직결된 것이므로 일본 맥주나 의류 등 단순 공산품보다 더 강하게 거부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예술 문화 상품을 무조건 매도한다면 비문명국으로 낙인찍힐 수 있다.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등의 반대의견도 있다.

문화불매운동에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으나,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장기적이고 다양한 관점에서의 우리의 득과 실을 따져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먼저 경제적인 측면에서, 1998년 우리정부가 일본 영화와 만화를 전격 개방하고 21년이 지난 지금, 우리 문화 시장이 일본문화에 빠르게 잠식당할 것이라는 우려와는 달리 오히려 역전현상이 벌어졌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방송관련 콘텐츠 산업의 2016년 일본수출액은 총 20억2400만 달러로, 3억3550만 달러 수입액보다 6배 많다고 분석했다. 이런 현상은 특히 음악시장이 두드러지는데 같은 해 한국 음악의 일본 수출액은 2억7729만 달러로 일본 음악 수입액 291만 달러의 무려 약 100배에 이른다. 게임 분야도 예외가 아니어서 6억 달러의 수출액은 수입액 5160만 달러의 10배가 넘는다.

문화콘텐츠 수출은 그 자체의 수익창출에 그치지 않고 소비재 수출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지난 달 13일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가 내놓은 '한류 문화콘텐츠 수출의 경제효과'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한류 문화콘텐츠 수출이 100달러 증가할 때 화장품, 식품, 의류 등 소비재 수출은 248달러 증가하고, 특히 음악의 경우 수출이 100달러 증가하면 소비재 수출은 무려 1777달러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에는 750만 명의 한류 팬들이 있다고 한다. 그들은 K-pop스타의 사진을 사고, 화장품을 구매하고, 음식을 즐긴다. '3차 한류'로 불리는 현재 한류팬들은 10-20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겨울연가’가 불러온 1차 한류의 주된 소비층은 40-50대였다.) 아직은 그 소비력이 미미하지만, 이들이 두터운 팬층을 형성해 장기적으로 한류의 컨텐츠와 우리나라의 제품을 소비한다면 그 경제적인 파급력은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듯 문화콘텐츠 수출을 통해 상대국인 일본보다 월등히 많은 이익을 창출하고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한·일간의 적대적인 감정으로 인해 양국에서 문화불매운동이 일어난다면 지금의 득(得)이 큰 만큼 경제적인 실(失)도 훨씬 클 것이 분명하다.

독-불 '엘리제 조약'...양국 동맹관계 구축과 유럽 평화 초석돼

다음으로 외교적인 측면을 보자. 21세기는 소프트파워(soft power,연성권력)가 주도하는 시대로서 문화외교가 새로운 외교력으로 대두되고 있다. 소프트파워는 군사력, 경제력 등 물리적인 힘을 지칭하는 ‘하드파워’에 대응되는 개념으로, 교육, 학문, 예술, 과학 철학 등 이성적, 감성적, 창조적 분야를 포함하며 그 단적인 예가 문화이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문화가 가치창출의 원천이자 경쟁력으로 인식되면서 세계 각국은 소프트파워를 키우기 위해 문화 전반에 대한 장·단기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또한 소프트파워를 기반으로 하는 문화외교는 서로에 대한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해 우호적인 관계를 만들어 가는데 그 목적이 있기 때문에 정무외교, 경제외교와는 다른 측면으로 접근해 새로운 외교의 축이 되고 있다. 특히 정치적인 갈등 상황을 완화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대표적으로 꼽히는 것이 독일과 프랑스의 '엘리제 조약(Elysee Treaty)'인데, 1, 2차 세계대전으로 원수였던 양국은 1963년 1월 22일 파리의 엘리제 궁에서 문화, 교육 등의 교류를 약속하는 '화해협력 조약'을 맺었고, 이후 이 협정이 나날이 진화해 양국은 동맹 수준의 관계로 발전했으며 2003년 유럽연합(EU)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이 조약은 한중일 동아시아 지역의 영토, 역사 갈등의 해결모델로 제시되고 있다.

과거에도 한류는 한일 관계가 경색될 때마다 긴장관계를 완화하는 역할을 해왔듯이 이번에도 양국 긴장을 완화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소프트파워를 통해 일본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정치권이 한일 관계 복원에 나서도록 압력을 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듯이, 한류가 일본 국민들 특히 젊은 층들의 문화 속에 깊이 자리 잡게 되면 장기적으로 우리의 소프트파워는 큰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고, 현재와 같은 갈등 상황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문화’ 그 자체의 특성과 역할에 주목해야 한다. 일본 대중문화평론가 후루야 마사유키는 “정치는 정치의 사명이 따로 있다. 문화는 이와 별개로 시민 교류 차원의 커뮤니케이션을 지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권력자들의 힘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정치와 달리 문화는 개인적인 활동에서 발생하고 다양성이 존중되며 민간의 영역에서 교류하고 발전한다.

문화는 '서로를 알게 해주는 공간'...왜곡된 한일관계, 상호이해 넓힐 수도

세계적인 유대인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은 1999년 팔레스타인 등 아랍국가와 이스라엘 젊은이들로 구성된 '서동시집 오케스트라(West-Eastern Divan Orchestra)'를 창단했다. 이 오케스트라에 참여한 젊은 단원들은 “서동시집 오케스트라가 제 시각을 바로잡아 주었습니다. 언론이 조작하고 왜곡한 현실이 아니라 개개인의 살아있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정말 화해로 가는 밑거름은 정부가 아닌 사람들 간의 대화입니다”라고 말했다. 

젊은 단원들은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 했다.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혹여 서로의 모습을 왜곡해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무조건 거부하기 보다는 문화를 통해 진짜 모습을 아는 것에서 갈등의 원인과 해결책을 찾을 수 있지는 않을지 생각해보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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