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원 칼럼] '저금리 의존적 경제'의 문제는 누가 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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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원 칼럼] '저금리 의존적 경제'의 문제는 누가 풀 것인가
  • 최석원 SK증권 리서치센터장
  • 승인 2019.07.22 14: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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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원 SK증권 리서치센터장] 한국은행이 인상한 지 7개월만에 올렸던 정책금리를 원래 위치로 되돌렸다.

이제 정책금리는 1.5%다. 이로써 2017년 11월에 1.25%을 저점으로 시작됐던 정책금리 인상사이클은 2018년 11월까지 두 번의 인상으로 끝난 셈이 됐다. 

인상 사이클이 1년으로 짧았다는 점과 정책금리의 고점이 1.75%에 불과했다는 점 모두 우리 경제의 우울한 현재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지만, 이번 결정은 대체로 긍정적이라 평가된다.

특히 8월 인하 전망이 주류를 이뤘던 상황에서 ‘전격적’으로, ‘용기’있게 한달 전에 금리를 인하해 경기 둔화 위험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은 한국은행에 대한 시장의 신뢰 회복에 도움을 준 것으로 판단된다. 

'전격적인' 금리인하, 긍정적이나 경제에 도움될진 미지수

하지만 시장 신뢰의 회복이라는 긍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이번 금리 인하가 실제 우리나라 경제를 회복시키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인지는 불투명하다.

높아진 부동산 가격과 가계 부채 부담 하에서 추가적인 대출과 자산가격 상승이 나타나기 어렵고, 글로벌 교역의 둔화와 달러화 강세의 힘이 약화된 상황에서 수출이 회복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즉, 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둔화되고 있는 국내 경기를 되돌리기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로 보인다. 

게다가 더 큰 문제가 있다. 우리 경제도 글로벌 주요국과 마찬가지로 저금리 의존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가 가장 좋았던 미국에서조차 이번 금리 인상의 고점이 2.75%에 불과할 가능성이 확실시되고 있고, 유럽과 일본에서는 이번 경기 확장 과정에서 정책금리를 한번도 올리지 못하는 이례적인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경제 전체가 높은 금리를 견딜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 18일 기준금리를 현행 1.75%에서 1.50%로 0.25%포인트 전격 인하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이날 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저금리는 물론 낮은 성장을 반영한다. 그렇지만 지금의 저금리는 과거와 사뭇 다르다. 저성장을 감안해도 금리 수준이 너무 낮은 것이다. 우리나라와 미국, 그 밖의 주요국 모두 명목 정책금리와 명목 국채금리가 명목성장률뿐 아니라 실질성장률을 밑돌고 있다.

낮은 금리 수준에도 불구하고 돈을 가져다 쓸 사람이 없고, 돈이 돌지 않으니 성장률과 물가가 낮은 수준을 유지하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과거에 비해 크게 낮아진 물가에서 이유를 찾는다. 2000년대 들어 저임금 노동력이 글로벌 경제에 편입되면서 물가를 끌어내렸고, 전자상거래(E-commerce)의 발전으로 가격 발견 기능과 경쟁이 치열해졌다. 여기에 미국의 셰일 오일이 본격적으로 개발되면서 유가 등 원자재 가격이 떨어져 금리를 올려야 할 가장 큰 이유가 없어졌다는 얘기다.

물가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경우 낮은 금리를 유지하고, 정부가 더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현대통화이론(MMT)이 미국에서 각광받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부채에 발목 잡힌 금리

하지만 금리를 올리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결국 부채다. 금융위기 이후 거의 모든 주요국에서 경제 규모 대비 부채 부담이 과거보다 크게 늘어나면서, 금리를 올릴 때 충격이 훨씬 커졌다는 것이 금리가 못 올라가는 원인이 되고 있다.

국가별로는 ▲우리처럼 가계부채가 많은 나라 ▲중국처럼 기업부채가 부담스러운 나라 ▲일본처럼 정부부채 규모가 문제인 나라로 분류되지만, 어쨌든 모두 과거 수준의 금리를 유지할 경우 경제가 받을 충격이 커졌고, 이 때문에 적정한 금리보다 낮은 수준이 유지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문제는 저금리가 장기적으로 여러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일반 물가 수준이 안정되어 있다고 해도 그렇다.

저금리는 우선 자산가격 버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저금리로 갈 곳을 잃은 돈들이 일부 자산에 쏠리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성장률 둔화에도 불구하고 주요 도시 부동산 가격이 치솟고, 주식시장에서 주가수익배수(PER) 등 밸류에이션 지표가 올라가며, 암호화폐에 돈이 쏠리는 현상은 결국 저금리를 이유로 한다. 만약 자산시장에서 버블이 꺼지면 경제는 큰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저금리는 이자소득자의 노후 문제로 연결된다. 급속한 노령화가 진행되는 국가에서 이자소득 계층의 소득 감소는 사회를 불안하게 만든다. 이자소득을 보충하기 위해 저축량을 늘리거나 위험한 자산에 투자하는 경우가 늘어난다. 저금리가 초래하는 보험, 연금수익률의 악화 역시 마찬가지 효과를 갖는다.

저금리는 자원배분에도 문제를 일으킨다. 저금리 하에서는 어려워진 기업들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즉, 자금 조달 능력이 있는 기존 기업들이 버티면서 새로운 기업들의 시장 진입을 막을 수 있다. 게다가 최근 미국 내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저금리는 조달 능력이 월등한 소수의 기업들이 M&A를 통해 독과점화하는 배경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독과점화는 생산성 하락을 통해 성장률에 악영향을 미친다. 

일상화된 저금리, 부작용 완화책 마련해야

사실 통화정책은 경기사이클의 진폭을 완화하는 역할을 하는 단기 정책이다. 따라서 정책을 결정하는 시점에 현재의 결정이 물가가 오르는 것을 희생해서라도 경기를 회복시킬 것인지, 또는 경기 회복을 조금 희생해서라도 물가가 오르는 것을 막을 것인지를 고민하고, 결론을 내리면 된다. 통화정책 당국에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은 너무 큰 바람일 수 있다.

그렇지만, 금융위기 이후의 저금리가 일상화된 세계에서 통화당국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고민을 더할 수 밖에 없다. 내릴 수 있는 금리의 한계가 한발 더 앞으로 다가온 한국의 경우에도 저금리가 일으킬 문제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저금리가 불가피하다면 부작용을 완화할 방법이라도 찾기 시작해야 한다.

 

● 최석원 센터장은 연세대 경제학과 학부와 대학원을 마쳤다. 대우증권 삼성증권 한화증권 등에서 채권분석, 경제분석 파트장을 역임했으며 과거 수차례에 걸쳐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선정됐다. 한화증권에서 리서치센터장을 거친 후 메리츠화재에서 직접 자산운용을 맡기도 했다. 2016년부터 SK증권 리서치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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