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로 전세계 기술 공급망 고통 받을 것"
수출규제 확대 우려..."벼랑 끝에서 물러나야"
[오피니언뉴스=김솔이 기자] 영국의 경제전문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일본의 대(對)한국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규제로 촉발된 한·일 무역분쟁에 대해 '트럼프 모델'의 확산 신호라고 평가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부터 경제 파트너인 중국을 강도 높게 압박하는 방식으로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최신호(7월 20일자)에 게재된 '한·일 무역분쟁 사이에 울리는 트럼프의 메아리'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현재 아시아에서 벌어지는 한국의 일본의 싸움은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분쟁만큼 피해를 줄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일본이 지난 4일 반도체 등에 사용되는 세 가지 화학제품의 한국 수출을 규제하는 조치를 취한 건 지난해 한국 대법원의 강제 징용 노동자 배상 판결에 분개한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기준 일본은 한국에 세 제품을 4억달러어치를 수출했고 전체 공급량의 90%를 점유 중이다.
잡지는 "특별하지 않은 사안으로 들릴 수 있지만 이 세 제품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며 "한국 메모리반도체 업체들은 세계에서 지배적인 위치에 있어 일본이 수출을 중단하면 그 고통이 전세계 기술 공급망으로 파급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한국 내 일본 제품 불매운동과 일본이 군사 전용이 가능한 850개 전략물자에 세 제품과 같이 '개별허가'를 적용할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면서 "두 나라는 영국·프랑스보다 더 큰 800억달러 규모의 교역량을 가지고 있는 만큼 벼랑 끝에서 한 걸음 물러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코노미스트>는 "일본 경제 측면에서 수출규제는 근시안적인 접근"이라며 "일본 스스로 통제의 반대편에 있다(피해를 입는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2011년 중국이 일본으로의 희토류 수출을 규제하자 일본이 자국 내 광산에 투자해 대응한 사례를 거론하기도 했다. 잡지는 "일본 희토류 시장에서 중국의 점유율이 떨어졌다"며 "한국 정부도 이미 화학제품 육성을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지정학적 맥락에서 '일본의 자해(Japan's self-harm)는 더욱 무모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지역 공급망은 이미 공격을 받고 있다는 게 <이코노미스트>의 시각이다.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관세를 피해 중국 이외 생산거점 확보에 나서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양국에 관세 부과를 위협하고 있다.
아울러 <이코노미스트>는 일본 언론이 트럼프 대통령처럼 '국가 안보'를 내세우며 한국에 의해 북한으로 민감한 화학제품이 유출됐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에 대해 "설득력 없는 주장(far-fetched claim)이지만 수출 규제의 구실로 활용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양국은 이달 말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이견을 논의할 예정"이라며 "이는 세계 무역시스템의 긴장이 완화될 수 있는지, 아니면 상업 활동이 공급 사슬의 무기화로 정치의 연장선상인 '비열한 새 질서'에 의해 대체되는지를 보여주는 시험대"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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