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이야기] 영화 '인터스텔라'가 보여준 시간의 상대성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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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이야기] 영화 '인터스텔라'가 보여준 시간의 상대성은 무엇인가
  • 강대호 북칼럼니스트
  • 승인 2019.07.19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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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스티븐 호킹’으로 불리는 카를로 로벨리의 『시간은 흐르지않는다』 리뷰
양자중력 이론의 관점에서 바라본 시간에 관한 이야기
시간의 의미에 대한 고찰을 통해 인간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책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쌤앤파커스 펴냄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쌤앤파커스 펴냄

[오피니언뉴스=강대호 북칼럼니스트] 내가 칼럼을 쓰려고 읽은 책들을 보면 몇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먼저 구성과 전개가 중요한 책이다. 주로 문학책들이 이 유형에 속하지만, 논리적으로 풀어가는 이론 책들도 여기에 속한다. 전체 맥락 요약이 중요한 책들이다.

다음 유형은, 책에서 주장하는 바가 뚜렷한 책이다.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책들이 그렇다. 나는 이런 책들에서는 그 의견에 동의한다거나 동의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글을 쓰게 된다. 물론 내 얕고 좁은 식견으로 평가할 수 있는 책을 많이 만나지는 못했다.

마지막으로는 저자의 성찰에서 나도 성찰을 얻게 되는 책이다. 문학, 과학, 인문학, 사회과학 막론하고 내가 읽은 거의 모든 책이 이런 유형에 속한다. 이런 책들을 읽으면 한 문장이라도 내게 와 닿는 구절이 있다. 나는 저자의 성찰을 렌즈로 삼아서 세상을 들여다보거나 나를 돌아보곤 한다.

그렇지만 이번에 읽은 책은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글을 쓰는 지금도 고민하고 있다. 맥락 요약하기가 어렵고 저자의 성찰을 따라가기도 어려운 책이기 때문이다.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가 쓴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라는 책이다. 그는 아인슈타인 이후의 ‘중력 이론’인 ‘양자중력 이론’의 선구자라고 한다.

저자가 전에 쓴 '모든 순간의 물리학'과 ',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모두 ‘양자중력 이론’의 관점에서 바라본 물질, 에너지, 공간에 관한 이야기다. 이 책은 그다음 주제인 ‘시간’에 관한 이야기다. 내가 읽은 모든 과학책에서 과학이론은 세상을 바라보는 창과 같았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물리학을 렌즈로 사용하여 ‘시간’을 들여다본다.

 

영화 '인터스텔라' 한 장면. 시간과 공간의 상대성을 영화로 그려낸 크리스토퍼 놀란감독의 수작. 우주에서 지구에 있는 딸의 방을 들여다보며 안타까워 하는 매튜 맥커너히. 스틸 컷.
영화 '인터스텔라' 한 장면. 시간과 공간의 상대성을 영화로 그려낸 크리스토퍼 놀란감독의 수작. 우주에서 지구에 있는 딸의 방을 들여다보며 안타까워 하는 매튜 맥커너히. 스틸 컷.

우주의 시간은 우리가 보는 것과 다르게 작동한다

“시간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그 본질은 무엇인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경험하는 시간과 저 우주의 근간에 있는 원초적인 시간은 같은가 아니면 다른가? 다르다면 어째서 다르게 나타나는 것일까?” 저자는 이런 질문들을 독자에게 던지고 답변도 준다.

물론 그 답들이 “아직은 그가 연구하는 분야 관점에서 보는 이론적 추측”이라는 단서를 단다. 아직은 “실험으로 증명할 단계가 아닌” 아직 진행 중인 과학적 과제라는 것.

저자는 “우주의 시간은 우리가 보는 것과 다르게 작동한다”면서 인간이 가진 통상적인 시간관념을 지적한다. 사람들이 “이 우주에는 유일한 단 하나의 시간만이 존재하고, 그 시간은 과거로부터 미래를 향해 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다른 어떤 존재자들의 영향을 받지 않고 규칙적이고 일정하게 흐르는 것”으로 믿는다고.

그렇지만 카를로 로벨리는 “시간에 어떤 순서나 질서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우리가 사는 ‘거시 세계’에서 바라본 우주의 특수한 양상일 뿐 보편적인 본질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인간 지각능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우주 본래의 원초적 시간에는 순서나 질서,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흐름이 없다”고 설명한다.

우리가 알고 믿는 ‘시간’의 가치가 유일한 진리가 아니라는 저자의 주장이다. 그는 “시간은 단지 물질들이 만들어내는 사건 간의 관계”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고. 이 책의 한국어 제목처럼.

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맥락을 놓칠 때마다 이미 읽은 구절과 장을 되짚어가며 다시 읽었다. 그는 자기가 평생 연구한 ‘양자중력 이론’을 쉽게 설명하려고 평범한 단어와 사례를 들면서 설명했다. 덕분에 난 저자의 주장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것을 다시 나의 글로 풀어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사실 저자가 연구한 ‘시간’은 지금 이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직접 영향을 주는 그런 ‘시간’이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시간’의 정의(定意)가 오직 유일한 진리가 아니었다고 해도 우리 생활에 큰 변화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사실 저자가 주장한 ‘시간’이 세상의 진리가 된다 한들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양자이론과 중력이론을 결합한 ‘루프양자중력’이라는 개념으로 블랙홀을 새롭게 규명한 우주론의 대가, ‘제2의 스티븐 호킹’이라 평가받는 카를로 로벨리. 현재 프랑스 엑스마르세유대학교 이론 물리학센터 교수이자 프랑스 대학연구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카를로 로벨리 트위터
양자이론과 중력이론을 결합한 ‘루프양자중력’이라는 개념으로 블랙홀을 새롭게 규명한 우주론의 대가, ‘제2의 스티븐 호킹’이라 평가받는 카를로 로벨리. 현재 프랑스 엑스마르세유대학교 이론 물리학센터 교수이자 프랑스 대학연구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카를로 로벨리 트위터

시간의 의미에서 출발해 인간의 의미까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마지막까지 읽게 하고 어려웠던 장을 다시 열어보게 만든 책이다. 과학도 오래도록 깊이 연구하면 철학과도 통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과학을, 물리학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왠지 철학이 연상되는 대목이 많았다.

 

우리는 과정이자, 사건들이며, 구성물이고 공간과 시간 안에서 제한적이다. 그런데 우리가 개별적인 실체가 아니라면, 우리의 정체성과 유일성의 기반은 무엇일까? (180쪽)

 

저자가 “세상은 사물들이 아닌 사건들의 총체”라며 던진 질문이다. 저 문장 뒤에 저자의 과학적인 해석이 철학자의 변론처럼 펼쳐진다.

그러고 보면 오래전에는 철학과 과학은 한 몸이었다. 인간과 사물을 그리고 세상을 보고 해석하는 여러 방법의 하나였다. 그 과정에서 평평했던 지구가 사실은 공처럼 생겼고, 태양이 도는 게 아니라 사실은 지구가 도는 거라는 게 밝혀졌다.

지금 우리가 상식으로 생각하는 많은 것은 세상이 진리라고 믿던 것을 의심한 과학자들의 반항 때문이었다. 사실 세상이 평평하든 둥글든, 태양이 돌든 지구가 돌든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진리를 파헤치고 옳다고 주장하는 것에 목숨을 걸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은 그 질문을 믿는 사람들 덕분에 지구에는 더 큰 세상이 있고, 지구는 우주의 먼지보다도 작은 존재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양자중력 이론’ 관점에서 본 ‘시간’도 우주의 먼지 같은 지구에서도 한구석에 사는 우리에게 당장은 큰 영향이 없을 것이다. 다만 우주를 향하는 머지않은 미래에는 누구나 아는 작은 상식이 되어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시간이란 개념에서 시작해서 커다란 우주까지 이야기한다. 그 우주 속 먼지 같은 공간에서 현재 이 시간의 주인처럼 사는 우리 인간들에게 저명한 물리학자가 아닌 진리를 터득한 현인으로서 조언한다. 인도의 대서사시 ‘마하바라타’를 인용한다.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데도 살아 있는 자들은 자신들이 불멸의 존재인 것처럼 산다 (209쪽)

 

인간은 불멸의 존재가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의 생애는 어떤 모습으로든 저장되어 누군가로부터 기억된다. ‘시간’ 뒤에 숨어서 세상으로부터 잊히기만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저자의 주장을 빌리면 “시간은 흐르는 게 아니라 벌어진 사건 간의 연결”이라고 한다. 시간이 지난다고 벌어진 사건이 없어지는 건 아니라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진리다.

시간의 의미를 따라가면서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도 엿볼 수 있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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