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전 현지서 목격한 9·11 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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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전 현지서 목격한 9·11 테러
  • 김인영 발행인
  • 승인 2015.09.11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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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시작된 '테러와의 전쟁'은 아직도 진행중

그날 아침 뉴욕의 날씨는 전형적인 초가을답게 상쾌했다. 이날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서는 조흥은행(지금은 신한은행에 합병됨)이 해외증권(DR) 발행을 위해 투자자 설명회가 예정돼 있었고, 몇 블록 더 가 유엔빌딩에서는 한국 정부가 56차 유엔총회 의장국으로서 활동하는 첫날 행사가 마련돼 있었다. 필자는 이것저것 챙길 것들이 많아 여느 날보다 아침 일찍 집을 나와 뉴욕 행 버스를 탔다.

당시 필자는 서울경제신문 뉴욕특파원이었다. 집은 뉴저지주, 사무실은 뉴욕시 퀸스보로에 있었다.

아침 8시께 버스는 저지 시티를 지나 링컨 터널에 들어섰고, 터널 입구의 굽이진 언덕 위에서 기자는 무심코 차창 너머로 허드슨강 건너편에 우뚝 솟아있는 세계무역센터를 쳐다보았다. 초현대식으로 지어진 쌍둥이 빌딩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세계금융시장의 중심지로서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게 온전한 모습으로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

2001년 9월 11일 화요일 아침, 기자는 보통의 하루를 시작했다. 뉴저지주 리지필드 파크의 집에서 출발, 맨해튼 동쪽 이스트 강 건너편 뉴욕한국일보에 있는 사무실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8시 30분. TV를 켜고 뉴욕 증시 개장 전의 뉴스를 챙기며, 신문을 뒤적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뉴욕한국일보 직원 한 사람이 세계무역센터에 불이 났다고 알려줬다. 그 순간, 미국 방송들은 조그마한 세스나 경비행기가 빌딩에 부딛쳐 사고를 낸 것 같다고 보도했다. 조금후 또다른 비행기가 옆 빌딩을 관통하면서 두 건물 모두 불길에 휩싸였다. 그제서야 미국 방송들은 테러 가능성을 제기했다. 워싱턴 DC의 펜타곤 건물에도 또한대의 비행기가 충돌했고, 펜실베이니아주 야산에 제4의 비행기가 추락했다는 속보가 쏟아지면서 테러가 분명했다.

필자는 뉴욕한국일보 편집국 창문을 통해 세계무역센터가 시커먼 연기를 내며 타는 것을 보았고, 곧이어 두 건물이 힘없이 무너지는 것도 목격했다. 출근할 때 본 그 위풍당당하던 뉴욕의 상징은 두시간 후 수천명의 인명피해를 내며 잿더미로 변했고, 세계 역사의 흐름에 큰 단층을 형성했다.

미국의 심장부는 이렇게 쉽고도 무참하게 공격당했다. 18분 사이에 세계무역센터가 붕괴되고, 국방부 본부 건물이 피격당했는데도 세계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은 그 순간에 속수무책이었다. 플로리다주의 한 초등학교를 방문중이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국가 재난을 선언하고, 보복을 다짐했다.

미국이 테러리스트의 공격을 받을 것이라는 예측은 정보기관의 첩보나 저널리스트의 분석에 의해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돼온 사안이다. 뉴욕타임스지의 컬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만은 1990년대말에 쓴 그의 저서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에서 미국의 사우디 아라비아의 부자 오사마 빈라덴에 의해 핵공격을 받을 가능성을 예측한바 있다. 그는 현대 사회가 국가 중심에서 개인 중심으로 전환하고 있으며, 과거에 미국과 소련이 핵무기 경쟁을 했다면, 지금은 개인도 핵무기를 보유해서 거대한 미국에 대립할수 있게 됐다고 경고했다.

동서 냉전시대가 끝나고 10여년이 지난후, 그 예측이 맞아떨어졌다. 다만 테러리스트들이 언제, 어디에, 어떻게 미국을 공격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가 제시되지 못했을뿐이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후 세계는 ‘유일한 초강대국’ 미국에 의해 주도되고,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에 소외된 자들이 미국에 테러와 게릴라전을 펼치는 새로운 시대를 맞은 것이다. 2000년 1월 1일 자정, 뉴욕 중심가 타임스퀘어에는 수십만명이 몰려 새로운 세기와 밀레니엄이 왔음을 찬양했지만, 역사적 의미의 21세기는 2001년 9월 11일 오전 8시 47분에 시작된 것이다.

▲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플라이트93 국립추모전시관' /연합뉴스

 

9·11 이후 미국은 변했다

9.11 테러가 발생한후 며칠간 필자는 뉴저지주에 있는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뉴욕시 롱아일랜드 시티에 있는 사무실에서 밤과 낮을 보냈다. 뉴욕시는 맨해튼으로 들어가는 길을 모두 봉쇄하고, 뉴저지주와 뉴욕시를 연결하는 다리와 터널을 모두 폐쇄했기 때문이다.

며칠후 가까스로 집에 들어가는데, 짚앞에 놀던 초등학생쯤 될까, 어린 미국아이들이 필자에게 공격하듯이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미국인이 아닙니까.”

“그래, 나는 미국인 아니다.”

“그린카드(영주권)를 가지고 있는가요.”

“아니, 나는 한국에서 온 외국인이다. 그런데 그걸 왜 물어보니.”

“집집마다 모두 성조기를 게양했는데, 당신 집만 기가 없지 않는가요.”

그제서야 어린 아이들이 나의 국적을 물어보는 이유를 알았다. 아랍인 테러리스트의 공격으로 수천명이 희생당해 모든 미국인들이 추모의 물결에 휩쓸려 있는데, 유독 필자의 집만 성조기가 걸려 있질 않으니, 어린아이들은 그집 주인의 성향을 의심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알아듣기 쉽게 설득했다.

“우리 한국은 테러를 다른 어느 나라보다 싫어한단다. 한국 사람들도 미국이 추구하는 테러와의 전쟁을 지지하고 있단다.”

그제서야 그 어린아이들은 오해를 풀고, 나를 집에 들어가게 풀어(?) 주었다.

테러 참사 직후 미국은 성조기 물결로 뒤덥혔다. 미국인들은 승용차의 안테나에 꽂은 것도 모자라 차창에도 덕지덕지 미국기를 붙여놓고 다녔다. 성조기를 게양하지 않거나 차에 꼽고 다니지 않으면, 필자가 당한 것처럼 비애국적인 것으로 오해 받거나, 비미국인으로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 펜타곤이 테러 공격을 받은후 미국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애국심으로 가득 찼다. 성조기를 만드는 공장은 참사 이전보다 십여배 넘는 주문에 밀려 밤샘작업을 벌렸고, 조지 워싱턴 다리에 걸려있는 대형 성조기는 외국인인 필자가 보기에도 가슴을 징하게 만들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연설하는 곳마다 청중들은 ‘USA’를 외쳤고, 테러로 숨진 사람들을 위한 헌금이 밀려들어 뉴욕시는 정해진 창구를 이용해달라고 부탁하는 실정이었다. 학교에선 미국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토론되고, 아침 조회사간에는 성조기를 흔들며 ‘신이여, 미국을 가호하소서(God Bless the USA)’를 합창했다.

정치인들도 단결했다. 1년전 법원 결정에 의해 마지못해 부시에게 대통령 자리를 주어야 했던 앨 고어 민주당 대통령 후보도 “부시는 나의 총사령관’이라며, 국민들의 단결을 호소했고, 민주당 지도부는 “미국에는 야당이 없고, 오직 미국만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예산 집행에 깐깐하기로 유명한 의회는 전쟁 및 복구 비용을 행정부 안보다 2배 많은 400억 달러로 늘려 통과시켰고,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세계무역센터의 복구 현장을 찾아 격려하고, 기도회에 참석, 미국인들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그러나 미국의 애국심 열기는 또다른 독선을 만들어 낼 소지를 남겨두었다. TV 방송 토크쇼에서 한 참석자가 애국적 정서에 맞지 않은 말을 했다고 해서 그 프로그램 광고주로부터 항의를 받는가 하면, 백악관 대변인은 일부 언론이 군에 대해 비판적 표현을 하고 있다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한 대학 교수는 9.11에 대해 이상한 발언을 했다고 해서 대학측으로부터 경고를 받았고, 부시 대통령을 비판한 지역 신문기자들이 직장에서 쫓겨났다. 참사 현장을 훌륭한 예술작품이라고 표사한 독일의 한 작곡가는 뉴욕 공연이 취소되는 보복을 당했다.

1812년 미-영 전쟁에서 영국군에 의해 처음으로 본토 공격을 당한 미국인들의 애국심은 이해할만 일이다. 하지만 그 애국심이 대외정책으로 표현되면서 강대국의 독선 또는 오만으로 변질됐다.

9.11 이후 미국은 완전히 다른 나라로 변했다. 9.11 이전의 세계와 그 이후의 세계는 같을 수 없었다. 테러 이후 모든 게 다르다는 생각이 미국 지배층의 머리를 사로잡았다. 앨 고어 전부통령의 안보담당 보좌관이었던 리온 퓨어스는 2001년 9월 11일이 “기원전(BC)과 기원후(AC)를 가르는 것만큼의 역사적 기점”이라고 정의했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9/11을 계기로 “냉전도 끝나고, 포스트 냉전도 끝났다”면서 앞으로의 세계를 ‘포스트-포스트 냉전(post-post cold war)’라고 규정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미국 지성인들 사이에는 더 이상 미국은 ‘잠자는 사자’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9.11은 미국의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미국인들은 허탈감과 분노를 애국심으로 승화했고, 법원에 의해 당선이 결정된 부시 대통령은 확고한 리더십을 확보했다. 미국은 중앙아시아 산악국가 아프가니스탄을 공격, 알카에다 테러세력과 이를 보호하던 탈레반 정권을 와해시켰고, 어제의 적이었던 미국과 러시아ㆍ중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우방국으로 발전했다.

많은 역사학자, 사회학자, 저널리스트들은 테러를 계기로 새로운 밀레니엄과 21세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평가했다. 80년대말 베를린 장벽 해체를 계기로 동서 냉전 체제가 종식되고, 그 공백을 미국 중심의 국제자본시장 즉, 글로벌 단일 시장의 메커니즘이 메웠다. 그러면 9/11 이후 세계는 어떤 세계일까. 다름 아닌 ‘아메리카 제국주의’일 것이다.

로렌스 서머스 하버드대 총장은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재무부 장관을 지낼 때 “역사적으로 미국은 초강대국으로, 제국주의적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 유일한 나라”라고 강조한 바 있다. 자본에 의한 세계 지배체제가 형성된 시절의 미국 재무부 장관의 말로서는 적절할른지 모르지만, 테러 이후 미국 지식인들은 강대국이 무력 사용을 자제하다가 수천명의 목숨을 잃은 현실에 주목했다.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동유럽의 무정부 질서가 테러의 온상이 되고, 무법자들은 미국을 타깃으로 공격해 올 가능성이 훨씬 높아졌다. 9/11 테러는 클린턴 대통령 시절의 방임주의의 결과이고, 수십명에 불과한 테러 조직이 핵무기 이상의 파괴력을 보유한 현실에서 미국은 테러리스트가 숨어있는 어느나라든 선제 공격해야 한다는 주장이 먹혀들었다. 테러 직후 부시 대통령이 의회에 제출한 국방비 증액 법안이 실현되면, 미국의 군사력은 전세계 100여개 국가의 군사력을 합친 규모로 커지게 된다.

▲ 2001년 9월11일 백악관에서 대책을 논의 중인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딕 체니 전 부통령./연합뉴스

 

“오늘은 진주만” 미국인들은 9·11을 기억한다

3,000명에 가까운 미국인의 목숨을 앗아간 9·11 테러 14주년을 맞아 미 전역에서 추모 물결이 일고 있다.

기념일을 하루 앞둔 10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섕크스빌에서 9·11 테러 때 납치됐던 비행기 4대 중 하나인 유나이티드항공 93편의 희생자를 기리는 '플라이트93 국립추모전시관'이 문을 열었다. 당시 탑승한 승객과 승무원들은 미 의회 의사당을 공격하려던 테러범들과 맞서 싸워 섕크스빌의 들판에 비행기를 추락시켜 더 큰 피해를 막았다.

전시관은 이 항공편 희생자 40명 전원의 사진을 걸고, 뉴저지에서 샌프란시스코로 향하던 이 항공편의 원래 경로를 가리키는 검은색 보도를 만들었다. 14년 전 신문 기사와 테러 당시 상황을 전하는 방송 화면, 탑승자들이 남긴 마지막 메시지 등도 전시됐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수백 명이 참석한 추모전시관 개관식에서 톰 울프 펜실베이니아 주지사는 탑승객과 승무원들을 가리켜 "미국 역사의 방향을 바꾼 사람들"이라고 말했고, 샐리 주얼 내무장관은 "그들은 현대의 영웅들"이라고 극찬했다.

11일에는 뉴욕의 그라운드제로와 워싱턴의 국방부 본부(펜타곤) 등 미국 내 곳곳에서 추모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테러 14주년을 맞아 당시 백악관의 긴박했던 상황을 보여주는 이메일도 새롭게 공개됐다. 뉴욕타임스(NYT)의 정보 공개 요청에 따라 '조지 W 부시 대통령 도서관·박물관'이 내놓은 2001년 9월11일 백악관 직원들이 주고받은 이메일에는 평화롭던 일상이 국가비상사태로 급변하는 장면이 담겨있다.

부시 전 대통령의 책사로 불리는 칼 로브는 그날 오전 5시37분 "모든 통신사 뉴스를 다 보내라"며 언론 보도를 챙겼고, 짐 윌킨슨 보좌관은 6시59분 부시 전 대통령의 교육 관련 행사에 관한 주요 연설내용을 메일로 돌리는 등 평소와 다름없이 일과를 시작했다. 그러나 사건 발생 직후인 8시56분 터커 에스큐 백악관 공보국장은 "CNN을 틀어라"고 급박한 메일을 보냈고, 그날 예정된 각종 회의를 취소한다는 연락이 오고갔다. 메리 매털린 딕 체니 부통령 보좌관은 보수 성향의 언론인인 데이비드 호로위츠로부터 "오늘은 진주만"(Today is Pearl Harbor)라는 메일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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