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NOW] 베네수엘라 난민들의 남루환향(襤褸還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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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NOW] 베네수엘라 난민들의 남루환향(襤褸還鄕)
  • 권영일 애틀랜타 통신원
  • 승인 2019.07.11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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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전벽해'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 뒤바뀐 상황
석유 매장량 3천억배럴 베네수엘라의 몰락...
좌파포퓰리즘 정치 불안...민초들 거리로 내몰려
자유시장경제 도입 콜롬비아 OECD 가입
권영일 애틀랜타 통신원.
권영일 애틀랜타 통신원.

[오피니언뉴스=권영일 애틀랜타 통신원]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Bogota)시, 적도 근처지만 해발 2700m 고지라 그다지 덥지 않다. 러시아워가 훨씬 지난 오전 11시임에도 불구하고 거리엔 차량들이 붐빈다.  아닌 게 아니라 800여만 명이 모여사는 이 도시는 몰려드는 차량들로 인해 하루종일 혼잡하다. 

교통신호등에 빨간 불이 켜지자 차량들이 길게 늘어선다. 순간 젋은 남녀 한쌍이 횡단보도로 뛰어 들더니 공중제비를 돈다. 이 때 일행 가운데 한 명은 신호를 기다리는 차량 사이를 누비며 적선을 구한다.

“베네수엘라에서 건너온 난민들입니다. 이들 대부분이 구걸행위로 하루 끼니를 때우고 있습니다.” 동승한 현지 교민은 설명한다. 실제  시내 4거리마다 베네수엘라 난민들이 구걸하는 모습이 보인다.

김두식 주콜롬비아 대사는 “약 20만명 정도의 베네수엘라 난민이 보고타에 유입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콜롬비아 정부도 이들을 위한 대책마련에 상당히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난민들로 인한 치안불안은 생기지 않을까? 김 대사는 이와 관련, “보고타의 가장 큰 문제가 교통과 치안”이라고 지적했다. 콜롬비아는 지난 2015년 이후 베네수엘라가 정정불안과 경제 파탄에 휘말리면서 밀려드는 난민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는 것이다. 두 나라가 넓은 국경선을 접하다 보니, 콜롬비아는 베네수엘라 난민들의 첫 도착지가 되고 있다. 

​집없는 천사들.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 거리 곳곳에선 국경을 넘어온 베네수엘라출신 난민들을 볼 수 있다. 난민 가정의 아이들은 학교갈 생각은 꿈도 못꾸고 밖에서 먹고 자고, 뛰어논다. 사진=권영일 통신원.
​집없는 천사들.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 거리 곳곳에선 국경을 넘어온 베네수엘라출신 난민들을 볼 수 있다. 난민 가정의 아이들은 학교갈 생각은 꿈도 못꾸고 밖에서 먹고 자고, 뛰어논다. 사진=권영일 통신원.

보고타에서 비행기로 한시가 간 정도 떨어진 페레이라(Pereira)도 상황은 비슷하다. 안데스 산맥 줄기의 작은 골짜기에 위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난민들의 발길은 여기까지 이어진다.

페레이라 시내 신호등 주변에는 어김없이 베네수엘라 난민들이 보인다. 어떤 난민은 서있는 자동차 앞면 유리창에 베네수엘라 지폐를 부친다. 종이조각보다 가치가 없는 이 지폐를 기념으로 가지는 대신 동전 하나를 달라는 것이다.

베네수엘라 정치불안...민초들 거리로 내몰려  
난민 대부분 구걸로 끼니 때워

디자인이나 재질 면에선 콜롬비아 지폐보다 훨씬 세련되고 우수하지만 그 가치는 현재로선 비교가 되지 않는다.

낙엽을 ‘폴란드의 망명지폐’라고 표현한 김광균 시인의 추일서정이 떠오른다. 일부 난민은 사탕봉지를 구매해 거리에서 낱개로 판다. 말이 행상이지 구걸행위다. 

“저 사탕봉지들은 모두 우리 가게에서 구입해 간 것입니다. 우리는 더 팔아서 좋지만, 한편으론 마음이 좀 씁쓸하네요.” 페레이라서 잡화도매상을 하고 있는 소니아 김씨의 말이다.

디자인이 아름다운 베네수엘라 지폐들. 하지만 가치는 낙엽이나 다름없다. 사진=권영일 통신원.
디자인이 아름다운 베네수엘라 지폐들. 하지만 가치는 낙엽이나 다름없다. 사진=권영일 통신원.

이 모두가 정치 불안이 가져온 민초들이 겪는 비참한 모습이다. 베네수엘라는 최근 극심한 경제난과 더불어 ‘한 나라 두 대통령’이라는 초유의 정치적 분쟁을 겪고 있다. 수많은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최근 생활필수품인 전기와 식수 공급마저 차단되자 주변국으로 탈출하고 있다. 국제이주기구와 유엔난민기구는 베네수엘라를 떠난 인구가 34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 가운데  130만 명이 콜롬비아에 머물고 있다는 게 콜롬비아 정부의 추산이다. 이런 규모는 터키에 있는 시리아 난민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규모다. 이에 따라 콜롬비아는 최근 급격하게 증가하는 베네수엘라 난민 문제 해결에 국제사회의 지원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카를로스 올메스 트루히요 콜롬비아 외무장관은 최근 성명에서 "매일 평균 6만3000명이 콜롬비아로 들어와서 2500명이 그대로 머문다"면서” 더 많은 난민이 들어오게 되면,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며 국제사회 지원을 호소했다.

그는 베네수엘라 사태가 계속 악화하고 있어 국경을 넘는 베네수엘라인의 수도 증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유엔 국제이주기구(IOM)는 300만명가량인 남미 지역의 베네수엘라 난민 수(지난해 12월 통계 기준)가 올해 말에는 540만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트루히요 장관은 이에 따라 베네수엘라 니콜라스 마두로(Nicolas Maduro)  정부에 대한 추가 제재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연대와 정치적 행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콜롬비아 보고타 거리에서 행상을 하고 있는 베네주엘라 난민들. 이들은 난민들 중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사진=권영일 통신원.
콜롬비아 보고타 거리에서 행상을 하고 있는 베네수엘라 난민들. 이들은 난민들 중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사진=권영일 통신원.

'상전벽해'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

앞으로 베네수엘라 사태는 어떻게 흘러갈까?

외신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파와 이에 반대하는 야당지도자 구아이도(Juan Guaido)파가 조만간 카리브해의 바르바도스(Barbados)에서 2차 회동을 할 예정이다. 양측은 이 자리에서 베네수엘라 사태를 대화와 헌법에 따라 해결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다.

하지만 상황은 밝지않다. 지난 5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예비회담에서도 양측 주장이 팽팽히 맞서 합의 없이 끝난바 있다. 구아이도측은 세가지 조건을 내걸고 마두로 정권을 압박하고 있다. 마두로 정권의 권력남용의 종식, 과도정부 수립, 그리고 국제기구 감시하의 자유선거.
현재 미국을 포함한 대부분 라틴 아메리카국가 등 세계 50개 국가가  구아이도를 정통 지도자로 인정하고 있다.  

반면, 베네수엘라 군부와 중국 러시아 등은 마두로 대통령을 지지하고 있다. 1830년까지만 해도 한 국가(Great Colombia)였던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

분리된 이후에는 베네수엘라가 더 잘 살았다. 3000억 배럴의 석유 매장량 덕분이다. 베네수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콜롬비아의 4배 정도에 이르렀다. 이 때 많은 콜롬비아인들이 엘도라도를 찾아 베네수엘라로 이주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역전됐다.

두나라의 국운은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자유시장경제를 택한 콜롬비아는 최근 멕시코, 칠레에 이어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에 가입했다. 반면 지난 1970년대 한창 끗발을 날리던 베네수엘라는 좌파 포플리즘에 편승한 탓에 처참하게 몰락했고, 정치는 극도로 혼란스럽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적어도 콜롬비아에선 베네수엘라 난민에 대해 크게 적대감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

“난민 가운데 상당수가 예전에 베네수엘라로 이주했던 사람들의 후손들”이라며, “그나마 반난민 정서가 많지 않은 편”이라고, 30년째 콜롬비아에서 살고 있는 구본석 씨는 설명했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까? 엘도라도 국제공항을 이륙하면서 마음이 착잡하다.

● 권영일 미국 애틀랜타 통신원은 한국외국어대 불어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에서 광고홍보학을 전공했다. 1985년 언론계에 발을 내딛은 후, 내외경제신문(현 헤럴드경제신문)에서 산업부, 국제부, 정경부, 정보과학부, 사회부 기자를 거쳐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와 현재 애틀랜타에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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