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日 수출규제에 잊혀진 강제징용 피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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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日 수출규제에 잊혀진 강제징용 피해자들
  • 한동수 기자
  • 승인 2019.07.08 18:49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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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이란 무엇인가
분열보다 하나로 뭉치는 결기 보일 때
日 규제품목 명칭보다 중요한 이름
고 여운택 ,고 신천수, 고 김규수, 이춘식옹
강제징용 피해자들 잊지 말아야  
한동수 금융산업부장
한동수 금융산업부장

[오피니언뉴스=한동수 기자] 애국(愛國)이라는 단어는 늘 추상적이었다. 마흔 중반을 넘은 사람들이라면 알 만한, 해질 무렵 동네 대형 스피커서 나오는 애국가를 들으며 가슴에 손을 얹는 행동이 애국이라면 애국이었다.

애국이 너무 일상적이어서 숭고함을 잃게 된 후 애국은 개인의 영달과 이익의 도구로 변질되기도 했다. '내가 잘되는 게 애국'이라는 착각과 오판이 난무한 세월도 지내왔고 지금도 그렇게 지내고 있다.

현실을 돌아보자. 일본 아베 정부가 지난 4일부터 대한민국에 대해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를 본격 시행했다.

지난 2004년이후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일본이 정한 화이트국가로 분류됐던 한국이 그 지위를 상실한다는 것에서 일본의 수출규제는 출발한다. 쉽게 말해 지난 4일 이후 일본 기업들은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만 반도체 소재를 한국에 수출할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일본 정부가 이런 결정을 내놓자 한국에선 난리가 났다.

그 호들갑은 내일 당장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가 하더니 이제는 곧 현대자동차가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다는 식으로 번지고 있다.

그래픽=연합뉴스.
그래픽=연합뉴스.

공격해오면 되갚아줘야 하는 것 아닌가

지난달 30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한해 판문점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났던 날, 필자는 인터넷TV를 통해 지난해 미국에서 방영된 ‘트럼프 미국인의 꿈(원제 TRUMP: An American Dream)을 봤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으로 승승장구하던 도널드 트럼프는 세금문제로 뉴욕시장과 맞붙는다. 어김없이 그는 뉴욕시장을 공격한다. 심지어 트럼프는 “공격을 받으면 두배로 갚는다”고 말한다. 부동산 개발업자가 뉴욕시장에게 할 수 있는 얘긴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도 그는 그렇게 말했다. 이 문제로 TV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된 트럼프는 공개홀에 나와있던 시민으로부터 “공격을 받으면 2배로 응징한다는 게 정당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받는다.

그는 짧게 답했다. “그게 뭐 잘못된 것인가요? 당연한 것 아닌가요?” 그리고 그는 박수를 받았다. 적어도 미국인에겐 상대가 권력집단일지라도 공격을 받으면 무릎꿇지 말고 되갚아야 한다는 게 하등 이상할 게 없나 보다. 

일본 아베총리는 지난 4일 일본산 일부품목의 대(對)한국 수출규제가 실시된 후 NHK프로그램에 출연해 “한국이 국제법을 어겨 이같은 조치를 취했다”면서 “공은 이제 한국으로 넘어갔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일본 아베총리는 지난 4일 일본산 일부품목의 대(對)한국 수출규제가 실시된 후 NHK프로그램에 출연해 “한국이 국제법을 어겨 이같은 조치를 취했다”면서 “공은 이제 한국으로 넘어갔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일본이 짜놓은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머리 위로 미사일이 날라 다녀야만 전쟁이 아니다. 21세기에는 무역도 전쟁이다. 일본 아베 정부가 한국에 수출 규제라는 공격을 감행했다.

대다수 국내 언론은 우리 경제가 입을 피해부터 계산하고 있다.

여러 언론은 그동안 아무런 대비를 안했다고 우리 정부를 거꾸로 공격하고 있다. 전쟁이 터졌는데 우리의 피해가 얼마 되고 그동안 왜 전쟁을 막지 못했는가를 따지고 있다.

한국 언론이라면 일본의 독점적 지위 품목의 강력함과 동시에 이로 인해 한국산 제품이 일본으로 수출되지 못할 때 입을 일본 기업의 피해는 무엇인지 짚어줄 법도 하지 않은가.

보다 궁극적으로는 '자유무역의 정신'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졸렬한 아베 정권의 태도를 비판해야 마땅했다. 지금이 국가가 무역을 통해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국제무역 시대가 아닌, 자급자족 시대란 말인가.

박재근 반도체 디스플레이 학회장(한양대 교수)은 “한국의 디스플레이 제품이 일본에 수출되지 않을 경우 일본 소니나 파나소닉의 피해도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의 이런 진단은 일본의 전자·반도체 소재가 세계시장 점유율 70%니 90%니 하는 보도만 난무하는 여론전의 수면 아래로 묻히고 있다.

또 지난 주말 유력 경제지에선 일본이 이런 결정을 내리는 동안 우리 기업들이 올초부터 대책 마련을 요구했는데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했는가라고 질타했다.

언론들은 3권 분립이 엄연한 민주공화국에서, 3심제가 정립된 사법체계에서 내린 대법원의 판결을 외국 정부가 정치적으로 폄훼하고 이를 빌미로 무역분쟁을 일으키는 행위가 올바르다고 말하는 것인가.

지난해 10월 대법원 판결이 났을 때, 정작 움직였어야 할 곳은 일본 정부였다.

한국 대법원의 판결문은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 협정의 효력을 인정했다는 사실 ▲그러나 강제징용 피해에 따른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협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판단 ▲일본이 강제징용등 불법행위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법행위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을 일본 정부가 인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담고 있다.

때문에 일본 정부는 불법행위가 있었음을 인정함으로써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문제를 해결하는 자세를 취했어야 했다.

몇몇 언론은 대신 전쟁으로 인한 피해와 전략적이지 못했던 우리의 태도를 탓하기에 급급했다.

이들 언론의 논리라면 강제징용 관련 대법원 판결을 전후해 우리 정부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이란 두 가지 정도 아니었을까.

우리나라 대법원 판결을 뒤엎고 일본 정부에 굴욕외교를 하든가, 정부가 대법원 판결이전 사법부에 외압을 가해 강제징용 판결에 의견이라도 냈어야 했다고. 전자는 거론할 가치도 없다 치고 후자도 민주공화국에서 가당키나 한 일인가.

일본이 수출규제라는 공격을 해왔다. 무역전쟁도 전쟁이다. 어떻게 전선을 구축하고 어떻게 이길 것인가를 생각해야 할 때다. 일본의 소재 산업이 없으면 우리 기업들이 하루 아침에 망할 거라고 국민들에게 얘기할 때가 아니다. 애국할 때다. 적어도 대한민국 언론과 국민이라면 말이다.  잊지말아야 할 이름들이 있다.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30일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청구소송 재상고심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 재판의 원고 4명 중  유일한 생존자인 이춘식 씨가 이날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판결 소식을 들은 후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30일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청구소송 재상고심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 재판의 원고 4명 중 유일한 생존자인 이춘식 씨가 이날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판결 소식을 들은 후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故 여운택, 故 신천수, 故 김규수, 이춘식 옹 

지난 2005년 강제징용 손해배상 소송을 낸 위 4명 중 2018년 대법원 판결까지 살아남은 이는 이씨 뿐이다.

이들이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으로 고초당했던 그 아픔은 왜 일본의 수출규제 앞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는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름은 일본이 수출규제에 나선 3개 품목이 아니라 이씨를 비롯한 4인, 아니 강제징용을 당했던 수많은 한국인들의 이름들이 아닌가.

촛불집회때 베스트셀러로 떠올랐던 ‘지금다시, 헌법’이라는 책이 있었다. 나라가 어수선하자 헌법을 제대로 읽고 제대로 주권을 행사하고자 했던 시민들의 마음이 헌법관련 서적을 이례적으로 베스트셀러에 올려 놓았다.

그런 국민이라면 이제 일본 수출규제 관련 품목이 뭔지, 어디다 쓰는 물건인지 알려고 하기에 앞서 일제 강점기의 종말을 고한 '샌프란시스코협정 4조'를 읽어보자. 또 이미 공개된 지난 2018년 10월 강제징용관련 대법원 판결문을 숙독하자.

어찌 문제의 첫 단추인 강제징용 관련 대법원 판결문은 온데 간데 없고 일본이 수출규제에 들어간 품목 3개가 더 회자되고 있는지, 이것이 일본의 경제 공격을 받고 있는 한국의 제대로 된 모습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젠 애국하자.

서울 세종로 광장에 커다란 동상으로 우뚝 서 있는 충무공의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상유십이·尙有十二)"가 자랑스럽다던 그 마음으로 한데 뭉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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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수 2019-07-09 10:48:58
문제의 시작을 잊어선 안되죠.

미래세대 2019-07-08 19:38:44
좋은 글/기사 퍼가겠습니다.

이름 2019-07-08 23:31:29
자극적인 내용으로만 도배된 기사만 주로 접하다보니, 본질은 흐려지고 감정만 남게되는데, 차분하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