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이야기] 늑대에게 삶의 지혜 배운 변호사...『늑대의 지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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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이야기] 늑대에게 삶의 지혜 배운 변호사...『늑대의 지혜』 리뷰
  • 강대호 북칼럼니스트
  • 승인 2019.07.05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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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변호사 엘리 H. 라딩어의 생태 에세이
변호사 그만두고 야생늑대 관찰 위해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行
길 잃을 때 나침반이 되는 늑대의 지혜를 발견하다
'늑대의 지혜'. 생각의 힘 펴냄.
'늑대의 지혜'. 생각의 힘 펴냄.

 

[오피니언뉴스=강대호 북칼럼니스트] 어릴 때부터 ‘시튼 동물기’를 좋아했다. 동물을 좋아한 나는 자라면서 여러 버전의 번역본을 읽었다. 그중에서도 늑대 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늑대왕 로보’가 가장 인상 깊었다. 미국 어느 지방, 목장에서 살던 가축들과 사람들을 떨게 만든 늑대 무리 이야기다.

악명 높은 무리의 리더를 잡기 위해서 여러 사냥꾼이 도전하지만 실패한다. 그렇지만 사냥꾼이기도 한 시튼 일행이 수컷 리더의 아내를 새끼 늑대로 유인해서 잡는다. 그들은 암컷을 미끼로 수컷 리더를 사냥하려 한다. 암컷 늑대 브랑카를 잊지 못한 수컷 늑대 로보는 사냥꾼의 유인에 순순히 사로잡히고, 식음을 전폐하고, 자존심과 품위를 지키며 죽어간다.

늑대가 보여준 순애보적인 이야기가 어렸던 나와, 사춘기를 지나던 나를 흔들었었다. 당시는 그 이야기가 동화인 줄 알았다. 시튼 동물기가 동화로 알려졌으니까. 그렇지만 자라면서 다른 버전의 책을 읽어 보니 모든 이야기는 시튼의 경험을 기록한 거였다. 사실에 기반을 둔 동물 이야기였던 것. 그래서 더 인상이 깊게 남았다. 물론 실제로도 그럴까 하는 의문도 있었지만.

그런데 그런 늑대 이야기가 사실이었음을 증명하는 책이 있다. ‘엘리 H. 라딩어’가 쓴 '늑대의 지혜'다. 저자는 독일에서 변호사였지만 늑대가 좋아서 미국 옐로스톤에서 과학자들과 함께 야생 늑대를 관찰하고 기록을 했고, 그 경험을 책에 담았다.

 

가족을 소중히 여기며 서로를 돌보는 늑대

책에서 ‘시튼 동물기’에서 본 내용이 실제로 그려졌다. 옐로스톤에 사는 어느 늑대 무리의 암컷 리더가 사라지자 그 무리 모두가 울부짖으며 찾아다니는 모습. 배우자인 수컷 리더가 제일 크게 울부짖는 모습. 끝내 암컷 리더가 죽임을 당한 모습으로 발견되자 무리가 함께 슬퍼하는 모습. 당연히 수컷 리더가 제일 슬프게 울부짖었다고.

그 수컷 리더가 몇 주 후 갑자기 죽었다. 그렇지만 과학자들은 죽음의 원인을 찾진 못했다. 다친 곳도 없고 병도 없었다. 다만 상심(傷心)이 원인이 되었을 것이라는 추측만 남겼다고.

저자는 책 곳곳에서 야생 늑대의 생태를 눈에 보여주듯 이야기한다. 그 표현에 늑대를 사랑하는 마음이 흠뻑 배어있다. 저자는 인간 세상에서 인간에게 실망하고 상처받은 마음을 자연에서 늑대에게 위로받는다.

현재 옐로스톤에 사는 늑대들은 미국이 고향이 아니다. 100년 전쯤 마지막 늑대가 사살되었으니까. 그렇지만 포식자가 없어진 옐로스톤이 늘어난 초식 동물 때문에 황폐해지자 1995년 즈음에 캐나다에서 늑대 31마리를 데려왔다고. 그들의 후예가 지금 옐로스톤을 활보하고 다니는 것.

물론 이주한 모든 늑대가 무리를 이루고 번성한 건 아니었다고. 저자는 옐로스톤에서 크게 번성한 몇몇 늑대 무리에게서 그 성공 요인의 공통점을 찾았다.

 

모든 늑대 가족의 성공 비결은 세 가지 기둥에 기반을 두고 있다. 첫째는 가족의 안녕을 위해 구성원 모두가 협동하기다. 둘째는 지속적인 대화와 함께하는 의식이다. 셋째는 강력한 지도력이다. (43쪽)

 

저자가 늑대에게서 가장 감동한 건 그들의 가족관계다. 자연에서 관찰한 모든 늑대 무리 구성원들은 각자 역할이 있었다. 나이 들어 약한 늑대라 하더라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새끼 늑대들은 엄마는 물론 이모들과 나이 많은 형제들이 함께 돌본다. 리더 늑대는 무리 모두가 먹이를 공평하게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한다.

늑대 무리 구성원들은 모든 행사에 힘을 합치지만 특히 사냥할 때 역할 배분과 협동이 더욱 도드라진다고. 사냥감을 모는 젊은 늑대, 매복하다 덮치는 늙은 늑대, 마지막 숨통을 끊는 리더 늑대. 이때 새끼가 아직 어리다면 사냥 나갈 때 굴을 지키는 베이비시터 늑대도 남겨둔다. 사냥뿐 아니라 다른 늑대 무리가 영역을 침범하면 역할을 나눠 헌신적으로 싸운다. 이때도 어린 늑대들은 어른 늑대들이 먼저 대피시킨다.

저자는 늑대를 이야기하다가 인간과 비교도 한다. 인간이 늑대에게서 배워야 할 것도 있지 않겠냐며 늑대가 보여주는 소통과 협동, 리더의 덕목 등을 예로 든다. 특히 늑대 무리가 늙은 늑대를 소중하게 대하는 모습에서 저자는 “인간도 노인을 포기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늙은 늑대를 이렇듯 소중하게 만드는 것은 경험이다. 이들은 살면서 경쟁자를 자주 만났고 가족 구성원이 싸우다가 죽는 모습도 목격했으며 스스로도 다른 늑대를 죽였다. (중략) 경험 많은 늑대가 무리 중에 있다면 이 무리가 과거의 지식으로부터 이득을 본다는 뜻이다. 이 경우에는 규모가 작은 무리도 큰 무리를 이길 수 있다. (79쪽)

 

저자가 ‘늑대의 지혜’라는 제목으로 (독일어 제목 ‘Die Weisheit Der Wolfe’도 늑대의 지혜다) 책을 쓴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해 보았다. 잔인한 포식자로 알려진 늑대지만 그건 자연의 이치이며 그런 늑대에게서 배울 게 있다고 저자는 책 곳곳에서 주장한다.

 

엘리 라딩어와 늑대의 모습. 사진=elli-radinger.de (작가 홈페이지)
엘리 라딩어와 늑대의 모습. 사진=elli-radinger.de (작가 홈페이지)

인생의 난제들을 만났을 때 늑대라면 어떻게 할까?

이 책은 내게 늑대를 보러 옐로스톤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게 했다. 나처럼 이 책을 읽고 늑대에 호기심 생기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저자는 늑대를 혐오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이야기한다. 책 곳곳에서 늑대를 향한 인간들이 내뿜는 혐오와 증오 때문에 불편해했다.

실제로 보호구역인 옐로스톤을 벗어난 늑대들이 계속 죽임을 당한다고. 동물들이 보호구역과 비보호구역을 구분하며 다니는 건 아니지만 일부 사냥꾼들이 미끼로 유인하기도 한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인간 문화에 자리 잡은 늑대 혐오 현상의 한 예로 동화 '빨간 모자'를 든다. 이야기 속에서 늑대가 은유하는 어둠과 악에 대한 불안이 현실 세계에서도 그대로 적용이 되었다고 말이다.

옛날 이야기와 다른 작품들도 마찬가지다. 늑대는 나쁜 캐릭터로 착한 캐릭터를 죽이는 무자비한 동물로 그려진다.

그렇지만 저자는 늑대의 생태를 바로 안다면 비극을 피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본인이 늑대 영역에서 오랫동안 무사히 지내지 않았느냐며. 직접 코앞에서 마주친 적도 여러 번이었지만 그 순간이 자신에게는 가장 놀랍고 행복했던 순간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렇다고 저자가 야생에서 늑대를 관찰한 모든 순간이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녀는 늑대를 관찰한다는 것은 “냉혹함과 잔인함, 찢어진 먹잇감, 피와 부러진 뼈를 견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혹시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만 보고 싶다면 ‘내셔널지오그래픽’에 나오는 자연 생태 다큐멘터리를 보라고 조언한다.

요즘 서점에 가면 늑대에 관한 책 여러 권이 눈에 띈다. 어떤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면 같은 키워드로 예전에 나온 책들이 창고를 벗어나는 모양인데 ‘늑대’도 그런 모양이다. 나는 그런 책들에 눈과 손이 갔다.

얼마 전, 어떤 철학자가 늑대와 함께 살며 얻은 인간의 본질에 대한 성찰을 쓴 '철학자와 늑대'를 읽었고, 이번 주에는 '늑대의 지혜'를 읽었다. 아마 며칠 있으면 '늑대가 온다'도 읽게 될 것이다. 한국인 야생동물 전문가가 몽골에서 늑대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사라진 한국 늑대 이야기도 담았다.

내가 늑대 이야기를 계속 읽는 이유를 생각해 본다. 우선 늑대라는 존재가 주는 날것의 매력이 좋다. 그리고 저자들 눈으로 바라본 늑대 세계가 인간의 본질을 생각해 보게 하고 인간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성찰을 준 것 때문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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