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한 칼럼] 죽는다는 것에 관하여: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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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한 칼럼] 죽는다는 것에 관하여: 자살
  • 김장한 울산의대·서울아산병원 교수
  • 승인 2019.07.03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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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한 울산의대 교수
김장한 울산의대 교수

[김장한 울산의대·서울아산병원 교수] 자살에 관한  서구의 개념은 '나쁜 행위'라는 것이다. 영어로 '자살을 하다'라는 말은  'commit suicide' 라고 하는데, 이것은  'commit homicide'처럼 같은 동사를 사용한다. '살인을 저지르다'와 같은 행동으로 자살을 보는 것이다.

공적 질서 침해있는 경우만 자살 금지

그리스 로마 시대는 자살로 인해 공적인 질서에 침해를 가져 올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경우에는 자살을 금지했다. 예컨대 죄수가 자살을 하게 되면, 국가의 형벌권에 침해를 가져온다. 군인이 자살을 하게 되면 국가를 지키는 직무에 침해가 발생하며, 노예가 자살을 하게 되면 소유주 재산에 침해를 끼치는 것이 된다.

하지만 존엄의 실천으로서 명예 자살은 인정됐다.  세네카(Lucius Annaeus Senaca)는 자유의 실천으로서 존재하는 자살의 모습을 글로 써서 남겼다. 그는 인간은 육체에 구속돼 있지만, 죽음으로써 노예 상태로부터 벗어난다고 했다. 그는 역모의 의심을 받고 네로 황제의 명에 의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황제 네로의 스승이었던 세네카(Seneca, 3BC?-65AD). 자살하라는 네로의 명령에 따라 발목의 혈관을 끊어 자살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황제 네로의 스승이었던 세네카(Seneca, 3BC?-65AD). 자살하라는 네로의 명령에 따라 발목의 혈관을 끊어 자살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로마 원로원의 소 카토(Cato the Younger)는 공화정을 옹호하며 카이사르와 싸우다 패하자 플라톤의 대화편 파이돈을 읽으면서 칼로 배를 찔러 자살한다. 후일 단테는 신곡에서 연옥의 섬을 지키는 수호자로 소 카토를 등장시킨다. 신곡에서는 자살자들이 모두 지옥에 가있지만 소 카토만큼은 예외였다.

토마스 아퀴나스 "신만이 삶과 죽음을 주관...살아있는 것들은 살아 있도록"

중세 유럽은 가톨릭이 지배하는 시기였다. 8세기 중반 영국의 요크 대주교는 자살한 자는 교회에서 장례 의식을 치르지 못하도록 했다. 13세기 토마스 아퀴나스는 5세기 성자  어거스틴의 말을 빌려 "신만이 삶과 죽음을 주관하기 때문에 자살은 살아있는 것들을 살아 있도록 하신 신의 섭리를 거역하는 것이 된다"고 정리했다.

자살자는 파문당했으며 영혼은 지옥에 갔다. 시체는 매장 전 거리에서 질질 끌려 다녔고, 영혼이 갈 곳을 찾을 수 없도록 거리의 교차로에 묻었고, 심장에 말뚝을 박아서 심판의 날에 하늘로 올라갈 수 없도록 했다.

세속적으로 농노가 귀족에 속하고, 귀족은 왕에 속하는 중세 봉건 제도하에서 자살은 노동력을 침해하는 것으로 절도와 같은 재산범죄였다. 그래서 왕은 자살에 대한 손해를 자살한 자의 재산에서 우선 압수해 해결했다.

영국의 경우 일반적이지 않은 사망 사건이 발생하면 왕은 관리를 파견해 살인, 자살, 사고사를 판단하도록 했는데, 결과에 따라 살인은 살인자의 재산을, 자살은 자살자의 재산을 몰수해 손해를 배상받았다. 

이때 파견된 관리는 ‘coroner(왕을 의미하는 crown에서 나온 단어)라고 했으며 현재는 검시관이라고 해 법의학 전문가를 의미하는 단어가 됐다.

자살자의 남은 배우자와 자식들은 한 푼도 없는 빈털터리 신세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작은 마을에서는 주위 사람들이 자살을 사고사라고 위증하기도 했다. 그래서 기록에 ‘자신의 칼 위로 넘어지면서 칼에 찔려 사망했다’는 기록이 나오기도 한다.

사망한 자가 악마에게 홀려서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죽었기 때문에  사고사라는 주장도 인정됐다. 예컨대 물에 빠져 죽은 경우는 ‘급성 발열이 있었고,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야밤에 집을 나가서 실족해 강에 빠진 것이다’라는 주장이다.

사망 당시에 제 정신이 아니었다는 주장이 항상 인정된 것은 아니었다. 자살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목을 매는 방식은 줄을 준비하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제 정신이 아니었다고 인정받기가 쉽지는 않았다고 한다.

악마의 영향에 의해 목을 매는 행위에 이르게 되었다는 설명을 하고 있는 그림. 자살이 아니라 사고사라는 주장이다. 출처= Rappresentatione della passione. Florence, 1520.
악마의 영향에 의해 목을 매는 행위에 이르게 되었다는 설명을 하고 있는 그림. 자살이 아니라 사고사라는 주장이다. 출처= Rappresentatione della passione. Florence, 1520.

자살의 탈종교화는 계몽주의 시대부터 시작된다.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자살을 비판하기도 옹호하기도 했다.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은 유럽의 많은 청년들이 소설에 묘사된 주인공 베르테르의 옷차림을 따라하기도 했는데, 베르테르를 모방한 자살도 유럽 전역에 번져나갔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도 이집트 원정 중에 이 책을 가지고 다니며 읽었다고 한다.

"자살은 정신질환, 자살자는 보호되어야" 인식 생겨나

자살을 정신 질환으로 보게 된것은 정신의학의 영향이다. 가톨릭 교리에 의하면, 삶의 고난은 신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견뎌야 할 의무가 있다. 그래서 남편과 사별한 과부가 슬픔을 못 이겨서 자살을 했다면, 그것은 비도덕적 행위가 된다. 하지만 의학적으로는 급성 우울증이 발병한 경우이기 때문에 자살은 질병에 의한 것이고 죽음에 대한 책임을 환자에게 돌릴 수 없게 된다.

또한 에밀 뒤르켐은 통계적 방법을 이용해 자살 원인을 사회적 압력이라는 외부적 요인이 작용한 결과라고 보았다. 이  단계에 가면 각국의 형법은 자살을 범죄가 아닌 것으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우리 형법 역시 자살죄를 처벌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살에 관여하는 자는 자살  교사 또는 방조의 죄로 처벌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자살자는 보호되어야 할 존재이기도 하다.

현대에는 환자의 생에 대한 자기결정권 논쟁 일어 

현대 의학에서는 자살에 대한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어떻게 인정할 것인가라는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말기 암환자와 같이 사망이 멀지 않은 경우(입법에 따라서 6개월 이내에 사망할 것으로 예측되는 경우)에 자신이 스스로 자살할 수 있도록 의사가 극약을 처방해 주는 것을 의사조력 자살이라고 한다.
 
미국의 워싱턴, 오레곤,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입법을 통해 이런  행위는 처벌하지 않고 있다. 극약을 스스로 먹을 힘이 없어서 주위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죽기를 선택한 경우라면, 스위스의 디그니타스(Dignitas)라는 단체를 찾아간다.

스위스 법원은 의사의 진료 기록을 바탕으로 자살을 허락하며, 이 경우 의사조력 자살은 면책받게 된다.  위 두 가지 사례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의사는 자살 관여죄로 처벌받게 된다.

지속적 식물상태 환자의 경우 인공호흡기를 떼기 위한 논쟁은 이미 소개한 바 있고, 이를 위해서는 법원을 통한 생존시 의사 확인 것과 같은 일정한 법적 절차를 밟는 것이 일반적인 절차이다.

우리나라는 2017년부터 일명 '연명의료결정법'을 제정했다. 대중 매체에서는 이 법에 의한 연명치료 결정에 대해 큰 의문을 제기하지는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이 법은 말기 환자와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를 구분하면서,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는 죽음이 임박한 자를 의미하며 이런 경우에 한해 인공호흡기 제거와 같은 연명치료 중지를 인정되고 있다.

한국 '연명의료결정법' 시행...법대로 적용되고 있을까 의문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말기 암 환자(의사조력 자살 경우에 해당하는 6개월 이내에 사망할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  또는 지속적 식물상태 환자(이런 경우를 미리 상정하여 연명의료 중지 의사를 미리 문서로 기재한 경우라고 하더라도)들에 대해 연명의료 중지하는 것을 불법화하고 있다. 입법을 통해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축소하고 있는데, 위헌의 소지가 있다.

이 법이 시행할 당시에 법조계, 의료계 일부에서는 많은 시행 착오가 있을 것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별 문제 없이 시행되고 있다. 어떤 이는 이런 비판이 쓸데없는 기우였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필자는 과연 이 법이 문구대로 적용되고 있는가라는 우려가 존재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 김장한 울산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서울아산병원 교수(박사)는 서울대 의대와 법대,  양 대학원을 졸업했다. 세부 전공은 법의학과 사회의학이다. 대한법의학회 부회장, 대한의료법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 의학과 관련한 역사, 예술, 윤리, 법, 제도, 정책 주변 이야기를 두루 다룰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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