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코드] 영화계 소문난 형제-자매 감독②…경쟁 혹은 윈-윈으로
상태바
[시네마코드] 영화계 소문난 형제-자매 감독②…경쟁 혹은 윈-윈으로
  • 김이나 컬쳐에디터
  • 승인 2019.07.03 17: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쟁 혹은 협업으로 뛰어난 작품을 만들어 낸 형제 감독들
비운의 천재감독 하길종과 배우출신 감독 하명중 형제
할리우드 점령한 영국출신 비주얼리스트 감독 스콧 형제
형제의 시너지로 명품 영화를 완성한 놀란 형제
파킹찬스 프로젝트로 단편영화를 제작중인 박찬욱-박찬경 형제
영화 '인터스텔라' 촬영중인 크리스토퍼 놀란(왼쪽)과 주연 배우 매튜 맥커너히.스틸 컷
영화 '인터스텔라' 촬영중인 크리스토퍼 놀란(왼쪽)과 주연 배우 매튜 맥커너히.스틸 컷

[오피니언뉴스=김이나 컬쳐에디터]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남매와 달리 생물학적 성(性)이 같은 형제나 자매는 서로에게 놀이의 상대가 되고 때로는 라이벌도 되기도 한다.  자라면서 자연스레 같은 꿈을 꾸고 그 꿈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함께 나아가기도 한다.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동생이 형의 궤적을 밟아가고 형은 동생과의 선의의 경쟁을 펼친다.  

견제와 균형을 이루며 각자의 색깔로 만들어낸 작품들로 평단과 관객들의 호응을 받은 형제 감독을 살펴 보자.

 

◆비운의 천재와 미남 배우...하길종-하명중 형제 

하길종 (1941년-1979년)과 하명중 (1947년생). 부산광역시 출생.

영화 '대부'의 감독 프란시스 코폴라의 1년 후배. MGM영화사로부터 작품상을 수상한 한국 감독. 고 하길종 감독이다.

서울대학교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유학길에 올라 샌프란시스코 예술학교를 거쳐 UCLA 영화학 석사 학위  취득후 1970년 귀국했다. 졸업작품 '병사의 제전'으로 MGM 영화사가 전 미국 영화과 학생 가운데 4명을 선발, 시상하는 '메이어 그랜드상'을 받은 그는 UCLA 강사 제의와 할리우드의 유혹을 뿌리치고 귀국, 1972년 '화분' 으로 데뷔한다. 

당국의 검열이 존재하던 시기로 완성본의 일부가 통째로 잘려 나가는 바람에 미완성에 난해하단 평가와 더불어 파격적인 동성애 코드 등으로 기존 평단의 혹평을 받았다.

 

하길종(왼쪽)과 하명중. 사진=하길종 30주년 기념전, 영화 스틸 컷.
하길종(왼쪽)과 하명중. 사진=하길종 30주년 기념전 포스터, 영화 스틸 컷 편집.

그 후 1975년 대학생들의 억압된 삶을 은유로 풀어낸 '바보들의 행진'을 연출해 상업적인 성공과 비평가들의 지지를 받았다. '여자를 찾습니다'(1976), '한네의 승천'(1977) 등의 흥행 실패 후 '속 별들의 고향'(1978), '병태와 영자'(1979) 등 가벼운 통속물을 연출하기도 했다.

학교에서 후학을 가르치기도 했고 번역가로 충무로 유일의 유학파 감독으로 평론 활동도 활발했으나 1979년 2월 28일 뇌졸중으로 쓰러져 세상을 등지게 된다.

짧은 생애동안 7편의 작품을 남겼으며 지금도 비운의 천재 감독으로 평가 받는다. 그가 살아있었다면 한국 영화계가 많이 달라졌을 거라는 평도 있다.


모든 예술행위가 그렇듯이 인간의 편에 서 있지 않는 작품은 일체가 사이비다. 정부도 그렇고 영화는 더욱 그렇다 (고 하길종, '인터뷰365' 기사)


동생 하명중은 배우로 데뷔했다. 1964년 연극배우로 첫 데뷔 후 1965년 KBS 공채 5기로 방송을 시작했다. 1967년 영화 '너와 나'로 데뷔한 후 홍콩으로 건너가 본명인 하명종(河明鐘) 대신 하명중(河明中)이라는 예명으로 홍콩 영화에 출연했으나 후속작 불발 후 귀국한다. 수려한 외모로 충무로 영화계에 등장, 수많은 멜로물의 주연을 맡았다.

멜로물 외에도 '한네의 승천' (1977), 재일동포 야구 선수 장훈의 일대기를 다룬 '터질듯한 이 가슴을' (1979) 등에 출연했고 형의 작품 '화분', '한네의 승천'에는 주연으로, '바보들의 행진'에는 특별 출연으로 나서기도.

1979년 하길종 감독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후 감독의 길을 걷는다. 형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지만 하명중도 경희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문학도.

1983년 '엑스'로 데뷔하며 대종상 신인감독상 수상했으며 '땡볕' (1984)으로 베를린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받았고, 제23회 대종상 영화제 5개 부문에 걸쳐 수상했다.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2007)와 각본, 감독을 맡은 '주문진' (2010)이 가장 최근 작이다.
 

영국출신 비주얼리스트 감독…스콧 형제

리들리 스콧 (Ridley Scott, 1937년생)과 토니 스콧 (Tony Scott, 1944 ~2012). 리들리는 영국 사우스쉴즈 출생, 토니는 영국 노스쉴즈 출생.

아버지는 군인이었고 영화를 좋아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극장을 자주 다녔다고 전해진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자신에게 큰 영향을 준 감독 중 한명으로 언급하기도 했던 리들리 스콧. 2003년 기사 작위(Sir Ridley Scott)를 받았다.

왕립예술학교(RCA) 졸업 후 BBC 미술 스탭을 거쳐  TV시리즈 연출을 하다 광고 제작에 진출, '리들리 스콧 어소시에이츠'라는 광고 회사를 차리고 10여년 동안 광고계에서 명성을 떨쳤다.

그가 감독한 최초의 장편 영화 ‘결투자들’(1977)이 저예산 영화임에도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호평을 받으면서 할리우드로 스카우트된다.

헐리우드 데뷔작 ‘에일리언’(1979)은 외계인이 등장하는 SF액션 영화의 한 획을 그은 작품. 핵전쟁 이후 혼돈에 휩싸인 2019년을 배경으로 한 '블레이드 러너’(1982)는 충격적인 설정과 난해한 스토리로 악평을 받으며 극장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입소문을 타고 비디오 렌탈 시장에는 인기를 얻었고 SF 걸작으로 추앙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위험한 연인'(1987)과 '블랙 레인'(1989) 등 액션 스릴러가 많은 관객을 모으며 무난한 평가를 받았고 '델마와 루이스'(1991)로 페미니즘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 후 다소 침체를 겪다 발표한 '글래디에이터'(2000)는 흥행에도 성공하고 평가도 좋았다. 이 영화로 최초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다.

완성도가 다소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은 ‘마션’ (2015)은 78세 노장이 아직 살아있음을 보여준 영화. 가장 최근작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올 더 머니’ (2017).

 

토니 스콧(왼쪽)과 리들리 스콧 형제. 사진=유투브 캡쳐
토니 스콧(왼쪽)과 리들리 스콧 형제. 사진=유투브 캡쳐

회화에 재능이 있던 동생 토니는 리즈 예술대학 1년 수학후 서덜랜드 대학에서 미술 전공, 왕립예술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화가로 활동하다가 형 리들리의 광고회사에 들어가 함께 광고 촬영을 시작했다.

1983년 화려한 영상미를 뽐내는 뱀파이어 영화 '악마의 키스'로 데뷔, 그 후 해군 조종사들의 우정과 경쟁을 그린 '탑건'(1986)으로 흥행에 크게 성공했다. '비벌리힐스 캅2'(1989), '리벤지'(1990), '마지막 보이스카웃'(1991) '더 팬'(1996),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1998) 등 연이은 히트로 흥행 만큼은 형을 앞질렀다고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형 리들리가 주로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촬영기법으로 철학, 종교, 미래주의 등을 영화로 구현한 반면 동생 토니는 도시적이고 현대적인 분위기, 디지털과 금속성의 장치들을 더 선호하며  빠른 템포의 편집과 세련된 영상으로 팬층을 확보했다. 스토리 전개와 긴장감 만큼은 최고로 평가받는다.

토니는 흥미롭게도 덴젤 워싱턴과 무려 다섯 작품을 함께 했다.
‘크림슨 타이드’(1995), ‘맨 온 파이어’(2004), ’데자뷰’(2006), '펠햄123'(2009), 그리고 토니의 마지막 작품 '언스토퍼블'(2010)이 있다.

 

영화 '데자뷰' 촬영 당시 토니 스콧(왼쪽)과 덴젤 워싱턴. 낡은 볼캡(야구모자)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 영화 스틸 컷.
영화 '데자뷰' 촬영 당시 토니 스콧(왼쪽)과 덴젤 워싱턴(가운데). 낡은 볼캡(야구모자)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 영화 스틸 컷.

토니는 한 인터뷰에서 “덴젤 워싱턴은 내가 상상하고 그리는 영웅의 모습을 가장 닮아 있고, 그런 영웅을 가장 잘 연기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며 칭찬했다.

덴젤 워싱턴과 작업한 마지막 작품 제목이 ‘멈출 수 없는(unstoppable) 이었으나 안타깝게도 토니는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2012년 LA 빈센트 토마스 브릿지에서  투신.

자신의 첫 단편영화 'Boy and Bicycle'에 동생 토니를 출연시킬 만큼 우애가 돈독했던 형 리들리는 시름에 빠졌고, 동생이 뇌종양을 앓고 있었다며 신병을 비관한 것이 아닐까 추측했다.(가디언, 2017년 5월)

2012 개봉예정으로 토니가 쵤영 중이던 ‘포츠담 광장’(2012년 예정)은 아직 개봉 미정. 그의 유작이 됐다.


◆협업으로 완성된 명품 '인터스텔라'…놀란 형제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 1970년생)과 조나단 놀란(Jonathan Nolan, 1976년생). 영국 런던 출생.  

두 사람 모두 영문학을 전공했다. 크리스토퍼는 런던대학교 영문학 학사, 조나단은 미국 조지타운대학교 영문학 학사. 학교에서 영화를 배운 적은 없다.

크리스토퍼의 데뷔작은 범죄 스릴러 ‘미행’(1998)이며 2000년 '메멘토'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메멘토'는 단기 기억 상실증에 걸린 한 남자 이야기로 이 아이디어는 원래 조나단의 것이었다. 조나단의 시놉시스에 함께 쓴 각본으로 형제는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에 올랐다.

조나단이 각본을 쓴 '프레스티지'(2006) 를 발표하고 그 후 '다크나이트'(2008)와 '다크나이트 라이즈'(2012)는 공동 각본으로 연이어 큰 성공을 거둔다.

 

조나단 놀란(왼쪽)과 크리스토퍼 놀란. 사진=유투브 캡쳐
조나단 놀란(왼쪽)과 크리스토퍼 놀란. 사진=유투브 캡쳐

조나단 놀란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건 '인터스텔라'(2014). 시나리오 완성을 위해 4년간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천체물리학과 상대성이론을 공부했다고 한다.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서 큰 사랑을 받은 작품.

크리스토퍼 놀란의 CG를 최소화한 아날로그 촬영, 환상적인 비주얼과 연출력에 조나단의 탄탄한 각본이 더해져 함께 수작(秀作)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인셉션'(2010)과 '덩케르크'(2017)는 크리스토퍼 홀로 각본을 쓰고 감독으로 참여한 작품들로 특히 '인셉션'은 제 83회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촬영상 외 3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한편 조나단 놀란의 감독 커리어는 드라마 감독으로 시작한 것. CBS 범죄 스릴러물인 ‘퍼슨 오브 인터레스트'(2013)의 각본을 썼고, 시리즈 3는 직접 감독했다. 역시 직접 각본을 쓴 드라마 '웨스트 월드: 인공지능의 역습'(2016)은 미국 서부를 재현한 가상 현실 테마파크에서 안드로이드 로봇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SF드라마로 미국 HBO에서 방송. 시즌 3가 곧 방영될 예정.

 

패러디 코미디 영화의 전설…주커 형제

데이빗 주커(David Zucker, 1947년생)와 제리 주커(Jerry Zucker, 1950년생). 미국 위스콘신 밀워키 출생.

첫 감독 작품 '에어플레인'(1980)부터 공동으로 기획, 각본, 감독으로 참여했으며 특히 초기 패러디 코미디물들은 주커 형제들과 유년시절부터 단짝이며 위스콘신 동문인 '짐 에이브러햄스'와 만든 일명 'ZAZ' 사단 작품. 이들이 만든 익살과 유머로 가득찬 패러디 코미디 영화들은 흥행에 크게 성공했다. B급 코미디물의 대명사 '총알탄 사나이'의  1,2편은 데이빗 주커가 감독하고 데이빗과 제리가 공동으로 각본에 참여했다.

 

제리 주커(왼쪽)와 데이빗 주커. 사진=유투브 캡쳐
제리 주커(왼쪽)와 데이빗 주커. 사진=유투브 캡쳐

'총알탄 사나이' 3편에 공동 각본으로 참여한 후, 형 데이빗은 역시 패러디 코미디인 '무서운 영화' 3편 (2003), 4편(2006)의 감독을 맡았다.

코미디 영화로 협업했던 동생 제리는 그러나 코미디 아닌 장르로 큰 성공을 거두는데 이 작품이  '사랑과 영혼'(1990)이다. 지금도 우리나라 팬들에겐 데이빗 주커가 제리 주커의 형으로 알려질 정도.

범작 '카멜롯의 전설' (1995) 이후로는 제작에만 관여하는 중.

 

◆‘파킹찬스’로 찬스를 엿보는 박찬욱-박찬경 형제

박찬욱 (1963년생)과 동생 박찬경 (1965년생). 서울특별시 출생.

박찬욱은 1988년 유영진 감독의 영화 '깜동'에 연출부 스탭으로 커리어를 시작, 1992년 직접 시나리오를 쓴 '달은 해가 꾸는 꿈'으로 감독 데뷔했다.

'공동경비구역JSA' (2000)로 개봉 당시 연속 9주 박스오피스 1위라는 흥행 기록을 세우며 베를린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고, 2003년 개봉한 '올드 보이'는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는 기염을 토한다.

'복수는 나의 것', '올드 보이'에 이어 복수 3부작 피날레인 '친절한 금자씨'(2005)도 좋은 평가를 받았고 뱀파이어 신부(父)라는 파격적 소재인 '박쥐'(2009)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리들리 스콧 형제가 제작에 참여했던 할리우드 첫 진출작 '스토커(Stoker, 2013), 사라 워터스의 소설 '핑거스미스'를 영화화한 '아가씨'(2016)에서도 박찬욱 고유의 미장센을 선보였다.

최근작이자 박찬욱의 첫 미니시리즈 연출작 '리틀 드러머 걸: 감독판' 은 스파이 소설의 거장 존 르 카레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것으로 존 르 카레를 좋아하는 박찬욱이 먼저 제작 의사를 타진했다고 알려져 있다.

 

박찬욱(왼쪽)과 박찬경 형제.사진=연합뉴스
박찬욱(왼쪽)과 박찬경 형제.사진=연합뉴스

동생 박찬경은 서울대학교 서양화과 졸업후 캘리포니아 예술대학교 사진학 석사를 마치고 사진가, 설치미술가로 또 최근엔 영화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대표작으로는 무형문화재 배연신굿 보유자 김금화 선생의 일생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만신'(2003)으로, 박찬경은 토론토 릴 아시안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장편영화상을 받았다.

박찬욱-찬경 형제는 최근 '파킹찬스(PARKing CHANce)'라는 이름으로 단편 영화를 만들고 있다. 'Park'과 'Chan'을 넣어 만든 프로젝트 그룹 '파킹찬스'는 ‘파란만장’(2010), ‘청출어람’(2012), ‘고진감래’(2013), '격세지감'(2017) 등 총 7편의 단편영화를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아이폰 핸드폰으로 촬영한 '파란만장'은 꾸준히 서로의 아이디어와 시나리오를 주고받으며 교감을 나눴던 형제의 첫번째 합작품으로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단편영화상’을 수상했다. 

장편으로도 보고싶다는 팬들의 요청이 쇄도할 정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