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수의 '협동조합 성공의 길'] 갑질과 무례함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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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의 '협동조합 성공의 길'] 갑질과 무례함을 넘어
  • 김진수 농협대 협동조합 경영과 교수
  • 승인 2019.06.22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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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도 구성원 존엄성 중시해야
조직내 갑질의식, 조직 창의성 문제해결 능력 떨어뜨려
협동조합내 갑질 등 전근대적 의식 없애야
김진수 교수
김진수 교수

[김진수 농협대 교수] 시내 대형서점에 들렀다. 기후변화, 인공지능, 블록체인, 국제정치 서적들 등 다양한 책들이 새로 출간되고 있었다. MD의 선택 코너에 있는 ‘일터의 품격(Leading with dignity)’이 눈에 띄었다.

국제분쟁전문가인 저자 도나 힉스는 비즈니스 조직들의 조직 내 갈등에 대한 해법을 부탁 받고, 리더들이 존엄의 진정한 의미와 그 중요성을 잘 알지 못해 조직 내 갈등이 많고 잠재역량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리고 해결책으로 존엄모델을 제시했다. 조직문화 개선에 관한 책으로도 볼 수 있지만 갑질로 몸살을 앓고 있는 한국사회의 구성원인 필자의 귀에는 직원들의 아우성이 들리는 책이었다.

이윤 극대화를 위한 각종 성과지표(KPI)를 달성하기 위해 상사의 부당한 대우를 참아내는 현실, 직원들이 존엄성을 인정받고 있지 못하는 현실이 심각하기에 이 책이 미국언론의 주목을 끌었고 이어 대형서점 MD의 선택을 받았으리라 짐작됐다.

무례한 상사, 조직 창의성 문제해결능력 떨어뜨려

이 책에서 특히 눈길을 끈 부분은 무례함의 비용이었는데 이는 크리스틴 포래스 교수의 저서 ‘무례함의 비용(Mastering civility)’을 인용한 것이었다. 포래스 교수는 무례한 상사가 조직문화를 망친다는 자신의 직장 경험에 바탕을 두고 무례함이 창의성, 문제해결능력을 떨어뜨리는 정도를 계량화해 보여주었다. 무례한 행동을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공유 자원을 나누려는 의사는 50% 감소한다는 등의 연구결과를 들어 정중한 조직을 만들 것을 제안하고 있다.

협동조합은 어떨까? 이윤 극대화가 목표가 아닌 비영리 조직이니 존엄성이 존중 받는 안전지대일까?

대부분의 협동조합은 결사체이면서 비즈니스 조직이다. 설립 목적은 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것이지만 영위하는 사업은 비즈니스다. 다만 협동조합은 배당을 목적으로 하지 않기에 지분을 보유한 조합원들의 요구는 이용고 배당 확대 등으로 일반주식회사의 주주와 차이가 있다. 그렇지만 엄연히 협동조합도 비즈니스를 통해 시장에서 활동하는 주체다.

‘일터의 품격’에서 제기된 존엄성 존중 관점은 비즈니스 조직 일반에 관한 담론으로서 협동조합의 대표이사나 이사들의 생각에도 새로운 시각을 요구하고 있다.

주식회사나 협동조합에서 상사의 갑질, 무례함은 조직 전체 창의성을 떨어뜨린다. 사진= 연합뉴스
주식회사나 협동조합에서 상사의 갑질, 무례함은 조직 전체 창의성을 떨어뜨린다. 사진= 연합뉴스

협동조합도 구성원 존엄성 지키는 성과지표 만들어야

비즈니스 조직으로서 협동조합은 조합원만으로는 현장에서 발생하는 각종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우므로, 전문적 지식과 경험을 보유한 직원과 일상적인 운영을 지원하는 직원들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비록 협동조합이라 하더라도 근본적으로는 비즈니스 조직이기에 직원들은 이윤을 최우선에 두고 매일매일 움직인다.

구체적으로는 조직 내에서 직원의 성과를 측정하기 위한 각종 지표에 스스로를 종속시킨다. 직원들의 관리자인 간부직원과 임원들도 이를 당연하게 여긴다. 물론 협동조합은 비즈니스 조직인 동시에 비영리 조직이기에 일반 기업체와 다른 성과관리 방법으로 접근하기는 한다. 비영리적인 성격이 강한 조직들에게 적용되는 BSC(Balanced Scorecard)와 같은 성과관리 방법도 최근에 협동조합에 도입됐다.

재무적 관점 아래에서 구성된 성과지표가 현실 적용에서 많은 부작용이 있다는 반성에서 고객 관점, 내부 프로세스 관점, 학습 및 성장 관점을 두루 고려해 성과지표를 구성했지만, 하향식 구성으로 실제 현장에서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직원들간의 위계구조가 강한 한국사회에서 하향식 지표 구성은 현장 직원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더욱 어렵다. 직원들이 상사에게 제 목소리를 내야 창의성이 발현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자유로운 토론 분위기가 없는데 창의성은 기대하기 어렵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구성원 모두의 존엄성을 전제로 한 성과지표 구성과 평가방법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최근 국내 글로벌기업 중 한곳에서 간부직원의 역량평가에 소속직원들의 상향식 평가가 도입되고 있다. 평가의 주체가 바뀌는 제도 변경은 직원 개인의 존엄성을 전제로 한 접근이라고 볼 수 있다. 상향식 평가 제도가 협동조합의 조합원과 대표이사간에는 잘 정비되어 있다. 선거가 그것이다. 협동조합의 민주적 성격상 당연한 상향식 구성이다.

그러나 협동조합 직원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비즈니스 조직으로서 일반 회사조직들의 영향을 받아 상향식 평가가 없었다.

존엄성을 존중하지 않는 상사와 직원 간의 갈등을 단순히 상사와의 불화로 접근하여 직원의 불만접수 정도로 그쳤다. 협동조합의 경우 일부 직원이 조합원(투표권 보유)을 겸하고 있는 경우에는 상사인 간부직원과 직원 간 관계에 간부직원과 조합원의 관계가 중첩되어 갈등의 정도가 일반 회사조직의 경우에 비해 상대적으로 완화될 수는 있을 것이다.

농수산인들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4년마다 조합장을 뽑는 선거 운동. 조합원 구성원들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것이 협동조합 내부 문화에 중요하다. 사진= 연합뉴스
농수산인들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4년마다 조합장을 뽑는 선거 운동. 조합원 구성원들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것이 협동조합 내부 문화에 중요하다. 사진= 연합뉴스

한국문화에 남아있는 중세적 요소...갑질과 주인-머슴 의식

 그런데 한국에서는 하나 더 고려할 것이 있다. 한국문화에 아직도 남아있는 중세적 요소 때문에 직원들이 상사와의 관계에서 한국적인 위계문화의 부담을 지고 있다.

우리나라 외환위기 발생 직전 한보그룹 정태수씨는 “자금 흐름은 주인인 내가 알지, 머슴이 어떻게 압니까”라고 청문회 자리에서 이야기한 바 있다. 그룹 총수가 공개적인 자리에서 자신을 '주인'이라 부르고 간부 직원을 '머슴'으로 비유해 많은 국민들에게 불쾌한 조선시대의 신분관계를 떠올리게 한 것이다.

머슴이라는 용어는 아직도 선거철만 되면 우리 정치계에서 종종 사용되고 있다. 주인과 머슴 관계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 의식에는 견고하게 남아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 강력한 증거는 '갑질'이다. 특히 조직 내 갑질은 가장 흔한 현재진행형 문제이다. 조직 내 역할과 관계에 중세적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다. 한국인은 오랫동안 근대화를 이야기해 왔다. 근대적 기계와 장치를 잘 이용해 경부고속도로와 KTX를 만들고 5G도 상용화했다.

외형으로 드러난 많은 것들은 근대화된 모습을 띠고 있다. 심지어 세계 최첨단인 것도 있다. 그런데 왜 갑질을 일으키는 우리 머릿속 습관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는가.

고려시대 10% 수준이던 노비 인구는 조선시대 이후 부모 중 한쪽만 노비면 모두 노비가 되는 '종천법'으로 17세기에는 전체 인구의 40%가 넘었다고 한다. 소수의 백인 부호들이 대농장에서 면화를 재배하던 18세기 미국 남부의 흑인노예 인구 비중이 40%였으니 그 실상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시대의 노비와 천민을 함부로 대하던 습관은 우리 의식 속에 뿌리내려 아직도 없어지지 않고 갑질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앞에 등장하고 있다.

근대 세계에서 근로계약이든 도급계약이든 계약의 주체인 각 개인은 존엄하기에 자유로우며 개개인은 평등하다. 급여를 받는다고 해서 혹은 도급을 받는다고 해서 머슴이나 노비가 아니다.

우리의 의식 속에 근대화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것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어렵지만 하나씩 하나씩 우리 나라에서 의식의 근대화가 이뤄지고 조직구성원들의 창의성이 발휘될 여건이 마련될 것이다.

영화 베테랑에서 황정민 배우가 말한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일본말로 얼굴인데 자존심을 의미)가 없냐”는 대사를 다시 한번 협동조합의 대표이사와 이사 모두가 곱씹어 봐야 한다.

●김진수 농협대 교수는 서울대 법대 사법학과를 졸업하고 농협중앙회 기조실, 농업경제기획부에 근무했으며 2012년부터 농협대학교 협동조합 경영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결사의 자유의 관점에서 본 협동조합'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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