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칼럼] 민주공화제를 다시 생각함⑥: '소유의 자유'의 본질과 공화국의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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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칼럼] 민주공화제를 다시 생각함⑥: '소유의 자유'의 본질과 공화국의 이상
  •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승인 2019.06.22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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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의 자유, 인민의 생존과 경제수단 해결못해...국가의 책무 발생
빈곤 질병 장애 노령 실업 등 공동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정치이념
민주공화국은 법률로 개인의 '소유의 자유' 제한....대한민국, 민주복지국가를 지향
김종철 연세대 교수
김종철 연세대 교수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대한민국임시헌장’에서 민주공화제가 추구하는 자유의 목록으로 소유의 자유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민주공화제의 인민은 생존과 자유 실현의 물질적 기반인 재산을 소유·활용·처분하는 기본적 자유를 가진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이런 기본적 자유를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사유재산제를 부인하는 엄격한 의미의 공산체제나 계획경제체제는 대한민국임시헌장이 추구하는 민주공화제와 조화되기 힘들다고 볼 수 있다.

지난 호에서 소유의 자유를 인정하는 기본적 의미로 개인의 자율성의 전제를 확보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도 이런 측면을 강조한 것이다.

소유의 자유가 곧 경제생활에 대한 자기책임?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제기되는 근본적 질문은 소유의 자유가 있으므로 경제생활에 대한 책임도 1차적으로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가라는 것이다.

생존과 자유실현을 위한 경제적 수단의 조달을 1차적으로 소유의 자유를 가지는 인민의 책임으로 인식하는 논리적 근거가 될 수 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정치공동체의 성격을 좌우하는 이념적 본질이 개입하게 된다.

경제적 자유를 인간의 본질적 자유로 이해하는 자유지상주의적 관점에 따르면 개인의 책임을 기초로 생성된 재산에 대한 지배권을 인과관계가 분명하지 않은 공익적 사유를 내세워 규제와 조정을 하려는 것을 악(惡)으로 본다. 특히 사회관계에서 중립적이어야 할 국가가 시장에 개입해 인위적 조치를 취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개인의 자율성을 억압하게 되고 시장을 왜곡하게 된다는 점에서 치안 등 공동체의 존속에 필요한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고 본다.
 
근대 이후의 인류사는 이런 자유지상주의적 자유관과 국가관이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정의롭지 못하다는 것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어온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공동생활을 전제로 해서만 문명적 삶을 설계할 수 있는 조건에 속박받는 '사회적 동물(zoon politikon, political animal)'인 인간은 소유의 자유만으로 그 생존과 비경제적 생활 영역에서의 자유를 온전히 보장받지는 못한다.

인간의 가치와 동료애 혹은 사회적 연대의 가치가 배제된 재산 혹은 자본 그 자체의 독자적 운동은 경제력의 집중과 남용으로 인한 경제양극화로 귀결돼 사회갈등을 극대화하게 되는 비인간적 현실을 초래하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생존의 기반인 되는 물질적 토대인 자원은 총량이 정해져 있고, 누군가가 많이 가지면 누군가는 덜 가질 수밖에 없는 특수조건이 고려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 헌법은 개인의 자유중 재산권에 대해 내용과 한계를 '법률'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회는 각 정당이 지향하는 정치이념에 따라 재산권 범위를 넓히거나 줄이는 법률을 통과시킨다. 사진= 연합뉴스
대한민국 헌법은 개인의 자유중 재산권에 대해 내용과 한계를 '법률'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회는 각 정당이 지향하는 정치이념에 따라 재산권 범위를 넓히거나 줄이는 법률을 통과시킨다. 사진= 연합뉴스

이처럼 소유의 자유를 인정해 생존에 대한 1차적 책임을 개인이 부담하는 원칙에 따르더라도 생존과 자유의 향유를 어렵게 하는 삶의 조건에 대한 공동체적 책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이 박애와 동료애의 정신이요, 역사적으로 인간이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정치적 삶을 인간생활의 주요영역으로 발전시켜 온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정치공동체인 민주공화국은 소유의 자유를 가능하게 하는 기회와 조건의 평등과 부분적이나마 결과의 평등까지도 보장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게 된다. 그래야만 모두가 최소한의 생존에 필요한 물적 기반을 확보하게 되고 나아가 민주공화제가 추구하는 인신의 자유, 표현의 자유, 종교 내지 양심의 자유를 충실히 구현할 수 있다.

'불간섭'이 아닌 '비예속'을 본질로 하는 자유

바로 이처럼 소유의 자유가 공동체적 관계 속에서만 그 의미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공화제에서 추구하는 자유의 본질을 발견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자유는 '아무런 외부적 간섭이 없는 상태'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그 조건만으로도 이런 자유의 개념은 모순이다.

인간은 필연코 사회를 떠나서는 문명적 삶을 살아갈 수 없는데 그런 공동생활 속에서 아무런 간섭이 없는 상태가 어떻게 가능한가? 특히 소유의 자유의 대상이 되는 자원은 공동체의 존재기반이기도 하기 때문에 공동체의 수요나 관계와 무관할 수 없다.

개인이 소유하는 토지는 공동체의 영역인 국토의 일부이기도 하다. 개인이 식량이나 생활필수품을 독과점하게 되면 일정 조건에 따라 타인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자유란 '불간섭(non-intervention)의 상태'라기보다는 민주공화제의 인민의 삶의 조건인 개인이 자유로이 삶의 방식을 선택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예속적 조건이 없는 상태, 즉 '비예속적 자유(liberty as non-domination)'를 의미할 수밖에 없다.

자유의 실현을 방해하는 예속적 조건은 특히 소유의 자유의 남용과 소유의 불평등에 의해 초래될 수 있으므로 이런 조건의 제거를 위한 공동체적 노력은 일부 개인의 소유의 자유를 제약하더라도 필요한 것이다.

즉 소유의 자유는 인신의 자유와 같은 다른 자유와는 달리, 오로지 공동체적 관계 속에서 인민의 생존과 기본적 자유의 조화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범위 내에서만 실현가능하다.

이 점에서 공화제의 어원이 이해의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공화국으로 번역되는 원어는 영어로 republic인데 그 라틴어에서의 어원은 res publica이다. 영어로 직역하자면 public things, 즉 ‘공공의 사물’을 지칭하는 것에서 보듯 ‘사적 사물’을 의미하는 res privata와 구별되며, 공익 혹은 공공선의 가치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꾸리는 것에 핵심이 있다. 무릇 공화제를 표방한다면 공동체적 조건에 대한 고려없는 이기적이며 사회적으로 고립된 초월적 개인을 중심으로 공동체의 정치질서와 사회경제질서를 기획할 수 없다.

'소유의 자유'를 법률로 제한하는 가장 흔한 예가 '토지공개념'이다. 공동체의 기반인 국토를 자유롭게 소유한다면, 공동체가 무너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사진= 연합뉴스
'소유의 자유'를 법률로 제한하는 가장 흔한 예가 '토지공개념'이다. 공동체의 기반인 국토를 자유롭게 소유한다면, 공동체가 무너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사진= 연합뉴스

비예속적 자유의 공화제적 실현방식인 민주복지국가

문제는 소유의 자유가 실현가능하도록 조건지우는 공동체의 정치적 결정, 즉 경제적 규제와 조정의 재량을 어느 범위까지 인정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소유의 자유를 기본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사유재산제의 부정에 이르는 완전계획경제체제는 용납되지 않는다. 한편 생존에 대한 공동체적 배려와 조성을 위해 경제영역을 규제하고 조정할 국가의 역할은 불가피하다. 즉 소유의 자유를 절대시하고 경제적 규제와 조정을 용납하지 않는 경제적 자유 혹은 재산권 지상주의 또한 임시헌장의 민주공화제에서 용납되지 않는다.

결국 민주공화국은 자연재해로부터의 자연적 위험은 물론 빈곤·질병·장애·노령·실업 등으로 초래되는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적정한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사회보장을 제공해야 하고 인민은 이런 사회보장을 요구할 권리를 가지는 것이 이상적이다.

나아가 이런 사회보장질서의 형성을 어렵게 만드는 소유의 자유의 남용에는 적절한 규제와 조정이 필요하고 소유의 자유를 누리는 인민들도 소유의 자유의 행사를 공동체의 복리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할 헌법적 의무를 부담해야 한다. 

1948년 제헌헌법이래 현행 헌법에 이르기까지 소유의 자유에 대응하는 재산권은 다른 자유와는 달리 “그 내용과 한계를 법률로 정하도록” 헌법이 명문으로 규정해 국가가 재산권과 관련해 원칙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헌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

나아가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는 재산권자의 헌법적 의무마저 분명히 선언하고 있는 것과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고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 민주화를 위한 국가적 책무를 헌법 명문에 규정한 것도 이런 민주공화제적 소유의 자유에 대한 이해에 기반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결국 일찍이 헌법재판소가 확인한 바 있듯이 민주공화국을 표방한 대한민국 헌법은 사회-시장-국가의 삼각관계에서 상호간의 균형과 조화를 추구하는 민주복지국가을 이상으로 한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서울대 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런던정경대 대학원에서 법학박사를 받았다. 현재 한국언론법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한국공법학회·한국헌법학회 부회장,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부위원장,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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