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한 칼럼] 의사는 돈 벌면 안되나? 자본주의와 전문직 윤리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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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한 칼럼] 의사는 돈 벌면 안되나? 자본주의와 전문직 윤리에 대해
  • 김장한 울산의대·서울아산병원 교수
  • 승인 2019.06.18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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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 '의학의 신', 돈 받았다는 이유로 죽임을
중세 엄격 제한된 의료행위, 프랑스혁명이후 '이윤추구' 인정
역사는, 의사에게 '돈이 첫째 목적 아님'을 보여줘
김장한 서울아산병원 교수
김장한 서울아산병원 교수

[김장한 울산의대·서울아산병원 교수] 그리스 신화에서 아스클레피우스는 번개에 맞아 죽었다. 아스클레피우스는 아폴로의 아들이며 의학의 신이자 예언자다.

아버지 아폴로 신은 죽게 된 코로니스의 자궁을 가르고 아스클레페우스를 태어나게 했다. 아스켈레페우스는 반인반수 키론에게 의학을 배우는데, 은혜를 갚는 뱀이 그의 귀를 열어주고, 옆에서 도와주었다. 그래서 뱀이 허리를 감고 있는 지팡이를 늘 가지고 다녔다.

아스클레피우스의 의술은 점차 대단해져서 죽은 자를 살리는 정도에 이르게 된다. 점차 명부에 오는 사람이 없어진다고 불평하는 하데스 신의 고발을 빌미로, 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제우스는 그를 번개로 죽인다. 표면적 처벌 이유는 아스클레피우스가 죽은 자를 살리고 그 대가로 금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리스 신화의 나오는 의약의 신 아클레피우스.
그리스 신화의 나오는 의학의 신 아클레피우스. 지팡이와 뱀 상징이 현재 세계의사협회 등 각종 의사단체를 상징하는 문양으로 쓰인다.

중세 유럽, 의사·약사를 쫓아내다

그리스 사원에서 순수하게 영적 치료가 제공된 반면, 수도원과 성당에서는 영적 치료와 자연주의 치료가 제공됐다. 당시 수도사는 환자들을 위해 약초를 재배하는 것이 중요한 임무 중 하나였고, 약초의 효능을 설명한 서적도 있었다.

수도원에서 제공하는 치료가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비난이 있었기에, 1130년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속세의 이익을 위해 의학을 연구하는 것에 금지 명령을 내렸다. 1163년, 투르 공의회에서는 수도사들이 수도원을 한 번에 두 달 이상 비우는 것을 금지하기도 했다.

해석에 따라서는 치료를 하거나 교육하는 것을 모두 금지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로 인해 영국 내 수도원에서 의료가 없어지게 되었다는 해석도 설득력이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프리드리히 2세(1194~1250)는 1231년 시실리를 다스리는 성문법을 발표하는데, 그 내용은 ‘대학을 통해 의사 집단에 속하게 된 자들만이 의료행위를 할 수 있으며, 특별하게 허가를 받은 자만이 특정 도시에서 약방을 개설하고 조제 및 판매를 할 수 있다. 약제상은 영업을 할 때 의사의 지도를 받고, 의사의 처방에 의한 조제만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약제상은 약국을 개설해 약물을 조제하는 권리를 독점적으로 행사하는 대가로 왕에게 세금을 납부했다. 약제상은 포도주, 향료와 약초 등을 저장하는 장소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아포테크’로부터 유래했는데, 약을 조제하는 상인이라는 의미로서 잡화와 약재료들을 수입해 판매하는 잡화상이었다,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Nostradamus)가 1529년 프랑스 몽펠리에 대학에 의학을 배우려 입학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과거에 약제상이었던 사실이 발각돼 대학에서 추방된다. 대학 교칙이 명백하게 금지하고 있는 '돈을 받고 약을 사고파는 행위'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의사들은 돈을 받지 못했는가? 중세 초기 수도사들의 전통을 이어받아, 의사들은 환자를 치료하고 ‘아너라리움’을 받을 수 있었다. 아너라리움은 주면 받고 안주면 못 받는 말 그대로 '명예금'이었다. 그래서 의사들은 아너라리움을 줄 것으로 알려진 돈 많은 귀족만 치료하려고 했다.

시민들에게 공격받는 바스티유 감옥, 장 피에르 루이 로렌트 휴엘, 수채화, 37,8 x 50,5 cm, 1789년 작 시잔=위키피디아
시민들에게 공격받는 바스티유 감옥, 장 피에르 루이 로렌트 휴엘, 수채화, 37.8 x 50.5 cm, 1789년 작 시잔=위키피디아

프랑스 혁명이 모든 것을 바꾸다

구체제에서 하부 구조인 길드는 생산량과 가격을 통제하는 폐쇄 구조로 대가를 인정하는 세속법 관계였고, 상부 구조는 종교 기반으로 직무에 대한 대가를 부정하는 종교법 관계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상부 구조는 권력을 잃었고, 길드의 독점 구조는 중상주의 시대 시민사회의 반감을 받았다. 1776년 프랑스 재무상 튀르고는 모든 길드를 해체할 것을 주장했으며, 1789년 프랑스 혁명으로 길드는 마침내 사망 선고를 받게 된다.

19세기 길드가 해체된 후 프랑스는 새로운 전문가를 만들어 내기 위해 공적 교육 제도를 정비하고 대학을 확대해 기존 길드적 도제 교육을 대학 교육으로 전환했다. 대표적인 예가 약학 대학과 약사의 탄생이었다,

노골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던 하부 구조가 대학을 통해 전문가 집단을 형성하게 되면서, 원래는 뒤로 이윤을 추구하던 상부 구조의 의사들도 공공연하게 이윤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시장이 가격을 정하는 만큼, 환자에게 진료비를 청구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황금기는 짧게 끝이 나고

의사들의 황금기는 얼마나 지속됐을까? 부의 불평등으로 사회적 혼란이 발생하고,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사회주의 운동, 공산주의 혁명이 민중 속에 불타올랐다.

후진 공업국이었던 독일은 1878년 '사회민주주의 탄압법'을 제정하는 한편, 노동자에게 당근으로 의료보험법을 던져주었다. 영국의 자유당과 로이드 조지 정부는 2차 세계대전 중에 '징발법'에 기반한 공공 의료체계를 도입했다. 프랑스는 2차 대전 이후 드골 대통령 시대에 국가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하게 된다. 미국의 경제 대공황 시대, 프랭크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영국과 유사한 공공 의료체계를 도입하려고 했지만, 미국의사협회와 노조로부터 사회주의라는 공격을 받았다.

1960년대까지 의료의 자본주의적 행태가 유지됐는데, 1960년대 이후 사회학 분야에서 의료 전문가주의에 대한 비판이 활발하게 나타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는 법이다.

1980년대 관리의료가 도입되고, 경매를 하듯이 보험회사들이 의사들의 의료 기술을 매매하면서 최저 수가를 확정하기 위해 제3자가 시장에서 대리전을 치르는 국면으로 변하게 됐다. 그 결과 취약한 '의료 접근성'이라는 의료 체계의 문제점을 해결하지도 못하면서, 의료의 자율성도 떨어졌다.

의사는 돈을 버는 직업이지만, 돈이 첫번째 목적이 되어서는 안되는 전문직이라 할 것이다. 사진=연합뉴스
의사는 돈을 버는 직업이지만, 돈이 첫번째 목적이 되어서는 안되는 전문직이라 할 것이다. 사진=연합뉴스

 

의사도 돈은 번다

의사가 돈만 밝힌다는 대중의 볼멘 소리나, 의사는 돈을 벌면 안되느냐는 의사들의 불평은 모두 한쪽 면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가격은 시장만이 정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렇게 되어서는 안된다'는 역사적 사례나 '그렇지 않다'는 현재의 사실을 금방, 그것도 많이 제시할 수 있다.

우리나라 의료는 국민건강보험체계에 편입돼 있다. 의사의 수입은 수가에 의존할 수 밖에 없고, 대부분의 의사들이 비급여 항목을 찾고자 노력한다. 그것을 탐욕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의사는 오래전부터 돈이 첫 번째 목적이 될 수 없다는 전문직 윤리를 가지고는 있었다.

●김장한 울산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서울아산병원 교수(박사)는 서울대 의대와 법대,  양 대학원을 졸업했다. 세부 전공은 법의학과 사회의학이다. 대한법의학회 부회장, 대한의료법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 의학과 관련한 역사, 예술, 윤리, 법, 제도, 정책 주변 이야기를 두루 다룰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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