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워치] 중국 불신으로 치닫는 반정부 시위...200만명 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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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워치] 중국 불신으로 치닫는 반정부 시위...200만명 운집
  • 홍콩=이지영 통신원
  • 승인 2019.06.16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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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환법안 연기에도 아랑곳 않는 군중
15일 시위이후 첫 사망자 발생
"송환법 연기아닌 완전 철회하라"
송환법안 반대를 외치는 홍콩시민들이 16일 시내 빅토리아공원부터 행정부 관청으로 이어지는 거리를 가득 메웠다. 이날 시위에는 주최측 추산 140만명이 넘는 군중이 모인 것으로 집계됐다. 사진=연합뉴스.
송환법안 반대를 외치는 홍콩시민들이 16일 시내 빅토리아공원부터 행정부 관청으로 이어지는 거리를 가득 메웠다. 이날 시위에는 주최측 추산 140만명이 넘는 군중이 모인 것으로 집계됐다. 사진=연합뉴스.

[홍콩=이지영 통신원] 홍콩의 반정부 시위가 심상찮다. 홍콩인들은 1997년 영국이 중국으로 홍콩을 반환한 이후 처음으로 홍콩 행정부는 물론 중국의 가장 큰 위기로 인식하고 있다.  

홍콩에선 16일 자치 정부가 추진 중인 '범죄인 인도법안(일명 송환법안)' 반대 2차 집회에 현지시각 오후 6시현재 14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모였다. 이날 시위는 오후 2시45분(현지시각)부터 시내 빅토리아공원에 개최했다.

홍콩 행정부 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이 집회 하루 전인 15일 송환법 연기를 전격 발표하면서 시위가 시작되기 전에는 시민 참여수가 저조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이날 섭씨 30도가 넘는 기온에 시위 초반 시민 참여 수는 수 만명에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시위가 진행되고 기온이 내려가면서 시위대 수는 급격히 불어났다. 현지시각 오후 6시를 넘어서면서 이날 시위대는 지난 9일 103만명(주최측집계)을 훨씬 넘어선 140만명을 돌파했다는 현지 언론의 보도가 나왔다. 

홍콩의 빈과일보는 이날 시위대 규모를 144만명으로 추산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1989년 천안문 사건을 지지했던 홍콩 150만 시위 규모를 넘어설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오후 8시가 넘어서면서 이날 집회 참가자수는 200만명을 넘은 것으로 현지 언론이 보도하기도 했다.  

홍콩 시내를 가득 메운 시민들은 16일 송환법안 완전 철회와 캐리 람 장관 하야 구호를 외치며 거리를 행진했다. 또 전날 건물 4층에서 시위관련 플랭카드 설치 작업을 하다 추락사한 시민을 추모하며 검은상복을 입은 군중들이 대거 쏟아져 나왔다. 사진=AP, 연합뉴스.
홍콩 시내를 가득 메운 시민들은 16일 송환법안 완전 철회와 캐리 람 장관 하야 구호를 외치며 거리를 행진했다. 또 전날 건물 4층에서 시위관련 플랭카드 설치 작업을 하다 추락사한 시민을 추모하며 검은상복을 입은 군중들이 대거 쏟아져 나왔다. 사진=AP, 연합뉴스.

◆성난 홍콩 군중, 송환법 '연기'말고 '철회'하라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은 정부의 송환법 '완전철회'를 요구했다.

이날 거리로 나온 시위 군중들은 캐리  람 장관의 지난 15일 기자회견은 송환법의 완전한 철회를 촉구해온 홍콩시민들의 요구를 기만한 행위라는 입장을 밝혔다.

홍콩 행정부의 송환법 추진 연기는 지금 잠시 중단하지만 언제든 다시 추진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홍콩시민들은 '철회'대신 '연기'를 발표한 정부에게서 그 어떤 반성의 기미도 찾을 수 없다고 분노했다. 또 캐리 람 장관의 하야를 촉구하고 있다.

이날 시위를 주도한 지미 샘(岑子杰)민간인권진선(民間人權陣線·민진) 대표는 시위현장에서 마이크를 잡고 “한 자루 칼이 홍콩의 심장에 여전히 꽂혀 있다”며 “법안을 철회하지 않으면 칼을 뽑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시위대는 이날 법안의 완전한 철폐와 지난 12일(6.12)시위를 폭동으로 규정한 행정장관의 사과와 하야를 요구했다.

6.12 시위는 캐리람 장관이 시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입법회(立法會)에서 송환법을 2차 심의하고 법안을 억지로 통과시키려 하자 촉발됐다.

6.12 시위에선 홍콩 경찰이 강경진압에 나서 80명이 부상을 입고 10여명의 학생들이 체포됐었다.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최루 가스와 물대포, 심지어 고무탄까지 사용하며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과 현장에 있던 취재기사들에게까지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렀다.

6.12 시위당시 경찰은 마치 80년대 한국의 군부 세력들처럼 평화적 시민 시위를 반란이라고 규정했다.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을 폭도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홍콩 시민들은 체포된 학생들을 즉시 석방할 것을 촉구했지만 캐리람장관은 경찰의 강력진압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며 경찰을 옹호했고 캐리 람 장관의 이런 태도는 16일 열린 2차 대형 시위에 불을 지폈다.

게다가 지난 15일에는 시내 쇼핑몰 4층에서 송환법 반대 플랭카드를 걸던 시민이 추락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이날 시위에 참여한 군중들의 분노는 더욱 커졌다.

송환법 반대=“사법부 독립없는 중국 믿을 수 없기 때문”

홍콩은 현재 중국에 속해 있으면서 자치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1국가 2체제인 셈이다.

홍콩의 행정수반은 중국 정부가 임명하고 통제받지만 홍콩 내에서 통용되는 법은 보장돼있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중국과 대만으로 홍콩이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한 '범죄인 인도법안(일명 송환법)'이 단초가 됐다.

홍콩 행정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은 지난 2월 중국과 대만에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는 송환법을 발의했다.

이는 지난해 대만에서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홍콩으로 도망친 범죄인에 대해 대만 정부가 범죄인 인도를 요구하면서 촉발됐다. 겉으로만 보면 홍콩 행정부의 송환법 발의에 문제가 없어 보인다. 대만이 살인범에 대한 인도를 요구한 것은 정당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홍콩 시민들과 야당은 송환법 통과에 극렬히 반대하고 있다.

이유는 단 하나다. 홍콩 시민들은 중국에서 근대 민주주의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삼권분립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법권 독립이 없는 중국의 경우 재판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에 만약 홍콩과 중국 사이에 범죄인 인도 제도가 성립될 경우 중국 당국은 무고한 홍콩 시민들을 범죄자로 둔갑시켜 본국으로 송환하는 문제를 야기할 수 있어서다.  

중국의 불공정한 사법 제도를 불신하는 홍콩시민들에게 송환법이 홍콩의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악법으로 비쳐지는 이유다.

중국 압력, 이겨낼 수 있을까

홍콩정부는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왜 송환법 통과를 서두르는 걸까. 지금껏 시진핑 중국국가주석은 단 한번도 홍콩 송환법에 의견을 피력하지 않았지만 홍콩시민들은 미 중 무역전쟁에서 절대 우위를 점하고 싶어하는 시진핑 주석이 이번 사태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의심하고 있다.

지난 5월 중국 정부에서 홍콩 및 마카오를 총괄하는 한쩡(韓正) 국무원 부총리가 홍콩 정부가 추진하는 송환법을 지지한다고 밝힌바 있다.

지난 15일 송환법 연기 발표도 한쩡 부총리에게 사전 허락을 받았다는 현지 보도도 나오고 있다.

시위에 참여한 홍콩의 한 시민은 “중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홍콩시민들은 홍콩 특유의 자유민주주의와 가치관을 지키기 위해 그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이번 송환법 사태가 그 사실을 증명하는 좋은 본보기가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홍콩 정부가 송환법 연기를 발표했지만 홍콩 시민들의 분노와 송환법 반대에 대한 결기를 쉽게 가라앉히진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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