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슬로바키아] 마피아의 나라...정치인 연루에 국민들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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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슬로바키아] 마피아의 나라...정치인 연루에 국민들 분노
  • 안소현 슬로바키아 통신원
  • 승인 2019.06.14 15: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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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에 가까워지는 오명 '마피아 국가'...공산시대 때부터 뿌리내려
먀약, 매춘 불법사업에 범죄조직 활개...정부의 진심은 뭘까

[오피니언뉴스=안소현 슬로바키아 통신원] 오늘날 슬로바키아는 공산주의로부터 비교적 '고통없는 전환'에 성공했고 그림 같은 풍경으로 유명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이 나라는 조직화된 범죄 집단들로 가득 차 일상생활에서 국민들의 불안감은 가시지 않고 있다. 최근 슬로바키아 내에서는 이 나라가 곧 마피아의 나라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들이 커지고 있는 실정다.

전에 언급했던 '얀 쿠치악 암살'사건에서 정계 인물들, 유명 사업가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악명높기로 유명한 이탈리아 마피아 '은드랑게타(Ndrangheta)'가 연계되어 있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 사건은 슬로바키아 국민들에게는 절대 잊혀 질 수 없는 끔찍한 기억으로 남았다.

시위를 위해 거리에 나온 사람들. 판넬의 문구가 눈에 띈다.
시위를 위해 거리에 나온 사람들. '마피아는 슬로바키아를 떠나라'라는 판넬의 문구가 눈에 띈다.

공산국가 때부터 시작돼 베를린장벽 붕괴로 더 기승 

발칸 마피아들은 슬로바키아가 공산국가였을 때, 이곳에서 일을 하거나 공부를 위해 넘어온 사람들을 따라 함께 들어온 슬로바키아 최초의 주요 범죄 조직이었다. 그들의 사업이 새로운 조국인 슬로바키아에 퍼지면서, 공산 정권 하에서도 가능한 조직화된 범죄 산업, 즉 매춘, 도박, 불법 통화 교환을 통해 세력을 확장했다.

슬로바키아 사람들은 1990년대를 ‘로어링 90년대’라 말하기도 한다. 로어링(roaring)이란 ‘불타오르는’ 이라는 뜻이다. 즉, 1990년대 전 세계에 마피아 범죄로 불타올랐고, 슬로바키아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는 얘기다.  

체코의 한 범죄학자는 "1990년대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소련 붕괴는 동유럽 국경의 개방을 의미했고 이것은 곧 조직범죄 집단에 새로운 기회를 의미했다"고 말했다. 이들 중에는 이탈리아인들도 있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그날, '은드랑게타'는 이탈리아 북부의 부유한 지역에 사는 기업인들을 납치, 동쪽으로 이동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동베를린의 황폐한 건물들이 이들의 새로운 시작을 위해 최적의 장소로 이용됐다고 한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슬로바키아 등 동유럽으로 통하는 마피아의 문이 막 열리려고 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1990년대초 공산주의가 무너지면서 많은 알바니아 출신의 새로운 조직 범죄자들이 슬로바키아로 왔다. 자본주의로의 혼란스러운 전환 과정을 겪으면서 알바니아 경제가 무너지고 정부마저 전복되고 내전까지 빚어졌다. 이후 많은 알바니아인들이 새 출발을 하러 해외로 눈길을 돌렸는데, 슬로바키아도 이들이 손을 뻗은 나라들 중 하나였던 것.

1993년 공산주의가 몰락하고 슬로바키아가 체코에서 분리·독립하는 와중에도 조직화된 범죄집단은 여전히 번창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탈리아 마피아는 옛 유고슬라비아와 알바니아인들까지 합류시켰다.

하지만 이 나라의 경찰, 검찰은 범죄조직을 단속할 만한 능력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부분의 법 집행관, 판사나 검사들은 이들 범죄자들을 조사하거나 판결한 경험이 없고 주요 범죄자들에 대한 기본적인 자료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이때문에 슬로바키아는 조직범죄자들의 주 활동 무대가 되어 버린 형국이다.  

세계에서 가장 얻기 쉬운 시민권...마약왕들 잇따라 시민권 획득

슬로바키아의 여권은 유럽 연합 국가들 중에서도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에 국제적인 마약범죄자들에게는 '기회의 땅'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다. 

2015년에는 슬로바키아 언론이 두 명의 주요 세르비아 범죄자들이 마약공급을 해왔다는 사실을 추적, 보도한 적이 있었다. 

발칸지역내 주요 마약로를 세운 것으로 알려진 세르비아 출신 드라고슬라브 코스마자크는 2004년 슬로바키아 수도 브라티슬라바에서 슬로바키아 시민권을 받았다. 이 사실이 알려진후 다음해 슬로바키아는 이민법을 강화했다. 그러나 불과 1년 후, 세르비아의 대표적인 마약 밀매업자 다코 샤리치 역시 슬로바키아 시민권을 얻었다.

지난 2004년 슬로바키아 외무장관이 안드레이 키스카 당시 대통령과 이 문제를 논의한 뒤 "누군가가 세르비아의 마약왕에게 슬로바키아 시민권을 팔아 많은 돈을 벌었을 것"이라며 분노를 표하기도 했다고 한다. 20년 가까이 지났지만 조직범죄자들이 시민권을 쉽게 획득하는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미 국무부는 2015년 국제 마약통제전략보고서에서 슬로바키아를 1차 우려 대상국으로 지목한 바 있다. 미 국무부는 "슬로바키아에는 동유럽과 동남유럽에서 주로 발생한 국내외 조직범죄가 많다"고 지적했다. 또 보고서에서 "슬로바키아는 위조 및 밀수품, 자동차 절도, 부가가치세 사기, 사람, 무기, 불법 마약 밀매 등이 횡행하거나 최종 목적지인 국가"라고 지적했고 "조직폭력단 상당수가 이런 범죄활동으로 모금된 자금세탁에 관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로베르트 피초 전총리도 마피아와 연루되어 있다는 의혹이 퍼지자 사임했다. 시민들이 사임 요구 시위를 하는 모습.
로베르트 피초 전총리도 마피아와 연루되어 있다는 의혹이 퍼지자 사임했다. 시민들이 사임 요구 시위를 하는 모습.

그렇다고 슬로바키아의 사법 기관과 사법 시스템이 마피아의 유입에 대처할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직 국무총리, 대법관 등 유력 정치인이 범죄조직에 깊숙히 연루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마피아 뿌리뽑기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슬로바키아 국민들은 정부의 진심이 무엇인지, 정치인들의 진정성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안소현 슬로바키아 통신원은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체코•슬로바키아어학과 재학중이며, KOTRA 브라티슬라바 무역관에서 인턴생활을 하고 있다. 슬로바키아를 시작으로 더 많은 나라를 경험하고 이해해 생각이 큰 사람이 되겠다는 포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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