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수의 '협동조합 성공의 길'] 이야기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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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의 '협동조합 성공의 길'] 이야기의 힘
  • 김진수 농협대 협동조합 경영과 교수
  • 승인 2019.06.08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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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 농협대 교수
김진수 농협대 교수

[김진수 농협대 교수] 아스달 연대기를 보았다. 드라마 왕좌의 게임을 즐겨 보아왔던 터라 한국에서 같은 장르의 드라마가 시작되어 흥미롭게 봤다.

주인공 은섬이 안장과 고삐 없이 말을 타는 장면은 정말 대단했다. 첫 방송치고는 시청률이 높은 편이었다고 한다. 필자도 시청자 중 한 명으로, 드라마 속 마법에 놀라움을 느끼고, 영웅들의 칼과 활 솜씨에 감탄했다. 사실 나이 50이 넘고 나니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나이 들면 재미있는 일이 줄어든다. 그래도 이야기는 늘 재미있다.

유발 하라리는 그의 책 사피엔스에서 인간은 이야기 즉, 허구(fiction) 덕분에 단순한 상상을 넘어서 집단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오직 인간만이 객관적 실재(강, 나무, 사자) 외에 가상의 실재(신, 국가, 법인)를 만들어 내어 오늘의 문명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협동조합 법인도 이야기의 일종으로, 사회구성원들이 집단적으로 상상해 존재하게 된 가상적 실재이다. 이 협동조합이라는 픽션은 19세기에 등장했다. 이 이야기에는 프리퀄(prequel)이 있다.

협동조합에서 인권이 중요하게 된 이유

협동조합 이야기의 앞 이야기는 17~18세기 서유럽과 미국의 이야기다. 인간은 존엄하기에 자유로우며 개개인은 평등하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인권에 관한 이야기다. 그렇다. 인권도 이야기다. 인류가 비교적 최근에 믿는 이야기다. 아직도 일부 국가에서는 인권이라는 이야기에 대해 구성원들이 집단적으로 상상하고 공유하지 않고 있지만.

우리는 이 이야기를 잘 알고 있고 실제로 믿고 있다. 그런데 이 인권이라는 이야기는 우리네 콩쥐팥쥐처럼 우리 이야기가 아니라 신데렐라처럼 서양의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기독교를 믿는 나라의 것이다. 우리 이야기가 아니다 보니 원작자가 쓴 이야기를 전해 들어서 알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드물게 자생적으로 민주화라는 과정을 거치며 인권 이야기 뒷부분에 우리 이야기를 조금 보탠 것은 크게 자랑할 만한 일이다. 우리는 인권위원회라는 제도를 통해 인권을 느끼는 게 아니라, 우리 한국인 모두가 인권을 믿기에 이 가상실재를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한국인은 원작자가 아니기에 인권이라는 꽃의 씨앗을 잘 모른다.

인권은 기독교의 씨앗에서 개화했다. 기독교의 씨앗에서 근대적 법률(헌법, 민법, 형법)도 나왔다. 인간이 신의 모습으로 창조되었기에 존엄하며, 모든 인간이 신의 모습을 띄기에 평등하다는 이야기는 유대교에서 시작돼 지중해 일대 기독교 국가에서 믿게 되었다.

한편 중세 기독교 신학자들이 노예 이론을 승인했기에 기독교는 보편적 인권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반론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권, 평등권의 관념이 기독교에서 연원한다는 주장과 모순되지는 않는다(크리스티안 슈타르크, 민주적 헌법국가).

인권은 기독교에서 발아해 계몽주의라는 이름으로 세속화를 거치게 된다. 계몽주의는 많은 피를 흘리며 하나씩 하나씩 그 성과를 이뤄냈다. 영국의 명예혁명, 미국의 건국혁명, 프랑스 혁명이 그것이다. 인간 존엄성의 요체는 '내가 나의 주권자'가 되는 것이다.

덴마크의 독특한 교육시스템중 하나인 덴마크 폴케호이스콜레. 150년된 이 농민학교는 덴마크 자유학교의 모체다. 사진= 덴마크 폴케호이스콜레 홈페이지
덴마크의 독특한 교육시스템중 하나인 덴마크 폴케호이스콜레. 150년된 이 농민학교는 덴마크 자유학교의 모체다. 사진= 덴마크 폴케호이스콜레 홈페이지

협동조합 구성원끼리 '자립하겠다는 의지' 중요 

협동조합의 구성원도 '존엄함'을 가진 인간이 구성원이다. 내가 나의 주인이라는 생각이 명확해야 한다. 협동조합은 단순히 협업하는 조직이 아니다. 여태까지 한국에서 협동조합은 경제적 ‘약자’라는 면에 강조점을 두고 이해됐다. 그러나 비록 약자이지만 존엄한 개인이 국가의 도움, 구체적으로는 구빈 정책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립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스스로 모인 조직이라는 면이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최초의 협동조합인 로치데일 공정선구자조합이 설립된 1844년은 1인 1표의 보통선거를 통한 의회민주주의를 요구한 영국의 차티스트운동(1834~1848년) 참가자 500만 명 이상이 청원서를 제출한 시기다.

협동조합운동과 차티스트는 동일 시대를 숨쉬고 있었다. 인간존엄과 자유평등 정신을 바탕에 깔고 있다. 그래서 협동조합에서는 논란 없이 1인 1표가 원리로서 채택됐다.

우리나라 협동조합운동의 선구자인 목양 홍병선 선생이 기독교의 인권사상을 잘 아는 목사였다는 것은 협동조합이 단순한 협업조직이 아니라는 것을 웅변한다.

선생은 조선기독교청년회연합회(YMCA) 농촌부 간사로서  1927년부터 1928년까지 덴마크 및 미국의 농촌사업을 살펴보았다. 덴마크에서는 농민학교를 보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생산자협동조합의 하나인 낙농협동조합이 최초로 제도화된 나라는 덴마크이다. 덴마크의 국부 그룬트비는 목사였다. 그룬트비는 1829년 나이 40이 넘어 영국 캠브리지대학 트리니티 칼리지에 유학했다. 그곳에서 그룬트비는 칼리지(우리의 기숙사)안에서 교수와 학생이 하루종일 같이 식사하고 운동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교수가 학생을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는 것에 크게 감명을 받았다. 인간존엄과 자유평등 정신이 교육현장에 구현되는 현장을 직접 경험한 것이다.

그룬트비는 농민들과 교사들이 상대를 존엄한 주체로 대하는 태도를 가지고 토론에 임하고 배우는 농민학교를 설립했다. 후일 농민학교 출신들이 덴마크 협동조합의 리더가 됐다.

광주YMCA 초기 건물. 1920년7월 29일 사회운동가 최홍종 목사의 지도를 받은 30여명의 청년이 창립했다. 2020년 창립 100주년이 된다. 사진= 광주YMCA 제공· 연합뉴스
광주YMCA 초기 건물. 1920년7월 29일 사회운동가 최홍종 목사의 지도를 받은 30여명의 청년이 창립했다. 2020년 창립 100주년이 된다. 사진= 광주YMCA 제공· 연합뉴스

선구자 홍병선 선생, '참사람 만들기 운동' 실천

미국과 덴마크에서 귀국 한 홍병선 선생은 YMCA간사로서 서울 근교 150개 촌락중 39개 촌락에 농민학교를 설립했다. 선생의 협동조합운동은 자립적인 존엄한 주체, 즉 참사람 만들기 운동이었다.

“자식이 불쌍하다고 돈만 주지 마라. 일부러 고생을 시켜서 돈을 벌어주려고 돈 한 푼이라도 얻으면 그것은 자기가 이용하고 늘려서 살 계획을 차리는 ‘사람’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오늘 사회나 농촌이나 어디를 들여다 보든지 '참사람'이 없는 것이 걱정이다.”("농촌생활과 도시생활", 설교 오십이편, 금성서원, 1937)

일제는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키며, 한반도 내에서 농촌운동을 비롯한 기독교운동을 반체제로 몰아 탄압했고 이에 홍병선 선생의 활동도 중단됐다.

우리가 인권 이야기의 아시아편을 잘 써왔다면 이제 협동조합편도 잘 써내려가야 할 시기가 왔다. 한국을 배경으로 전개될 협동조합 드라마에서 이야기의 핵심은 협동조합 선구자들이 이미 말하고 있다.

●김진수 농협대 교수는 서울대 법대 사법학과를 졸업하고 농협중앙회 기조실, 농업경제기획부에 근무했으며 2012년부터 농협대학교 협동조합 경영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결사의 자유의 관점에서 본 협동조합'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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