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우의 친절한 독설] 주세법 개편 유감(遺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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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의 친절한 독설] 주세법 개편 유감(遺憾)
  • 이진우 경제전문기자
  • 승인 2019.06.07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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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맥주, 미국산 자동차 세금인하 요구와 비슷한 논리구조
'원가 비싼 문제' 그대로 둔 채 '국산업계 역차별' 프레임 활용
주세법 개정, 소비자 편익 무시...위스키·소주세 손못대는 모순
이진우 경제전문기자
이진우 경제전문기자

[이진우 경제전문기자] 맥주에 붙는 세금이 ‘맥주값의 00%’ 식의 종가세 방식에서 ‘맥주 100ml 당 얼마’ 식의 종량세로 바뀌게 된 과정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대한민국이 외국산 제품에 대해 얼마나 노골적으로 적대적이고 배타적이며 여론 앞에서는 명분과 원칙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 나라인지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다. 나는 가끔 이럴 때 우리나라가 부끄럽다.

국산 맥주 역차별 논란은 이런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캔에 2000원에 수입되는 A맥주(버드와이저라고 가정해보자)는 수입가격인 2000원의 72%를 주세로 내고 난 후에 거기에 수입상의 판매 마진과 한국에서 버드와이저를 팔기 위한 광고 마케팅비가 더해지는데, 똑같이 한 캔에 2000원의 제조원가가 투입되는 국산 맥주 B는 거기에 광고 마케팅비와 판매마진까지 더해서 약 3000원에 출고되며 주세는 그 출고가 3000원의 72%가 부과된다는 것이다.

왜 수입맥주는 마케팅비와 마진을 뺀 수입원가에 주세를 부과하고 국산맥주는 마진과 마케팅비를 더한 출고가에 주세를 부과하느냐는 게 국산맥주 업체들의 주장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건 국산 맥주회사들의 억지다. 한 캔에 2000원에 수입되는 수입 맥주 A는 그 2000원에 이미 그 맥주회사의 마진과 마케팅 비용이 모두 들어있다. 그러니 그 가격에 파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수입맥주를 제조한 회사는, 예를 들면 하이네켄이나 버드와이저 칭다오 등은 마케팅도 전혀 하지 않고 그래서 아무 브랜드도, 상표도, 인지도도 없으며 마진도 하나도 붙이지 않고 그 맥주를 제조원가에 그대로 한국에 수출했다는 말이다.(이게 말이 되나)

국산맥주업계는 높은 출고가에 세금을 매겨 가격이 비싸졌다고 주장해왔다. 수입맥주는 수입원가에 이미 마진과 마케팅비가 포함되어 있어 주세도 낮았다. 사진= 연합뉴스
국산맥주업계는 높은 출고가에 세금을 매겨 가격이 비싸졌다고 주장해왔다. 수입맥주는 수입원가에 이미 마진과 마케팅비가 포함되어 있어 주세도 낮았다. 사진= 연합뉴스

국산 맥주, 원가 높은 것이 원인

수입 맥주의 수입가격은 심지어 국산 맥주에는 포함되지 않는, 한국까지 날아오는 배송료까지 포함된 가격이다. 그게 2000원이다. 그런데 국산 맥주회사가 공장에서 한 캔에 2000원에 만든 맥주 B를 마진과 마케팅비 등을 더해서 3000원에 출고해야 한다면 그건 그냥 국산 맥주회사의 경쟁력이 떨어져서 국산맥주 B의 원가가 비싼 것 뿐이다.

이건 그냥 맥주A와 맥주B의 가격경쟁력의 차이일 뿐이라는 건 수입맥주 A와 국산맥주 B가 제3국인 태국이나 말레이시아로 수출되어 경쟁한다고 가정해보면 간단하게 입증된다.

A는 태국이나 말레이시아로도 한 캔에 2000원에 수출될 것이고 국산맥주 B는 한 캔에 3000원에 수출될 것이다. 그리고 태국의 주세 체계가 우리와 같은 종가세라면 여기서도 국산맥주 B는 주세를 더 많이 낼 것이다. 비싼 미국차가 저렴한 일본차보다 한국에서 자동차세를 더 많이 무는 것과 똑같은 원리다. 그럴 때 미국차가 자동차세는 가격과 무관하게 그냥 타이어 개수 곱하기 얼마 식으로 바꾸자고 하면 그러자고 동의하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산맥주도 수입맥주들처럼 일단 주세를 내고 난 후에 마케팅 비용이나 판매마진을 얹고 싶다면 그래서 주세를 좀 줄이고 싶다면 주세법을 종량세로 바꿀 게 아니라 국산 맥주회사가 수입맥주처럼 제조회사와 판매회사로 분할하면 간단하게 해결된다.

제조회사는 마진을 거의 남기지 않고 위탁생산만 하고 그렇게 해서 정해진 저렴한 출고가로 주세를 계산해서 일단 납부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맥주를 판매회사에 넘기고 판매마진과 마케팅비는 그 판매회사가 붙여서 팔면 수입맥주와 똑같은 구조가 되고 지금보다 주세를 덜 낼 수도 있다.

국산 맥주업계, 수년전엔 종량세 반대

그러나 우리는 뭐 그깟 일로 회사 분할까지 해야 하느냐며 그냥 주세법을 간단히 바꿔버렸다. 국산맥주가 차별당한다는 이유로. 50년 넘게 유지돼온 주세법 체계를 수입맥주의 시장점유율이 높아지자 그냥 바꿔버렸다. 대한민국의 세법은 내국인이 외국인에 비해 유리한 지위를 유지하도록 배려하는 데 그 존재 목적이 있나.

맥주에 붙는 세금을 맥주가격의 00%가 아니라 맥주 100ml 당 얼마로 정하자는 종량세 도입 주장은 사실 오래전부터 수제맥주 회사들이 자주 하던 이야기다. 수제맥주는 일반 맥주에 비해 재료가 다르니 원가도 비싸기 마련인데 원가가 비싸다는 이유로 세금마저 일반맥주보다 더 비싸니 경쟁이 안된다 그러니 주세법을 바꿔서 고급 수제맥주든 일반맥주든 동일한 용량은 동일한 주세를 내는 종랑세로 바꾸자는 게 수제맥주 업계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당시 일반맥주 업체들은 비싼 술에는 비싼 세금이 붙는게 합당하다며 종량세 도입을 반대했었다. 그런데 이제 본인들이 만들어 파는 맥주가 수입맥주에 비해 제조원가가 높아져서 불리해지자 종량세가 필요하다고 입장을 180도 바꾼 것이다.

주세 체계를 바꾸자는 똑같은 주장을 수제맥주 업체들이 할때는 그냥 시큰둥하던 여론이 ‘수입맥주에 비해 국산 맥주가 역차별 당한다’는 프레임을 걸자 불같이 달아올라서 몇 달만에 주세법을 바꿔버렸다.

정부는 주세법 개정을 통해 맥주는 종량세로 전환하기로 했으나, 위스키 소주는 현행대로 종가세를 유지하기로 했다. 사진= 연합뉴스
정부는 주세법 개정을 통해 맥주는 종량세로 전환하기로 했으나, 위스키 소주는 현행대로 종가세를 유지하기로 했다. 사진= 연합뉴스

그동안 주세법을 못바꾼 건 이유가 있었다. 수입자동차는 수입가의 5%를 개별소비세로 내고 나서 거기에 수입상의 판매마진과 마케팅비용을 붙이지만 국산자동차는 제조사의 판매마진과 마케팅비용을 모두 더한 최종 출고가의 5%를 개별소비세로 낸다. 수입맥주 국산맥주의 주세 부과 방식의 차이와 마찬가지다. 같은 논리라면 이제 자동차세도 판매가격의 00%가 아닌 자동차의 무게를 달아 kg당 얼마 식으로 바꿔야 한다.

주세법을 종량세 방식으로 바꾸면 소주와 위스키도 문제가 된다 지금은 소주와 위스키가 모두 출고가(또는 수입가)의 72%를 주세로 낸다. 그래서 가격이 비싼 위스키는 세금도 비싸다. 그런데 맥주에 부과하는 주세처럼 종량세로 바꾸면 소주나 위스키나 모두 ‘100ml 당 얼마’식으로 세금이 정해진다. 용량이 같다면 소주와 위스키의 세금이 동일해진다. 위스키에 붙는 세금을 유지하자니 소주에 붙는 세금이 다락같이 오르게 되고 소주에 붙는 세금을 그대로 두면 위스키가 매우 저렴해지면서 위스키에서 거둬들이던 고액의 주세를 포기해야 한다.

위스키·소주세는 차기 정부에 숙제 넘겨

이런 문제 때문에 과거에 수제맥주회사들이 주세법 체계를 종량세로 바꿔달라고 그렇게 요구했을 때도 거절했던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 고민도 쉽게 해결했다. 주세법을 바꾸되 소주와 위스키에 대한 적용은 당분간 유예하기로 한 것이다. 우리는 여론에 따라 일단 주세법을 바꾸니 그에 따라 파생되는 골치 아픈 문제는 다음 정권이 알아서 해결하라는 것이다.

새로 바꾼 종량세 체계에서 소주와 위스키의 세금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할 방법은 없다. 소주가 비싸져도 욕을 먹고 위스키값이 내려와도 문제다. 그걸 해결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서 그동안 주세법을 못바꾼 것인데, 주세법을 일단 바꾸고 그 문제의 해결책은 그냥 나중에 다음 정권에서 생각해보기로 한 것이다.

시간이 지난다고 답이 나오는 건 아니라는 걸 알지만 일단 법을 바꿔보는 그 기발함이 놀랍고 그 용기가 나는 부끄럽다.

● 이진우 경제전문기자는 2011년부터 MBC라디오 '손에 잡히는 경제'DJ로 활약하고 있는 인기 방송인이다. 서울경제신문, 이데일리 등에서 10여년 기자생활을 했다. 깊이 있는 취재를 바탕으로 특유의 재담을 풀어내 호평을 받고 있다. 팟캐스트방송 '신과 함께'를 진행, 많은 청취자들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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