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한 칼럼] 인간을 대상으로 한 의학 연구에 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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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한 칼럼] 인간을 대상으로 한 의학 연구에 관해
  • 김장한 울산의대·서울아산병원 교수
  • 승인 2019.06.01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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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서 독·일 전범, '인간을 수단으로' 실험
현대 의학, 상업적 이득 올리는데 지나치게 몰두
"의학 목적은 인류 생명과 건강 보호" 기준가져야
김장한 서울아산병원 교수
김장한 서울아산병원 교수

[김장한 울산의대·서울아산병원 교수] 전염병이 어떻게 발생하는 지는 오래된 논쟁거리였다. 과학 혁명 이전에는 질병이 유기체의 부패 때문에 발생한다고 보았다. 유기체가 부패하면 독성 물질인 '미아즈마(miasma)'가 발생하고, 그것이 공기를 통해서 퍼지는데, 사람들이 나쁜 공기를 통해서 이 물질에 접촉하면 병에 걸린다고 믿었다. 그래서 전염병을 예방하는 방법은 썩은 냄새나는 공기를 환기시켜주는 것이고, 질병 치유는 자연 치유력이었다.

고기 덩어리를 공기 중에 놓아두면 그 표면에 구더기가 생긴다거나 심지어 광에서 쥐가 발생한다는 자연발생설 역시 같은 수준의 이론이었다.

인도에서 발생한 콜레라는 19세기 유럽에 창궐하기 시작했다. 14세기 중세 유럽을 휩쓸었던 흑사병의 재림이었는데, 인도, 중동을 거쳐 서서히 동유럽으로, 이후 서유럽으로 번져 나갔다. 1854년 8월 영국 런던 소호지역 브로드거리에서 첫 콜레라 환자가 발생했다. 매일 한 두명이던 환자가 8월 말부터 9월 초에 갑자기 매일 50~100여명씩 발생했다.

콜레라 발병원인 찾아낸 존 스노우 

콜레라 균에 오염된 물을 마신 사람들은 수 시간 또는 수일 내에 갑자기 심한 복통, 구토, 쌀뜨물 같은 설사를 하게 된다. 설사의 양이 대략 시간당 1리터(ℓ) 정도 되기 때문에, 환자는 증상 발생 수 시간 내에 극심한 탈수와 전해질 이상으로 사망하게 된다. 하지만 당시에는 아무도 질병의 원인을 몰랐고 치료법도 몰랐다.

미아즈마 이론에 의하면, 오염된 템즈 강에서 퍼지는 나쁜 공기가 원인이었다. 하지만, 의학자 존 스노우(John Snow)는 물에 포함된 독성물질이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환자가 발생한 집을 방문해 발병한 환자 수를 막대로 지도에 표시했는데, 환자가 마을 공동 우물(아래그림에서 원 표시한 곳)을 중심으로 가까운 거리에 다수 분포하는 것이 관찰됐다.

1854년 런던 콜레라 유행 당시 존 스노우가 환자 수(블록 수)를 기록한 그림. 브로드 거리에 위치한 펌프(원 표시)와 환자 수.
1854년 런던 콜레라 유행 당시 존 스노우가 환자 수(까만 블록 표시)를 기록한 그림. 브로드 거리에 위치한 우물의 펌프(원 표시).

그는 시 당국에 브로드거리 공동 우물의 펌프 손잡이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 당국이 그의 의견에 따라 펌프 손잡이를 제거하자, 환자 발생 수가 급감했다.

당시 집에는 땅을 파서 분변이나 오수를 저장하는 구덩이를 만들었는데, 구덩이에 오수가 차면 퍼서 템즈 강에 버리는 방식으로 처리했다. 문제가 되었던 공동 우물 옆 1미터(m)도 안되는 거리에 오수 구덩이가 있었는데, 추정컨대 첫 환자로 사망한 5개월된 아기 세라 루이스의 설사 기저귀를 오수 구덩이에 버렸기 때문에, 구덩이 벽의 갈라진 틈 사이로 오수가 스며들면서 콜레라가 우물을 오염시켰던 것이었다.

나중에 확인된 내용에 의하면, 비록 인접한 거리의 맥주 양조장 인부는 양조에 사용되는 물을, 수공업 작업장 인부는 작업장 내 자체 우물물을 먹었기 때문에 희생자가 없거나 적었고(윗그림에서 화살표 표시), 먼 거리 거주하면서 공동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먹은 사람들은 콜레라에 희생됐다. 콜레라가 물을 통해서 전염된다는 '수인성 전염병'이라는 것은 통계적 방법과 사례 정리에 의하여 입증된 것이다.

탄저균, 광견병균, 매독균 발견 이어져

이후 30년간 미생물학의 급속한 발달이 있었다. 로베르트 코흐(R. Koch)는 탄저균을 배양한 다음, 배양한 균을 실험 동물에 접종해 발병시키고, 병소에서 균을 채취해 현미경으로 모습을 확인하면서, 특정 점(germ)에 의해 특정 질병이 발병한다는 '점 이론(The germ theory)'를 확립했다.

루이 파스테르(L. Pasteur)는 광견병 백신 실험과 인체 적용을 했고, 가축 질병 치료를 위해 탄저균 백신을 만들어서 프랑스와 해외 판매를 하면서 많은 돈을 벌었다. 특정 점(germ)을 찾으면 백신으로 치료 할 수 있다는 '백신 만능론'도 나왔다.

병원에 입원한 환자를 중심으로 임상 실험이 진행됐으며, 점차 대상 환자 수도 증가했다. 독일의 디프테리아 연구는 30명을 대상으로 수행했으며, 소련 스미도비치(Smidovich)의 매독, 임질 연구는 수십 번의 실험을 반복했다.

일본의 미생물학자인 노구치 히데요는 1913년 미국 록펠러 연구소에서 매독균을 발견했는데, 노벨생리의학상에 9회 추천될 정도로 유명한 인물이다. 현재는 일본 천엔 지폐에 그의 얼굴이 인쇄되어 있기도 하다. 그는 매독의 진단 물질로 '루에틴(Luetin)' 효과를 실험하기 위해 400명의 정신병 환자 및 고아에게 이 물질을 사용했다.

매독균을 발견한 노구치 히데요의 사진이 실려있는 일본 화계.
매독균을 발견한 노구치 히데요의 초상화가 실려있는 일본 1천엔짜리 화폐.

독일·일본 전범들, 무고한 시민들 대상 '인간실험' 자행

제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는 동안 군대에서 승리를 거두기 위한 감염병 등에 대한 치료법을 알아내기 위한 군진의학이 발달했다.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인권은 무시됐다.

나치 독일에 대한 뉘렘베르그 전범 재판(Nüremberg trial)은 1945년에 시작해 1949년에 끝을 맺게 된다. 재판은 여러 분야로 나누어 진행되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23명의 의사들에 대한 재판이었다. 기소된 피고인들은 '살만한 가치 없는 삶'이라는 전제하에 정신병이 있거나 정신지체, 신체적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 대해 '안락사'라는 이름으로 살인을 저질렀거나, 수용소에 갇힌 사람(죄수라고 표현했으나, 무고한 시민이거나 전쟁 상대국 군인이 대부분이었다)들을 대상으로 전쟁에 필요한 인체 실험을 시행한 범죄 혐의를 가지고 있었다.

재판은 140일 동안 진행됐으며, 85명의 증인과 1500여개의 문서가 검토된 결과, 7명은 석방됐고, 16명에게 유죄가 인정됐다. 또 7명은 1948년 6월 교수형에 처해졌다.

일본 군국주의에 대한 극동국제군사재판(International Military Tribunal for the Far East, IMTFE)은 1946년부터 1948년까지 진행됐다. 일본 관동군 731 부대에서 시행한 인체 실험에 대한 기소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냉전이 도래하면서, 전후 처리 문제에서 일본은 철저한 청산이 되지 않았다.

코오롱생명과학의 인보사 사태는 '인간의 생명과 건강 보호'라는 의학을 1차적 목적을 경시한 탓은 아닐까.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인보사의 품목허가를 취소한다고 했지만 부실검증이 도마에 올랐다. 사진= 연합뉴스
코오롱생명과학의 인보사 사태는 '인간의 생명과 건강 보호'라는 의학을 1차적 목적을 경시한 탓은 아닐까.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인보사의 품목허가를 취소한다고 했지만 부실검증이 도마에 올랐다. 사진= 연합뉴스

의학의 발전은 인류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는 1차적 목적을 가진다. 하지만 부가적으로 개인에게는 명예와 경제적 이득을, 국가에는 산업적, 정치적 이득을 가져다 준다. 이런 부차적인 이득이 1차적 이득을 압도하는 것이 현실의 모습이다.

신약 개발의 경쟁에 뛰어든 우리나라는 IT에 이어서 BT만이 장래의 먹거리라고 한다. 먹고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지 않는가? 인간이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전락했던 역사적 사건들은 너무나도 많다. 사회 구성원 개개인이 인간 가치에 대해 최소한의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사회를 위한 어떠한 담론과 절차 논의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김장한 울산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서울아산병원 교수(박사)는 서울대 의대와 법대,  양 대학원을 졸업했다. 세부 전공은 법의학과 사회의학이다. 대한법의학회 부회장, 대한의료법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 의학과 관련한 역사, 예술, 윤리, 법, 제도, 정책 주변 이야기를 두루 다룰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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