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리포트] 아르헨티나에서 초록손수건을 가방에 맨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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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리포트] 아르헨티나에서 초록손수건을 가방에 맨 이유
  • 이정은 아르헨티나 통신원
  • 승인 2019.05.31 14: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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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낙태 허용' 바라는 정치적 의사 표현...합법화까지는 험난한 길
아르헨티나 도시 길거리에서 쉽게 마주 칠 수 있는 초록손수건. 사진=이정은 아르헨티나 통신원

[오피니언뉴스=이정은 아르헨티나 통신원] 지난 3월 아르헨티나 뚜꾸만주에서 할머니의 남자친구에게 성폭행 당한 11살 소녀가 임신 23주차까지 중절 시술을 받지 못해 제왕절개로 아이를 출산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 소식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다시 한번 '낙태 합법화' 논쟁이 아르헨티나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 '낙태 합법화' 카톨릭 국가의 뜨거운 감자

카톨릭 국가인 아르헨티나는 성폭행이나 임신부의 생명,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이유로 하는 경우가 아닌 낙태시술은 여전히 불법적인 의료행위로 간주된다.

이번 사건의 경우 합법적 중절 시술이 가능한 경우였음에도 불구하고, 공립병원병원과 관련 수사관계자들의 늑장 대응으로 수술 수속을 받지 못해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카톨릭 신자 의료 관계자들이 의도적으로 수술을 회피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내놓고있다. 

지난해 페미니즘을 넘어 대중적 운동으로 번진 아르헨티나 국내 낙태합법화 운동은 앞서 언급한 것과 유사한 수많은 피해자, 그중에서도 사회적, 경제적으로 낙태수술을 받기 힘든 여성과 아이들의 안타까운 사례들을 토대로 대중들에게 설득력을 얻어갔다. 하지만 지난해 법안은 결국 상원을 통과되지 못했다. 
  
그 때부터 아르헨티나의 도시 길거리에서 반복적으로 발견되는 메시지가 있다. 바로 낙태합법화에 찬성하는 남녀노소 시민들의 가방에 매달린 초록색 손수건이다.
 
중간에 하얀색 리본이 그려진 이 손수건에는 큼지막하게 “낙태, 법이 되어라!”라고 쓰여있다. 그 밑에는 “합법의, 무상의, 안전한 낙태”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 거리낌없는 정치적 의사 표현

길거리에서 이런 현상은 한국의 '노란리본 달기'현상을 연상시킨다. 

두 나라 모두 독재정권의 공포정치시대를 겪었고, 시민들은 지금까지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30년이 지났고 시민들은 거리낌 없이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시하게 됐다.

낙태합법화 집회에 엄마를 따라 참가한 여자 아이. 사진=나딸리아 페레이로(Natalia Pereiro)

물론 초록손수건을 든 여성들의 집회도 도시 곳곳에서 자주 볼 수 있다. 특히 지난 5월 28일은 '세계 월경의 날'로 낙태 합법화에 찬성하는 여성들이 다시금 의회 앞에 모여 집회를 한 날이었다. 지난해 기각된 법안에서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된 8번째 합법화 법안을 하원 의원들의 70명의 서명과 함께 제출했다. 

이번에는 낙태합법화를 여성 건강과 연결시켰다. 낙태가 합법인 국가의 여성들에 비해 아르헨티나에서는 음성적 낙태시술 및 시도 중 사망하는 여성의 수가 20배나 더 많다는 것을 근거로 낙태 시술에 대한 처벌을 금지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무상 의료체계를 보유하고 있는 아르헨티나의 경우 낙태 합법화 법안이 통과되면 저소득층 시민이나 외국인 모두 합법적으로 임신중절 수술이 가능해 진다. 상황이 이러한 까닭에 합법화가 되면 비용과 인력면에서도 추가적인 예산 투입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에 변수되나

이처럼 현재 가장 뜨거운 이슈인 낙태합법화 문제는 올해 10월~11월간에 치러질 대통령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부통령후보로 출마를 공식선언 한 전 대통령이자 현재 상원의원으로 재직중인 크리스티나 키츠네르는 지난해 합법화에 찬성했고, 그와 동반 출마하는 페르난도 페르난데스는 낙태시술에 대한 처벌금지에만 찬성하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현 대통령이자 차기 대통령 선거 출마 의사를 밝힌 마크리 대통령은 아직 합법화 법안에 대한 적극적 대응은 하지 않았지만, 상원 의회에서 통과되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표명한 바 있다.

 

<참고자료>
https://www.clarin.com/sociedad/fuerte-presencia-adolescente-llego-congreso-nuevo-proyecto-aborto-legal_0_zMPl00H-B.html

 

● 이정은 아르헨티나 통신원은 부에노스 아이레스 대학 사회과학부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이민과 국경의 지정학 및 초국가적 농민운동에 관심이 많다. 언젠가 문학 번역에 도전해보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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