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왜 화웨이를 ‘콕’ 찍었을까?..."통상 이슈 아닌 헤게모니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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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왜 화웨이를 ‘콕’ 찍었을까?..."통상 이슈 아닌 헤게모니 충돌"
  • 김솔이 기자
  • 승인 2019.05.29 18: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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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금융투자, 5G 기술전쟁·무역협상 우위·중국 고립전략 세가지 이유 제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5일 정보통신 기술‧서비스 보호를 목적으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튿날 미국 상무부는 화웨이와 68개 계열사를 사실상의 블랙 리스트인 거래 제한 기업 명단에 올렸다.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김솔이 기자] 중국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가 29일 미국 법원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제재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다. 앞서 미국 상무부는 지난 16일 트럼프 대통령이 전일 정보통신 기술‧서비스 보호를 목적으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자 화웨이와 68개 계열사를 사실상의 블랙 리스트인 거래 제한 기업 명단에 올렸다. 사실상 미국 기업과의 거래를 전면 차단한 것이다.

무엇보다 미국이 중국 내 다른 기업이 아닌 화웨이를 직접적으로 겨냥한 배경에 관심이 모인다.

신한금융투자는 미국이 중국의 화웨이를 견제하는 이유로 ▲5세대 이동통신(5G)을 기반으로 한 기술전쟁 ▲무역협상에서의 우위 차지 ▲G2 헤게모니 충돌에서 우방국가를 포섭하고 중국을 고립시켜는 전략 등 세 가지를 제시했다.

박석중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화웨이는 중국의 ‘제조 2025프로젝트’와 산업 고도화의 시작과 완성에 있는 곳으로 주주구성 및 성장 배경에 정부가 존재한다”며 “미국이 전례 없는 행정조치로 주변국까지 동원해 화웨이에 위협을 가하는 이유”라고 밝혔다.

◆ 화웨이는 中 국영 기업?

화웨이는 인민해방군 장교와 당대회 대표를 거친 런정페이(任正非)가 1987년 자본금 2만1000위안(350만원)으로 설립한 곳이다. 통신장비 무역상으로 시작했으나 독자적 교환기를 개발하면서 성공 기반을 닦았다. 여기에 중앙 정부의 외자 진입 제한과 인민해방군 독과점 납품에 힘입어 10년만에 중국 최대 통신장비 업체가 됐다. 

자료=화웨이, 신한금융투자

이후 중국에서 안주하지 않고 1997년 홍콩을 시작으로 해외로 발을 뻗었다. 이미 2005년에 전체 매출 중 해외 매출 비중이 중국 시장 매출을 넘어섰다.

2012년에는 세계 1위 통신장비 업체에 올라, 화웨이의 모바일 장비 시장점유율이 30%에 달한다. 

화웨이의 사업 분야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건 단연 스마트폰이다. 회사는 2000년대 후반 스마트폰 상용화 바람을 타고 2010년 관련 사업을 시작했다.

불과 5년 만에 세계 시장점유율 3위를 차지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중국 시장에서 점유율 1위, 세계 시장에서 2위를 기록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화웨이가 대외적으로 민영 기업의 틀을 갖지만 국영 기업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앞서 미국 중앙정보국(CIA)가 화웨이가 중국 정부의 적극적 지원과 통제를 받는 기업이라는 공식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미국은 그 이유로 ▲정부 지분 ▲거대 보조금 수취 ▲중국 정부를 위한 사이버 해킹‧도청 등의 가능성을 제시해왔다. 다만 화웨이가 기업 공개를 하지 않는 이상 직접적 증거를 찾기 힘들다는 한계가 있다.

◆ 화웨이, 세계 통신장비 시장서 절대적 영향력

미국이 화웨이를 겨냥하는 건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한다. 즉 세계 패권을 쥔 강대국으로서 중국 정부와 연관된 화웨이의 성공을 좌시할 수 없어 공격에 나선 것이다.

이는 지난해 12월 런정페이의 장녀인 멍우저우 부회장을 체포하면서부터 가시화했다. 다만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1년 백악관뿐 아니라 하원까지 합세해 기술 유출과 해킹 위험을 명분으로 미국 기업과의 기술 거래와 현지 진출을 막은 점을 고려하면 미국의 화웨이 제재는 오래 전부터 계속됐다는 분석이다.

화웨이가 그간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데에는 물론 국영 기업의 이점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기술 개발 역량을 더 중요한 이유로 꼽는다. 지난 10년간 화웨이의 연구개발(R&D) 비용은 700억달러 규모로 연평균 매출의 10%에 육박한다.

특히 화웨이는 세계 통신장비 분야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현재 170개국 40여개 통신사, 포춘 500대 기업 등에 통신장비를 공급하며 기업 네트워크 및 통신망 서비스 시장점유율이 30%를 웃돈다. 화웨이 인프라 기반의 통신 사용자는 30억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되는데 5G 상용화로 더 늘어날 수 있다.

자료=신한금융투자

5G 장비 분야에서는 기술적 우위를 선점했다. 지난해까지 5G 부문에만 14억달러를 투자하는 등 공격적인 R&D를 진행한 데 따른 것이다.

현재 5G 특허의 20% 이상을 화웨이가 독점, 5G 표준 필수 특허 보유수 및 표준 개발 기술 기여도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5G 상용 공급 계약 업체는 지난해 말 26개에서 지난달 40개까지 늘어났고, 5G 기지국 공급은 7만개를 넘어섰다.

◆ 中 산업고도화, '미국의 이익 침해' 의미

화웨이가 5G에 주력하는 이유는 사업 포트폴리오 상 미래 핵심 사업이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클라우드, 인공지능(AI)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다. 이 기술을 구현하려면 5G 통신 기술이 전제돼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화웨이의 지향점에는 ‘제조 2025’로 대변되는 중국 정부의 ‘산업 고도화’가 있다. 이 프로젝트에서 육성하는 7가지 신성장 산업의 생태계는 5G를 기반으로 하는 4차 산업으로 만들어진다. 다시 말해 이 프로젝트의 시작부터 완성까지 모든 과정에 화웨이를 빼놓을 수 없다는 의미다.

문제는 중국 산업 수준이 높아질수록 미국의 주력 산업의 부가가치를 훼손할 수밖에 없는 구도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행정조치로 주변국과 기업들을 겁박해 화웨이 장비 사용 금지와 밸류체인 전반에 위협을 가해야 하는 셈이다.

박 연구원은 “미·중 갈등의 본질은 통상이 아닌 헤게모니 충돌과 주력산업 경쟁 구도 심화에서 찾아야 한다”며 “기존 미국의 소비와 중국의 생산 경제 속에서 공존의 균형을 가졌던 G2는 중국의 경제 규모 확대와 산업 고도화로 경쟁 관계로 변화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국으로서는 중국의 산업 고도화를 보고만 있을 수 없다”며 “두 국가의 신냉전시대는 결국 정보기술(IT)을 기반으로 시작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 헤게모니 충돌에 주변국 동원

이 가운데 지난달 25일부터 사흘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일대일로(一帶一路) 포럼’과 미국의 화웨이 제재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의견이 나온다. 당시 대규모로 열린 포럼에는 37개국 정상, 150여개국 대표단이 참석했다. 일대일로의 성공적 개최는 트럼프 내각에 압박을 더할 수 있게 됐다. 

현재 152개국이 일대일로 협력에 공식 서명했다. 특히 중국은 일대일로 포럼 전후로 유럽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실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지난 3월 유럽 순방을 다녀오기도 했다.

때문인지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일대일로에 적극적 참여 의사를 드러낸 유럽 국가들은 화웨이 5G 장비 도입과 일대일로 참여를 반대하는 미국 요구를 보이콧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사진=연합뉴스

미국과 중국의 분쟁은 자국에 국한되지 않고 주변국을 포섭해 상대를 압박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미국 입장에서는 첨단 기술, 금융, 경제력을 기반으로 주변국을 압박해 중국과의 연대를 막고 있는 것이다. 그 시작점이 화웨이 제재인 셈이다.

박 연구원은 “G2 분쟁에서 주변국과의 동조는 판세를 결정할 중대 요인이 될 수 있다”며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자동차 관세 유예, 일본 순방, 유럽 정상 회담 등으로 노선을 변화한 이유도 동일선상에서 바라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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