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TRA 미국 워싱턴무역관
[오피니언뉴스=오성철 기자] 미국 트럼프 정부가 중국의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에 대한 제재조치를 취한 가운데 미국 뿐만 아니라 일본 영국 등에서 화웨이에 대한 보이콧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이에 미국 주요 언론들은 최근의 미중 기술 분쟁을 '디지털 철의 장막'(Digital Iron Curtain) 시대의 도래로 규정하고, 양국이 본격적인 기술 냉전에 돌입할 경우 향후 전 세계적 파장이 예상된다고 우려하고 있다.
KOTRA 미국 워싱턴무역관은 지난 16일 미국 상무부의 화웨이 제재조치 발표 이후 미국 언론들의 보도를 종합한 결과, 미국 외 일본 영국 등 글로벌 주요기업들이 제재에 동참할 의사를 보이는 데다 미국 역시 추가적인 수출제한조치를 발동할 수 있어서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 미국 외 英,日,獨 기업도 줄줄이 거래 중단
화웨이에 대해 미 상무부의 제재이후 일본의 통신사업자 KDDI와 소프트뱅크는 이번 달 예정됐던 화웨이의 신형 스마트폰 'Huawei P30' 출시를 취소했다고 발표했고 일본 무선통신시장의 절반을 점유하는 NTT 도코모사도 화웨이 스마트폰 선주문 취소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의 최대 통신사업자인 BT 그룹은 올해 말까지 개통키로 한 차세대 무선 네트워크에서 화웨이와 삼성 스마트폰을 사용할 계획이었으나 화웨이 스마트폰은 배제할 것으로 알려졌다.
보다폰(Vodafone) 역시 화웨이의 5G형 모델 'Mate 20X'의 선주문을 취소한다고 발표하면서 “불확실성이 해소될 때까지 당분간 이 조치는 유지될 것이며 지속적으로 상황을 관망하겠다”고 밝혔다.
이번에 미국 상무부가 화웨이 제재 수단으로 동원한 수출제한리스트(Entity List)는 미국의 안보 및 외교 정책에 위해(危害)가 되는 기업·개인·정부 등을 목록화한 것이다. 미국 기업이 해당 기관과 ▲수출 ▲재수출▲이전 등의 거래를 할 경우 미국 정부의 사전 허가를 얻도록 하는 수출행정규정이지만 실제로는 '블랙리스트'에 가깝다.
상무부 내 산업안보국(BIS)은 지난 16일 화웨이와 이 기업의 68개 해외 관계사를 수출제한리스트에 추가한다고 발표하면서 구글, 퀄컴 등 미국 기업들이 화웨이에 부품·기술·소프트웨어 등을 수출할 때에는 BIS로부터 사전 허가를 얻어야 한다.
물론 미국 기업들이 BIS에 거래허가 심의를 요청할 수 있으나, 심의 자체가 '거부 추정' 원칙을 적용하고 있어 사실상 승인을 얻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맞다.
◆ 화웨이 '블랙리스트'에 올라 막대한 피해
화웨이는 현재 인텔, 퀄컴 등에서 반도체 칩을, 구글에서 스마트폰 운영체계 등 핵심 부품 등을 공급받고 있어 이번 리스트 등재로 막대한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2017년 화웨이에 제품·기술을 공급하는 주요기업 263개 중에서 미국 기업이 65개(25%)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나머지는 중국 108개, 대만 24개, 한국 18개, 일본 8개 등이다.
로이터통신은 화웨이 대상 수출이 가능 많은 미국 기업은 플렉스(Flex), 브로드컴, 퀄컴 등이며 이들 상위 3개 기업의 연간 수출액이 61억 위안 (8억8000만 달러)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미국 상무부의 제재 직후 구글, 인텔, 퀄컴 등 주요 미국 공급사들은 공식 또는 비공식적으로 자사 제품의 화웨이 공급 중단 결정을 발표했다.
특히 구글은 스마트폰 운영체계인 안드로이드에 대한 화웨이의 사용권을 중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경우 화웨이는 자사 스마트폰 운영체계를 공개 소스에만 의존할 수 밖에 없어 향후 구글이 제공하는 지메일 유튜브 등의 서비스와 안드로이드 기반 앱에 접근이 불가능해진다.
일본의 무선통신사업자들이 화웨이 스마트폰을 보이콧하게 된 것이나 앞으로 유럽, 중남미 등 스마트폰 시장에서 화웨이의 입지가 크게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런 우려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독일계 인피니온(Infineon), 영국계 ARM과 같은 주요 반도체 관련 기업들도 미국 내 생산이 화웨이 수출통제 대상에 포함된다고 밝히며 수출 중단을 발표했다.
논란이 커지자 미국 상무부는 지난 20일 화웨이에 90일간 일반 수출 라이선스를 발행하는 방식으로 한시적으로 수출통제를 연기한다고 발표하며 한발짝 물러섰다.
◆ "리스트 추가도 검토" 강경한 美 정부
그러나 윌버 로스(사진) 상무장관은 "이번 수출 라이선스 발급은 오직 미국 기업과 정부가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대책 마련을 위한 한시적 조치에 불과하다”고 강조, 이번 화웨이 제재가 중국과 협상을 통해 결국 철회될 것이라는 일각의 전망을 일축했다.
나아가 미국 언론들은 상무부가 화웨이 외에도 하이크비전(Hikvision), 다후아(Dahua)와 같은 중국의 보안관련 기업들을 수출제한리스트에 추가하는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이크비전은 세계 1위의 보안카메라 제조기업으로 중국 정부가 국영기업을 통해 약 42%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하이크비전이 화웨이의 자회사인 하이실리콘(HiSilicon)으로 부터 대부분의 반도체 칩을 공급받고 있어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분석하면서도, 앞으로 인공지능, 안면인식 등 기술 고도화 추진에는 상당한 제약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 강경 일변도가 능사만은 아니다?
주목할 점은 지난 해 8월 미국 의회가 수출통제개혁법, 외국인투자심의현대화법 등 2개의 중요한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두 법안은 각각 ▲미국 기업의 수출과 외국의 대미 직접투자에 대한 심의대상 확대 ▲집행 강화 및 거래중단조치 권한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데 사실상 중국의 '기술굴기' 견제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 같은 강경 일변도 전략에 대한 우려도 있다.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인 '정보기술혁신재단'(ITIF)은 최근 보고서에서 "수출통제는 일부 분야에 한해 중국 견제를 위해 제한적으로 필요할 수 있으나, 그 대상 범위가 확대될 경우 미국 경제 전반에 피해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포괄적 무기 금수대상 국가'로 규정한 중국 포함 21개 국가에 대한 수출통제를 강행할 경우 향후 5년간 미국 기업 수출은 141억~563억 달러 감소하고, 1만8000~7만4000개의 고용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수출통제 기술 대상을 제한적으로 설정하고 수출통제에서 국제사회의 공조를 이끌어 낼때 비로소 대중국 견제의 실효성을 거둘 수 있다"고 조언했다.
미국 주요 언론들은 최근 일련의 사태를 '디지털 철의 장막'(Digital Iron Curtain) 시대의 도래로 규정하며 미국을 비롯한 우방국들이 첨단기술 개발과 상용화에서 중국을 배척할 경우 중국은 기술력 자강책에 나설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이 막대한 국가보조금 지원을 통해 ▲자체 스마트폰 운영체계 ▲칩기술 ▲반도체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중국 기술 표준을 세우는데 주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 화웨이는 자체 스마트폰 운영체계인 훙멍(HongMeng) OS를 개발해왔으며 올해 가을부터 상용화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수년 전부터 자회사 하이실리콘을 통해 반도체 자립도 제고에 노력해오고 있다.
◆ '고립 전략'이 中 기술자립 촉진할 수도
다만 화웨이의 기술자립에는 영국계 반도체 디자인설계 기업 ARM의 수출 중단이 가장 큰 타격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STL Partners의 애널리스트인 데이빗 버스테인은 "화웨이에게 ARM을 잃는 것은 안드로이드를 잃는 것보다 더 큰 타격이 될 것이다”며 “2012년부터 ARM 기반으로 반도체를 생산해 온 하이실리콘에게는 존폐가 걸린 위기일 수 있다"고 밝혔다.
기술전문지 와이어드(Wired)는 최근 기사에서 "화웨이가 오픈소스 안드로이드로 자체 운영체제(OS)를 개발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닐 수 있으나, 문제는 오픈소스 역시 ARM 기반 칩을 위해 설계됐다는 점”이라며 "ARM 없이는 화웨이의 모든 백업 플랜은 무산될 수 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미국 정부는 첨단기술분야 수출·투자 통제에 이어 해외인력 채용 규제까지 나서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미국 기업들은 반도체·통신·핵·국방 등 첨단기술을 다루는 외국 국적의 직원을 고용할 경우 BIS로 부터 '특수 유출 허가(Deemed-export license)'를 발급받아야 한다. 보통은 신청에서 발급까지 몇주가 소요됐으나 최근에는 6~8개월까지 걸리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승인신청 건을 보면 중국 국적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아 승인 지연 사태가 중국 견제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월스트리트저널의 분석이다.
미국 현지 언론들은 이번 화웨이 사태로 인해 기존 글로벌 밸류체인의 혼돈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단기적으로 개별 기업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기술 시장 전반에 위축을 가져올 것이 자명하다는 기류다.
KOTRA 워싱턴무역관은 “지난 23일 트럼프 대통령이 화웨이 제재가 미중 무역협상에서 논의될 수 있다고 밝히며 갈등해소 가능성을 내비쳤으나 상당수 언론은 미중 기술경쟁은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며 장기전을 예상 중”이라고 전했다.
다만 화웨이가 유럽과 중동지역에서 체결한 수출계약건이 미국 부품 수급 난항으로 지연될 경우 삼성전자, 노키아, 에릭슨, 삼성전자 등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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