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우민의 입법혁신] 누가 규제혁신을 말하는가
상태바
[심우민의 입법혁신] 누가 규제혁신을 말하는가
  • 심우민 경인교대 교수
  • 승인 2019.05.29 11: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차량공유 서비스 둘러싼 갈등과 논쟁...규제혁신담론 갈등만 증폭시켜
관료적 행태에 초점둔 '규제혁신론' 한계...민주적 공감대 지향하는 입법혁신 논해야
입법 의미 경시, 역량도 부족...'입법은 과학 아닌, 민주주의'라는 접근 필요해
심우민 경인교대 교수
심우민 경인교대 교수

[심우민 경인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 최근 차량공유서비스를 둘러싼 갈등이 첨예화하고 있는 가운데, 70대 택시기사의 분신에 대한 이재웅 쏘카 대표의 SNS상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다. "참담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죽음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죽음을 정치화 하고 죽음을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이 발언은 일파만파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에 대한 반박은 대부분 바로 전통 산업 종사자들에 대한 사회적 포용과 합의, 그리고 존중과 예의를 강조하고 있다.

죽음, 사회적 포용과 합의 그리고 인간에 대한 예의. 이런 거창한 단어들은 최근 논의되고 있는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의 영향력이 과거와 같이 국소적인 것이 아닌 가히 전면적인 시장 및 사회 구조의 변화와 연계돼 있다는 점을 잘 나타낸다.

사실 이번 논쟁을 찬찬히 살펴보면, 대립하는 듯 보이는 견해들 모두 죽음을 경시하거나 혁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주목해야할 부분은 다음과 같은 이재웅 대표의 언급이다.

“타다를 반대하는 서울개인택시조합은 수입이 얼마나 줄어들었는지, 혹시 줄었다면 그것이 택시요금을 택시업계 요구대로 20% 인상한 것 때문인지, 불황 때문인지, 아니면 타다 때문인지 데이터와 근거를 가지고 이야기했으면 좋겠습니다. 근거 없이 정치적 목적 때문에 타다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2019년 5월 17일, 이재웅 대표 SNS)

이 언급은 소위 사회 혁신의 방법론을 언급하고 있으며, 이런 근거에 기반한 규제혁신 정책 추진을 부정할 논자는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행정과 입법 현실은 이러한 요구를 실현할 수 있는 역량과 제도를 갖추고 있는가?

지난 20일 서울개인택시조합 조합원들이 서울시내에서 시위를 열고 "(집권여당인)민주당은 죽어가는 택시산업을 지키고 법의 허점을 이용해 소상공인만 노리는 약탈 앱에 대한 규제장치를 법으로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이재용 대표의 '타다' 서비스를 규제해달라는 것이다. 사진= 연합뉴스
지난 20일 서울개인택시조합 조합원들이 서울시내에서 시위를 열고 "(집권여당인)민주당은 죽어가는 택시산업을 지키고 법의 허점을 이용해 소상공인만 노리는 약탈 앱에 대한 규제장치를 법으로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이재용 대표의 '타다' 서비스를 규제해달라는 것이다. 사진= 연합뉴스

지금 필요한 것은 '입법혁신'이다

이 논란은 현실적으로 규제혁신 담론과 연결된다. 규제를 개념정의하고 있는 법률은 「행정규제기본법」이다. 이 법 제2조 제1호는 ‘행정규제 또는 규제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특정한 행정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것으로서 법령 등이나 조례·규칙에 규정되는 사항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현재 상황에서 규제혁신 담론은 국가 권력에 의해 부당하게 강제되고 있는 법령들이 존재한다는 문제 인식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현재의 기술적·사회적 환경 변화에 있어 이런 문제인식을 전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 궁극적 취지를 고려할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하는 지점이 있다.

국가 법령상의 규제는 단순히 즉자적인 정책 요구를 반영하는 경우도 있지만, 통상적으로 나름의 연혁과 의미를 가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규제 전환은 사회적 갈등을 유발한다. 따라서 사회적 갈등이 불가피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가급적 최소화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수용성을 가지는 규제혁신 정책의 운용이 필요하다.

그런데 규제라는 용어 자체가 단순히 관료적이고 권력적인 강제를 의미하는 경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어서, 자칫 현재 상황에서의 규제혁신 요구가 관료적 행태의 변화에만 집착하는 것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규제혁신과 입법혁신은 유사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 둘을 구분해 접근하는 것이 현재 상황에서 필요할 것으로 본다.

규제혁신이라는 개념의 범주적 협소함으로 인해 많은 부분 사회적 합의보다는 국가 기관 또는 권력의 정치적 결단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모종의 규제혁신을 요청하는 자들은 시민들을 설득하는 과정보다는 국가의 입법권자를 대상으로 한 현실적 로비에 집중하게 된다. 그것이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민들이 정확하게 문제 현상에 대해 알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규제혁신은 오히려 국가 공동체적 불신을 조장하는 결과에 이르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이것이 현재의 규제혁신 담론이 가지는 문제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제도적 수단을 강구할 필요는 없다. 이미 우리 헌법질서 속에 존재하는 입법과 그 절차에 관한 관념이 국가 공동체적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기여하도록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견지에서 지금 여기에 필요한 것은 ‘규제혁신’이 아니라 ‘입법혁신(立法革新)’이다.

그간 입법 본연의 의미는 경시되어 왔다

입법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생소하지 않다. 다소 개괄적으로 입법은 규범 형성에 관한 사회적 합의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는 매우 기초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입법 본연의 의미를 그간 우리사회에서 매우 경시돼왔다고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애초 사회적 합의라는 모호한 개념에 내포되어 있다.

일견 사회적 합의라는 용어가 매우 단순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정확한 의미를 알기 어렵다. 이는 사회계약이라는 용어가 일상적으로 활용되지만 사실 이 땅을 살고 있는 그 누구도 태어나는 순간 계약서에 서명을 하지 않았던 것과 같은 이치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즉 사회적 합의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상황적 가정이다. 이것이 가정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단번의 합의나 계약에 의해 모든 가치 간 갈등이 조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사회가 민주정치의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해 왔다고는 하지만, 보다 직접적으로 사회적 합의라는 가정에 조금이라도 근접하기 위한 입법의 방식과 기준에 대해서는 별반 큰 고민과 관심이 없어 왔다. 연일 각종 미디어를 통해 입법 및 정책 등에 대한 정치적 분쟁상황을 마주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정치적 타협이나 결단의 결과일 뿐이다.

그저 입법이라는 것은 그러한 타협과 결단의 내용을 다소 기교적으로 문서상 반영하는 행위로 보는 것이 현실적 관념이다. 그러나 이는 입법 본연의 의미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물론 민주정치는 그 자체로 사회적 갈등을 조화시킬 수 있는 기반이다. 따라서 입법 관념은 이러한 정치를 포괄하는 것으로, 종국적으로는 국가 공동체 차원의 규칙 합의에 근접하는 절차와 방식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진 정치라고 할지라도 입법 절차와 방식에 관한 고민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러한 좋은 의도를 실현하는 데에는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

즉 최근 규제혁신이라는 이름의 변화요구에 직면해, 국가가 다소 소극적이고 방관자적인 현실 입장을 취하는 이유도, 규칙 합의에 도달하는 절차와 방식에 대해 깊게 고민해본 적이 없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달리 말해 이는 우리사회 입법역량의 부족을 의미한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해말 열린 '4차 규제혁파를 위한 현장대화'에서 “공무원이 선의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가 있다면 그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말했다. 사진= 연합뉴스이 총리는 이날 대전시 유성구 소재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에서 이같이 밝혔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해말 열린 '4차 규제혁파를 위한 현장대화'에서 “공무원이 선의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가 있다면 그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말했다. 사진= 연합뉴스이 총리는 이날 대전시 유성구 소재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에서 이같이 밝혔다.

입법은 과학이 아니라 민주주의다.

이제는 일종의 유행으로 자리 잡은 규제혁신 담론은, 다소 시일이 걸리더라도 안정적인 혁신을 달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매우 구시대적인 것으로 취급한다. 그러면서 불합리한 규제의 철폐와 국가 법령체계의 총체적 전환(정비)를 주장한다.

그러나 무엇이 불합리한 것이고, 또한 총체적 전환에 도달할 수 있는 방식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과정과 설득은 없고 오직 결과만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는 모양새다.
그러한 규제혁신의 실행으로 추진으로 분명 누군가는 승리의 축배를 들어 올릴 수 있겠지만, 사회적 갈등과 분열은 보다 노골적으로 심화될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규제 이면의 입법의 의미를 되새기고, 이를 바탕으로 보다 안정적인 입법혁신을 달성해 나가야한다.

입법에 관한 사고의 기준을 정초시켜줄 수 있는 비교적 새로운 학문분야가 바로 입법학이다. 입법학은 주어진 법조문의 해석을 중심으로 발전해온 전통적 해석법학에 대한 반성이자, 새로운 사회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법규범 및 그 체계를 설계하기 위한 방법이다. 굳이 입법혁신을 뒷받침해줄 학문영역을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그간 학문 연구에 있어서도 입법의 문제가 경시되어 왔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서구에서도 입법학은 비교적 생소한 학문영역이다. 다만 우리와의 차이점이 있다면, 그들 국가에서는 입법학이라는 이름만 공식화되지 않았을 뿐, 입법에 관한 고민은 매우 면밀하게 진행되어 왔으며, 나름의 입법문화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입법학에 입각해 볼 때, 우리사회의 입법혁신에 있어 다음과 같은 논제들은 선제적으로 숙고해야 할 필요가 있다.

1) 총체적으로 어떤 입법혁신을 추구해야 하는가(입법이론)
2) 입법 필요성과 방향성 결정은 어떤 사고과정을 통해 수행해야 하는가(입법정책결정론)
3) 혁신을 위한 바람직한 입법절차와 거버넌스는 무엇인가(입법과정론)
4) 입법적 합의를 효과적으로 표현 및 전달하는 방식은 무엇인가(입법기술론)
5) 입법의 효과성을 어떻게 예측 및 검증할 수 있는가(입법영향평가론)
6) 입법을 위한 설득은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가(입법논증론)

(이러한 개별적 논제 영역의 함의는 이후 칼럼 연재 과정에서 실제 사례를 통해 설명하기로 한다).

사실 이 논제들 중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여섯 번째 논제이다. 이는 입법논증론이라고 부른다. 입법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의 결과물이기 이전에 민주적 규범형성 의지의 반영체라고 보아야하기 때문이다.

규제혁신론자들은 자신들의 관점이 가장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민주적 설득의 과정을 다소 불필요하고 번거로운 작업인 것처럼 표현하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에게 이미 정답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이어서 모든 이가 동의하고 감탄하는 실체적 대안이 아니다. 사실 그런 것은 그저 관념적인 상상의 영역에만 존재한다고 보아야한다. 현재의 규제혁신 담론은 빠른 길을 택하려다가 갈등을 증폭시키면서 시간만 보내는 꼴이다.

성과 지향적 대타협이 아니라, 먼저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느려 보이는 길이 가장 빠른 길이다. 특히 국가적 규칙과 규범의 영역에서는 말이다.

●심우민 교수는 연세대에서 법학박사를 취득한 이후,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을 거쳐 경인교육대 사회과교육과 교수(입법학센터장)로 재직하고 있다. 입법학이라는 새로운 학문분야를 개척하면서, 우리나라의 미래 입법 패러다임 전환에 기여하고자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