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수의 '협동조합 성공의 길'] 보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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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의 '협동조합 성공의 길'] 보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 김진수 농협대 협동조합 경영과 교수
  • 승인 2019.05.25 15:52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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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은 자발적 결사체, 목적보다 신조, 관점이 더 중요
조합원 교육, '관점'이라는 공통지점 공유하는 일
협동조합 제도 정착, 관점을 공유하는 노력에 집중해야
김진수 농협대 교수
김진수 농협대 교수

[김진수 농협대 교수] 나무를 심었다. 모종화분에 있던 사막의 장미(adenium obesum)라는 꼬마 나무를 비어 있던 흰색화분에 옮겨 심었다 화분 속 작은 나무는 다른 화분으로 옮겨 심어도 잘 죽지 않는다. 그런데 나무를 마당이나 길가에 심을 때는 조건을 고려하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고, 그렇지 않으면 뿌리내리기에 실패하여 시들어 버린다.

나무를 옮겨 심을 때 주의해야 할 사항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잔뿌리, 미생물, 뿌리 방향 등을 특히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남쪽으로 자란 나무뿌리를 북쪽으로 심으면 그 나무는 정착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방향을 잊지 않기 위해 표식을 달아둔다. 우리가 먼 곳으로 여행 갔을 때 시차를 겪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할 것이다.

제도는 도입은 쉬운 듯 하지만 정착은 어렵다. 나무를 옮겨 심는 것만큼이나 까다롭고 조건을 갖추기 어렵다.제도는 형체가 없다. 형체가 없기에 양복이나 기계처럼 우리가 쉽게 사용하고 고쳐 쓰기도 어렵다. 제도이기에 그 제도가 만들어지고 성장한 여러 맥락을 세심하게 고려해야 한다.

제도는 도입 쉽지만 정착 어려워

협동조합은 우리 땅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다. 협동조합이란 제도는 형체가 없기에 우리땅에 도입해 정착하기 즉 옮겨심기가 참 어려운 대상이다. 협동조합은 결사체(association)다. 국제협동조합연맹(ICA)도 협동조합은 결사체라고 밝히고 있다.

유럽헌법의 '결사의 자유에 관한 규정'에 의하면 결사체는 공동의 목적을 추구하는 하나의 관점을 가진 구성원들의 조직이다. 결사체라는 용어가 조직과 같이 이해되는 경우에는 비자발적 결사체가 있다. 변호사회와 같이 가입이 의무화된 경우이다. 자발적 비자발적 구분은 가입 탈퇴가 자유로우냐를 기준으로 한다. 협동조합은 자발적 결사체이다.

자발성을 기준으로 한 구분은 아주 중요하지만 자발성 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관점’이다. 협동조합에는 관점이 중요하다. 각종의 자발적 결사체에는 각각에 맞게 여러 차원의 관점이 있다. 종교단체에는 우주관 내세관이 중요하고 정당에는 정치관이 있다. 각 협동조합에는 각 협동조합의 관점이 있다.

협동조합의 모범사례로 유명한 스페인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로고 이미지.
협동조합의 모범사례로 유명한 스페인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로고 이미지.

 

협동조합에 가장 중요한 것은 '목적' 아닌 '관점'

우리는 협동조합 제도를 수입하였기에 제도에 명시된 목적은 잘 안다. 그래서 협동조합을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만든 조직으로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나무의 뿌리방향처럼 중요한데 표식을 달 수 없는 게 있다. 그게 '관점'이다.

조직 구성원들은 공동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여러 수단과 방법을 만난다. 이 수단과 방법 중 하나를 고르고 실행하는 지침이 관점 혹은 신조이다. 협동조합에서는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게 아니다.

협동조합은 영국에서 산업혁명기에 탄생했다. 1844년 최초의 협동조합인 로치데일 공정 선구자 조직 (Rochdale Society of Equitable Pioneers)은 말 그대로 당시 생각, 관점, 신조를 상당부분 공유한 선구자들이 지역시민 일부와 함께 만든 것이다.

이 협동조합의 목적들은 명시적으로 기록되어 있기에 우리가 쉽게 알 수 있다. 후일 '협동조합7대원칙'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아직 로치데일 선구자들의 관점을 기록한 문건을 찾지 못했다.
 
협동조합의 창시자 로버트 오웬(Robert Owen)은 개개인이 다른 관점을 가진 것은 현실이고 관점을 획일화하도록 훈련시킬 것이 아니라, 훈련을 통해 공동체(협동조합) 구성원 개개인의 관점 혹은 신조의 공통 지점을 공유할 수 있다고 했다.

몬드라곤 협동조합도 '종교'라는 공동 신조가 성공조건

오웬은 서로 다른 개개인들이 상호 존중하고 호의를 베풀면서 살아가는 공동체를 제시했다. 오웬은 선천적 성격(nature)과 후천적 성격(nurture)이 둘 다 중요하다고 보고 둘 다를 고려한 교육을 중요시했다.

지금도 오웬은 유효하다. 새로운 협동조합을 만들어 성공적으로 운영하려면 구성원이 각자의 관점을 편안하게 드러내고 그 관점들의 공통 지점을 찾아내고 이를 다듬어 나가 뒤에 가입한 구성원까지 이를 공유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협동조합의 모범사례로 자주 이야기되는 스페인 북동부 산악지역의 '몬드라곤협동조합'은 돈 호세 마리아 신부가 설립한 협동조합이다. 종교라는 공통의 기반위에서 협동조합 구성원들간의 공통지점을 잘 찾아낸 사례라고 할 것이다.

성공한 협동조합에는 구성원들의 관점, 가치관, 신조 교육이 지속적으로 실시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사실 신입 조합원들은 협동조합을 일반 회사와 같은 조직으로 이해하고 행동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신입 조합원들에게 협동조합의 관점, 가치관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좀 더 체계적이고 시대흐름에 맞는 관점. 가치관을 다듬을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다듬어진 관점 가치관을 전체 조합원에게 다시 알리고 내면화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교육은 필수적이다.

조합원 교육도 '관점'이라는 공통지점 찾는 일

우리 주변에 많은 협동조합이 있고 오늘도 생기고 있다. 새로 협동조합을 만들려면 구성원들끼리 공통의 목적으로 모였다면, 이제 각자의 관점, 신조를 용기있게 드러내고 공통점을 찾기 시작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협동조합은 일시적 모임과는 다르기에 공동활동을 지속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관점들의 공통지점 찾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기에는 조건이 하나 있다. 구성원간의 수평적 의사소통이 가능해야 한다.

밀레니얼 이후 세대들에게 꼰대가 화제다. “니가 감히”는 중세 조선의 “누구 안전에서” 의 변형이다. 아랫사람 윗사람이라는 말도 그대로 통용되고 있다. 수평적 의사소통은 어쩌면 한국의 많은 협동조합이 가장 넘기 힘든 산일 수도 있다.

한국의 기업들이 직원들이 영어이름을 쓰도록 하거나 직명을 단순화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 수평적 의사소통을 위한 것이다. 협동조합은 특히나 1인이 1표를 가지는 민주적 조직으로 서로간에 평등한 의사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조합원간의 의사소통이라면 협동조합 조직내의 이사, 부장이라는 직명보다는 ○○조합원님이라는 상호존대를 통해 협동조합에 맞는 호칭이라고 할 것이다.

나무를 옮겨 심기는 어렵다. 협동조합 제도를 우리나라에 정착시킬 때 보이지 않지만 꼭 고려해야 할 사항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한다.

●김진수 농협대 교수는 서울대 법대 사법학과를 졸업하고 농협중앙회 기조실, 농업경제기획부에 근무했으며 2012년부터 농협대학교 협동조합 경영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결사의 자유의 관점에서 본 협동조합'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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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2019-05-27 14:16:02
좋은 글 읽고 갑니다.

김호열 2019-05-26 22:11:34
새로운 협동조합의 길을 제시한 좋은내용, 잘 읽었습니다.

류재호 2019-05-25 16:38:27
협동조합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