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가장 비열한 무기 ‘대인지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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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가장 비열한 무기 ‘대인지뢰’
  • 하종오 편집인
  • 승인 2015.08.2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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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춤에 108만발이 넘는 지뢰를 묻어놓고 남북이 서로 왕래할 수는 없다"

목함지뢰 도발로 우리측의 대북 확성기 방송이 재개되자, 북한이 서부전선을 포격하면서 촉발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남북 고위급 접촉의 와중에도 최고조로 치달았던 지난 23일. 비무장지대(DMZ) 남측 지역에서 육군 모 부대 소속 A하사가 수색작전 중 또다시 지뢰를 밟아 부상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군은 “폭발한 지뢰는 아군의 M-14 대인지뢰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대인지뢰는 적군과 아군, 군인과 민간인,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신관을 빼고는 무게 100g에 불과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금속탐지기에도 잘 걸리지 않는다는 M-14 대인지뢰의 경우 폭발하면 피해자의 다리나 손목을 간단히 절단시킨다. 목숨은 건져도 피해자의 남은 생애, 그리고 가족과 후손에게까지, 씻을 수 없는 상처와 눈물과 증오를 남긴다.

 

▲ 경기도 연천군 민통선 인근의 지뢰지역 경고 푯말. /연합뉴스 자료사진

 

대인지뢰는 그래서 ‘지상의 가장 더러운 무기’다. 국제적으로 이 대인지뢰의 생산과 사용은 물론 비축, 이동을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이미 매설된 지뢰는 제거하도록 한 대인지뢰금지협약(오타와협약)은 지난 1999년 3월1일부터 발효됐다. 오타와협약은 서문에서 군인과 민간인은 전시에도 구별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대인지뢰의 비인간성을 부각시켰다.

1997년 프랑스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비운의 영국 왕세자비 다이애나는 생전에 대인지뢰 퇴치 운동에 누구보다 앞장섰지만 오타와협약의 비준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는 사고 직전에도 보스니아를 방문해 지뢰 퇴치 운동을 펼쳤다. 다이애나비의 죽음에는 여러 음모론이 제기됐다. 그 중 하나가 ‘무기상의 암살설’이다. 그가 적극적으로 대인지뢰 퇴치 운동을 벌이면서 무기 거래상 등 군사적 이익집단과 대척관계에 섰던 것이 이유라는 설이다.

오타와협약에는 161개 국이 가입했고 19개 국은 이 협약에 따라 대인지뢰를 전면 폐기했다. 그러나 한국과 북한, 미국, 중국, 러시아 등 36개 국은 지금도 가입하지 않고 있다. 남북한은 군사적 대치 상황이 이유다. 1991년 걸프전 이후 대인지뢰를 사용하지 않은 미국은 지난해 6월 대인지뢰를 더 이상 생산, 구매하지 않겠다는 계획을 밝히면서도 한반도만 예외로 했다. 당시 미 국무부는 "한반도는 특별한 상황"이라며 "대한민국의 방어에 필요하지 않은 지뢰들은 적극적으로 파기하겠다"고 말했다.

 

남북한이 함께 이 땅의 지뢰 제거 작업에 나서라

한반도는 그렇게 슬픈 지뢰밭이다. 오타와협약을 전후한 1997년부터 한국에서 지뢰 퇴치 운동과 지뢰 피해자 지원 활동을 벌이고 있는 사단법인 평화나눔회에 따르면 DMZ와 민통선 일대에 매설된 것으로 확인된 지뢰의 수는 108만 3,000발이다. 후방 지역에 매설된 것도 7만5,000발에 달한다. 한국 땅에는 1㎡당 2.3발의 지뢰가 묻힌 셈이다. 세계적으로 지뢰가 많이 매설된 나라는 이집트, 이란, 앙골라 등이 꼽히지만 단위면적당 지뢰 매설 밀도는 한국이 세계 최고다.

 

▲ 한국 지뢰 매설 현황. /사단법인 평화나눔회 자료

 

국방부에 따르면 DMZ 내 미확인 지뢰 지대는 97㎢다. 이는 서울 여의도 면적의 33배다. 북측 DMZ 일대에 북한이 매설한 것을 제외한 추정치다.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이 들여온 지뢰는 10만여발이었지만 남북 대치로 주로 1960년대를 거치면서 DMZ와 민통선 일대의 지뢰가 그 10배로 불어난 것이다. 전방지역뿐만이 아니라 서울 우면산, 성남 남한산성, 인천 문학산, 부산 중리산, 나주 금성산 등 후방 36개 지역, 전국 곳곳에 지뢰가 묻혀있다.

국방부가 발표한 미확인 지뢰 지대의 지뢰를 전부 제거하는 데는 489년이 소요된다는 추산이다. 국방부가 매년 군인을 동원해 제거하는 지뢰 수는 500개 정도다.

평화나눔회에 따르면 한국전쟁 이후 지뢰로 피해를 당한 민간인은 462명이지만 실제 피해자는 1,000여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에도 2010년 3건, 2011년 1건, 2012년 3건, 2013년과 2014년에 각 1건의 민간인 지뢰 사고가 발생하는 등 한국전쟁 이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민간인 피해가 발생했다.

DMZ와 민통선 일대에 묻힌 108만여발의 지뢰를 제거하지 않는 한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세계생태평화공원 조성이나 경원선 철도 복원사업 등은 사실상 공염불이다. 총연장 249㎞의 군사분계선 남북 2㎞ 폭으로 생태공원을 만들어 DMZ를 평화의 공간으로 거듭나게 하겠다는 프로젝트인 세계생태평화공원 사업비 가운데 DMZ 지뢰 제거 예산이 205억원 수준이라고 한다.

한반도처럼 남북으로 갈려 전쟁을 치렀던 베트남. 1975년 전쟁이 끝났을 때 베트남은 전 국토의 20%가 지뢰 혹은 불발탄으로 뒤덮인 상태였다. 지뢰로 사망하거나 부상한 사람들이 10만명이 넘었고 최근까지도 매년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베트남은 한국과 미국 등으로부터 지뢰 제거를 위해 매년 1,000만 달러 이상을 지원받고 있다. 하지만 매설 추정량 80톤 중 현재까지 제거된 지뢰는 전체의 10%도 되지 않는다는 추산이다.

 

489년 동안 지뢰밭을 후손에게 물려줘서는 안 된다

위기 후에 기회가 찾아온 듯, 지난 20일부터 6일 동안 한반도를 극도의 군사적 긴장 상태로 몰아넣었던 남북한 관계는 8·25 남북 고위급 협상 타결로 대화와 교류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 민간 교류, 당국자 회담도 좋지만 이번 기회에 남북한이 이 땅의 지뢰 제거 작업부터 함께 시작해 줄 것을 기대한다.

허리춤에 108만발이 넘는 지뢰를 묻어놓고 남북이 서로 왕래할 수는 없다. 지뢰밭을 자연으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한꺼번에 제거할 수도 없다. 남북한이 장기적 플랜을 수립하고 협력하면서, 중단없이 제거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이들은 물론, 앞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할 후손들에게 489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지뢰밭을 물려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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