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리포트] 결혼과 동거에 차별없는 아르헨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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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리포트] 결혼과 동거에 차별없는 아르헨티나
  • 이정은 아르헨티나 통신원
  • 승인 2019.05.24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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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보험, 연금, 은행대출 등에서 동등한 권리...혼외 출산에 대한 편견도 없어

[오피니언뉴스= 이정은 아르헨티나 통신원] “결혼을 누가해 요즘..”

아르헨티나의 20~30대 연인들은 일정기간 데이트를 하고 진지한 관계로 발전할 때 쯤 자연스럽게 동거를 시작한다. 연애가 무르익어가면, 다음 단계는 자연스럽게 함께 사는 수순으로 이어진다.

상대방 집에 공간의 여유가 있으면 그 집으로 들어가 살거나, 아예 처음부터 함께 살 큰 집을 구하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시간이 늘어나니 연인관계도 더 돈독해지고, 비용도 절감되니 경제적인 장점도 크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주말에 자전거를 타고 나온 세 식구. 그들은 과연 진짜 법적 가족일까? 그게 과연 중요한 질문일까?  사진= 이정은 통신원

한국처럼 혼전 잠자리나 동거에 부여하는 사회적 낙인(특히 여자에게)이 없기 때문에, 동거는 숨겨야 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가족들과 주변 친구들에게 있어서 축하를 받을 일이다. 두 사람의 사랑이 그만큼 성숙하고 진전했다는 의미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흔히 동거를 책임이 따르지 않는 두 성인의 자유로운 결합이라고 가볍게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내가 사는 공간을 타인을 허락한다는 것, ‘합친다’는 선택 자체가 이미 중대한 결정이다. 관계의 끈을 더 단단히 한다는 약속을 담고 있다. 

물론 함께 생활하다 성격과 습관 차이로 헤어지는 경우도 있다. 살던 집을 정리하고 새 집을 구해야 하고 생활패턴이나 주변관계에도 많은 변화가 생기기 때문에 일반적인 이별보다 더 복잡하겠다고 얘기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과연 헤어짐의 무게를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을까. 동거라고 결혼보다 더 가볍고, 단순한 연애보다 무겁다고, 그렇게 쉽게 일반화할 수 있을까.

그리고 오히려 그 부분이 이곳 사람들에게는 동거의 핵심이고, 포인트다. 한국 사회의 결혼 문화나 절차에 대해 설명해주면 오히려 “결혼을 해야한다 쳐, 근데 어떻게 살아보지도 않고, 평생을 약속할 수 있겠냐”고 꼬집는다. 

틀린 말이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태어나 자라며 자연스럽게 학습된 가치에 대해서 합리적으로 질문을 던지니 할 말이 없어진다. 특별히 비혼주의자가 아니다고 하더라도 법률적 결혼을 낭만적 사랑의 결과물이라고 여기거나, 결혼에 대한 의무감을 크게 느끼지 않는다. 당위성 차원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동거의 다음 단계도 물론 결혼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줄어드는 결혼, 늘어나는 동거

남녀간의 법적 혼인으로만 이루어진 가구를 ‘정상가족’으로 인정하고 있는 한국 사회와 달리 서양문화는 가족의 다양성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는 편이다. 1988년 제정된 스웨덴의 동거법, 프랑스의 시민연대계약(PACS)과 독일의 생활동반자관계법은 이처럼 동거관계에 있는 커플에 대한 법적 보호와 차별 해소를 위해 존재한다. 

유럽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아르헨티나도 예외는 아니다. 사랑의 골인점이 결혼이 아니라는 인식은 1990년대를 전후로 일찍이 자리잡았다.

현재 20~30대의 부모 세대의 이혼율의 가파른 상승은 분명 법률결혼제에 대한 회의감과 기피를 가져온 원인 중 하나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보다 근본적으로 ‘필요가 없으니 안하는 것’이라는 게 젊은 커플들의 답변이다. 

2015년 관련법 최종 개정 이후 시민계약(Unión Civil)에 등록한 이성·동성 커플에게는 의료보험, 연금, 은행공동대출, 동거인의 질병으로 인한 병가 등 법적으로 혼인신고를 한 커플들이 누릴 법한 권리와 혜택 대부분이 부여된다.

상속문제에 있어서만 예외다. 주(州)마다 차이는 있지만 시민계약 커플의 경우 유언에 상속자를 별개로 명시해야만 동거인이 그 상속 대상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아르헨티나 산타페 주에서는 2016년을 기점으로 시민계약이 혼인 건수를 초월해 지난 5년간 혼인 건수보다 시민계약이 30%이상 더 많이 나타나기도 했다.

◆ ‘혼외 출산’의 일반화

비혼관계에서 태어난 아이도 급증했다. 임신이나 출산을 이유로 결혼을 결심하는 경우는 드물다. 혼인한 사이가 아니라 하더라도 아이나 부모에게 돌아오는 혜택이나 대우는 모두 동등하다. 때문에 출산 이후에 남자친구는 ‘아버지’의 역할을 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 
 
한부모 가정에 대한 편견과 미혼모 여성에 대한 혼외출산의 모두를 미혼모, 결손가정, 문제적 가족, 그리고 아이로 인식하는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무엇보다 아르헨티나 헌법에서는 아르헨티나 땅에서 태어난 아이는 아르헨티나 시민이면 어떤 조건에서든 사람으로서 누려야 할 인권을 보장해줘야 하며, 차별을 금지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지난 2018년 한국에서도 사실혼 관계에 대한 법 제정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유럽에서 동거법 제정으로 출산율이 올라갔다는 통계도 한 몫 한 듯하다. 한국의 뚝 떨어진 출산율 문제가 언론을 뜨겁게 달구며 국가적 위기로 인식되던 때였다.

하지만 단순히 출산율을 높일 목적으로 관련 법들을 개정한다는 건 우리 사회의 문화와 성숙도를 감안하지 않은 매우 단선적인 발상이다.

동거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부정적인 데다 양쪽의 부모가 있어야 정상이라고 인식하는 기성 세대의 인식이 바뀌려면 적극적 캠페인과 의식변화를 위한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나아가 가족의 다양한 형태에 대한 수용성을 높일 수 있는 환경을 먼저 조성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 이정은 아르헨티나 통신원은 부에노스 아이레스 대학 사회과학부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이민과 국경의 지정학 및 초국가적 농민운동에 관심이 많다. 언젠가 문학 번역에 도전해보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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